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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7화 (17/134)

17화

전투 요원이 없는 무인함임에도 순양함은 즉시 AI에 의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그 숙련도는 마치 베테랑 장교들이 컨트롤하는 것이라 해도 믿을법한 수준.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AI가 뛰어나다면 굳이 군인 육성에 공을 들일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었다.

전투함뿐만 아니라 전투기까지 모든 분야에 무인 시스템을 적용하면 전쟁이 일어나도 병사들의 목숨이 갈려 나가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내 궁금증을 풀어준 건 역시 진이었다.

요즘도 틈만 나면 네트워크의 바다를 돌아다니는 진은 사실상 거의 백과사전이나 다름없었다.

-제국 역사를 찾아보니 1512년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고 해.

아크리아트 후작령에서 대귀족들이 연합해 들고 일어난 아크리아트 반란 사건.

당시 반란군들은 휘하 병사 상당수를 기계병사, AI로 대체했는데 이 기계군단이 제국에 상당한 피해를 끼쳤다고 했다.

이후 황제는 이유를 막론하고 기계 병사로 사람을 대체할 수 없도록 칙령을 선포했다.

이것이 우주를 떠돌며 영토를 개척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사람이 직접 전장에 나가는 이유였다.

-사람의 힘을 빌려 전쟁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전자전 상황에서 좀 더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불만을 잠재우는 데도 효과적이니까.

‘불만을 잠재운다라···.’

나는 진의 말을 곧장 이해했다.

이 시대에서 신분은 곧 절대권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같이 태어날 때부터 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주 적은 숫자에 불과했다.

만약 중세처럼 핏줄을 타고나야지 작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면 당연히 시민 계급에서 엄청난 불만이 쌓였을 것이나 제국에선 그러한 불만이 존재할 수 없었다.

군인이 되어 공을 세우면 노력에 따라 누구나 작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귀족인 자들 또한 대부분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권력을 쟁취한 자들이었다.

누구나 노력한 만큼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있기에 제국의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는 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궁금증을 해결한 사이 어느새 순양함 주변으로 몰려든 전투기들이 순양함에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순양함의 푸른 실드를 미사일과 레이저 사격으로 두들기는 전투기 편대.

이들은 모두 오딘 방위군 소속으로 훈련생들과는 다른 짜임새 있는 비행을 선보였다.

오늘 테스트에서 중점적으로 볼 것은 ECU의 방어 성능이었다.

급작스럽게 데미지를 받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까지 부품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테스트인 것.

“실드 분산율 양호합니다.”

“현재까지 효율 4퍼센트 증가 확인됐습니다.”

장갑 전체를 감싸는 푸른 실드.

순양함은 영리하게 피탄되는 지점만 실드의 두께를 늘려 효율적인 방어를 꾀했다.

공격이 들어오는 지점만 방어를 두텁게 해 더 효율적인 방어를 해내는 것이다.

효율의 증가를 확인하자 중진들이 흐뭇한 얼굴로 고갤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곧 실드가 소모되고, 순양함의 장갑에 직접 타격이 시작됐다.

미사일을 얻어맞은 순양함은 곳곳에서 연기를 뿜으면서도 용케 무너지지 않았다.

“격벽 성공적으로 작동합니다.”

“화재 빠르게 진압됩니다. 내구도 테스트도 성공적입니다.”

거의 샌드백처럼 난타를 당하는 상황.

이 정도로 얻어맞으면 각부의 ECU가 너덜너덜해지기 마련인데 신제품은 아직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전투함이 회복 불가능한 데미지를 입는 과정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는 제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래야지 최후의 순간까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승조원이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자전 내구도 테스트 완료, 약 12퍼센트 향상 확인됐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전투기 격추 숫자는 26대입니다. 방호 성능도 양호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가 이어질 때마다 군 관계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단하군!”

“최종 결과는?”

“각 평가 요소를 합한 최종 ECU 테스트 결과, 기존 성능 대비 8퍼센트의 성능 향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교에 모인 인원들은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마이클 준장은 연구소장과 악수를 나눴고 그 뒤 곧장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마침 오늘 임관식이더군.”

“그렇습니다.”

“희망하는 근무지가 있으면 얘기하게. 남방경계 내에서라면 힘을 써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마이클 준장의 약속에 나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제국 남쪽 구역을 뜻하는 남방경계.

이미 전쟁의 여파는 남방경계 전역으로 번지는 중이었다.

