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12화 (12/134)

12화

고급과정의 첫 실전 대비 훈련인 모의 전투.

이는 조종 특기를 맡아 자신이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훈련생의 자존감을 박살 내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충성!”

“하던 일 계속하게.”

브래들리 소장이 모니터링 실에 들어오자 교관들이 재빨리 일어나 거수경례를 취했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온 베렐 연구소장.

그들은 모니터에 잡힌 훈련생들을 살피더니 존부터 찾기 시작했다.

둘은 거의 동시에 존을 찾아냈고 상반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교관! 존 훈련생이 왜 아직도 비행포드에 남아있나?”

“아직 이륙하지 못한 훈련생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런···.”

“휘유.”

브래들리 소장은 탄식을, 베렐 중령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제국의 적들을 가상으로 이미지해 만들어진 전장.

이 첫 번째 모의 전투 시나리오는 시간 내로 이륙하지 못할 시 비행포드가 폭격을 당해 그대로 리타이어 하는 구조였다.

만약 이대로 존이 이륙도 하지 못한 채 폭사할 경우, 아무리 소장이 잘 봐주고 싶다 한들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었다.

최우수 표창을 향한 여정이 시작부터 꼬이는 셈이었다.

“아무래도 시작부터 존 훈련생이 많이 헤매는 모양입니다.”

우려 가득한 브래들리와 달리 베렐 중령의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감돌았다.

존이 조종 특기에 재능이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면 자연스레 연구 특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동료를 구하는 마음은 숭고한 것이지. 자넨 그 초심을 잃지 말고 연구를 해야해. 암!’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다시 웃은 건 브래들리 소장이었다.

“역시!”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는 소장.

무사히 동기들을 이륙시키고 폭발의 섬광을 뚫은 존의 하얀 전투기가 우주로 나섰다.

<전 대원은 교전을 통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라!>

교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흩어져 각개 전투에 들어간 훈련생들.

상대는 은색 부메랑 형태를 띤 융족 전투기였다.

서로 불을 뿜으며 우주에서의 도그파이트가 시작되자 존은 곧장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움직임에서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융족 전투기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데 비해 훈련생들은 개인플레이를 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는 곧 격추 속도의 차이로 이어졌다.

<제길! 적이 너무 많아!>

<꼬리에 적이 붙었다! 도와줘!>

선행학습으로 전투기 조종의 경험치를 잔뜩 먹은 일부 훈련생은 개인전으로도 제몫을 다했지만 그렇지 못한 훈련생이 훨씬 많았다.

아군 전투기가 터지는 숫자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격하게 기우는 와중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이가 있었으니 제국측 7번 전투기였다.

“과연, 이번 기수의 에이스 자격이 있는 친구로군.”

교관들은 7번기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을 마지않았다.

7번기의 조종사는 지크 셉타누스.

이번 기수 유일의 라다만 조종사였으며 라다만 내에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지녔다고 불리는 천재였다.

그는 전투기의 터보기능을 자유자재로 이용, 현란한 움직임으로 일대다 전투를 해내고 있었다.

엔진에서 푸른 섬광을 뿜으며 그의 전투기가 지나갈 때마다 융족 전투기가 폭발을 일으키며 떨어져 나갔다.

그의 활약을 근처에서 지켜보던 훈련생들.

남들보다 비행포드에서 일찍 빠져나온 귀족가 훈련생들은 이를 악물고 그 뒤를 쫓았다.

‘라다만에게 수석 자릴 내줄 순 없지.’

‘최우수 표창을 받는 건 나다!’

인생에 한 번뿐인 최우수 장교 임관 기회.

저 높은 곳을 노리는 이들에게 있어 이 커리어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는 형국, 당연히 힘을 합치는 움직임은 나올 수가 없었다.

“이번 훈련은 저 라다만 친구가 최고점을 받겠군요.”

베렐 연구소장이 들뜬 기색으로 말했다.

이 첫 번째 모의 전투는 사실상 훈련생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한번도 손발을 맞춰본 적 없는 애송이들을 그저 무기만 쥐여준 채 우주에 내민 셈이다.

패배가 예약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소는 결국 전투.

바로 얼마나 많은 적기를 격추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존이 비행포드에서 시간이 끌리는 사이, 최선두로 우주로 나온 지크 셉타누스는 벌써 여섯 기째 융족 전투기 격추에 성공했다.

