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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9화 (9/134)

9화

장교가 되길 희망하는 입소생들이 모인 대강당.

나를 비롯한 후보생들은 조교들이 나눠주는 소책자를 들고 앞으로 어떤 교육을 받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제국 연방군의 장교가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첫 번째는 일주일 동안 치러지는 기초체력시험을 통과할 것.

그다음은 25주에 걸친 기본과정.

연방군 장교는 다양한 특기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추천받은 연구 특기라든가 전투기, 함선 운용을 위한 조종 특기, 지상점령을 위한 보병 특기 등등.

기본과정에서 낙제점을 받지 않는다면 이 시점에서 자신의 특기가 정해진다고 했다.

그다음은 고등과정.

정해진 주특기 심화 교육을 받는 셈인데 장교를 희망하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선 아주 악명 높은 시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40주 동안의 혹독한 교육은 가장 이탈률이 높은 과정이었다.

이렇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훈련만 받고 그것을 통과한 자들만이 연방군 장교가 될 수 있으니 출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준비된 자는 앞으로 나와서 서명하도록.”

훈련 도중 생길 수 있는 부상과 안전사고에 관하여 각자가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

나는 가볍게 싸인하고 정해진 라인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훈련소 1일 차가 시작됐다.

한가지 마음에 드는 건 두발을 빡빡 미는 행위가 없다는 점이었다.

내 옆에 장발 친구가 섰을 땐 영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가 밀리는 것보단 나았다.

*

입소 당일 오후.

본격적인 체력 테스트가 시작됐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3km 달리기 등의 평범하고도 예측 가능한 시험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놀라운 건 입소자들 대다수가 어렵지 않게 체력 시험을 통과해낸단 점이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배가 나왔거나 기초 체력이 부실한 친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애초에 이런 과정으로 시험이 진행될 것임이 뻔히 알려져 있는데 아무런 준비도 않고 오는 인간이 바보일 터였다.

게다가 신기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군대라는 곳이 이렇게 신사적일 수 있나?’

훈련소에서 체력시험을 치르는 동안, 나는 교관이 악을 쓰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훈련생을 이끄는 교관들은 무척 조용했고 너그러웠다.

식사 시간엔 훈련생들이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도록 자릴 비켜주었고.

간혹 체력 시험에 떨어져 우는 친구들에겐 잘 준비해서 내년에 도전해보는 것이 좋겠다며 손수건을 건네주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그 이유를 훈련생들의 배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장교 코스를 지원하는 훈련생의 상당수는 나와 같은 귀족가의 자제들이다.

이들에게 함부로 대해서 좋을 게 없으니 서로 조심하자는 취지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이 오산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불과 며칠 후의 이야기였다.

*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본격적인 훈련이라 할 수 있는 기본과정 교육이 시작됐다.

수천 명에 달하던 인원이 잘게 쪼개졌고 내겐 4중대라는 새로운 소속이 부여되었다.

체력시험을 통과한 훈련생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연했다.

다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잠시 뒤, 처음으로 교관의 입에서 불호령이 터져 나왔다.

“한심한 새끼들! 빨리빨리 움직여라!”

고함을 외치며 훈련생을 통제하는 교관.

당근과 채찍 전략도 아니고, 갑자기 몰아치는 현실에 훈련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4중대가 우르르 훈련장에 튀어나오자 교관이 단상을 밟고 올라섰다.

“본인은 앞으로 25주 동안 너희를 책임지게 될 헤임달 상급교관이다.”

그는 체격이 매우 좋은, 야수 같은 남자였다.

상의 소매를 걷어 드러난 팔뚝은 거의 성인 머리통만 했는데 손에 걸리면 뭐든 간단히 찢어놓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 너흰 연방군의 역사, 전장에서 살아남을 방법, 그리고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25주 동안 너희는 이 모든 걸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머리가 나쁜 놈들은? 짐 싸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차라리 그게 낫다. 구제 못 할 대가리로 부하와 동료를 죽이는 것보단 나으니까!”

으르렁거리던 교관은 단상에서 훌쩍 뛰어내려 훈련병들과 눈을 마주쳤다.

흉흉한 분위기에도 몇몇 훈련생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풋- 소릴 내었는데 당연히 교관의 표정은 크게 일그러졌다.

“너, 너, 그리고 너. 앞으로 튀어나와라.”

웃은 놈들을 귀신같이 찾아낸 교관은 어깨동무를 시킨 뒤 즉시 얼차려를 주었다.

