21화
‘일 났군.’
긴급 속보에 주변은 전에 없이 소란스러웠다.
그도 그럴게 이블리온은 제국 남부에서 가장 부유한 성계 중 하나였다.
이유는 블루옵테늄, 남방 경계 전체를 통틀어 2할에 해당하는 블루옵테늄이 이블리온 성계 한곳에서 생산됐다.
블루옵테늄은 각종 합금을 만드는데 드는 필수 광물로 아크 팩토리 역시 이블리온에서 막대한 양의 자재를 수입하던 와중이었다.
나는 곧장 방으로 향해 노트북을 열었고 은하간 통신망에 접속했다.
오딘과 트라카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국 영토 전역을 대상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
둘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간 거리보다 훨씬 멀었고 이를 빛을 이용한 통신을 이용해 교신하려 하면 사실상 동시 통신은 불가능했다.
안부를 묻고 나서 며칠 뒤에 답장을 받을 게 아니라면 통신을 위한 워프 기술이 필수가 되는 셈이었다.
조금 긴 신호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의 목소릴 들을 수 있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회장님.>
“혹시 속보 봤나?”
<속보요?>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남자의 이름은 라이언 코멧.
그는 트라카에 있을 적에 원활한 자원 수급을 위해 꾸린 자원탐사 팀의 리더였다.
아크 팩토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자원 수요를 맞추고, 위기에 대응하고, 탐사 팀을 관리하는 것까지가 이 라이언 코멧의 역할이었던 것.
트라카에 아직 속보가 도착하지 않았음을 깨달은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블리온 성계가 함락됐다. 곧 그쪽으로도 속보가 들어갈 거야.”
<이블리온이 말입니까?>
“그래. 블루옵테늄의 비축 작업은 현재 얼마나 진행됐지?”
<전쟁이 심해지는 형편인지라 일단 비축분을 최대한 모으긴 했는데 요즘 사업이 계속 확대되면서 많은 양을 모으기가 버거웠습니다.>
라이언은 현재 비축해 둔 블루옵테늄으론 3개월 이상을 버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부 쪽에 인맥이 좀 있어서 그쪽에서 광물을 들여오는 루트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계속 진행할까요?>
“비용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계속 신경을 써줘.”
<알겠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생산량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됐다.
이제 트라카에선 적수가 없는 아크팩토리지만 이곳 제국 남부만 해도 무수히 많은 군수산업체가 산재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잔뼈가 굵은 곳들에 비하자면 아크팩토리는 신생기업이나 다름없는 수준.
이제야 기술력으로 이름을 좀 알리려는 판인데 전쟁이랍시고 생산이 막히면 구매자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발길을 돌릴 게 뻔했다.
통화를 마친 뒤 밖으로 나오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승조원들이 보였다.
어디에서든 다들 이블리온 이야기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곧 출격하게 될 거라고.
외계인이라고 찰흙으로 전투함을 만들진 않는다.
거대 광산을 내준다는 건 적에게 더 많은 전투함을 안겨주는 것과 같은 이치.
한 시간 뒤, 예상대로 마이더스호에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처음으로 향하게 된 전선, 임관 51일째에 일어난 일이었다.
*
5524년 4월.
수많은 제국 전함이 이블리온 탈환 작전을 위해 모여들었다.
‘압도적이군.’
창밖으론 무수한 전투함들이 열을 맞추어 이동 중이었다.
전함은 연방군 최대의 전략 자산.
이 전함 한 척을 움직이기 위해선 최소 5척의 순양함과 10척에 달하는 구축함, 급수와 급양 등을 위한 보급함 4~6척, 작전에 따라선 채굴, 병기제조와 의료선 등을 포함한 특수목적함이 따라붙었다.
전함이 한 번 움직이면 20척이 넘는 함선이 따라 이동하는 셈이다.
그런 지금, 이블리온 성계엔 제국 전함이 1500척, 도합 3만 척이 넘는 함선이 모였으니 실로 대단한 장관이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적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하는 조종사들이 늘어났다.
이런 증상은 계급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는데 대위급 베테랑 조종사도 실전은 이번이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다들 말이 없던 가운데, 비행대대장이 침묵을 깨고 나섰다.
“모두 주목. 지금부터 미사일 대부분을 샤프슈터로 교체할 것이다.”
샤프슈터 미사일.
고화력에 타격 범위가 넓어 적의 실드, 대형함 타격에 주목적을 둔 헬파이어 미사일과 달리 고기동에 중점을 둔 공대공 미사일이었다.