실전이었다면 능히 에이스라 불릴만한 공적이었다.

“흠흠. 존 훈련생은 모범을 보여 동료의 생명을 살리지 않았나. 그 점을 충분히 평가에 고려해야겠지.”

“하지만 파일럿의 군공은 결국 킬마크로 귀속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 이런. 라다만 친구가 또 한 번 득점하는군요.”

베렐의 말에 소장은 끙소릴 냈다.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동료를 살린 것까진 좋았으나 결국 이번 훈련의 평가 최우선 요소는 전투력이었다.

아직 한 대의 적기도 격추시키지 못한 존과 일곱 기째 융족 전투기를 파괴한 지크를 비교할 순 없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 격차를 따라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거란 거였다.

지금은 아직 제국 전투기가 전장에 많이 남아있어 시선이 분산됐지만 이미 힘의 균형은 기운 상태였다.

훈련생들은 홀로 맡아야 하는 적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날 테고 그리되면 이미 벌어진 격추 숫자를 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크 셉타누스, 방금 14G를 견뎌냈습니다.”

“정말 경이로운 육체입니다.”

모니터링을 하던 교관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순간 추력을 극대화하며 생긴 횡G와 관성.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지크 셉타누스는 현란한 스핀을 선보이며 적을 유린했다.

인간과 달리 팔이 네 개라 훨씬 더 부드러운 조종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었다.

“이런, 저 친구에 비하면 존은 아직 한기의 적도 격추하지 못했군요. 역시 연구 특기를 해야 할 친구였나 봅니다.”

“닥치게.”

연구소장의 깐족거림에 브래들리는 팔짱을 끼고 으르렁거렸다.

‘자네, 이대로 훈련을 마칠 참인가? 아직 내게 보여줄 게 있지 않나?’

이마에 주름을 긋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브래들리 소장.

그의 두 눈은 오로지 존의 훈련기만을 쫓고 있었다.

*

애초에 적기가 더 많은 싸움이었다.

그런데 개인플레이로 시작을 열어버렸으니 이 전투는 이길 수 없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7번기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긴 하나 대세를 뒤집을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 남은 제국 전투기는 100대가량.

반면 적의 숫자는 300대도 넘을듯했다.

훈련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거 망했는데?’

-이길 방법이 없어.

아무리 머릴 쥐어짜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전투기를 몰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생의 망나니가 쌓아둔 얼마 안 되는 경험, 실시간으로 머릿속에 최적의 경로를 계산해주는 진이 도움을 주고 있다지만 그래도 애송이인 것은 사실이었다.

-존.

‘왜.’

-이 가상 모의 전투 훈련이 오딘 훈련소에 실행된 지 300년이 넘는데 말이지.

‘그런데?’

-훈련생들이 첫 차례에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군.

‘젠장···.’

처음부터 지게끔 설계된 훈련이었던 모양.

그리고 저 라다만 친구는 이미 압도적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만회할 방법은 아무래도 없는 듯했다.

‘늦었지만 나도 저렇게 적진을 휘저어야 하나?’

잠시 생각해봤지만 이내 말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미친 짓이었다.

세상엔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조종 실력을 갈고닦아야 할 내가 당장 저런 움직임을 펼친다는 건 불가능했다.

-교관들이 동기들의 초반 생존율을 높인 부분을 좋게 평가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그게 킬 한 개짜리 가치는 되겠지?’

-아마도···.

진과 투덜거리는 사이, 전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이제 잡담을 나눌 여유조차 없었다.

어느새 전후좌우로 적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혼자선 감당하기 벅찬 수준까지 전세가 기운 것이다.

‘젠장! 뒤쪽 전함에 지원사격을 요청할 순 없나?’

미사일을 맞고 비행포드가 날아간 전함이지만 아직 녀석은 열심히 견제 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저 중 일부 포대만 이쪽으로 돌려준다면 아직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훈련에 그런 기능은···있군.

빠르게 매뉴얼을 뒤적인 진이 전함 수신 채널을 열어주었다.

“여긴 32번기. 화력지원 부탁한다.”

<귀관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괜찮겠나?>

오퍼레이터의 답변에 나는 어차피 뒈질 거 제발 쏴달라고 부탁했고 잠시 뒤, 4문 레이저포 두 대에서 뿜어진 화력이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이크!’

