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6화 (6/134)

6화

메이어가의 탕아, 존.

인근 행성을 통틀어도 단연 손가락 첫 번째에 꼽힐만한 망나니에게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마르크 메이어에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다가왔다.

얼굴을 벌겋게 하고 회사로 돌아온 마르크 메이어는 즉시 회의를 소집했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 압박에 나섰다.

“아크 팩토리로 들어가는 모든 자원 압박해.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주고.”

“알겠습니다.”

자원을 가공해 엔진을 만드는 회사는 원자재 흐름을 막아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각종 산업에 쓰이는 광물 흐름을 일방적으로 쥐고 흔드는 것은 마르크 메이어로서도 상당히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원자재 산업 역시 메이어 가에서 꽉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분의 파워가 통하지 않는 친인척끼리 일방적인 요구를 할 수는 없는 일.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자면 상당한 출혈이 따를 테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마르크는 이번 기회에 망나니를 제대로 밟아버릴 참이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아. 그리고 너희는 가서 저것들이 공장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

“예.”

*

‘열이 잔뜩 받은 모양이야.’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내내 회장실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지만 그럼에도 마르크 메이어가 펼쳐오는 전방위적 압박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내부 인력들은 벌써 회사가 삐거덕거린다며 우는소리 하기 바빴고 더 중요한 것은 자재 수입에 애를 먹고 있단 점이었다.

이번 대규모 입찰은 단순히 엔진 스펙만 높다고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엔진 기술이 있다 한들 제시간 내에, 상대가 원하는 물량을 맞춰줄 수 없다면 승리를 확정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내가 미리 손을 써둔 덕에 최소한의 자재를 미리 확보해뒀단 거였다.

입찰에 뛰어들기 전, 나는 아크 팩토리를 제외하면 유일한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집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했다.

신분이 곧 계급인 사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귀족이 살던 집은 돈 많은 호사가에게 있어 매력적인 물건으로 보였을 터다.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어느 정도는.’

사고에 휘말리기 전,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희토류 등의 원자재 리스크를 다 겪어본 나로선 이러한 흐름으로 일이 진행될 거라 예상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급한 불은 껐다지만 자원 수급이 안정적이지 못하단 것은 늘 아크 팩토리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자원 공급원을 만들 방법이 없나?’

-재력이 풍부하다면 안 될 것도 없지만 우리에게 제일 부족한 게 자금이니까.

‘음···.’

부족한 자금은 입찰 경쟁에서 승리하는 순간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마냥 승리를 기다리고 있다간 사업 진행에 공백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더 빨리 자금을 만들 방법을 떠올리고자 책상에 지도를 펼쳤다.

이펙트가 중간중간 반짝이는 우주지도였다.

과거의 존이 평판을 대차게 말아먹은 덕분에 트라카 내에서 뭔가 새로이 일을 꾸민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다.

어차피 대우주시대.

꼭 트라카 내에서만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법은 없기에 나는 주변 행성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번 입찰을 위해 설계한 엔진 도면.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 내 손에 있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

오딘의 공개 입찰 경쟁은 예상 밖의 전개로 진행됐다.

단독 입찰이 사실상 확정이라 생각됐던 로얄 머신에게 아크 팩토리가 도전장을 내민 것.

이후 로얄 머신은 전방위에 걸쳐 상대에게 압력을 행사했지만 예상 외로 아크 팩토리는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언론을 이용한 마르크는 아크 팩토리가 이번 거래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공격했지만 존은 우리의 기술이 더 뛰어나다며 실력으로 증명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공방전.

로얄 머신측은 저게 말이나 되는 주장이냐며 분개했다.

군수 산업에서 성능 차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명의 천재 기술자가 세상을 뒤흔들만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경우가 전혀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천재들조차도 실력 발휘를 위해선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였다.

불과 올해까지만 해도 아크 팩토리의 1년 연구비용은 10억 크레딧에 불과했다.