“적들의 규모는 아직 정확히 파악된 게 없으나 최소 1만 척 이상의 전투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소 1만···.”
“우리의 목표는 날파리들에게서 주력함을 지키는 것이다.”
아군 호위라는 말에 조종사들 사이에서 안도의 기색이 느껴졌다.
적 전함에 미사일을 때려 박는 것보단 함선을 호위하는 쪽이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모두 출격 상태로 대기하도록. 30분 뒤엔 작전 지역에 도달한다.”
대대장이 단상에서 내려가고, 동기들은 눈빛을 교환하며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비장한 각오.
전투가 끝나고 나면 누군간 죽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다행인 건 G포스 감소장치의 장착이 늦지 않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아직 대리인을 찾진 못했으나 최근 상황이 흉흉해 미리 테스트 명목으로 마이더스호의 모든 전투기 개조를 마쳐둔 상태였다.
기동력은 23퍼센트 향상에 몸에 걸리는 부하는 획기적으로 줄인 전투기.
이는 이름만 같은 전투기지 사실상 아예 다른 기종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아마 우리 전투기들이 이곳의 최고 에이스들일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야겠지.’
극도로 뛰어난 전투기는 일반 조종사를 에이스급으로 만들어줄 정도로 뛰어난 가치를 자랑한다.
나는 조종석에 앉아 조용히 긴장을 풀었고 마침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전 대원, 신호에 맞춰 출격한다!>
<라저.>
전투기 간에 전투가 벌어지기엔 아직 먼 거리, 하지만 미리 전투기들이 비행포드를 빠져나온 이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전방에 고에너지 반응!>
<각 함선은 모두 충격에 대비하라!>
<전투기들은 대형함의 뒤편으로 이동!>
푸른 실드가 두터워지기 무섭게 우주 저편에서 붉은 섬광이 뿜어져 날아들었다.
적 전함의 메인 주포 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굉음과 함께 쏟아진 빛의 광선.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실드가 터진 함 일부가 기괴한 소리와 함께 몸이 꺾이기 시작했다.
적의 주포를 겹쳐 맞은 불운한 함선들이었다.
대형함의 폭발로 인해 휘말린 전투기들은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죽음을 함께했다.
<씨발···.>
누군가 통신 채널로 신음을 흘렸다.
그 말대로였다.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터져나간 함선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최소 1할 가까운 아군 함들이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더 우울한 건 적의 주포 사거리가 더 길단 거였다.
우리 측 사거리가 더 길었다면 이렇게 먼저 두들겨 맞고 시작할 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설마 두 번째를 연달아 얻어맞진 않겠지?’
-아니, 반격 시작이다.
아군 전함의 머리가 빛내며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고 잠시 뒤, 빛의 파도가 무서운 속도로 적진을 향해 날았다.
다 죽여버리라며 분노에 찬 소릴 지르는 조종사들.
붉은 섬광이 저편에서 터져대기 시작했다.
이쪽이 피해를 본 것처럼 저쪽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양측의 교전 거리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국 전투기의 상당수는 에너지 충전에 들어갔을 적 전투함 요격을 위해 발진했고 방어에 들어간 우리는 긴장한 상태로 주변을 예의주시했다.
정면, 혹은 위아래.
어디서든 적의 전투기들이 쏟아질 수 있었다.
<아래쪽에서 비껴온다!>
훈련 때 지독할 정도로 봐왔던 은색 부메랑 형태의 전투기, 융족 전투기가 붉은 레이저를 쏘아대며 아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숫자는 감히 다 셀 수 없을 정도.
레이더가 붉은 점으로 새카맣게 뒤덮였고 리카르도 대위가 악을 쓰며 외쳤다.
<전편대원은 나를 따라 이동한다!>
우리의 목적은 아군함 호위.
하지만 리카르도 대위는 어느 정도 앞서 나가 적들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전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도 융족을 마중하기 위해 뭉쳤다.
그렇게 양측의 무수한 전투기가 허공에서 얽히며 불을 뿜기 시작했다.
*
전투는 혼란스러웠다.
몇 번이나 정신이 흐려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
그럴 때마다 진은 정신 차리라며 내게 집중 주문을 걸어주었다.
처음 겪는 전쟁.
아군 전투기가 죽어 나가고, 쉴 새 없이 통신을 통해 적이 붙었다, 도와달라는 소릴 듣고 있자면 정신이 나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존 메이어! 고작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조종 특기를 지원한 거냐!
