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전함, 현시대에서 우주전의 중심이 되는 가장 강력한 전투 자원.
전장 1km를 훌쩍 넘는 이 거인은 전투기가 흡사 작은 벌레로 보일 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그 크기에 걸맞게 전함은 각종 방호체계를 든든하게 갖추고 있었다.
고강도 초장갑에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받아내는 실드배리어까지.
전투기의 레이저포와 미사일만으로 전함을 격추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전함을 잡아내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전함의 메인 주포 사격이었고 두 번째는 상대 전투기를 완전히 무력화시켜 일대의 제공권을 확보, 전투기를 수차례 출격시켜 잡아내는 방법이 있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결국 전함도 수십, 수백 대의 전투기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면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방법 모두 모의 훈련에선 성립이 안 되는 구조였고 이러한 이유로 수백 년간, 첫 훈련에서 적 전함이 무너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전함끼리 적극적으로 거릴 좁혀 주포 싸움을 거는 시나리오가 아닐뿐더러 훈련생들이 제공권을 잡아낸 역사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개인 전공과 평가를 중시하는 훈련생들.
어느덧 양측 전투기 수의 균형은 크게 무너졌고 슬슬 훈련은 끝을 향해 가는 그림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온 임시 편대의 돌파 시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니터링실은 모두 적잖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적은 수지만 편대 비행을 시도했다.’
‘말 안 듣는 훈련생들을 규합해내다니.’
‘첫 훈련이란 점을 생각하면 기적에 가깝다.’
‘처음에 동기를 도왔던 것이 예상 밖의 효과를 냈군.’
‘존 메이어. 망나니라는 소문과는 다르게 상당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수백명의 훈련생을 평가하던 교관들의 손이 바삐 움직인다.
훈련생들이 넘어야 할 고급과정의 첫 번째 관문, 어느 기수든 예외 없이 전멸을 맞이했던 이 모의전투에서 편대비행을 이뤄냈다는 것은 분명 인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대처가 아쉽다.’
‘편대는 도그파이트가 아닌 전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작 전투기 열일곱 기로 전함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인상적이었지만 이 정도론 지크 셉타누스의 공적을 뛰어넘긴 어렵지.’
교관들은 임시편대장이 된 존의 판단을 아쉬워했다.
뒤늦게나마 저 어지러운 제공권 싸움에 뛰어들었다면 편대만이 가지는 장점을 이용해 어느 정도 킬수를 올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존은 전투의 방향을 적 전투기가 아닌 전함으로 돌렸다.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뒷심이 아쉬웠다- 정도로 평가가 마무리될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존이 아무 생각 없이 전함을 향해 날아간 게 아니었다는 걸.
그에게 있어 모의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라는 것을 말이다.
*
-미친 거야? 고작 이 숫자의 전투기 화력으론 전함 못 잡아!
‘나도 아니까 잠자코 기다려 봐.’
교관들이 존에 대한 평가를 바꾸던 그 시각, 진은 존의 머리에 대고 이게 무슨 짓이냐며 닦달하기 바빴다.
차라리 전투기를 잡으러 갔어야 한다고.
그랬으면 편대 비행의 우위를 이용해 지크 셉타누스의 킬수를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이는 정확히 교관들의 판단과 일치했다.
그랬다면 첫 훈련에서 동기들의 목숨을 구하고, 적은 숫자지만 임시 편대를 조직해냈다는 점을 인정받아 이번 훈련 최고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차피 잔챙이들을 잡아서는 이 싸움을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싸움을 뒤집는다고?
‘그래.’
존이 이번 훈련을 받아들이는 관점은 훈련생들, 그리고 교관이나 소장과도 달랐다.
이 상황을 진짜 실전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존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열세인 전장.
기습을 얻어맞고 전투기 균형이 깨진 상황.
이는 실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조종 장교가 된다고 해서 허구한 날 전투기를 몰고 전장을 누비는 건 아니라지만 만약 이것이 진짜 실전이었다면?
