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제 안 죽기만 하면 되겠네. 기회 봐서 할아버지한테 다시 연구 특기로 바꿔 달라고 하자!
‘지금 당장은 안 되지.’
자신의 뒤를 잇는 게 자랑스럽다며 좋아하는 백작.
그런 그에게 당장 조종사 대신 연구 쪽이 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면 좋은 반응이 나올 리 없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얘기해볼 수는 있겠다 싶던 그때, 할아버지가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아 참, 마르크도 곧 입대한다고 하더구나.”
“마르크 그 새···아니 마르크 형이요?”
“그래. 너를 보고 아마 자극을 좀 받은 모양이다. 반드시 조종사가 되어 보이겠다고 하더구나. 허허.”
이거 냄새 좀 나는데?
마르크 메이어의 입대 소식을 듣자마자 구린내가 확 치고 올라왔다.
‘이거 누가 봐도 나랑 진급 경쟁해보겠단 속내 아니야?’
-그런 거 같은데?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만약에라도 마르크의 진급이 나보다 빠르다면.
놈이 미친 듯 군공을 세워 백작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기껏 살려놓은 사업 기반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지도 몰랐다.
‘끝까지 해보자 이거지.’
백작 직위를 물려받으면 나 역시도 마르크를 눌러버릴 생각을 했으니 피차일반이긴 했다.
나는 백작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하며 통화를 마쳤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정신 바짝 차리고 훈련에 전념해야 할 것 같았다.
*
“데커드 교관이라고 한다. 조종 특기 고급과정에 온 것을 환영한다.”
기본과정이 끝나고.
특기별 고급과정을 시작하며 나는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교관과 마주하게 됐다.
연방군 장교 특기 중 가장 경쟁률이 높다는 조종이었기에 4중대에서도 함께 조종 코스를 밟게 된 친구는 고작 두 명에 불과했다.
“존, 이번에도 잘 좀 부탁할게!”
“너만 믿는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나를 찾던 중대원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도와줄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고급과정은 실전 조종을 위한 훈련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대부분 혼자서 해내야 하는 훈련들이었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혹독한 훈련 탓에 가장 많은 탈락자가 생긴다는 코스.
어쩌면 4중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나 혼자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종 특기가 무엇인지, 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교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자네들은 지금부터 40주 동안! 우주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력인 전투기 조종의 모든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흔히 우주에서의 전투라고 하면 거대한 전함들이 레이저포를 뿜어대는 그림을 떠올리곤 하지만 결국 공격의 주가 되는 것은 전함에서 사출되는 무수한 전투기들이었다.
“교육생은 이름이 뭔가.”
“릭 패터슨입니다!”
“왜 조종 특기를 지원했나.”
“아버지가 조종사셨습니다!”
“살아계신가?”
“그렇습니다!”
“수업을 졸지 않고 열심히 들으셨던 모양이군.”
하마터면 패드립이 될 뻔한 이야기를 꺼내며 교관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들이 조종사를 지원한 이유는 교관도 잘 알고 있다! 조종, 연방군에서 가장 빠른 진급 속도를 보장하는 특기다. 출세를 원하는 자들에게 이보다 탁월한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힘 있는 목소리에 훈련생들의 고개가 교관을 쫓는다.
교관의 말대로였다.
지금 제국에서 대귀족이라 불리는 백작 이상의 상위 귀족이 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조종사가 유일했다.
종종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군임에도 경쟁률이 치솟는 이유였다.
“40주가 긴 것 같지만 조종에 필요한 훈련과 정보를 숙지하는 데는 짧은 시간이다. 고로, 지금 당장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각자의 앞에 스크린이 펼쳐졌고 곧 복잡해 보이는 계기판 그림이 떠올랐다.
교관은 빠른 속도로 각 부위의 명칭과 하는 일, 이륙 절차를 설명했고, 이내 훈련생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장 이것을 모조리 외우는 게 첫 번째 훈련임을 직감했기 때문.
“이제 모두 알겠지?”
참 쉽죠? 라고 말하듯 교관이 훈련생들을 바라봤다.
“30분 주겠다. 못 외우는 사람은 짐 싸서 집에 돌아가면 되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폭탄을 던진 교관이 잠시 자릴 비우자 강의실 내부는 삽시간에 시장통이 됐다.
고급과정 훈련의 시작이었다.
*
오딘 방위군 연구소장 베렐 스콧.
연방군 중령인 그는 적지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가 향한 곳은 훈련소장 브래들리 레이크의 집무실.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울리고 들어오란 소리에 베렐이 문을 열었다.
