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해당 도면으로 신형 엔진을 제조할 경우 예상되는 향상 수치는 다음과 같다.”
최대 출력 10퍼센트 증가.
연비 효율 5퍼센트 증가.
이는 로얄 머신의 엔진에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수치였다.
“세상에···.”
사람들은 다들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충격적이어서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맥키프 연구소장이었다.
“회장님.”
“편하게 물어보도록.”
“이 도면, 누가 제작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질문의 의도야 간단했다.
이걸 당신이 만들었을 리는 없고 그 출처가 궁금하다는 것.
“제작자가 신분 노출을 꺼려서 공개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 도면의 출처에 대해선 더 묻지 말도록.”
당연한 일이지만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도 내가 도면을 만들었다고는 연관 짓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함선 설계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년 단위에 걸쳐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뭐지?”
“프로토타입 엔진을 제조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구소장은 설계도를 확대해 결과물 부분을 가리켰다.
“설계도는 이미 결과물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는 제작자가 이미 엔진을 만들어 실성능을 테스트해봤다는 뜻이 됩니다.”
‘그건 아닌데.’
“시제품이 없다면 이런 수치를 뽑아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연구소장의 말은 일견 타당했다.
실제로 새로운 제품이란 것들은 실성능을 확인하기 전까진 수치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나는 입찰을 위한 도면을 설계하며 제품의 예상 수치를 미리 적어두었다.
설계 원리를 이해한다면 테스트 없이도 성능 예측이 가능한 능력.
그것은 내가 천재 공학자라 불리며 빠르게 실리콘 밸리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 설계대로면 바로 라인 교체 작업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연구소장의 들뜬 목소리에 임원들이 덩달아 물었다.
“이보게 소장! 정말로 저 설계도대로면 성능 향상이 된단 말이야?!”
“아직 원리를 전부 이해한 건 아니지만 제 부족한 지식으로도 도면에 적용된 기술들이 한결 뛰어나단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엔진이라면···정말로 이번 입찰에서 이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회장님께 박수를!”
“회장님 만세!”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복안을 마련해두고 계셨을 줄은!”
-이 친구들 딸랑이 실력이 아주···.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
이제야 회장님의 뜻을 이해했다며 조금 감격한 얼굴을 하는 자도 있었다.
도면 하나 내밀었을 뿐인데 나에 대한 이들의 평판이 상당히 빠르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 모두 진정하고. 조금 전에 말했던 대로 입찰이 끝날 때까진 모두 보안에 신경 쓰도록.”
“예!”
진을 통해 이 세상을 알게 된 이후, 언젠가 내가 만든 물건을 이곳에서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타이밍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내 도움도 잊지 말라고.
‘그거야 당연하지.’
내 유일한 재산인 아크 팩토리를 부도 위기에서 건져줄 신형 엔진.
존 메이어로서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첫 작업이 스타트를 끊었다.
*
“그러니까···존의 인생이 망가진 게 마르크가 관련된 것 같다?”
-아무래도 그래.
입찰을 눈앞에 둔 어느 날, 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존의 인생이 밑바닥으로 처박히게 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그 중엔 내 사촌, 마르크 메이어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유는?”
-아크팩토리에서 마르크 측에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을 찾았어.
“스파이?”
-아마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활동했던 모양이야.
“그런 걸 다 알 수 있어?”
진이 온갖 네트워크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줄은 몰랐었다.
이 정도면 거의 FBI 저리 가라 하는 수준의 정보탐지능력이 아닐까 싶었다.
-네 능력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나?”
-난 정령이니까. 계약자의 한계를 벗어나는 힘은 낼 수 없어.
진의 말에 따르면 정신을 차린 이후, 내 건강은 계속 좋아지는 상태였고 마력을 다루는 능력 또한 안정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진이 내가 잠을 잘때나, 깨어 있을 때나 가리지 않고 마법을 쓴 결과로.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진을 통해 마법을 단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더 먼 거리에서 정보를 캐낼 수 있게 됐고 손쉽게 방화벽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게 됐지.
“이쯤 되면 네가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좀 무서운데···?”
그건 그렇고.
집안 꼴이 왜 이래?
아무리 후계 경쟁을 한다고 하기로서니.
사촌을 담가?
진은 내 근처에 마르크의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의문스럽게 여겼고 계속해서 정보를 파고 들어간 결과.
존이 망나니 시절 어울렸던 사람 중 일부가 추가로 마르크와 연결고릴 가지고 있음을 파악했다.
-예를 들면 요정의 마담. 존에게 꾸준히 여자를 소개해 줬다고 하는군.
‘창부인가?’
-아마도. 그리고 이쪽은 좀 심한데 마약 딜러야.
‘약쟁이? 세상에.’
-인간을 망가트리는 덴 그만한 덫이 없긴 하지.
‘그 사람들이 전부 마르크와 연결되어 있다고?’
-확실해.
진의 말대로라면 마르크는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존을 무너트리기 위해 사방에 함정을 파놓았다는 뜻이 된다.
개인적으로 원한이라도 있던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촌에게 쓸 수법으론 교묘하고 악랄했다.
‘원인은? 짐작 가는 거 없어?’
-거기까진 아직.
‘오싹하네. 그럼 지금 내 몸은 괜찮은 거야?’
-뭐가?
‘마르크 놈 때문에 손대면 안 될 것들에 오래 노출된 거잖아. 내 몸 상태는 괜찮은 거냐고.’
-지금은 괜찮아. 처음엔 너덜너덜했는데 내가 고쳐놨거든. 좀 힘들긴 했지.
‘휴···.’
정말 다행이었다.