“앉으면서 정신, 일어나면서 통일. 복창한다. 실시.”

훈련생들은 이러한 대우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는지 행동을 머뭇거렸지만 명령 불복종은 퇴소 조치란 말에 이를 악물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했다.

여유 넘치던 훈련생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쫙 빠지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두 번째 입대라고 조금은 나을 줄 알았더니만 개뿔···.

다녀왔다고 해서 딱히 편한 점은 없었고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지상점령을 위한답시고 2미터짜리 중장갑 슈트를 입고 뛰어다닌 다거나, 광선검 들고 검술 교육을 받는 건 전생엔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었다.

몸에 쌓인 피로는 진이 마법을 써주는 것으로 쉽게 풀 수 있었고 암기가 필요한 과목은 머릿속 노트를 이용해 만점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중대 우수훈련생이 되었고 친구들도 적잖이 사귈 수 있었다.

개중엔 내가 생각보다 정상이어서 꽤 놀랐다고 고백하는 녀석도 있었다.

트라카 행성의 개망나니, 존의 유명세는 내 생각보다 더 먼 곳까지 퍼져있던 모양이었다···.

‘오늘은 무슨 수업이었더라?’

-전략과 전투.

기본과정 동안 우리는 장교가 하는 일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빠짐없이 배워나갔다.

이는 훈련생이 어떤 특기에 장점이 있는지를 파악해 전문장교로서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전략과 전투 수업.

모의 훈련장에 모여 오늘 있을 수업에 대해 브리핑을 듣던 나는 유독 정신이 또렷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거···게임이네?’

워게임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수업은 내가 과거에 즐겼던 전략 시뮬레이션과 닮은 점이 아주 많았다.

서로 한정된 자원과 유닛을 가지고 모의 전투를 펼쳐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워게임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들은 드물고 이번 수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훈련생들은 조종특기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연방군 특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종.

자고로 군인이라면 누구나 전투기, 함선을 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게임을 좋아했나 보네?

‘게임이 유일한 취미였던 시절도 있거든.’

-그런데 우린 어차피 연구 특기로 빠질 거잖아?

진의 말대로였다.

어차피 연구 쪽으로 빠져 기술자가 될 거라면 워게임에 열을 올릴 필요는 없었다.

조종특기에 비하면 진급은 좀 느리지만 안정적인 후방근무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무리 진급이 빠르다 한들 전장의 폭죽이 되어서야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번만큼은 적당히 수업을 받고 교관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을 했다.

교관이 나를 콕 집어 무대 위로 불러올리기 전까진 말이다.

“올라와라. 존! 이것만큼은 네놈도 피해갈 수 없을 거다!”

기본과정이 진행될수록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헤임달 교관.

그는 나를 합법적으로 얼차려 주지 못한 것이 그렇게도 불만인듯했다.

앞서 했던 교육들을 내가 딱히 흠잡을 곳 없이 잘 해낸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헤임달에게 아직 털린 적 없는 유일한 훈련생이었고 그런 내게 4중대 친구들은 헌터라는 별명을 달아주었다(헤임달의 별명이 고릴라였기 때문에).

“오늘은 본 교관이 게임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애송이!”

*

이 세상에 완벽한 훈련생은 없다.

바깥에선 그렇게 똑똑하다던 녀석들도 들어오기만 하면 바보짓을 하는 게 훈련소의 마성이었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무수히 많은 장교를 길러낸 헤임달 교관은 늘 훈련생들을 애송이 대하듯 했다.

훈련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교관에 비하면 상처야 좀 받겠지만 그것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것보단 백배 낫다는 계산에서였다.

헤임달은 어떻게든 훈련생에게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그것을 보완해주는 것이야말로 교관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그 오랜 생각이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전부 존 때문이었다.

훈련으론 흠잡을 곳이 없는 녀석.

완벽한 훈련생이 존재한단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헤임달은 존의 뒤를 캐냈고 그의 사고 이력이 화려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마약에 도박이라. 이런 놈들은 제 버릇 개 못 주지!’

옳다구나 싶었던 헤임달은 존의 생활관을 기습해 불시점검을 시도했다.

마약까진 아니어도 하다못해 담배라도 나올 게 분명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존의 관물대에선 정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정작 애꿎은 훈련생 동기 몇 명이 작살나긴 했지만 말이다.

‘이 자식···어디에 꼭꼭 숨은 것이냐.’

헤임달의 손이 바삐 움직인다.

그의 명령에 초계함이 아직 시야가 밝혀지지 않은 회색지대로 들어선다.

