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대체 전투기 성능 개선에 어떤 위험이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 답을 듣기 위해 잠시 침묵을 지켰다.
“소위, 제국의 역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투쟁의 연속이었다- 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
나는 고갤 끄덕였다.
정확히는 그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카를 마르크스가 했었지.’
“제국력이 선포된 후 지금까지. 중앙은 수많은 전쟁, 그리고 반란을 견뎌왔네. 어느 쪽이 더 지독했다고는 콕 집어 정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내 개인적인 생각엔 아마 반란 쪽이 더 신경을 건드렸을 거야.”
“반란···말입니까?”
“늘 있었지. 힘이 충만하다고 생각했을 때, 옥좌의 주인을 바꾸려는 시도가.”
공작이나 후작들.
대귀족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이들은 잊을만하면 세력을 일으켜 제국에 피바람을 몰고 오곤 했다.
“중앙이 폐쇄적이 된 것은 다 그러한 이유에서지. 늘 앞선 기술을 보유하려 하고 힘을 비축해 두는 이유 말일세.”
마이클 준장은 말했다.
지금 남방 경계가 융족의 침략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중앙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라고.
“지난번 자네가 해낸 ECU 개선작업만 해도 그 공은 적지 않았네. 그것만으로도 올해가 가기 전에 자네 계급이 바뀔 예정이었으니까.”
그는 내가 오딘 방위군으로 지내는 동안 전투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고속 승진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자네가 새로운 계획서를 들고 왔어.”
계획서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긴 준장이 불현듯 눈빛을 번뜩였다.
“소위, 솔직하게 답변해줬으면 좋겠군. 이 계획서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자네가 중앙과 연줄이 있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네. 하지만 이건 아니야. 중앙의 기술자가 만약 자네에게 진짜로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고 해도 이런 방식은 쓸 수가 없어. 이건 충분히 황제의 분노를 살만한 일이니까.”
잊을만하면 일어났던 반란과 전쟁.
제국은 비대해졌고 황제의 눈과 귀가 닿는 영역엔 한계가 생겼다.
이러한 이유로 중앙은 늘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마이클 준장은 만약 이것을 방해하거나, 뒤집으려는 자가 있으면 오래 살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 계획서를 온전히 자네가 만들었을 거 같단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이유에서네.”
“······.”
“결론부터 말하겠네. 이걸 발표하면 분명 상당한 파문이 일어날 걸세.”
“중앙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심기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관심을 보이겠지. 정확한 경위를 듣고자 자넬 호출할 수도 있고.”
“그 정도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중앙과 나머지 구역간 기술 격차는 민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차이가 있었다.
당장 이곳에서 최신예 기종인 전투기나 전함조차도 중앙에선 퇴역 기종에도 못 미치는 취급을 받을 거란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고작 기동력을 개선한다고 해서 중앙에 무력시위를 할 만한 수준은 아닌 셈이었다.
하지만 준장의 생각은 다른듯했다.
“결과보단 가능성을 중요하게 봐야지. 자넨 젊고, 앞으로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만약 자네가 수개월에 한 번씩 이런 물건을 발표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아무리 격차가 벌어져 있다 해도 저쪽에선 신경이 쓰이지 않겠나?”
중앙 눈치를 보느라 맘껏 재능을 펼칠 수 없다니.
생각도 못 한 장애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럼···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을지 의견을 여쭙겠습니다.”
“자네가 혹 중앙에 진출할 뜻이 있다면 발표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다만 한 번이라도 중앙으로 불려간 군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네.”
마이클 준장의 말에 따르면 중앙은 눈에 띄는 인재들, 특히 기술 연구 쪽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을 쓸어 담듯 데려가 다시는 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이것을 발표하는 순간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에겐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중앙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의 천재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수염을 가다듬던 준장은 고민하는 내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자네가 능력을 일부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네.”
“기부 말씀입니까?”
“이걸 대리인을 내세워 발표하는 거지. 지금 문제는 이 모든 걸 자네 혼자 개발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아닌가?”
준장은 베렐 연구소장이나 혹은 다른 사람, 기존에 연구 역량을 나름 쌓아온 이들의 이름을 빌려 발표하고 수익을 그들에게 일부 나누는 형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발표를 미루지 않으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엔 성과는 대부분 돈이 되겠지.”
남의 이름을 빌려 사업체의 형식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
따라서 군공을 올리는 것관 무관하게 되기에 내 진급 속도가 더 빨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연구 장교였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었을 거야. 전투기 기동력 23퍼센트 개선 같은 계획서는 인생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업적이거든. 조용히 기다렸다가 진급이 적체된다 싶을 때 발표를 했을 테지만···자네라면 앞으로 이런 물건을 계속 만들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했네.”
준장은 내게 돌아가서 하루 정도 생각해보고 답을 달라 말했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고민에 잠겼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진을 통해 중앙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대로 내 이름으로 발표해 중앙의 눈에 띄어 불려가게 되면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마주하게 될지 예상해보기 위함이었다.
-스카우트 형태로 중앙으로 불려간 연구 장교들은 현역 동안 장성계급을 다는 경우도 좀 있는 모양이야.
‘그건 좋은데?’
-하지만 그렇게 대귀족이 되어도 영지를 온전히 가지기는 힘들다고 하네.
‘대귀족이 영지가 없다고?’
-아예 없진 않고 별을 하나 쪼갠다던지 하는 식으로 나누는 모양이야. 중앙에 속하는 영토는 어느 정도 한계가 정해져 있으니까.
작위는 있으나 본인 소유의 영토가 없다면 그것은 분명 허전한 일이 될 터였다.