트럭에 치이고 다른 세계에서 눈 떴는데 전신마비에 마약으로 인한 후유증까지 겹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제대로 이 세계에서 도전할 기회를 마련해준 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우린 운명 공동체니까 말이지.
끼니때만 되면 밥 좀 먹으라고 소리치는 것도 다 날 생각해서였다.
진은 계약자가 허망하게 죽으면 정령인 자신에게도 별 도움이 안 돼서 내가 최대한 오래 살길 바란다고 했다.
-그나저나 시간 됐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프로젝트를 지휘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TV를 틀었다.
‘마르크···어차피 잘됐어.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 번 보여주자고.’
*
“이번 대외 협력용 엔진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은 두 곳입니다. 첫 번째 기업은 로얄 머신. 두 번째 기업은 아크 팩토리입니다. 이상으로 1차 발표를 마칩니다. 실성능 테스트를 비롯한 최종 결과 발표는 이 자리에서 한 달 뒤에 다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수히 터지는 플래시.
기자들 앞에서 진행된 오딘측의 기자회견은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단독 입찰, 70조 규모의 대형 거래가 사실상 체결된 거나 다름없다는 기사를 쓰러 나왔던 기자들은 이변이 발생했음을 깨닫고선 다급히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기사 다시 작성하라고 해!”
“아크 팩토리가 참여했단 말이야!”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마르크 메이어는 와인 잔을 집어던지며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저, 저희도 지금 막 전해 들은 이야기인지라···.”
“머저리 같은 놈들.”
애꿎은 휘하 직원 정강이를 걷어찬 마르크 메이어는 비서를 호출했다.
“아크 팩토리에 심어둔 놈 있지. 연락해 봐.”
“그게 안 그래도 기자회견 보고 바로 연락을 취했는데 받질 않습니다.”
“갑자기 잠적했단 말이야?”
“저쪽에서 뭔가 수를 쓴 건 아닐까요?”
“아니야. 아니야···. 그 병신이 그렇게 눈치가 잘 돌아가는 놈은 아니란 말야. 뭔가가 있어.”
마르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생각했다.
뻔히 성능 격차가 나는 엔진을 들고도 입찰 건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오기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는 불확실한 요소가 입찰에 개입됐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그에게 있어 이번 오딘 수주 건은 반드시 따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존과 달리 자신은 아직 로얄 머신을 온전히 이어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부회장 직함으로 일선에서 활약중이긴 하지만 아직 로얄 머신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장남이란 이유만으로 무작정 밀어주는 분이 아니니 더욱 조심해야 했다.
한 번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매년 수십 조 매출을 올리는 로얄 머신의 옥좌를 빼앗기게 될 수도 있었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마르크는 경호원을 대동하고선 아크 팩토리로 향했다.
이제는 세월의 티가 느껴지는 아크 팩토리 본사.
마르크는 자신이 어렸을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이곳에 왔던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는 아직 아크 팩토리가 트라카 제일의 군수 기업 자릴 유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마 회장 내외가 그리 허망하게 가지 않았더라면 로얄 머신은 여전히 2인자에 머물러 있었으리라.
그렇게 땅에 발을 딛고 선 마르크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미리 간다고 연락을 넣었음에도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것들이 감히?’
그러나 잠시 뒤, 정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나왔다.
마르크는 이제라도 안내인이 튀어나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문을 열고 본사 안쪽에서 나온 건 안내인이 아닌, 망나니 존이었다.
“많이 다급했나 봐?”
“뭐?”
“입찰 소식 듣고 달려온 거 아니야?”
“너···. 무슨 생각으로 입찰 신청한 거냐?”
“그걸 몰라?”
“이죽거리지 말고! 이유를 말해!”
존이 실실 웃으며 답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마르크는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회사에 돈도 없고, 대출도 안 되고. 우리 거래처는 하나둘 야금야금 다 빼앗겼고. 당장 돌아오는 어음은 막을 수가 없네?”
“···그래서. 우리랑 경쟁해서 이길 자신이 있단 말이냐?”
“그거야 모르지. 난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뿐이니까.”
“아니면 이건 어때. 내가 당장 필요한 돈이 3500억쯤 되거든. 이거 해결해주면 입찰 포기,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
“미친 새끼···.”
포기를 생각해 줄 수 있다?
마르크가 듣기엔 마치 이길 자신이 있는데 선심 쓰듯, 성의표시를 하면 물러나줄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트라카 최고의 군수기업을 지휘하는 마르크에겐 엄청난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뭐야. 돈 안 줄거야?”
“네가 뭘 믿고 이렇게 설치는지 어디 한 번 봐야겠다.”
경호원을 대동하고 무작정 공장 안으로 들어서려는 마르크.
존이 손가락을 튕기자 커다란 공업용 로봇이 튀어나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허락도 안 받고 남의 공장에 들어오려고 해.”
“존!”
“처맞기 싫으면 꺼져. 나 지금 눈에 뵈는 거 없어.”
“일단 자릴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상대가 사람도 아니고 커다란 로봇이니 경호원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살기까지 느껴지는 존의 눈을 보고 있자면 정말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경호원들에게 이끌려 뒷걸음질하게 된 마르크는 분노로 소리쳤다.
“존! 후회하게 해주겠다!”
“좆까. 새꺄.”
후회는 개뿔이.
존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마르크의 얼굴이 최고조로 벌게지는 것을 지켜봤다.
빨리 안 꺼지면 나처럼 병신 체험 한번 시켜주겠다는 당부는 덤이었다.
-방금 뭐야. 진짜 망나니 같았어! 연기 맞아?
‘당연히 연기지. 내가 진짜 망나닌줄 아나.’
그런데 실은 조금 재밌긴 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막 나가는 이 망나니의 삶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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