하마터면 아군 사격에 같이 폭죽이 될 뻔했다.

위험천만했던 순간,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나를 쫓던 융족 전투기 세 대가 삽시간에 터져나갔다.

직접 격추는 아니라지만 이 정도면 어시스트에 나름 공을 올린 셈이었다.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자 나는 주변을 관찰했다.

전장을 더 냉철하게 살피자 못 보던 단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저 라다만과 귀족 친구들.

저 친구들이 열심히 적진 중앙을 휘젓고 있는 덕에 상대적으로 느슨한 공간이 엿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잠깐 조용히 해 봐.’

떠오를 듯 말 듯 한 돌파구에 인상을 쓰던 나는 이윽고 통신을 개방해 주변 전투기를 불러모으기로 했다.

“여긴 32번기, 존 메이어다. 지금 통신을 듣는 친구들은 내 쪽으로 모여주길 부탁한다. 각개 전투를 할 게 아니라 우리도 편대 비행으로 맞서야 해.”

혼자선 힘들지만 힘을 합친다면 아직 더 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견에 답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특히, 미리 전장으로 나간 귀족가 훈련생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 존 메이어.>

<남방경계 최고의 망나니라지.>

<아직 킬 수도 전혀 올리지 못한 것 같은데?>

<열심히 해보라고 하하하.>

이런 트롤러 새끼들.

저 녀석들에게 이건 단순히 훈련에 불과했다.

득점을 누가 더 많이 올리느냐에 따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진짜 목숨이 걸린 것도 아니니 다들 게임하듯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4중대였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이번 훈련은 포기하고 다음부터 평가를 챙겨보자고.

진이 위로하던 때였다.

전투기 한 대가 내 쪽으로 다가와 방향을 맞췄다.

헨리였다.

<씨발! 존나 빨리도 나왔네!>

“헨리? 로저는?”

<로저는 1킬 따고 죽었어!>

멍청한 로저.

그가 이미 당했다는 소식에 나는 탄식을 흘렸다.

로저까지 있었으면 최소 삼각편대를 구성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아쉬워하던 것도 잠시, 몇 대의 전투기가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존 메이어. 합류하겠다.>

<아깐 고마웠어.>

내 조언으로 간신히 이륙에 성공한 훈련생들이었다.

-은혜를 아는 녀석들인데?

‘이럴 땐 귀족보다 일반 시민이 훨씬 낫네.’

엉성한 비행실력이지만 내 목소릴 듣고 곧장 달려온 전투기가 열다섯 대.

헨리와 나를 합해 총 열일곱 대로 임시 편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는 그들에게 나는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내 뒤를 따라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선두에 서겠어. 뒤를 따라오면서 정면의 적에만 집중하자고.”

<라저.>

전함에 한 번 더 지원사격을 요청한 나는 적의 포위망이 느슨한 지역을 택해 돌파를 시도했다.

“윽.”

전신에 가해지는 압박감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모든 작전의 핵심은 바로 타이밍, 지금 이 한순간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전투기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불꽃의 고리.

가공할 압박 속에 내 몸이 빠르게 앞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

“방금 뭐야? 전함이 지원사격을 했잖아?”

브래들리 소장의 말에 교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고갤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존 훈련생이 전함에 통신을 걸어 지원사격을 요청했습니다.”

“오퍼레이터 코드는 어떻게 알고? 아니 그것보다 지금 저 친구들 어디 가는 건가.”

편대를 이뤄 상대의 포위가 가장 느슨한 지점을 택해 돌파를 시도하는 훈련생들.

평생을 교관으로 일하며 온갖 훈련생들을 지켜봐 온 이들이지만 이런 광경은 단연 처음이었다.

고급과정은 각 중대에서 에이스들이 차출되어 올라오는 곳.

첫 훈련은 통성명을 나눌 시간도 없을뿐더러 귀족가라는 보이지 않는 신분의 격차가 늘 훈련생의 단합을 방해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이들을 일부나마 규합한 훈련생이 나타났고 그를 따라 전투기들이 대열을 맞추었다.

이 놀라운 광경에 교관들은 즉시 상황분석에 나섰다.

“전투기 편대, 포위망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목표는···적 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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