“연구소장이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소장님.”
“자네···?”
다짜고짜 고개부터 숙인 베렐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돌려주십시오.”
“자네 미쳤나? 난데없이 쳐들어와서 대체 뭘 돌려달란 거야.”
“존 메이어 훈련생 말입니다. 그는 장차 연방군 과학기술을 이끌어나갈 인재입니다. 최소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인재를 조종 특기로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입니다.”
베렐의 말에 훈련소장의 얼굴이 크게 구겨졌다.
“자네 지금 조종사를 무시하는 건가?”
“소장님. 훌륭한 지휘관은 만 명의 병사를 살릴 수 있지만 뛰어난 과학자는 수십만 조종사를 능히 살릴 수 있습니다. 소장님께선 그가 어떤 재목인지 잘 모르시지 않습니까.”
“나도 다 알아봤네. 그가 이클립스 엔진인가 하는 물건을 만들었다면서. 소문대로라면 중앙에서 기술을 일부 넘겨받아 가공한 거라지?”
“맞습니다.”
“직접 설계한 것도 아니고 중앙 도움을 받아 만든 엔진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나.”
“소장님. 존 훈련생은 기본과정 연구 수업에서 단 한 번의 오류조차 범한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교관들도 입을 모아 그의 예리함을 칭찬했겠습니까. 존이 가진 기술적 재능은 진짜입니다.”
베렐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존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다들 출세를 위해 조종사를 지원하는 이 시대에, 연구에 진심인 천재를 전장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고 말이다.
“그 정도로 탐나는 인재인가?”
“그렇습니다!”
“고작 10년에 한 번 나올 수준의 천재라며?”
“최소입니다. 오딘으로 한정하자면 50년 이상일 겁니다.”
50년이란 소리가 나오자 브래들리가 씩 웃었다.
“그럼 자네보다도 뛰어나단 소리인데?”
“저도 저 나이 때는 저만큼 똑똑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중앙의 추천을 받고 들어온 친구 아닙니까. 이대로 조종 특기로 보내는 것은 소장님도 부담이 크실 겁니다.”
“자네···말을 좀 가려서 하는 게 좋겠군.”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존의 중앙 추천을 언급한 베렐 연구소장.
이것은 부담이니 뭐니 하며 브래들리를 위하는 척하지만 그 속으론 중앙의 의사를 무시한 소장을 압박하려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브래들리가 대번에 안색을 바꾸고 연구소장을 노려본 이유였다.
소장 그리고 중령이란 압도적 계급 차이.
그 점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이지만 달리 말하면 그만큼 존의 존재가 말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존 훈련생을 만나본 적이 있나?”
“연구 교관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하기에 기본과정 마지막 연구 수업을 제가 직접 갔습니다.”
“어떻던가.”
“이클립스 엔진 개발, 세간에서 도는 소문처럼 단순히 기술 이전을 받아 이름만 올린 수준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존 메이어와의 첫 만남.
베렐은 지금도 그때의 충격이 생생했다.
“그와 대화를 나눴을 때, 저는 그가 노회한 엔진 개발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를 연구 특기로 바꾸고 싶어서 약 파는 건 아니고?”
“하늘에 맹세코 아닙니다. 존 훈련생은 의심할 여지 없는 ‘연구’ 천재입니다.”
“이거 참···.”
한숨을 쉰 브래들리 소장이 턱을 매만졌다.
“자네. 내가 끝까지 반대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마음을 바꾸실 때까지 와서 빌겠습니다.”
“돌겠군. 따라오게.”
자리에서 일어난 소장은 걸려있던 군모를 집어 집무실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시뮬레이션 교육실.
지금쯤 고급과정 첫 전투, 훈련생들이 가상의 실전 전투를 치르고 있을 터였다.
“어느 쪽에 더 어울리는 인재인지 자네가 직접 보고 판단하게.”
“훈련을···말입니까?”
“마침 곧 첫 전투를 치를 거라는군. 나 역시 그 친구에게서 양보할 수 없는 재능을 엿봤으니 자네도 느끼는 게 있을 걸세.”
*
짧은 시간 동안 계기판 기능을 전부 숙지한다는 건 기억력이 웬만큼 좋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히 헤맬 수밖에 없는 훈련생들을 시뮬레이션실로 끌고 간 교관은 그들을 좌석에 앉혔다.
이후 암전하는 훈련실, 그렇게 첫 비행 훈련이 시작됐다.
<비상상황, 비상상황이다. 전 대원은 신속히 전투 출격할 것을 명한다.>
‘진짜 실감 나는데?’
-실감은 개뿔. 원시적인 수준이구만.
