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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4화 (14/134)

14화

첫 훈련 이후, 주변의 시선엔 큰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차이는 나를 망나니라거나, 운 좋게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방탕아로 취급하는 훈련생이 없어졌다는 것.

이건 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장에서 일어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늘 훈련생들을 엄하게 대하는 이들이지만 내게는 늘 점잖은 미소로 말을 걸어주었다.

각 특기의 고급과정이 얼마나 엄격하고 딱딱한 분위기 속에 치러지는지 알면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게 전부 훈련 하나로 인해 생긴 변화였다.

소문에 의하면 모의 훈련이 끝나던 시각, 연구소장이 훌쩍이며 모니터링실을 박차고 나갔단 이야기가 있었고 나는 더 자주 훈련소장의 집무실에 불려갔다.

훈련 중에 불편한 건 없는지.

중앙에 보낼 특별 보고서를 작성 중이니 최우수 표창에 관하여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덕담을 듣는 시간이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본데?

‘전함을 격침한 게 우리가 최초라잖아.’

첫 모의 훈련에서 벌어진 전함 격침.

이곳을 거쳐 간 수십만 명의 조종사 중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것을 나와 동기들이 해냈다.

어쩌면 주목받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나는 이례적으로 훈련생 신분이지만 어떤 생각으로 당시 계획을 짰으며 실행에 옮겼는지 그 판단은 무엇인지 등등.

이를 정리해 수만 명에 달하는 훈련생들 앞에서 특별 강연을 해야 했다.

조종 특기도 아닌 친구들은 사실 이걸 들을 필요가 없었겠지만 브래들리 소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러한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거의 준 영웅 취급받는 분위기였다.

개망나니가 아닌 잠룡 소릴 듣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였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보다 내가 가장 기뻤던 건 불가능에 가까웠던 훈련을 클리어해냈다는 사실이었다.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은 전장에 내던져지더라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을 마음속에 지니게 된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

“고급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위관급 장교로 임관을 마치게 되면, 한동안은 전투기만 조종하게 될 것이다.”

교육 시간.

훈련생들은 허릴 꼿꼿이 세우고 교관의 말에 집중했다.

강의실 중앙의 대형 화면엔 제국에서 사용되는 주력함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크기 22m 정도의 전투기도 옆에 서면 이렇게나 크구나 하는 느낌을 받지만 이 대형함들은 고작 그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투기 다음으로 사용되는 기초 주력함인 구축함.

구축함만 돼도 그 크기가 최소 300미터를 넘었다.

아크 팩토리에서 생산하는 주력 엔진도 보통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에 제작한 이클립스 엔진도 구축함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엔진이었던 것.

대형함 중에선 전함, 순양함에 치이는 가장 아래 등급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준의 함선은 아니었다.

구축함의 가격은 무장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1조 크레딧 이상.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전략자산이었다.

“구축함 다음으로 여러분이 보게 될 함종은 순양함이다.”

순양함.

전장 900m 이상, 전고 110m 이상에 달하는 대형함으로 천 명 이상의 승조원이 탑승할 수 있으며 중, 단기간의 독립작전이 가능한 함선이었다.

연방군 전력의 허리 역할을 하며 대당 가격이 10조 크레딧을 훌쩍 넘는 초고가 전략자산.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모든 군수사업체가 발을 걸치길 원하는 함종이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아크팩토리에선 순양함 계열 부품을 생산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순양함 엔진 제조를 위해선 훨씬 더 다양하고 고강도를 이룰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한데 이 금속들은 이 시대에서도 매우 드물었고 현재 트라카에선 좀처럼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산도 힘든 순양함급 엔진을 위해 라인을 가동하는 것보단 바로바로 물량을 판매할 수 있는 구축함급 라인에 치중하는 것이 수익적으론 훨씬 좋았던 것.

‘그럼 순양함 계열을 주력 생산하는 쪽은 어디에 몰려있는 거지?’

-오딘 같은 후작령 이상, 그게 아니면 중앙에서 나오는 물량이야.

‘순양함급 엔진이라고 해서 메커니즘이 크게 다르진 않을 텐데···. 이걸 주력 상품으로 판매할 방법이 없으려나.’