‘그럴 리가.’
-그럼 밀어붙여!
혼란 속에서 깨어나 발에 더욱 힘을 준다.
임계점을 돌파하며 순식간에 20G를 돌파하는 전투기.
이 순간 나는 정신이 또렷해지며 고양되는 것을 느꼈고 사물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쿨비트 기동(360도 회전)을 통해 뒤에 붙은 적기에 샤프슈터를 한발, 저 멀리 편대를 이루고 있는 융족 놈들에게 헬파이어를 한발.
송곳 같은 타이밍에 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대에 요란한 충격이 가해졌다.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융족 전투기 19대를 쓸어 담았다.
이게 훈련이었으면 모니터링실은 내 칭찬으로 가득하였겠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작정하고 이번 전쟁을 준비했다는 융족 전투기의 성능은 신형 파이어 플라이와 거의 호각이었다.
다만 마이더스호의 전투기들은 모두 기동력과 G포스 감소 개조를 마친 터라 더 수월하게 적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의 차이를 낳았느냐면 마이더스호의 전투기 한 대로 융족 전투기 다섯 대를 족히 상대할 수 있었다.
사실상 파일럿 전원이 엘리트급이 된 셈이었다.
<적기가 따라붙었다!>
찰스 포트의 구원요청에 나는 직각으로 궤적을 꺾으며 따라붙었고 곧 그를 적의 추격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고맙다! 존!>
“인사는 살아남고 나서 하라고.”
처음 출격했던 350대의 전투기 중 아직 344대가 건재한 상황.
이제 적들도 이 구역에서 가장 위험한 놈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녀석들이 우릴 타겟으로 잡았다. 전편대원은 후방으로 빠져 놈들을 낚는다.>
융족 전투기 상당수가 우릴 타겟으로 삼자 리카르도 대위는 재빨리 전함 틈바구니로 향하며 아군 함에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그와 동시에 쏟아진 두터운 대공화망.
불벼락에 뚫린 융족 전투기들이 맥없이 떨어져 나갔고 편대장은 적의 기세가 꺾이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저 콘헤드 새끼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라저!>
기동력 우위를 살린 히트앤런 전법.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적기를 삽시간에 요리해낸 우리는 빠르게 제공권 장악에 나섰다.
<대열을 갖출 틈을 주지 마라! 미사일 있는 대로 다 부어!>
헬파이어 미사일과 샤프슈터 미사일이 섞여 일대를 폭죽으로 칠했다.
<개새끼들이 도망간다!>
누군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융족 전투기들이 방향을 선회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놓치지 마라!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는 거다!>
후퇴하는 전투기를 쫓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적도 회피기동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동력이 월등한 아군 전투기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
늑대들이 도망치는 양의 뒤를 잡았다.
*
이블리온 성계에서 펼친 첫 대규모 교전.
이 전투에서 제국은 함선 6200척을 잃는 피해를 보았다.
이는 성계에 모인 전투함의 5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실로 엄청난 타격이었다.
그중 절반은 융족 전투함의 주포 사격에 깨졌고, 나머지 절반은 적 전투기의 폭격에 녹아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피해는 대부분 중앙과 우익에 집중되어 있었다.
좌익은 비교적 멀쩡했는데 전투기 교전에서 좌익만큼은 적에게 확실한 우세를 점한 덕분이었다.
350대의 전투기.
전장에서 날뛴 전투기 총합을 생각하면 한 줌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는 숫자지만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투기 파손은 16대, 사망자는 0명.
적기 격추 총 4392대.
10:1을 훌쩍 넘는 교환비를 보이며 압도적 전투를 펼친 우리는 이례적으로 작전 최고 지휘관인 모리더스 대장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듣게 되었다.
“귀관들의 활약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이네.”
격납고에 늘어선 우리를 화상으로 마주한 모리더스 대장은 먼저 경례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진심을 보였다.
“그리고···존 메이어 소위라고 했나?”
“예!”
“훌륭했네. 남부에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있었군. 자네와는 따로 나눌 이야기도 많을듯하니 그때까지 부디 몸조심하게.”
“감사합니다!”
-이젠 대장이라니. 눈도장 찍는 속도 뭐냐고!
단 한 번의 전투로 무려 46대의 적기 격추.
아직은 아무것도 없지만, 벌써 내 가슴 위엔 묵직한 훈장의 존재가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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