매년 최소 5천억 규모의 연구비를 투자하는 로얄 머신에 비하면 정말 미약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프로토타입 설계도도 준비해. 향후 업그레이드된 버전까지 적용해줄 수 있다고 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겠습니다.”

마르크 메이어는 연구실에 상주하며 연구원들을 닦달했다.

설마 상대 엔진이 자신들보다 뛰어날 거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망나니가 대책 없이 싸움을 걸진 않았을 것 같았다.

본인 입으로 기술이 더 뛰어나다 했으니 믿는 구석이 있을 터.

그렇게 서로의 역량을 총동원한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최종 결과 발표 날이 다가왔다.

이번 입찰은 단순히 70조 규모 거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린다면 트라카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갖춘 오딘에서 지속적인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1차 발표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파가 결과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대다수는 기자들이었고 일부는 트라카에 거주하는 귀족들, 그리고 오매불망 선정을 기다리는 양측의 관계자들이 있었다.

“죽다 살아난 사람 치곤 안색이 멀쩡해 보이는데?”

“오늘 발표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마르크 메이어가 잔뜩 칼을 갈았다더군.”

소곤거리는 귀족들.

그중엔 존을 대놓고 힐끔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 자들도 있었다.

트라카의 왕족이나 다름없는 메이어 가문이지만 존도 이들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각 대륙에서 백작 휘하에 들어 지역을 관리하는 자들은 모두 현직 귀족이었다.

자작, 남작, 그리고 준 귀족들.

이에 비해 존이나 마르크는 백작가의 일원이라곤 하나 아직 정식 귀족은 아니었다.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시비를 걸만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이것 참 기대가 되는군.”

현재 후계 경쟁에서 빠르게 주가를 올리는 중인 마르크 메이어와 개망나니 존의 맞대결.

누가 이기든 꽤 재밌는 볼거리가 생길 참이었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오딘 측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오딘 외부 협력 방위사업 공개 입찰에서 협력 업체로 최종 선정된 곳은. 생산 안정성 71점, 제품 기술력 88점, 확장성과 적극성에서 80점을 획득한···아크 팩토리입니다.”

“허억!”

“이겼다!”

“아크 팩토리가 이겼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직원들은 만세를 부르고 또 한 번 이변이 일어났다며 기자들이 들썩였다.

망나니의 완전한 몰락을 기대했던 귀족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반대편에 있던 로얄 머신 측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건 역시 마르크 메이어였다.

그는 이번 대결에서 존을 무너트리기 위해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했다.

그런데도 결과는 패배.

이는 후계자 자릴 노리던 마르크의 계획이 완전히 박살 났음을 뜻했다.

‘졌다고? 내가···존한테?’

넋이 나간 듯한 마르크.

그리고 그런 마르크를 지켜보던 귀족들 중 일부는 아주 빠르게 포지션에 변화를 줬다.

“축하드립니다.”

마르크를 지원하던 귀족 일부가 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마르크가 몰락하기가 무섭게 존에게 환심을 사려는 속내가 훤히 드러나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존 메이어, 귀족가 제일가는 망나니.

그런 존을 단 한 번 대결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신뢰하기가 쉽겠는가?

달리 말하면 지금 존에게 악수를 청한 이들은 향후 자신의 인생을 걸고 존에게 나름의 베팅을 한 셈이었다.

“고맙습니다.”

“혹시 축하연이 있거든 한번 불러주세요. 회장님.”

“알겠습니다.”

존은 이들의 손을 내치지 않았다.

향후 무슨 일을 하든 당분간은 트라카 행성에서 일하게 될 터.

귀족들과의 관계를 굳건히 해두면 이번과 같은 방해 공작이 또 들어왔을 때, 훨씬 더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축하해. 정말 이길 줄은 몰랐네.”

“뭘. 이 정도로.”

가주의 삼남에게서 난 외동딸.

밝은 갈색으로 웨이브 진 머리칼을 한 제인 메이어가 존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가족은 트라카 중앙은행을 꽉 쥐고 있었기에 기업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녀의 파워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뭐를?”