-기술보단 원자재 확보가 더 큰 문제니까.

진과 나의 실력을 합치면 새로운 엔진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시설의 확충과 자재 확보.

구축함을 위한 엔진 공장을 증설하는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는데 이보다 더 큰 규모의 공장이라면 국책 사업으로 지정해 밀지 않고선 어려운 일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우르르 강의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훈련생들이 매점으로 향한다.

훈련소의 식사야 항상 부족한 것 없는 수준이지만 자주 체력 훈련을 받아야 하는 훈련생들은 시도 때도 없이 허기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존! 다음 교육 들으러 가기 전에 빵이나 먹자.”

“벌써 배가 고프네.”

졸음을 참느라 힘들었다던 로저와 헨리.

그들은 하품을 하며 나를 졸랐고 우린 그렇게 매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고소한 빵 내음.

조종 특기 훈련생들 외에도 타 특기생들까지 한데 뭉쳐 가게 안이 혼잡했기에 나는 친구들에게 알아서 빵을 골라줄 것을 부탁했다.

“옙!”

그러자 이들은 군말 없이 빵을 고르려 집게를 들고 사라졌다.

어차피 오늘도 계산은 내가 할 게 분명했다.

우리 셋 중엔 우리 집안이 제일 잘 살았고 내겐 모의 전투 우수 훈련생으로 선정되며 받은 두둑한 격려금도 있었다.

-어차피 격려금 아니었어도 빵값 정돈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오딘과의 대형 계약을 체결한 군수사업체의 회장이 바로 나다.

그런 내가 빵값 몇 푼을 아쉬워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일 터였다.

로저와 헨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복도 저편에서 아쉬운 듯 빵집 간판을 바라보는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일부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훈련 때 융족 전함 엔진부를 격파하기 위해 모였던 임시 편대원들이었던 것.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돈이 궁해 망설이고 있음을 간파했다.

연방군이 되면 기본적인 것들은 모두 지급이 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본에 불과했다.

하루 세 끼 식사와 소규모 보급품을 제외하고선 모두 사비를 지출해야 했는데 일반 훈련생들에겐 이러한 것들이 부담인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배가 고팠던 어릴 적을 떠올린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매점 가려고 온 거야?”

“아, 아냐.”

당황해하는 친구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테이블로 이끌었다.

“마침 훈련 때 도움도 받았고 하고 싶은 얘기도 있는데 잠시 앉지그래.”

“얘기를? 우리한테?”

귀족가문 훈련생들과 일반 시민 훈련생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사회였다면 늘 암묵적인 눈치를 봐야 했을 일반 시민들.

그것이 같은 훈련생 신분이 되었다고 해서 한순간에 없어질 리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냥 귀족도 아닌 백작가문 출신.

이들이 나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덕분에 우수훈련생으로 뽑혀서 격려금도 받았거든. 사양하지 말고 같이 하자고. 내가 살 테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이들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합류했고 나는 눈여겨보던 친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찰스 포트.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연방군 장교를 지원한 이 젊은 친구는 저번 모의 전투에서, 내가 전함의 숨통을 끊기 전에 먼저 엔진부를 타격해둔 재능있는 조종사였다.

“이름이 찰스라고 했지?”

“맞아.”

“조종 실력이 뛰어나던데 미리 교육받은 적이라도 있는 거야?”

“그런 적은 딱히 없는데···.”

오직 순수한 재능으로 그와 같은 활약을 펼쳤다는 사실에 나는 더욱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내 계약자가 설마 게···.

‘아니니까 이상한 상상 그만해.’

내가 찰스에게 관심을 보인 이유는 먼 미래를 염두에 둬서였다.

일찍이 전역했던 한국군과 달리 연방군은 대형함의 커맨더가 되는 시점에서 휘하 부관을 어느 정도 입맛대로 받는 것이 가능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내가 함장.

찰스에게 전투기 편대장을 맡길 수도 있었다.