게다가 내겐 이미 가지고 싶은 별이 따로 있었다.
바로 트라카였다.
기존의 망나니가 원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작 몇 개월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보내며 정이 든 것인진 몰라도 나는 트라카가 마음에 들었다.
그곳엔 내가 일구기 시작한 회사도 있었고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은 친척들도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별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중앙으로 간다면 이것들은 전부 잊어야 했다.
나는 지도를 펼쳐놓고 제국의 영토를 슥 둘러봤다.
중앙이라 불리는 제국 중심부는 정말 엄청나게 넓었다.
인류가 지구에 묶여 태양계조차 정복하지 못했던 전생엔 감히 꿈도 꿀 수 없던 크기였다.
그러나 이렇게 광활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내가 온전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마치 새장 같군.’
이렇게 넓은 세계를 새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싶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자 나는 사령관을 찾아가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대리인을 내세워 수익을 일부 챙기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중앙을 가자면 언제든 진출할 수 있었고 아직은 내 가능성을 좁히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결정에 마이클 준장은 무척 흐뭇한 기색이었다.
내가 중앙으로 간다면 그에게도 손해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적합한 사람을 찾아 티 나지 않게 처리해주겠네. 걱정하지 말게.”
“감사드립니다.”
이 일을 통해 내게 온전히 들어왔어야 할 수익 일부가 줄어들겠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귀찮은 일을 전부 사령관에게 떠넘기게 됐으니 그도 조금은 챙겨가는 게 있어야 할 터였다.
며칠 뒤, 마이클 준장은 이번 일의 대리인이 선정됐음을 알려왔다.
그는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오딘 연구소의 연구소장, 베렐 중령이었다.
“이런 일은 입이 무거워야지 않겠나?”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 나는 이번 수익의 2할을 소모하게 됐다.
아마 이중엔 베렐 중령에게 들어가는 것도 있을 테고, 사령관에게 가는 몫도 있을 테지만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는 게 아니니 불평할 일은 아니었다.
-2할이면 너무 많이 드는 거 아니야? 한번이 아니고 고정지출이 된 셈인데.
‘나는 오히려 싸게 먹혔다고 생각해.’
마이클 준장은 이미 대귀족의 지위를 얻은 자.
그의 권위와 힘을 생각하면 설령 수익의 절반을 가져갔다 한들 아무 말도 못 했을 터다.
그렇지만 2할로 마무리된 건 그가 나를 좋게 봐주었기에 이뤄진 일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계속 그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겠지.’
거대 규모로 진행되는 군수 사업에서 2할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다음엔 메이어의 이름을 써서 조용히 처리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일단은 우리 집도 대귀족에 해당하니 백작과 논의하면 충분히 좋은 수를 마련할 수 있을 듯했다.
*
“네 동기 좀 본 받아라 새끼야! 하필 이런 빡대가리가 들어와서는!”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격납고가 시끄러웠다.
진즉 전함 생활에 익숙해진 나와는 달리, 동기들은 제법 적응에 고생하는 모양이었다.
이유 없이 꼬투리를 잡아 괴롭히는 선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동기들이 잘못한 경우였다.
그들은 밤마다 펍에 모여 나를 불렀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혼이 나지 않을 수 있는 거냐며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힘들어하는 동기들에게 나는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었다.
군 생활은 결국 눈치 아닌가.
이걸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오전 기동 훈련 시간.
출격 전인 조종사들에게 단상으로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주목! 오늘 훈련은 취소다!”
대대장의 외침에 조종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문제가 생긴 겁니까?”
“문제가 아니고 대규모 개조작업을 받기로 했다.”
“개조 말씀입니까?”
개조라는 말에 조종사들은 즉시 화색을 띠었다.
사비를 들이지 않고 전투기 부품을 개조해주는 일은 도통 흔치 않은 일.
아끼는 애기(愛機)의 성능이 좋아진다는 데 이를 싫어할 조종사는 없었다.
“이번에 오딘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물건을 개발해냈다! 놀라지 마라! 연료 흐름 개선으로 무려 기동력을 23퍼센트나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23퍼센트라니!”
“그 정도 기능 향상이라면 융족 전투기와의 승부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할 겁니다!”
조종사 대부분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는데 유독 동기들만이 울듯말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동력이 올라간 건 좋은데 훈련 강도도 같이 올라갈 것을 생각하면 벌써 뒷일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조금만 참아라. 그래도 지금 힘든 게 전장에서 위험한 것보단 나을 테니까.’
나는 동기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G-force 개선 장치 쪽도 손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력 마법을 이용하면 몸에 걸리는 부하를 더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23퍼센트 향상도 만만히 볼 게 아니군.’
늘어난 G포스를 감당하다 기절하는 조종사들이 나올 정도로 신형 부품의 위력은 대단했다.
완만한 기동이 힘든 건 나 또한 마찬가지.
이대로는 사람이 먼저 죽겠다 싶었기에 G포스 감소장치 개발을 서두르던 어느 날, 대형사고가 터졌다.
휴게실에 모인 승조원들이 모두 스크린 앞에 모여 연방군 속보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 이블리온 성계가 함락됐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에 모리더스 대장이 이끄는 주력군이 긴급 투입되었으며 연방군에서는···.>
속보를 보던 군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군거렸다.
“이블리온 성계면 오딘에서도 가깝잖아.”
“우리도 출격하게 되는 거 아니야?”
“젠장. 부모님한테 전화부터 드려야겠어.”
전쟁의 불길이 어느덧 오딘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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