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귀족이 되기 위한 가장 큰 기회인 연방군 입대.
꼭 장교가 아닌 일반 병사로 무사히 전역하기만 해도 각종 특혜가 주어지기에 남녀를 불문하고 제국 시민이라면 한 번쯤 입대를 고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이 제한은 스무 살부터 서른다섯까지.
자신이 원하는 때를 골라 일반병은 2년, 장교는 최소 5년 이상을 복무해야 했다.
하지만 입대 영장이라니.
이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한 달 내로 연방군에 입대해야 함을 의미했다.
‘대체 이런 게 왜 나한테 날아온 거야? 연방군 입대는 서른다섯 전에만 결정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지금 알아보니 입대 영장은 성격이 좀 다르다더군.
‘달라?’
-강제성을 띠긴 해도 일종의 추천서인 셈이야.
강제로 군에 입대해야 하지만 영장을 받고 가는 경우, 진급 평가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최전선같이 위험한 구역에서 군생활을 하게 될 가능성도 적었다.
애초 입대 영장은 중앙에서 사람을 콕 집어서 고르는 경우에만 발부되기 때문이었다.
상위 귀족이 되기 위해 장교 코스를 노리는 이라면 오히려 영장이 나와주길 바라는 자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중앙에서 나를 찍었다는 건가?’
그리고 서류를 꼼꼼히 살핀 나는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이놈 때문이었군···.’
프로젝트 이클립스.
망해가던 아크 팩토리를 살리기 위해 만든 신형 엔진.
현재 융족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제국 남방 경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물건.
갑작스레 나타난 신형 엔진을 본 사람들은 이것에 중앙의 기술력이 녹아들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댔고 어떠한 경로로든 이것이 영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장 특기추천에 병기연구가 떡하니 적혀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참이지?
‘차라리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
어쨌든 한번은 연방군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세계에 정착하고 자릴 잡기 위해선 귀족이란 타이틀이 필요했고 그것을 얻을 방법은 입대뿐이었으니까.
단지 그 시기가 내 예상보다 더 빨라진 것일 뿐.
추천서를 받은 자는 진급에 더 유리하다고 하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난 뒤, 나는 일처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딘과의 거래를 따낸 이후 생산라인 증설을 위한 공장 증축.
4개 행성에서 들어온 추가 대규모 엔진 수주.
그리고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을 위한 새로운 수입 루트 추진까지.
내가 알던 군대와는 달리 군인의 겸직이 너그러운 제국이지만 몸은 이곳에 있을 수 없으니 일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 손을 써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급한 일을 매듭짓고 있는데 또다시 가주로부터 호출이 들어왔다.
이번엔 나뿐만이 아니었다.
친인척들을 다 같이 불러 식사를 하는 자리라고 미리 언질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점심을 들기 위해 메이어 가문 빌딩으로 차를 몰았다.
*
“아버지가 네게도 초대를 권했단 말이냐?”
“예.”
“허허···.”
빌딩 로비.
첫 대면부터 혀를 차며 나를 괄시하는 인물은 백작의 차남 밀러 메이어, 마르크 메이어의 아비 되는 자였다.
저쪽에서 나를 무시하는 이유야 알만했다.
꼭 내가 망나니라서가 아니라 자식 놈이 주도하는 사업을 정면으로 밟아버렸으니 나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이번 오딘 수주 건으로 인해 로얄 머신은 크게 휘청이고 있었다.
나를 압박하기 위해 무리를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저 새끼도 왔네.
‘메이어 이름을 단 이들은 다 모인 모양이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엔 나를 죽일듯 노려보는 마르크 메이어도 있었다.
이러다 한 대 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백작의 영향력이 짙은 이곳에서 그런 짓을 할 정도로 깡이 좋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녀석에게 과거의 망나니답게, 한껏 조롱하는 표정을 날려주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한 것만으로 녀석은 속이 뒤집혀 죽을 것 같은 반응이었다.
-꼴 좋다!
며칠 만에 다시 찾은 가문 빌딩이지만 이번엔 장소가 달랐다.
플로어 전체를 통으로 쓰는 호화스런 식당.
수백 명이 들어가도 될 공간에 고작 열일곱 명을 위한 식사 테이블이 마련됐다.
나를 포함해 모두 백작의 자식과 손주들이었다.
“어찌 된 것이 낯빛 좋은 녀석보다 얼굴 상한 녀석들이 더 많구나. 배들 고플 테니 일단 들자꾸나.”
요리사가 세팅하는 음식들은 슬쩍 보아도 입맛이 도는 작품이었다.
이 세계는 배양육이 기본화 된 세계인데 이것은 틀림없는 자연산 고기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스테이크를 쳐다보는데 백작이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모여서 식사를 하자고 한 이유는 우리 가문에 경사가 나서다.”
경사라는 말에 다들 금시초문이라는 듯 친척들이 눈치를 살폈다.
“존.”
“예.”
“어찌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느냐.”
나는 직감적으로 영장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안 그래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정리할 것이 많아 미처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럴 수 있지. 괜찮다.”
이 순간, 주변 친척들의 표정이 상당히 묘해졌다.
얼마나 사고를 쳐댔는지 너는 앞으로 이런 자리에 낄 필요도 없고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꼬박꼬박 백작님이라고 부르라고 호통쳤던 기억이 선명했던 탓이다.
“모두 잘 들어라. 이번에 중앙에서 우리 가문에 입대 영장을 보내왔다.”
“입대 영장이요?”
백작의 장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잘 아는 이들이었기에 다들 반응이 비슷했다.
“설마 그게 존이란 말입니까···?”
당혹스럽긴 밀러 메이어도 마찬가지.