평화로운 시절이었다면 고향에서 군 복무를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임관 장교 대부분이 전선으로 향하는 긴급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준장으로서도 상당한 배려를 해준 셈이었다.

-후방으로 빼달라고 하자! 후방!

“그래 어디를 생각해두었는가? 역시 트라카인가?”

오딘에 비하면 트라카는 좀 더 뒤쪽으로 빠져 있어 이곳에 비하면 안전 면에서 더 나은 편이었다.

게다가 내 고향이기도 하니 준장은 처음부터 트라카를 콕 집어 이야기했다.

이에 나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답을 내놓았다.

“훈련을 받는 동안 친해진 동기들이 있습니다. 외람되지 않는다면 그들과 함께 배치를 받고 싶습니다.”

“호오.”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 마이클 준장의 눈이 빛났다.

“우수한 동기라면 이미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리란 것도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동기들과 함께하자면 전선으로 향하게 될 수도 있네. 그래도 괜찮은가?”

-안 괜찮아요. 안 괜찮아!!!

진은 내가 전선으로 향할 수도 있다는 말에 발작을 일으켰지만 나는 괜찮다며 고갤 끄덕였다.

-미친 새끼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너도 봐서 알잖아. 우리 애들 실력 좋아. 어차피 조종사 할 거면 믿을 수 있는 애들이랑 같이 가는 게 낫지.’

자랑은 아니지만 나를 비롯한 이번 기수의 조종 특기 훈련생들은 역대 손에 꼽을 만큼 자질이 좋다고 교관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다.

지크는 물론이고 찰스, 그리고 다른 우수한 친구들이 대거 포진한 덕이었다.

이미 친해지기도 했고, 이들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죽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컸다.

지금은 전시 상황.

아무리 실력이 좋은 파일럿이라도 초면이면 호흡을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 같은 여건에선 그러한 여유가 허락되지 않을 확률도 높았다.

언제 어디서든 실전을 뛸지 모르니 기왕이면 믿고 싸울 수 있는 동료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이클 준장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이번에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걸세. 이런 자네가 당장 전선으로 향하는 건 나조차도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군.”

“암요암요. 존은 응당 연구자가 어울리는 재목이지요.”

베렐 연구소장이 고갤 까닥이며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추임새를 곁들였다.

하지만 그의 흡족한 웃음은 잠시뿐이었다.

“물론 자네의 훈련 성적을 보니 연구자로 놔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말이야. 전술적 역량은 더 대단하다면서? 운명을 가르는 전투에선 무엇보다 뛰어난 안목을 가진 지휘관이 중요하지. 근무지에 관해선 내가 힘을 써보겠네. 좋은 결과 들려줄 테니 돌아가서 기다리게.”

“감사합니다.”

방위사령관이 이 정도로 호언장담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임관식을 마치고 하루 뒤, 나는 첫 정식 근무지로의 발령을 명 받았다.

-나쁘지 않은데?

역시 후방으로 빼달라고 했어야 한다며 온종일 투덜거렸던 진도 막상 결과를 확인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었다.

오딘 방위사령군, 45사단 예비 전투편대 조종사 존 메이어.

내가 근무하게 될 새 보금자리였다.

*

“존 메이어님이 배고프시단다! 어서 상을 차려라!”

임시 숙소.

16평 남짓한 숙소에 동기 놈들이 우르르 몰려와 야단을 떨더니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주메뉴는 맥주와 피자, 치킨.

이는 다 같이 좋은 배정지를 받았음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번에 함께 오딘 방위사령군에 배속된 동기들은 나까지 모두 열 명.

영관장교는 물론이고 장성급들까지 눈독 들였다던 지크까지 함께 배정받은 걸 보면 마이클 준장이 어지간히 힘을 쓴 모양이었다.

동기들의 반응은 당연히 최고였다.

최전선에 비하면 오딘은 휴양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아, 나는 전선에 가서 공을 세웠어야 하는데. 존 때문에 못 나가게 됐네. 아쉽다.”

“개소리 하지마 로저. 허구한 날 전화 붙잡고 애인한테 살고 싶다고 징징거렸던 주제에.”

“내가 언제!”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다수의 동기가 전선으로 차출되어 나간 상황.

이들 역시 이번 근무지 배정에 내 입김이 작용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 너희는 이번 배치에 다 만족하는 거야?”

“당연하지.”

“진급이 늦을 수도 있는데?”

