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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8화 (18/134)

18화

-긴장하지 않아도 되겠어.

‘무슨 뜻이야?’

-이 전함, 마이클 준장이 이끄는 지휘관 함선이야.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자 즉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 진은 내가 어떤 이유로 근무지를 배정받게 되었는지를 파악했다.

최우수 장교 임관, 그리고 이번 순양함 ECU 성능 개선 작업까지.

내 능력을 좋게 본 방위사령관이 직접 자신의 함선에 나와 동기들을 꽂아준 것이었다.

-오히려 잘됐어. 이런 전시 상황에선 구축함보다 전함의 생존율이 훨씬 높잖아.

‘그건 그렇지.’

오딘조차도 언제든 전화의 불길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

진은 전쟁이 난다면 구축함보단 전함이 생존성 면에서 훨씬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그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전함, 가격은 순양함의 10배를 족히 넘기며 장갑의 단단함은 제국의 전략자산 중 그야말로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 각 구획이 터져나가도 최후의 최후까지 버틸 수 있도록 생존 설계를 단단히 해뒀기에 요즘 같은 시기엔 오히려 전함 근무를 희망하는 군인들이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즉, 전함에 배속되었다고 불평하는 것은 이런 상황엔 배가 부른 일이었던 것.

전후 사정을 알고 나니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함대 사령관이 나를 직접 꽂았다는데 걱정할 일이 뭐 있겠는가.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는 군 생활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거였다.

‘두 번은 오기 싫었는데 말이지···.’

장교로는 처음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한번 해봤다는 거였다.

조인트를 까여본 자와 안 까여본 자.

이것의 차이는 실로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장한 동기들과 함께 향한 곳은 전함의 메인 함교였다.

거대한 별의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우주 지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공간.

대부분 인원은 우리가 온 것을 알아도 하던 일을 계속했고 상대적으로 느긋한 사령관이 우릴 반겨주었다.

“마이더스호에 온 것을 환영하네. 훌륭한 인재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쁘군.”

마이클 준장은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당분간은 여기 리카르도 선임 편대장이 자네들을 잘 가르쳐줄 테니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그에게 물어보게.”

“예!”

리카르도 솔론 대위.

그는 수백 대에 이르는 전투기의 선임 편대장이었다.

전입신고를 마친 뒤, 대위는 우리와 함께 전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숙소와 식당, 편의시설 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훌륭한데?’

-훌륭하군.

전함 내부를 보고 느낀 감상에 진 역시 동의했다.

비좁은 선내 생활이 되진 않을까 우려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다.

전함은 장기간 항해에 승조원들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쾌적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

“식사들은 했나?”

“아닙니다!”

“마이더스호에선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씩 조종훈련을 한다. 식당 문은 언제든 열려있으니 배는 항상 든든하게 채워둬라.”

“예!”

그리 말한 대위는 우릴 식당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서 우린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전투함에서 이런 식당을 구성할 수 있다니.”

“대체 인원이 몇 명이야?”

“그것보다 이 메뉴들 좀 보라고···.”

피자, 오믈렛, 빵, 쿠키, 소세지, 베이컨, 샐러드 등등.

뷔페 형식으로 차려진 호화스러운 메뉴들.

연신 감탄하는 동기들을 보며 대위가 피식 웃었다.

“너흰 운이 아주 좋았다. 오딘 전투함 중 식당 퀄리티가 제일 좋은 곳이 이곳이거든.”

7천 명이 넘는 승조원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요리사들.

무려 3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식사준비를 위해 로테이션을 한다고 했다.

요리의 퀄리티가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어! 저기 너 좋아하는 거 있다.

‘뭔데? 한식?’

-맞아.

‘비빔밥이다···!’

이제는 이 몸에도 충분히 익숙해진 참이지만 아직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서양식 식단이었다.

특히 훈련소에 도착한 이후로는 한식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다시 쌀을 먹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그렇게 같이하게 된 식사.

동기들은 긴장 탓인지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깨작거리는 수준이었지만 나는 달랐다.

고추장과 참기름, 야무지게 계란 프라이를 두 개 올린 나는 배를 든든히 채웠다.

“잘 먹어서 보기 좋군.”

“감사합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향한 곳은 격납고였다.

모든 함종 중 가장 많은 전투기를 보유한 전함.

그곳엔 수백 명에 달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이 출격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오. 이번에 들어온 신참들입니까?”

“그래. 부탁했던 전투기는 다 준비됐나?”

“열 대 문제 없이 준비해뒀습니다.”

문제없다며 가슴을 두들기는 정비 장교.