워게임의 전장엔 엄폐물이 많았고 이런 전장에선 레이더의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적의 주력을 찾아 애타게 교관이 우주를 공략하던 그때 경고음이 세차게 울렸다.

후방의 자원 지역에 존의 강습 부대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도 무려 세 군데에 달하는 동시타격.

‘잔재주를 부리는군.’

헤임달은 빠르게 마비되는 자원지역을 보며 방어보단 공세를 굳히기로 결정했다.

장기전으로 가면 분명 큰 피해가 되겠지만 워게임의 9할은 단기전, 대전투 한방으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헤임달은 남은 자원을 긁어 전함의 수를 더욱 불렸다.

이렇게 모인 주력군의 화력은 이번 게임에서 쓸 수 있는 규모의 최대치에 가까웠다.

전함이 즐비한 주력군.

그 막강한 화력을 통해 적의 본대를 단숨에 밀어버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상대의 대응이 더 빨랐다.

화력이 강한 전함의 수를 줄이고 순양함의 비중을 높인 존은 주력군의 속도에 치중했다.

작전에 필요한 자원은 헤임달의 자원기지를 타격한 것으로 충당하고 본성은 거의 비우다시피 한,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략이었다.

주력군의 속도가 더 빠르기에 헤임달의 마음대로 결판을 낼 수도 없었다.

장기전 양상을 띠는 전투를 싫어했던 교관은 즉시 존의 본진 타격을 시도했다.

과연 막강한 화력이었다.

순식간에 존의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고 생산시설이 모두 파괴당했다.

문제는 거의 동시에 헤임달의 본진 또한 공격을 받았다는 것.

이뿐만이 아니었다.

존은 초반에 마비시킨 헤임달의 자원 거점을 역이용해 자신의 생산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화력이 강한 만큼 연비 효율은 헤임달의 군대가 불리했다.

게다가 제2의 본진 구축을 시도하는 존, 의도치 않은 기지 바꾸기에 교관은 다급히 본대를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헤임달이 항로를 거슬러 돌아오는 길목에 있던 소행성 지대.

헤임달 본대의 뒤를 잡은 존의 고속정 부대가 큰 이득을 거두며 기습을 성공, 다시 시야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대로 가면 꼼짝 없이 말라죽을 판이었기에 헤임달은 다급히 존의 자원 지역 하나를 차지하고 진지 구축에 들어갔다.

이대로 가다간 주력병력을 보급할 자원이 떨어져 꼼짝없이 말라죽을 판이었다.

헤임달은 조금씩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워게임의 명령 체계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

명령 한 줄을 내리기 위해 실전과 같은 전달 체계를 거쳐야 했고 복잡한 동작을 구사하기 위해선 머리 아픈 연산을 해내야 했다.

그런데도 이런 움직임이라니.

누가 이 게임을 보고 일개 훈련생의 플레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워게임을 처음 해본 건 맞는지 하는 의심이 솟구쳤다.

콧대를 꺾어주긴커녕 개망신을 당할 판인지라 헤임달이 이를 악물고 반격을 꾀하던 때였다.

게임이 중단되며 어두웠던 모의 훈련장에 불이 들어왔다.

“어떤 새끼가 불 켰어!”

갑작스레 게임이 중단되자 헤임달 교관은 버럭 성을 냈다.

이대로 게임이 끝난다면 누가 봐도 존의 우세승이 점쳐지기 때문이었다.

존을 응원하는 건방진 훈련생이 벌인 짓이라 판단한 교관이 분노를 드러내던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만하면 됐네. 내려오게.”

“어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헤임달은 순간 사고가 굳어 입만 뻐끔거렸다.

은발을 가지런히 뒤로 넘긴 노인.

그는 다름 아닌 오딘 훈련소장 브래들리 레이크였다.

“충성. 소장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로···.”

황급히 내려가 고갤 숙이는 교관.

그러나 훈련소장은 그에겐 아무 관심없다는 듯 아직 무대 위에 남아있는 존에게 향해 있었다.

“훈련생, 이름이 뭔가.”

“존···메이어입니다.”

“자네의 게임 시야를 공유해주겠나?”

소장의 주문에 존은 어색한 얼굴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 스크린에 존이 확보한 영역이 펼쳐졌고 동시에 교관의 입에서 경악에 찬 악! 소리가 터졌다.

-그러게 적당히 하자니까.

‘겜알못 애송이 취급하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헤임달이 차지한 단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자원 구역 확보.

의심할 여지 없는 존의 완벽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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