“목숨부터 챙기고 생각해야지.”

“맞아.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한 명 정돈 빠른 진급을 위해 최전선으로 가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나는 치킨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지크에게 물었다.

“지크. 넌 왜 연방군에 지원한 거야?”

“···내 고향은 척박한 별이었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세율까지 높아 부족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세율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해당 영토를 관리하는 귀족의 마음이다.

트라카는 지구를 연상케 하는 풍요로운 행성이지만 제국의 모든 별이 이런 좋은 곳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출세해서 부족이 살기 좋은 땅을 만들고 싶었다.”

“그냥 이주를 하면 되지 않나?”

-그게 안 되니까 그렇지.

‘안 된다고?’

나는 말을 하고 나서야 내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제국에선 단순히 살기 힘들다고 마음대로 거주지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람들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려 할 테고 이는 귀족간 신경전으로 번지게 되기에 다들 타 지역 시민들의 이주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귀족이 되어서 고향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꿀 생각이야. 그래서 연방군에 지원했지.”

“나랑 같이 이곳에 남으면 진급이 늦을 수도 있는데?”

“상관없다. 진급 속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지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험난한 시대에 중요한 건 누굴 믿고 따라야 할지 분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존, 내가 생각할 때 너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다.”

조금 부끄러운 칭찬이었지만 동기들도 고갤 끄덕이며 지크의 의견에 동조했다.

“존, 어딜 가든 우리 꼭 데리고 가는 거다?”

“너희 하는 거 봐서.”

“안 돼!”

“그만 떠들고 건배부터 하자고.”

잔이 채워지고, 나는 짧게 건배사를 읊었다.

“내일부터 시작이다. 첫날부터 밉보이면 안 되니까 다들 적당히 마시자고. 자, 우리의 앞날을 위하여!”

“위하여!”

*

첫 출근은 누구나 가슴이 두근거리기 마련.

첫날부터 찍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우리는 일찍 채비를 마치고 훈련소 정문 앞으로 모였다.

“늦은 녀석 없지?”

“없어.”

“어디로 배치되려나.”

“구축함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선임도 거의 없을 거 아냐.”

동기들 상당수는 구축함 배치를 희망했다.

오딘 방위사령군에 배정됐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이 방위사령군이란 것이 원체 규모가 커서 누가 우리를 인솔하러 올지에 대한 내용은 아직 전달받지 못했다.

헨리 말대로 구축함 근무를 할 수도 있었고 어쩌면 순양함에 가게 될지도 몰랐다.

근무 여건만 따지자면 구축함 쪽이 좀 더 편한 구석이 있었다.

여가 생활을 지원하는 시설은 당연히 규모가 큰 순양함이 압도적으로 좋을 테지만 순양함의 함재기수 규모는 보통 65대 이상이었다.

이 말은 즉, 순양함에 배정되는 순간 수십 명의 선임 조종사들의 눈치를 봐야 한단 뜻이었다.

“구축함은 전투기가 너무 적어. 우리를 다 데리고 가진 못할 거야.”

“야. 반으로 찢어져도 좋으니까 난 구축함으로 가고 싶다.”

“밥은 순양함이 더 잘 나온다더라.”

“그건 변순데···?”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서 진동음을 울리며 셔틀이 한 대 내려와 우릴 긴장케 했다.

잠시 뒤,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문을 열고 내리더니 나를 찾았다.

“존 메이어?”

“예!”

“여기 모인 인원이 45사단 예비 전투편대 인원들 맞지?”

“그렇습니다!”

“좋아. 다들 셔틀에 오르도록.”

다들 눈치를 보며 셔틀에 오르는데 조종간을 잡고 있던 또 다른 장교가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들은 선임한테 경례도 제대로 안 하네. 병신이야?”

“충, 충성!”

“병신같은 놈들···. 제대로 벨트나 매라!”

초장부터 일이 꼬인 것 같아 우리는 다들 말이 없어졌다.

중후한 엔진 소리와 함께 셔틀이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돌파해 오딘 우주 정거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간단한 절차를 거쳐 셔틀이 도킹하는 순간 우리의 안색은 더욱 굳고 말았다.

로저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씨발. 전함이라니···.”

전장 1800미터, 전고 360미터.

함재기 수 350대에 달하는 쿠논급 전함.

수백 명의 선임 조종사가 눈을 부라리고 있을 호랑이 굴이 우리의 근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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