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훈련소 기본과정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먹여주는 밥을 먹고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몸이 고달픈 것만 제외하면 딱히 정신적으로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렇게 기본과정 마지막 주를 맞이하게 된 어느 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됐다.
뭔가 굉장히 말해주기 싫은 듯한 표정인 헤임달 교관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씹으며 내게 메시지를 전했다.
“존, 네 특기는 조종으로 정해졌다.”
“예?”
-우린 연구 특기로 가는 거 아니었어?
나는 분명 중앙에서 연구 특기 추천을 받고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조종 특기로 가라니.
교관의 말에 중대원들은 잘됐다며 나를 축하해주기 바빴지만 나는 마냥 기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잘하는 건 연구 아닌가.
게다가 모든 특기 중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조종 특기였다.
오죽하면 조종 장교의 진급이 빠른 이유는 목숨값이라는 얘기가 나왔겠는가.
나는 조심스레 연구 특기로 바꾸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조종 특기를 지원하고자 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하지만 교관은 자신이 정한 사항이 아니라며 이는 타협해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빼지 말고 열심히 해라! 네놈 같은 독종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으니 아마 잘 해낼 거다.”
“······?”
워게임 사건으로 공개적 망신을 당한 헤임달 교관이지만 그 이후로는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태도를 보였다.
훈련생 신분으론 최초로, 독종 교관 헤임달의 인정을 받은 남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훈련소장의 호출이 이어졌다.
*
“이쪽으로 앉게.”
“예.”
“내일이면 기본과정을 끝마치게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모르는 것들을 배울 수 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재미없는 대답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니니 편하게 얘기하게.”
소장은 껄껄 웃으며 커피를 건넸다.
“그거 아나? 자네가 이곳에서 50년 만에 기본과정 최고점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내가 그 정도였나?
물론 진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일이지만 그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었을 줄은 몰랐었다.
-근데 무서운 건 뭔지 알아? 50년 전엔 더한 괴물도 있었다는 거야.
‘그 인간도 정령하고 계약했겠지.’
대체 50년 전에 있었다던 인간은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훈련소장의 말이 이어졌다.
“자넬 부른 건 다름 아니라 특기 변경이 된 이유에 대해 한번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네.”
‘설마 했더니 진짜 소장이 바꾼 거였나?’
워게임 당시 교관을 때려눕힌 나를 소장은 눈여겨 봐두었다고 했다.
장차 연방군을 이끌 뛰어난 인재가 될 거라고 말이다.
아마 내 특기가 갑작스레 바뀐 이유도 그 점이 주효했던 모양이다.
“자네 지원서를 보니 중앙 추천으로 입대했더군? 연구 특기로 말일세.”
“그렇습니다.”
“그러던 중 자네가 최근 유명한 신형 엔진 개발자란 사실도 알게 되었네. 나이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게지.”
‘그걸 아시는 분이 왜···?’
조용히 답을 말해주길 기다리자 소장은 내 특기를 전환시킨 이유를 밝혔다.
“자네, 왜 제국 우주군이 연방군이라 불리는지 아는가?”
수업을 들어서 잘 아는 사실이었다.
제국 군대가 연방군이라 불리는 이유.
그것은 인간 외에도 다양한 종족이 결합하여 군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맞네. 현재 연방군엔 다양한 우호종족이 힘을 보태고 있네.”
수백 년을 족히 산다는 엘프와 강철의 정신을 가진 라다만, 제국 기술의 발전의 첨병이 되는 드워프 등등.
제국의 드넓은 영토 아래 연방군은 다양한 종족이 세를 이루어 그 힘을 유지 중이었다.
“자네 중대엔 다른 종족 친구들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인류 제국이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제국의 가장 큰 구성원을 차지하는 종족은 인간이었다.
4중대는 전부 인간 친구들뿐이었고 다른 중대엔 가뭄에 콩 나듯 외계인 친구들이 있었다.
“12중대에 라다만 훈련생이 한 명 있네.”