그가 날 보며 더듬거렸다.
그리고 백작이 확인을 해주자 더욱 가관이 되었다.
어떻게 저런 망나니가 중앙 추천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너희 중 아무도 받지 못한 추천을 존이 받아왔다. 우리 막내 손주가 말이야. 하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문에서 없는 사람 취급하던 인간이었다.
잊을만하면 사고를 치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아온 존 메이어.
그랬던 녀석이 갑자기 오딘과 대형 계약을 체결하지 않나 이제는 중앙 추천을 받아 입대하게 된 상황.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저들에겐 그저 불편할 뿐이란 사실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단 말이 있지 않은가.
하물며 현재 메이어 가문은 후계 경쟁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다들 자식을 가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일 텐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냈으니 다들 속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제인은 별로 안 불편한 모양인데?
진의 말에 슬쩍 보니 그녀는 그저 열심히 고기를 썰기 바빴다.
배가 무척 고팠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런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든지 말이다.
“밀러.”
“예. 아버지.”
“차기 공장용으로 확보한 토지 있지.”
“예.”
“존에게 넘겨라.”
“아, 아버지.”
“말도 안 됩니다! 할아버지!”
백작은 덤덤한 듯 말했으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밀러 부자는 마치 공격을 당한 것처럼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 땅마저 내어주면 아크 팩토리가 다시 업계 1위를 탈환하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말이 안 돼?”
백작의 눈빛이 차가웠다.
실언한 것을 깨달은 마르크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한 번 화가 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음을 알기에 자리는 곧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존은 이번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냈다. 제임스의 유산을 이어받아 기술을 완성시켰고 그 공을 인정받아 중앙 추천까지 받아냈다. 마르크 네가 말해봐라. 네가 이번에 한 일은 무엇이더냐.”
“······.”
“고작 신형 엔진 하나에 휘청일 회사면 가문을 위해 자릴 양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니더냐?”
“아버지. 그래도 저와 마르크가 그간 노력한 공로가 있는 데 말씀이 지나치신···.”
밀러의 변명에 백작이 조소했다.
“지금 트라카에 들어오는 블루옵테늄, 너희가 쓰는 원자재, 그리고 식량자원까지. 전부 누가 마련해주었느냐. 다 내가 한 것이다. 전장에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얻은 인연과 힘으로 말이다. 노력했다고? 내가 만든 토대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 했을 녀석들이?”
백작의 말에 밀러 부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그에 비하면 존은 어떠하냐. 이번 자원 압박으로 느낀 것이 있었는지 독자적인 자원 수급 루트를 마련하려고 하더구나.”
백작은 그리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광산의 원천 채굴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냐?”
백작이 인자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대견스럽다는 따뜻한 눈빛, 하지만 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마르크가 이번에 압박을 가했던 것처럼, 향후 이러한 원자재 수급 문제가 또 일어날까 싶어 나만의 독자적인 자원 수급 루트를 알아보던 찰나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내 소유의 광산이었다.
내가 살던 지구는 자원의 주인이 대부분 정해져 있던 곳이었다.
가령 주인 없는 눈먼 유전이 발견되는 건 극히 드물었고 운 좋게 문턱을 넘었다 해도 채산성 문제에서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달랐다.
아직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
곤히 잠들어 있는 자원이 저 밤하늘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진의 도움을 받아 자원 탐사 관련 베테랑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고 얼마 전, 첫 탐사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이는 회사 내에서도 극소수의 인원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도 백작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건 내가 모르는 백작의 정보력이 엄청나단 걸 뜻했다.
괜히 자식, 손주들이 백작 앞에서 기를 못 펴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답변을 기다리는 백작에게 말했다.
“꼭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안정적인 자원 수급은 군수 산업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허허. 그래도 자원 탐사라는 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오죽하면 자원 탐사를 돈 먹는 하마라고 할까. 자원 쪽은 이 할애비가 책임지고 도와줄 테니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살가운 백작의 반응에 나는 공손히 고갤 조아렸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사업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운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답변이 맘에 들었는지 껄껄 웃은 백작은 이내 웃음을 거두고 주변을 노려봤다.
“이번 일은 너희도 다들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쌓아 올린 것에만 욕심내지 말고 외부로 시야를 넓히란 말이다!”
이후로도 한동안 백작의 훈계가 이어졌다.
보기 드문 칭찬을 들은 망나니.
그리고 꾸지람을 잔뜩 들은 친척들.
갑작스레 뒤바뀌어버린 입장에 모두가 변화를 느낀 모양이었다.
잔잔하던 후계 구도에 거친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
그로부터 2주 후.
나는 트라카 행성을 떠나 행성 오딘으로 향했다.
오딘 후작령은 주변 행성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대행성이었다.
수많은 입소자들이 이곳에 있는 연방군훈련소를 찾았고 나도 그러한 이들 중 하나였다.
군에 입대하려는 이들은 사병과 장교 코스, 두 가지 진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내 선택은 당연히 장교였다.
최소 5년간 복무해야 한다는 점이 걸리긴 해도 제국에서 더 높은 신분을 갖추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군대를 두 번 가게 될 줄이야.’
-이미 군대를 한 번 갔다 왔단 말이야?
‘내가 살던 세계에선 그게 당연했거든.’
트라카에선 볼 수 없던 수많은 인파가 훈련소행 셔틀을 기다리며 정거장에 서 있었다.
다들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친구들이었다.
고향을 떠나 낯선 세계에 도착한 이들.
입대를 앞두고 느껴지는 걱정과 불안함이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두 번째라니,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덜 겪지 않겠어?
‘글쎄.’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다지만 지구와는 여러모로 다른 제국이었기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나로서도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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