진은 별거 아니라며 투덜거렸으나 존이 보기엔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현실과 구분이 힘든 가상현실 기기.
크게 울리는 사이렌과 붉은 경고등.
그는 어느새 전투함의 비행포드에 서 있었다.
그러나 멍하게 서 있을 여유가 없었다.
쿵- 소리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 함선.
전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충격이었다.
<반복한다. 전 대원은 신속히 출격 후 적 요격에 들어간다. 반복한다. 전 대원은 신속히···.>
잠시 뒤, 애프터 버너의 푸른 불꽃과 함께 전투기들이 이륙하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빠른 적응력, 그들은 모두 귀족가 자제들로 전투기 개인 과외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집이 부유한 녀석들이었다.
이날을 위해 비싼 돈을 들여 반복 훈련을 해왔을 테니 그들이 익숙한 듯 전투기를 모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에 반면 오로지 귀족이 되겠단 일념하에 꿈을 안고 입소한 평민 훈련생들은 거의 패닉에 빠진 듯 조종석에서 허우적대기 바빴다.
고작 30분.
30분 동안 이착륙 기능을 다 외운다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길!”
누군가 계기판을 내려치며 분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존은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건 이미 어릴 적부터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남은 전투기가 계속 줄자 이들은 거의 목이 졸린 듯한 얼굴이 됐다.
그리고, 존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통신 채널이 열렸다.
<존! 뭐 하는 거야!>
<빨리 안 나가면 감점당할 거야!>
4중대 출신 중 단 두 명 남은 동기.
로저와 헨리였다.
“너흰 문제없어?”
<문제없어!>
<우린 괜찮으니까 일단 나가자고! 합격해야지!>
비록 메이어 가문에 비해 끗발이 떨어지긴 해도 이들 역시 귀족가문의 자제들.
그들은 4중대 생활을 함께하는 동안 어느덧 존을 대장처럼 따르고 있었다.
남방경계 제일의 개망나니란 소문이 무색하게도 존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
그들은 어서 존이 이륙하길 재촉했으나 정작 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먼저 이륙해.”
<왜 그래! 존!>
“먼저 이륙하라고 멍청이들아!”
<젠장. 존이라면 다 뜻이 있겠지.>
<알았어. 먼저 나간다!>
엔진 굉음과 함께 두 녀석이 사라지자 이제 비행포드에 남은 건 평생 조종간을 잡아본 적 없는 인원뿐이었다.
여전히 계기판을 붙잡고 헤매는 인원들.
그래도 뭐라도 해보려는 친구들은 양반이었다.
일부 훈련생은 분함에 눈물을 짜며 사실상 손을 놓기까지 했다.
벨트를 당긴 존은 남아있는 전투기를 향해 통신채널을 열었다.
“아아, 들리나? 대답은 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하는 방법도 모를 테니까. 내 이름은 존 메이어라고 한다. 지금부터 이륙 시퀀스를 설명하겠다.”
존의 말에 훈련생들의 분노와 울음이 순간 멈췄다.
일부는 놀란 눈을 하고 캐노피 너머로 존을 빤히 바라보는 녀석도 있었다.
“날 쳐다보지 말고 집중해! 일단 락볼트부터 해제해. 스틱 우측 위에 보이는 붉은 버튼. 그다음은 연료 주입.”
꼭 필요한 단계만 빠르게 불러주자 모두의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종간에서 손 떼. 당기면 우리 모두 다 죽어. 가장 앞에 있는 친구, 11번, 너부터 나가야 해. 절대 풀스로틀 당기지 말고. 가속도 훈련 안 받아서 급발진하면 기절 확정이야.”
그렇게 설명을 마치기 무섭게 첫 번째 후발주자가 이륙에 성공했다.
착륙보단 이륙이 훨씬 쉽기도 했고 할 수 있다고 다독이는 존의 멘트는 이들에게 커다란 안정감을 주었다.
<존이라고 했나? 고맙다!>
<이 도움은 잊지 않을게!>
“칭찬은 나중에 하고! 앞 꽁무니 물고 빨리빨리 튀어 나가!”
존은 악을 쓰며 전투기들을 내보냈다.
주변 상황을 체크하던 진이 곧 함선 옆구리가 작살날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존이 굉음과 함께 전투기를 우주 공간으로 띄웠다.
적 미사일에 비행포드가 날아가기까지 불과 5초 남은 시점이었다.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오자 통신 채널을 통해 교전중인 동료들의 악다구니가 들렸고 교관의 지령이 섞여들었다.
<전 대원은 교전을 통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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