“식당에서 본 적 있습니다.”
라다만은 평균 신장 2미터에 팔이 넷 달린 회색 외계인으로 인간과 비교하면 압도적 신체 능력을 갖춘 종족이었다.
“신체적 특징 외에 그들의 장점을 아는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입니다.”
냉병기 전투라면 성인 남성 스무 명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고 알려진 라다만.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강한 육체가 아닌, 바로 정신력에 있었다.
불굴의 의지.
강철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한 라다만의 정신은 무감정을 기반으로 했다.
그들은 공포를 모르고 좌절을 모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명령을 이행했다.
이게 얼마나 큰 장점이냐면 일단 명령을 받든 라다만의 군대엔 사기 저하로 인한 와해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위한 방법을 찾아 작전을 수행하는 불굴의 군대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앙에선 라다만 장교를 요직에 앉히는 걸 좋아했으나 훈련소장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네는 라다만 장교가 지휘관이라면 어떨 것 같나.”
“아직 경험은 없어서 뭐라 답하긴 어렵지만, 별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 볼 땐 분명 큰 문제는 없네. 군대는 명령을 수행하는 조직이니까.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문제를 꼭 이성적으로만 처리할 순 없지 않은가.”
그리 말한 소장은 넌지시 덧붙였다.
“라다만 훈련생은 조종 특기를 신청했네. 성적도 매우 우수해. 필요한 공부가 있다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해내는 종족이니 말일세. 만약 자네가 연구 특기로 빠진다면 분명 이번 기수 최우수 표창은 그가 가져가겠지.”
훈련소장은 최우수 훈련생 타이틀을 라다만이 가져가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최우수 훈련생 표창은 중앙 추천에 버금가는 승급 지표 중에 하나일세. 만약 그가 표창을 받는다면 빠른 속도로 연방군 요직에 오르게 되겠지.”
나는 이 시점에서 훈련소장이 인간 우월주의자인지를 의심했다.
귀족 중엔 의외로 적지 않은 숫자가 그런 부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그런 문제는 아닌듯했다.
브래들리 소장은 단지 감정이 없는 라다만이 연방군의 고위직을 맡는 게 싫을 뿐이었다.
“생각해보게. 수만 명의 병사가 적지에 고립됐다고.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그들을 자네라면 쉽게 버릴 수 있겠나? 오랜 시간 자넬 믿고 따른 사람들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다만은 다르네. 판단에 의해 구출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병사를 포기하겠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훈련소장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인명의 무게를 아는 자여야 한다고 거듭 피력했다.
“나는 인간 우월주의자도 아니고 라다만 혐오자도 아니네. 다만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표창을 받길 원할 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
“아직 고등과정이 남아있고 이제 자네도 라다만 훈련생과 마주칠 일이 있겠지. 자네가 직접 보고 판단하게. 누가 더 지휘관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그리고···자네가 옳다고 생각되거든 절대 물러서지 말게. 자네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소장의 격려 속에 나는 결국 조종 특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존의 끔찍했던 조종 실력이 내게 이어지진 않았단 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소장이 날 밀어주고 싶었다 한들 나는 분명 연구 특기로 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소장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서자 진이 말했다.
-그럼 우리 벌써 줄 하나 잡은 건가?
‘무슨 줄?’
-브래들리 소장 말이야. 곧 은퇴긴 해도 연방군 소장이잖아. 별 달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그게 그렇게 되나?
중앙의 추천을 거스르고 소장의 입김에 따라 특기를 바꾸게 된 셈이니 나로서도 그가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앞으로 연방군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분명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
기본과정이 막바지에 이르자 훈련생들은 일과 후 집에 자유롭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오딘이 고향이 아닌 경우엔 다소 어려운 일이었지만 내 경우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시대는 돈이면 어지간한 일은 전부 해결할 수 있었다.
비록 망나니지만 백작가의 일원이란 점을 이용한 나는 화상통신으로 고향에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이야기 들었다. 조종 특기를 선택했다고.”