“기술력으로 로얄 머신을 제쳤다며. 그게 하루아침에 안 되는 일이란 건 나도 알아. 진짜 소문대로 중앙에 줄이라도 댄 거야?”

그녀가 말하는 중앙이란 황실과 공작령이 밀집한 인류 제국의 중심부를 뜻했다.

중앙의 기술력은 변방보다 더 뛰어나며 제국의 위기 상황이 아니면 그 기술이 외부로 전파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건 아니고 운이 좋았지.”

“제대로 알려줄 생각이 없구나?”

“진짜야. 운이 좋아서 그랬어.”

“그건 그렇고 좋은 소식 하나 전해줄게.”

“좋은 소식?”

“이번에 돌아오는 어음 말이야. 기간 연장 허가 떨어졌어. 대출 제한도 일부 풀렸고.”

-좋은데?

‘좋은 소식 맞네.’

백작이 직접 지원을 끊으라고 한 뒤 생존에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3500억 규모의 어음.

물론 연장이 안 되었더라도 오딘을 통해 거래 대금이 차례대로 들어왔을 테니 별문제는 없었을 테지만 수천억 규모의 큰돈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분명 희소식이었다.

“이번 일, 할아버님께서도 무척 흥미롭게 보신 모양이야.”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아마 곧장 호출 있을 거야.”

병원에서 퇴원하고 얼마 지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윌리엄 백작은 현재 트라카 바깥에 있는 상태였다.

여러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는데 우주 시대가 되다 보니 이제는 외교도 별을 오가며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큰 수술을 받고 퇴원했는데 호출이 없기에 제대로 눈 밖에 났다 생각했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

존은 소식을 전해준 제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너···정말로 달라진 것 같네.”

‘아차.’

존은 이따금 자신이 망나니였음을 가끔 잊을 때가 있었다.

마르크 메이어처럼 안하무인인 인간과 대면하고 있을 땐 어렵지 않은데 제인은 딱히 그런 부류의 인간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망나니는 사절이지만 멀쩡한 사촌은 환영이야.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

제인은 할 일이 있어 이만 가야겠다며 자릴 떠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이 한마딜 거들었다.

‘저 제인이란 친구 왠지 마음에 드는걸. 넌 어때.’

-진짜 뜬금없네. 첫 대면이라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그래? 아쉬운걸.’

대체 뭐가 아쉽다는 건지.

존은 진도 괴상한 구석이 있구나 생각하며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결과 발표에 털썩 주저앉았던 마르크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아마 자신과 제인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발표장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존은 제대로 한 방 쏘아 붙여주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이제 그만 가지. 우리도 고생한 만큼 축하는 받아야 할 거 아냐.”

존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이 모든 그림을 그린 것이 바로 눈앞의 존 메이어였다.

메이어 가문 최고의 망나니.

하지만 그가 지난 한 달 동안 보여준 모습은 망나니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죽음의 위기를 겪고 개과천선한 것이 아닐까?

아까 제인 메이어도 그러지 않았던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은 또 없었다.

지금 자신들을 이끄는 존은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의 리더였으니 말이다.

*

‘어째 점점 바빠지는 거 같지?’

-어떤 인간이 그러더군. 사람은 풍족하게 살려고 성공을 바라는 데 정작 성공하게 되면 그 풍족함을 누릴 시간이 없어진다고 말이야.

70조 규모의 잭팟을 터트린 아크 팩토리.

이후 회사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사방에 전해지며 나는 눈코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딘뿐만 아니라 전선 지역에 위치한 다수의 행성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싶다고 의뢰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 계약을 모두 다 받을 순 없었다.

현재 아크 팩토리의 생산 라인으론 오딘에서 받은 수주를 다 감당하기도 벅찼다.

생산량을 더 늘리자면 공장 증축이 우선이었고 천문학적인 자금,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그냥 공장도 아니고 함선용 엔진을 제작하는 공장이다.

핵융합 장치와 첨단 시설을 집어넣어야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서류를 검토하고 있을 때였다.

내선을 통해 연락이 들어왔다.

“회장님. 백작님 호출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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