그랬어도 저렇게 격추 숫자에만 목을 매고 개인플레이에만 집중했을까?
죽음이 두려워서라도 훈련생들은 악착같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것이 편대 비행이든, 아니면 자신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탈출구를 마련하든지 간에 말이다.
존은 현 상황이 자신이 조종사로 복무하며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이번 훈련을 허투루 넘기고 싶지 않았다.
평가 따윈 이미 나중 문제였다.
의도치 않게 살게 된 두 번째 인생.
허무하게 날리고 싶지 않다면 마주하는 모든 일에 있어 최선의 수를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32번기, 추가 화력지원을 부탁한다. 타겟은 적 전함이다.”
<불허한다. 32번. 이미 전황이 크게 기울어졌다. 함교의 판단은 탈출을 시도해 아군과의 합류를 도모하는 것이다. 주포 사격에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다.>
우주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무기가 되는 전함의 메인 주포.
전술 핵미사일로도 녹이지 못하는 전함의 떡실드를 타격하는 물건이니 주포가 얼마나 강력한 물건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작전의 성공을 위해선 주포의 지원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AI 오퍼레이터는 존의 요청을 기각했다.
이대로 후방 탈출을 시도하는 게 생존율이 더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후퇴라니. 아군 전투기는 미끼로 쓰겠다는 거야 뭐야?’
-정떨어지는 AI구만.
실제 전투 중에 함교에서 저딴 소리나 하고 있으면 맥이 탁 풀릴 일이지만 존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령관과 연결해다오. 부탁이다.”
존의 목소리가 간절했던 탓일까.
통신은 곧 사령관에게 연결됐다.
“사령관님! 부디 주포 사격을 허가해주십시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어 미안하네. 본 함엔 자네들 외에도 3315명에 달하는 승조원이 있네. 부디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음을···헤아려주시게.>
비록 AI라지만 사령관의 목소리엔 비통한 심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훈련에서 이러한 광경을 본 적 없는 모니터링실 인원들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훈련소장 브래들리의 반응이 가장 격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몰입해 있었는데 한때 사령관이었던 그는 마치 이것이 실제인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책임지는 함대사령관이라면 정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브래들리 소장은 결국 사령관과 같은 판단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존은 물러서지 않았고 재차 사령관의 설득에 나섰다.
“아군을 지원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함대와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반나절 정도네.>
“좌측 비행포드가 날아갔을 때 물이 새는 것을 봤습니다.”
물이 샐 정도의 타격을 받은 전함.
전투 중에 워프를 뛸 수 없음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아군 전투기가 전멸하고 나면 레이드가 시작될 겁니다. 현재 전함의 상태로 반나절을 버틴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실드를 한 번만 벗길 수 있으면 저와 편대원들이 적 전함을 격추해 보이겠습니다.”
<하지만 고작 열일곱대론···.>
적 전함의 대공화망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는 사령관은 망설이고 있었다.
“사령관님.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입니다.”
<으음···.>
확신에 찬 존의 발언.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기다렸던 사령관의 허가가 떨어졌다.
<자네들이 유효 사거리에 드는 3분 후에 맞춰 주포를 지원하지. 부디 건투를 비네.>
사령관의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모두가 놀랐다.
존을 따르던 편대원들은 원래 훈련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얼빠진 얼굴이었고 모니터링실 반응도 비슷하긴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야. 그럼 진짜 전함을 격추할 수 있다는 건가?”
“아니, 전함의 대공화망을 뚫어야 가능하지.”
“불가능한 일이야. 고작 열일곱 기로는 불가능해···.”
비처럼 쏟아질 전함의 화망을 뚫고 들어가 미사일을 타격해야 하는 미션.
가능성이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교관들이지만 그들은 이미 존의 훈련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신선하고 충격적인 전개.
이제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고작 3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
“모두 들어서 알겠지만 우린 이대로 적 전함을 격추한다.”