“예. 할아버지.”
“잘했다. 군인은 자고로 조종사 아니겠느냐.”
윌리엄 백작은 현역 때 전투함을 조종했기에 내가 같은 길을 걷게 된 걸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고급과정만 이수하면 임관이구나.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언제든 힘에 부치면 특기를 바꾸도록 해라.”
“그게 가능합니까?”
“할애비한테 그 정돈 별거 아닌 문제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말하거라.”
망나니 존은 장교가 되기 위해 파일럿 과외를 받다 대형 사고를 당했다.
백작은 내가 그 트라우마를 완전히 벗지 못했을까를 염려한 것이었다.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기본 조종 훈련도 무사히 통과했으니까요.”
“그래그래.”
만족한 듯 웃은 백작은 내게 한가지 약속을 해주었다.
“최우수 표창을 받거든 이 할애비가 네게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은데. 혹시 갖고 싶은 게 있느냐?”
선물 싫다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요구하면 좋을지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내게 가장 좋은 선물이 뭘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돈이었다.
오딘과 잭팟을 터트린 이후, 내 수중엔 현재 1천억가량의 돈이 남아있었다.
70조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킨 것 치고는 남은 돈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지만 본래 군수 사업이란 게 이문이 많이 남지 않기도 했고 밀려드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신형 공장 건설을 시작한 영향이 컸다.
물론 천억도 엄청난 돈인 건 맞다.
과거, 김우진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액수.
하지만 군에 입대해 조종 특기를 선택한 이상 그보다 더 많은 돈이 들게 될 것은 자명했다.
-당장 함선만 해도 자비로 마련할 수 있는 자는 진급에 탄력이 붙는다고 하니까.
무슨 기부 입학도 아니고···.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닌 함선을 자가구매하는 것으로 진급이 빨라진다니.
이건 숫제 돈 주고 계급장을 사는 꼴이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건만 이 관습이 고쳐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권을 쥔 귀족들이 이 제도의 유지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돈이 있는 자들은 대부분 귀족이고 제도의 혜택을 보는 이도 귀족이었으니 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이유가 없던 것.
여기에 라인을 타며 고유의 영향력을 구축하려면 적지 않은 돈을 뿌려야 한다는 사실도 앞으로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될 것을 짐작게 하는 이유였다.
짧은 시간 동안, 선물에 대해 고민한 나는 냉큼 백작에게 답을 내놓았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이야기해주셨으니 저도 부담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작은 내가 어떤 선물을 요구할지 상당히 기대되는 눈치였다.
“공장을 하나 더 지어주셨으면 합니다.”
“3공장을 말하는 것이냐? 로얄 머신에서 토지를 받아다가 2공장 삽을 뜬지가 엊그제 아니더냐.”
2공장 완성까진 앞으로 6개월의 시간이 걸릴 예정이었다.
공장이 완성된 후엔 오딘의 물량을 문제없이 생산 가능했고 추가로 주변 행성의 오더를 몇 개는 더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다.
내 목표 중 하나는 트라카와 오딘을 넘어서, 아크 팩토리를 굴지의 영향력을 지닌 군수사업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더 많은 물량을 뽑아낼 수 있는 공장 단지 건설은 필수였다.
“무작정 공장을 더 늘렸다가 오히려 라인을 놀리는 꼴만 생길 수도 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도 엔진은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고 성능을 개선하면 남방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에까지 판로를 마련할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도 대기 물량이 양껏 차 있는 제품이다.
게다가 성능 향상도 예정되어 있으니 수주를 더 받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이거 선물 한번 주겠다고 했다가 코 꿰였구나. 알겠다. 최우수 장교로 임관만 하면 3공장을 지어주마.”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2공장에 들어간 건설 비용은 대부분이 대출이었고 이는 무려 10조에 육박했다.
손도 안 대고 10조 어치 코를 푼 격이었으니 절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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