그가 선보인 전투기는 훈련소의 것보다 훨씬 육중한 새 전투기였다.

무슨 전투기가 이렇게 크지?

동기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남방 경계에서 가장 최신예 모델에 속하는 파이어 플라이다.”

은빛으로 매끄럽게 빠진 표면을 쓰다듬은 리카르도 대위가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파이어플라이는 파일럿이 강한 G를 버틸 수 있도록 마도장치가 강화됐고 레이저 기총의 출력도 향상된 모델이지. 주의할 건 미사일 장착 개수다.”

대위는 해당 모델에 장착할 수 있는 최대 미사일 무장이 네 개라고 말했다.

이는 훈련소에서 다루었던 모형기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미사일이었다.

지크가 손을 들고 무장이 좀 빈약한 것 같다고 묻자 대위가 고갤 저었다.

“이 신형 헬파이어 미사일은 전투기에 장착되는 미사일 중 가장 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순양함은 물론이고 전함의 실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 물건이다. 한 발로 반경 백여 미터를 깡그리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야.”

대위는 너무 강한 위력 탓에 몇 번이고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렇게 위력이 강한 미사일은 혼전 양상 중에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마법 세공에 상당한 공을 들였군.

‘어느 쪽? 전투기? 미사일?’

-둘 다.

처음 아크 팩토리의 시설이나 제조품을 봤을 적엔 마법 수준이 그저 조악하다고 평했던 진이다.

그런데 그런 진이 이 정도로 평가했다는 건 굉장한 기술자들이 이것들을 만들었단 뜻이었다.

나는 진에게 이것들이 어느 제조사에서 나왔는지 조사를 부탁했고 부사관들의 도움을 받아 전투기에 올랐다.

리카르도 대위는 첫날이라고 우릴 봐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첫 훈련.

조종석에 앉자 통신 채널을 통해 무수한 정신 공격이 시작됐다.

<얘들아! 인사 한번 씨게 해봐라!>

<베이한테 경례 안 했다는 폐급 새끼들이 이 새끼들이야?>

<어디 얼마나 조종을 잘 하길래 사령관이 직접 꽂았는지 구경 한번 해보자.>

<너흰 오늘 뒈졌다고 생각해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묵을 지키는 동기들.

얼굴을 보진 못 했지만 아마 얼어붙어 있을 거란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환영 인사가 격하구만.’

아마 일부러 기선제압을 위해 우릴 더 압박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갈굼 아닌 갈굼이 이어지고 있을 때, 리카르도 대위와의 개인 채널이 이어졌다.

<존 메이어.>

“예.”

<오늘 훈련은 대규모 전투 비행 훈련이다.>

“예.”

편대 비행.

통상 연방군 전투기 편대는 열 대로 구성된다.

오늘 있을 훈련은 편대 다수가 섞인 전투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단체 훈련이었다.

<훈련소에선 자네가 편대장 역할을 맡았다고 들었는데. 자신 있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동기들을 데리고 편대 지휘를 해보도록. 너무 부담 갖진 말고. 같이 훈련을 뛰는 친구들은 실전 비행을 수백 번은 더 한 베테랑들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첫 전투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건 바라지 않으니 편하게 훈련에 임하라는 대위의 격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리는 훈련소 창설 이후 가히 최고의 세대라 불릴 만큼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수였다.

40주에 달하는 고급 과정을 거치며 내가 느낀 것은 이 전투기 조종이라는 게 결국 재능의 영역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는 거였다.

지크 셉타누스에 찰리 포트까지.

나만 없었으면 충분히 최우수 임관을 했을 재목들이 내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었다.

이런 친구들을 데리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즉시 편대 채널을 열었다.

“친구들, 오늘 훈련은 편대 비행이다.”

<서바이벌이야?>

“그래. 훈련소에 있을 적에 신물 나게 했던 것들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채널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안도의 한숨이었다.

<리더는 늘 그렇듯 네가 맡는 거지?>

“그래.”

<걱정할 거 하나도 없겠는데?>

<거참. 인사 한번 못 할 수도 있지. 속 좁은 새끼들.>

긴장이 좀 풀렸는지 녀석들이 선임들을 열심히 씹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통신을 선임 편대장이 다 듣고 있을 거란 걸 알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훈련을 앞두고 기껏 살아난 분위기를 도로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중요한 건 이 기세를 몰아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멍청하고 능력도 없는 후임.

눈치는 좀 없어도 능력은 되는 후임.

저들 관점에서 어느 쪽을 더 좋게 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출격 준비하자. 선배들한테 점수 좀 따보자고.”