<역시 존이야. 가차 없지!>
<모의 전투에서 이런 게 가능하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
<아니 그것보다 이 작전, 승산은 있는 거야?>
통신을 통해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동기들에게 나는 이것이 제일 가능성이 큰 작전이라고 말했다.
“긴장해! 이제 2분 남았다!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
편대는 별다른 방해 없이 우주를 미끄러져 나갔다.
전함을 지켜야 할 적 전투기들은 모두 아군 전투기에 시선이 빼앗긴 채였고 이제야 우릴 향해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라다만 친구를 비롯해 버티고 있던 귀족 자제 녀석들이 모두 추락한 것이다.
앞에는 전함, 뒤에는 수백의 적 전투기.
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조종간을 잡아당기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내게 속도를 맞추던 훈련생들의 윽! 하는 소리가 통신을 타고 넘어왔다.
가속도에 의한 충격이 몸을 짓눌렀기 때문.
그러나 속도를 줄일 수도 없었다.
적 전함의 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실드를 장갑 표면에 두르고 섬광의 소나기를 뿌리는 융족 전함.
그 광경은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불꽃놀이보다도 화려했다.
나는 저 화려함에 홀리지 않도록 악을 쓰며 외쳤다.
“정신 차려! 맞으면 죽는다!”
효과가 있었다.
흔들리던 훈련기 몇 대의 움직임이 안정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으로 갈라서 좌우로 흩어지자. 목표는 후미의 엔진이다.”
전함이란 녀석은 설령 실드가 없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방벽이 된다.
전투기 열일곱 기에 장착된 미사일로 전함을 꺾으려면 가장 방어가 취약한, 엔진부를 노려야 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만나자.>
누가 정해준게 아님에도 편대원들은 자연스레 양쪽으로 나뉘었고 전함의 포격도 반으로 갈라져 우릴 뒤쫓았다.
내 쪽으로 갈라진 전투기는 나를 포함해 아홉 대.
그중 두 대는 나뉘기가 무섭게 추락했고 30초가 지나기 전에 다시 두 대가 더 떨어졌다.
지독한 수준의 대공화력이었다.
레이저와 실탄을 가리지 않고 날리는 화망에 혀를 내두르던 때, 푸른 섬광이 뒤편에서 날아와 굉음을 터트렸다.
약속된 주포 지원이었다.
실드가 흩어지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큰 충격은 아니었는지 적의 대공포는 계속해서 우릴 노렸다.
숨 막히는 타격에 두 대의 전투기가 추가로 떨어져 나갔다.
평소라면 시끄럽게 떠들었을 진도 지금은 조용했다.
무수히 날아드는 레이저 궤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생존 경로를 계산하느라 바빴던 것.
진은 그 길을 내 눈앞에 보여주었고 나는 길을 따라 목표지점과의 거릴 좁혀나갔다.
‘성공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곧 목표 타격을 눈앞에 둔 시점, 기뻐하던 그 순간 갑자기 길이 끊겼다.
나는 계산을 멈춘 진에게 소리쳤고 진은 정답지가 없어졌음을 알렸다.
-씨발. 게임 좆같네.
‘아···.’
더는 피할 공간이 없었던 것.
여기서 실패라니, 안타까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을 때 거짓말처럼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가라. 존!>
짧은 외침과 함께 헨리의 전투기가 폭사했다.
내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였다.
내 위를 덮고 터진 헨리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었고 마침내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이미 전함의 엔진은 스파크를 터트리며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좌우로 갈라졌던 반대쪽 인원이 타격에 성공하긴 했는데 엔진을 날려버리기엔 화력이 부족했던 것.
[락 온.]
시스템의 알림과 동시에 나는 여덟 발의 미사일을 불타는 엔진으로 쏟아 넣었다.
-빨리 튀자!
“살아있는 편대원들은 모두 산개하라!”
기괴한 소리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 적 전함.
잠시 뒤 거대한 백색 섬광이 일대를 덮으며 강렬한 충격을 동반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미션, 그 성공을 알리는 화려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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