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윌리엄 트라카 메이어.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그는 단단한 정신력과 냉철함으로 무장한 인간이었다.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천, 수만의 병사가 죽어 나가는 곳이 전장이다.
수없이 많은 역경과 고난을 셀 수 없이 돌파하며 철인이 탄생한 것이다.
호출을 받은 나는 즉시 수도 중앙의 메이어 가문 빌딩으로 향했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도시 중심부로 향하자 산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빌딩의 산이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성채 같았고 나는 이 산들이 아주 단단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진은 이곳의 방호 능력이 대단할 것이라 말해주었다.
전쟁 지역에 위치한 행성이 아님에도 방어에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내리막이 이어지는 도로.
차량이 빌딩 지하도로를 통해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미리 대기 중이던 경호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고갤 꾸벅이며 인사하는 사람들.
“가주님은 위에 계시나?”
“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넥타이 매무새를 다듬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탁 트인 공간과 마주했다.
신기한 곳이었다.
분명 외벽과 유리가 있어야 할 텐데 사방은 도시 전경을 한눈에 담아낼 뿐, 그 어떠한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은 실제로는 벽이 존재한다고 알려주었지만 인간의 눈으론 전혀 구별이 불가능했다.
만약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절대 꿈도 꾸지 못할 집무실이었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오거라.”
“죄송합니다.”
풍채가 좋고 안광에 힘이 도는 노인이 테이블을 앞에 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인, 윌리엄 트라카 메이어.
지구와 맞먹는 크기를 지닌 트라카의 최고 관리자였다.
행성의 왕이나 다름없는 자.
지구 역사 속에선 그 어떤 이도 오르지 못한 자리에 눈앞의 노인이 앉아있는 셈이었다.
“소식은 전해 들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제법 재밌는 일들을 했더구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백작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단순히 기사로만 접했지만 잘못을 저질렀을 땐 가족에게조차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일이 잘못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하물며 나는 지은 죄가 좀 크지 않던가.
그 모든 잘못은 내가 아닌, 과거의 망나니 존이 벌인 일이지만 일단 몸뚱이를 공유하고 있기에 그 책임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하기란 그저 요원한 일이었다.
“몸은 좀 어떠냐.”
“살펴주신 덕분에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답변이 이상했던 걸까?
백작의 눈썹이 살짝 휘었다.
-방금 대답은 너무 망나니와 거리가 멀었던 거 아니야?
그렇다고 덕분에 멀쩡히 걸어나왔수다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진과 투덜거리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선 백작이 자리를 옮겨 티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백작은 내게 뭘 마시고 싶은지 묻지도 않고 알아서 음료를 내주었다.
시원한 탄산이었는데 내가 평소에 이걸 마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분위기가 나쁘진 않은데?
‘그러네.’
여기까진 그래도 예상범주 내에 들긴 했다.
가주가 나를 아예 내놓은 손주 취급하진 않을거란 예상은 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기회를 많이 줬거든.
백작은 잘못을 했다면 누구든 단호히 처벌을 내리는 자였다.
그런데도 존은 늘 살아남을 기회를 부여받았다.
다른 인간이었으면 기회가 아니라 감옥에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기사를 토대로 백작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를 예상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백작에게 있어 존은 아픈 손가락이다.
매몰차게 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라고.
그 이유는 대체 뭘까.
막내였음에도 뛰어난 재능으로 백작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는 내 아버지.
아마 백작은 일찍 가버린 아들의 모습을 내게서 찾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애석하게도 존은 망나니였기에 백작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정신이 들었을 때 이상한 점은 없더냐?”
“이상한 점이요?”
“안 보일 게 보인 다거나. 들린 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진이 순간 놀라는 기색이 느껴졌다.
정령을 이용한 수술을 안배한 이가 가주라고 하니 어쩌면 진이 나와 계약하게 된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된 건지 한번 물어볼까?