<라저.>

*

전투기를 반으로 나누어 실행하는 전투훈련.

대규모 전투기를 보유한 순양함급 이상의 함에선 항시 이러한 훈련을 반복하는 게 일상이었다.

‘젠장. 오늘 술값은 뒤집어썼군.’

존의 편대를 받게 된 A팀의 임시 리더 닉슨 대위는 벌써 입맛이 썼다.

훈련생들답지 않게 잘한다는 평가를 듣긴 했지만 그래 봤자 훈련생들이었다.

자신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아무리 훈련소에서 날고 기었어도 수백 차례 실전 훈련을 치른 장교들과는 차이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늘 훈련은 저녁 술값 내기까지 걸린 상황.

병아리 편대를 어느 쪽이 받느냐는 순전히 운에 따른 것이기에 어디다 불평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재수가 없었으려니 생각한 닉슨은 한숨과 함께 조종간을 잡았다.

“A팀! 출격한다!”

수백 대의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박차고 비행포드를 빠져나간다.

전함같은 대형함의 경우엔 사고에 대비해 비행포드를 여러 개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격을 받아 활주로를 일부 못 쓰게 되더라도 다른 쪽 출구를 통해 출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전투기 사출을 동시에 많이 할 수 있다면 당연히 모든 전투기를 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짧아지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렇게 삽시간에 300여대에 달하는 전투기들이 우주 공간을 수놓아 좌우로 흩어졌다.

“애송이들! 헬파이어 미사일은 끝까지 아껴라! 너희의 눈먼 미사일에 아군이 병신되는 꼴은 최대한 피해야 하니까!”

닉슨은 답답한 속내를 삼키며 신임 소위들에게 말했고 누군가 답장을 해왔다.

<···헨리 카를 소위입니다.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바쁘니까 빨리 말해라!”

<혹시 미사일 발사를 하면 진짜 발사되는 겁니까?>

헨리의 말에 통신을 듣고 있던 모든 장교가 빵 터져 낄낄거렸다.

물론 술값을 뒤집어쓰게 된 닉슨만 빼고.

닉슨은 얼굴을 붉힌 채 소리쳤다.

“머저리 같은 새끼야! 당연히 시뮬레이션 상으로만 나가지!”

<죄, 죄송합니다!>

저 강력한 헬파이어 미사일을 훈련 중에 진짜로 사용했다간 대참사가 일어날 터.

머리가 달려있으면 당연히 하지 않을 질문을 해대는 소위에게 닉슨은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래. 전투기 열 대 차이 정돈 실전에서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잖아.’

잔뜩 실망해버린 닉슨은 아예 머릿속에서 신임 소위 편대를 지워버렸다.

140대로 상대를 꺾으면 된다고 마인트컨트롤에 들어간 것.

그렇게 훈련이 시작됐다.

“산개하라!”

닉슨은 전 편대원에게 산개 명령을 내렸다.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편대를 상대론 최대한 거릴 유지하고 싸우는 게 정석이었다.

그렇게 양측이 거릴 좁히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수백대의 전투기가 기총 사격을 실시하자 일대에 푸른 섬광으로 만든 꽃이 가득 피었다.

훈련용으로 위력을 맞춘 것이지만 몇 대만 맞아도 리타이어 처리가 되기에 조종사들은 안간힘을 쓰며 동체 컨트롤에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슬슬 리타이어 처리되는 전투기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제길! 꼬리에 붙었다! 지원 바란다!”

뒤를 잡힌 닉슨은 애타는 심정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뒤에서 날아드는 미사일.

이미 조종석 안은 타게팅 되었다는 경고음으로 어지러웠다.

플레어를 쏘는 것도 무한정 가능한 게 아니기에 닉슨은 패배를 예감했다.

‘헨리인지 좆리인지 돌아가면 그 새끼부터 작살을 내놓고 말겠다···.’

리타이어를 받아들이려던 그때, 뒤쪽에서 따라붙던 미사일이 LOST 표시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속도로 바닥에서부터 위로 치고 올라가는 전투기 한 대.

벼락같은 속도를 보며 닉슨은 저도 모르게 오! 소릴 내었다.

레이저 사격으로 저 빠른 미사일을 잡아낸다는 건 사실상 묘기에 가까운 일.

그것도 미사일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동시에 잡아내는 대단한 사격 솜씨였다.

누가 자신을 도왔는지 계기판을 확인한 닉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씩 웃었다.

‘이 녀석이었군!’

존 메이어.

이번 기수 최우수 표창을 받은 녀석, 훈련소 창설 이래 조종 특기 최고 에이스라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그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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