편대장의 역량이 훌륭할수록 임무 도중 생존확률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

이 때문에 재능 있는 훈련생들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으며 이는 내게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진의 정보에 따르면(진은 종일 잠도 없이 훈련소 내의 전파를 감청하는 것이 일과였다) 고급과정을 마치고 임관하게 될 실력파 소위들을 각지에서 받아가고자 벌써부터 교관, 훈련소장에게 줄을 대가며 하소연을 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쪽에 재능있는 친구 있으면 우리한테 먼저 좀 보내달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교관이며 소장에게 어떤 보너스가 생기는진 알 수 없으나 이들이 명절 선물 이상의 것을 받아가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너무···무리하는 거 아냐?”

“이 정돈 괜찮아. 부자 친구 좋다는 게 다 뭐겠어.”

푸짐하게 쌓인 빵과 음료.

훈련생들은 내 눈치를 살폈으나 나는 개의치 말라며 어서 들 것을 권했다.

비단 찰스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모의 훈련에서 편대비행을 위해 어깨를 나란히 했던 친구들.

사고방식이 트여있었고 운만 좀 따라준다면 영관장교, 어쩌면 장성이 되는 친구가 나올지도 몰랐다.

그때가 된다면, 이 친구들에게 단순히 훈련 잘했던 최우수 동기생이라는 기억보단 좀 더 친근하고 따듯함이 떠오르는 편이 내게 더 도움 될 터였다.

-와. 그렇게 안 봤는데···이 친구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네.

‘이 정도 쯤이야.’

빵 사주는 데 별 계산을 다 한다며 혀를 내두르는 진.

하지만 미국계가 주류를 이루는 외국 기업에서 아시안이 성공하려면 학교 성적 외에도 많은 것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둘러싼 환경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의 사고방식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너무 먼 미래만 보고 이러는 건 아니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조금 기다려보면 알아.’

-???

*

다시 시작된 모의 전투 훈련.

-야 이 새끼들아! 이거 반칙이야!

“플레어 사출.”

내 손이 빠르게 패널을 훑는다.

유도미사일에 혼선을 주기 위한 붉은 섬광이 흩뿌려지고, 잠시 뒤 내 뒤에선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단체 전투.

훈련생끼리 랜덤하게 팀을 갈라 실전에 대비하는 훈련이었다.

이번 훈련에서 나는 여럿의 타겟이 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방금 봤어?! 이새끼들 일부러 진로 비킨 거!>

<개새끼들이라니까.>

로저와 헨리는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팀이 되었는데 그들은 훈련 양상을 지켜보며 몹시 분노했다.

일단은 팀 전투.

상대 전투기를 공격함과 동시에 아군 전투기가 위험한 경우 도와주며 전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일부 훈련생은 의도적으로 나를 돕길 피했다.

마치 내가 일찍 격추당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유야 알만했다.

내가 계속 최우수 평가를 받아가는 게 아니꼬웠겠지.

‘너무 망나니 타이틀을 내려놓는 게 빨랐어.’

-어쩔 수 없지. 그만한 활약을 했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나는 저들에게 언제든 제칠 수 있는 망나니가 아니라 강력한 경쟁 상대로 여겨지는 상황.

그리고 저 중엔 여전히 최우수 표창을 노리는 훈련생도 있었다.

이를테면 내 뒤를 바짝 뒤쫓는, 앞으로 남은 훈련에서 내가 실수한다면 언제든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 말이다.

‘지크 셉타누스.’

전투기의 성능을 최대로 활용하며 내 뒤를 바짝 쫓는 지크의 기세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앞선 훈련에서도 충분히 확인했지만 순수 조종 실력은 녀석이 나보다 우위였다.

인간보다 강한 신체.

단단한 뼈와 어떤 상황에서도 호흡을 가능케 하는 특별한 피.

단순히 팔이 네 개라서가 아니라 라다만의 신체 능력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압도했다.

맨몸으로 20G도 버틴다는 괴물을 내가 무슨 수로 이기겠나.

말도 안 되는 기동으로 1:5의 싸움도 해내는 진짜 괴물.

이건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좌표 AE32678511, 목표 유도에 성공했다.”

<확인했다!>

<락 온! 타격 개시!>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방에서 미사일이 날아들며 지크 셉타누스의 전투기를 휘몰아쳤다.

빵의 우정을 나눈 친구들과의 완벽한 연계플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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