하지만 나는 잠시 고민 끝에 결국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진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어서였다.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전부 아는 건 아니지만 단순한 정보만 긁어봐도 정령이란 존재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정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되도록 진의 존재는 아는 자가 적을수록 좋을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진도 그것을 원했고 말이다.
“없었습니다.”
“그래.”
다를 게 없었다는 답변에 백작은 조금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입찰 건 말이다.”
“예.”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 엔진 말이다.”
이클립스라 이름 붙인 신형 엔진.
단숨에 아크 팩토리의 주력 모델이 된 이클립스 엔진은 수많은 행성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소문대로 중앙에 줄을 대기라도 한 것이냐?”
아무것도 없던, 다 쓰러져 가는 회사에서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신형 함선 엔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니 그나마 현실적인, 망나니 존이 중앙에 줄을 대는 데 성공해 기술 일부를 공유받았다는 소문이 세간에 돌고 있었다.
백작의 물음에 나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답을 꺼냈다.
“아닙니다.”
“그럼 대체 누가 그 엔진을 만들었다는 거냐?”
“저와 우리 회사 연구진입니다.”
“하하.”
답변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백작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노여움이 깃들었음을 느낀 나는 황급히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실은 조금 전, 미쳐 다 드리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다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물으셨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런 건 없었습니다만 깨어난 이후 한 가지 달라진 게 있긴 합니다.”
“그게 무엇이더냐.”
“아무래도 제 머리가 좋아진 것 같습니다.”
“머리가 좋아졌다···?”
“예.”
-쓸만한 변명인걸?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때마다 있지도 않은 중앙의 연줄을 끌어올 수도 없는 일.
나는 백작에게만큼은 어느 정도 먹힐만한 변명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달라진 머리였다.
“긴 잠에서 깨어나니 모든 게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과거에 제가 왜 그런 몹쓸 일들을 벌이고 다녔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요.”
“···그 말이 사실이더냐?”
“예. 그리고 그 엔진은 단기간 내에 개발된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이클립스 엔진의 프로토타입 아이디어는 이미 오래전, 아버지께서 토대를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뭐라?”
“다만 당시엔 기술 부족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도전해봐도 되겠다 싶어 저와 연구진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게 과학자야. 연기자야. 아주 배우가 따로 없구만!
미리 준비해둔 말들이 술술 풀려나왔다.
일찍이 죽은 존의 아버지가 신형 엔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남겨뒀다는 건 사실이었다.
남을 잘 속이려면 진실에 거짓을 섞으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건 그 아이디어가 영 못 써먹을 물건이었다는 것뿐.
엔진에 관한 아버지의 유산이 남아있었다는 것만큼은 진짜였다.
“······.”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백작은 놀란 얼굴로 침묵에 잠겼다.
철인이라 불리는 그로서는 예외적으로 감정의 큰 변화를 드러낸 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큰 한숨과 함께 입을 연 백작의 첫마디는 이 모든 게 사실이냐는 것이었다.
“지금 한 말에 조금도 거짓은 없는 것이냐.”
“전부 사실입니다.”
“···너도 알 것이다. 네가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것을 보며 차마 단호히 너를 벌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언젠간 네가 영특했던 시절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끝없이 추락하는 너를 보며 그만 마음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건만···.”
“심려 끼쳐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면 잘된 일이지. 정말 잘된 일이야···.”
백작의 얼굴에 잠시 옅은 빛이 들었다.
그는 조금 전 대화로 마음의 짐을 일부 던 것처럼 보였다.
늘 냉정해 보이는 철인이지만 그도 나름의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후엔 엔진 사업에 관련한 이야기가 오갔다.
오딘 말고도 관심을 보이는 세력이 많으니 공장을 증축하는 일.
앞으로 이클립스 엔진을 트라카의 주력 수출 상품으로 삼자는 논의였다.
“그건 그렇고, 앞으론 어떻게 할 참이냐.”
“죄송합니다. 무엇을 물으시는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
“네 장래 말이다. 이제는 사업 쪽으로 나가볼 건지, 아니면 다시 도전할지를 물은 것이다.”
끔찍했던 훈련 중 추락.
그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 극도의 트라우마를 안길 수준의 사고였다.
“전장에선 외상 후 장애를 입고 떠나는 병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강요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후계자 자리는 전에 말했던 대로 군공을 가장 크게 올리는 녀석에게 물려줄 것이다.”
백작은 이대로 민간인으로, 사업에 주력하며 산다고 해도 내 뜻을 존중해 주겠다고 했다.
“마르크는 실속이 없지만 하비는 다르다. 장손이고 공을 올리는 데 재능도 있는듯하니 녀석을 가주로 서포트하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직 후계 경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작의 마음속에선 어느 정도 후계에 대해 하비 메이어로 마음이 기운듯했다.
그는 이미 소령 진급을 눈앞에 둔 상태였고 아직 입대도 안 했거나 이제 갓 전장에 뛰어든 사촌들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었다.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아닙니다. 사실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그럼 말해 보거라.”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다시 해보겠다고?”
의외였는지 백작의 눈이 살짝 커진다.
지금 발언으로 나는 계속해서 후계 경쟁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한 셈이 되었다.
‘역시 정답이었나.’
잠시 뒤, 미세하게 올라가는 백작의 입꼬리가 눈에 보였다.
답변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백작은 손주들의 피 터지는 경쟁을 원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뛰어난 자에게 가문을 물려주는 것이 후계 경쟁의 목표였기에.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망나니였던 나는 그 결승점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따금 예측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 아니겠는가.
인생은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니 말이다.
‘설령 자릴 물려받지 못한다고 해도 이번 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쪽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하고.’
신분이 곧 절대적인 파워를 발휘하는 사회.
단순히 귀족가의 일원이 아니라.
나 자신이 곧 귀족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단순히 자리에 탐이 나서가 아니었다.
최고가 되려면 그 힘이 필요해서였다.
내가 앞으로 엔진 사업가를 계속할지 우주 반도체 공학자가 될지, 혹은 다른 것이 될진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네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거라.”
“예.”
“또한 네 스스로 달라졌다곤 하나 세상 사람들은 너를 아직 망나니로 여길 것이다.”
‘그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만.’
“늘 언행에 신경 쓰고 조심하도록 해라. 다시는 가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 망나니는 이미 죽었으니 더는 염려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 뒤로도 백작과는 여러 가지 잡담을 한참이나 더 주고받았다.
더할 나위 없는 망나니였던 손자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
이 사실이 백작에게는 몹시 기뻤던 모양이다.
단둘이 있을 때는 딱딱하게 굴지 말고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좋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나는 백작의 호의에 공손히 머릴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실망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
제국력 5522년.
인류가 접촉한 종족 중 가장 호전적인 융이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제국 남방 경계를 침범했다.
그 군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제국은 미리 사전에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상당한 피해를 보고 말았다.
이로 인해 남방 경계 인근에 위치한 제국 행성들의 정세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직접적 피해를 받은 귀족들은 앞다투어 중앙에 지원군을 내달라 요청했는데 중앙의 반응은 어째선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황제와 대귀족들의 회의를 통해서만 집결하는 중앙 특수군의 규모는 은하 최고의 전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대군을 재빨리 움직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중앙의 늑장대처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중앙의 대응이 늦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더군.”
“그게 무슨 말인가?”
“소식 못 들었나? 남방에 신형 엔진을 장착한 함선들이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는데.”
“융의 최신예 전력을 상대로도 쉬이 밀리지 않았다던 그···?”
“그래. 중앙에서 나온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그 엔진 말이네. 어쩌면 중앙에선 이러한 흐름을 예측하고 설계한 일일지도 모르지!”
사실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였지만 귀족들은 그런 이유라면 중앙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정작 이러한 소문을 만들어낸 당사자는 생각지도 못한 청천벽력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뭐가···나왔다고?”
아크 팩토리의 회장, 존 메이어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입대 영장입니다. 회장님···.”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운용되는 제국 연방군.
그런 연방군에서 입대 영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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