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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4화 (4/134)

4화

-전부 이해했다고?

‘그렇다니까. 물론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고들 하지만 말이지.’

내가 진의 말을 이해했다고 해서 당장 마법을 쓸 수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 원리가 이해됐다는 것이니까.

나는 확인을 해볼 겸 조금 전에 떠올린 성능 향상 아이디어를 진에게 설명해보았다.

공정에 작용하는 마법식을 개선했을 때, 완성품의 성능이 개선될 수 있을지를 미리 점쳐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진의 입에선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정말로 깨달았을지도 모르겠군.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방향성은 옳게 잡았어.

‘거봐! 진짜 이해했다니까?’

진의 확답에 나는 무척 기뻤다.

내 이론이 정답에 가까웠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일단 표정관리를 좀 하는 게 어때. 저 친구가 이상하게 보는데.

내가 히죽거리며 공정을 보는 것이 이상했는지 김대리가 연신 나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김대리.”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뭘 죄송해? 됐고, 가서 자네 일이나 해.”

“예? 하지만 그래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옙.”

그렇게 김대리가 사라진 자리.

나는 조금 전 얻은 이 신선한 깨달음을 만끽하고자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

다음 날, 포털과 기사에 내가 회복했다는 기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질 나쁜 스타를 대하듯 <망나니 깨어나다!> 따위의 타이틀을 단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내가 망나니여도 메이어 가의 일원이다.

트라카에서 숨 쉬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봐야 하는 모양이었다.

인터넷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지구였으면 씹쌔끼, 안 뒤지고 잘도 살아났네.

질기다 질겨 등의 댓글이 우수수 달렸을 텐데 여긴 너무나도 깨끗했다.

귀족 모욕죄로 걸리면 얄짤없이 감옥에 가야 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럼 시작해볼까!”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고 간단한 스트레칭도 마친 시간.

나는 일찍이 회사로 출근해 자리에 앉아 제품 개선용 공식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돈을 얼마나 처발랐는지 회장실의 가구는 극상의 안락함을 자랑했다.

오딘의 공개입찰 건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했다.

더 좋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

나는 진에게 조언을 구하며 새로운 제조 공식을 완성해나갔다.

공정 중에 발생하는 불완전 연소 문제를 개선하고 낭비되는 자원 소모를 줄인다면 스펙과 제조 단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계획에 가닥이 잡히자 작업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프로젝트를 지휘하던 시절, 나는 한 번 일에 몰두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매달렸었다.

그런 성격은 존이 된 지금도 변하질 않았고 끼니때만 되면 진이 제발 좀 처먹어! 라고 외치는 소릴 들어야만 했다.

진은 매일 인터넷을 통한 정보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 때문인지 말투가 좀 변한 것이 느껴졌다.

근엄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유쾌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가끔 과격해지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나는 이러한 진의 변화를 환영했다.

지구에서 흔히 보던 인터넷 너머의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천재 공학자 체면이 있지.”

한창 공식 작업에 몰두할 때였다.

진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말을 건넸다.

기초적인 공식 개선 작업은 진즉에 완성됐다.

마법에 관한 깨달음을 얻은 그 날, 저녁밥을 먹으며 좋은 생각이 났던 것.

하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썩 맘에 드는 수준은 아니었다.

현재 사용 중인 공장 설비를 교체하지 않고 낼 수 있는 성능 향상엔 한계가 있었다.

자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상황.

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 개선식을 만든다 한들 우리 공장 설비로는 따라가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말 그대로 ‘적당한’ 향상이 필요했다.

주어진 조건에 걸맞은 조합식, 성능을 찾아내는 것.

그 결과 현재 나온 것이 마력 총량 10퍼센트 증가, 공정 내 마법식 재각인 공식이었다.

이거라면 공장 가동을 일주일만 멈추는 선에서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예상되는 결과물은 최대 출력 향상 10퍼센트, 연비 효율 5퍼센트 증가.

도합 15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였다.

자원은 덜 쓰면서 속도는 더 빠른 엔진.

입찰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대로 문제가 없다면 말이지.

나와 진이 검증한 바에 의하면 공식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소재 품질이나 공정 중에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으니 서둘러 시제품을 통해 확인을 해봐야 했다.

내선 버튼을 눌러 비서실을 찾았다.

“입찰 건 핵심 인력들, 전부 연구실로 모이라고 해.”

*

오늘도 아크 팩토리의 연구실은 한가로웠다.

10년 전만 해도 활기가 넘쳤으며,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공간.

하지만 지금은 고작 연구원 넷이 자릴 지킬 뿐일 조용한 곳이었다.

“소장님. 퇴근 준비 안 하십니까?”

“자네. 작업 시간은 준수해야지.”

맥키프 연구소장은 휘하 직원을 점잖게 나무랐다.

사실 할 게 없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분석을 맡긴 자료를 슈퍼컴퓨터가 뽑아내는 덴 앞으로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릴 테고 이들이 할 일은 그것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전(前) 회장이 살아있던 시절.

아크 팩토리는 꿈의 기업이었다.

기술 우위가 대단해 트라카뿐만 아니라 주변 행성 기술자들이 견학을 오고 싶어할 정도로 잘 나가는 회사였다.

수백 개의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었고 업계의 권위자들이 머릴 맞대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새로운 결과물이 나왔고 회사는 연구원들에게 남 부러울 것 없는 대우를 해주었다.

맥키프는 연구실 한쪽에 걸린 황실 표창장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이곳을 거쳐 갔던 모든 이들, 그리고 자신의 열정이 한때 대단했었음을 증명하는 흔적.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영광일 뿐이었다.

회사를 물려받은 존 메이어는 인간 쓰레기였다.

그는 회사를 돌보는 덴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나마 회사를 끌고 가던 전문 경영인을 날리는 것으로 모자라 회사의 곳간을 야금야금 털기 바빴다.

연구비를 줄이고, 직원을 줄이고.

돈이 없을 땐 주요 특허를 팔아먹기까지 했다.

기술만큼은 절대 안 된다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던 전임 소장은 턱에 발차기를 맞는 수모를 겪으며 끝내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이젠 정말 은퇴를 준비해야 하나.’

곧 있으면 돌아오는 만기어음에 회사가 부도가 날 것이란 소문은 이미 모르는 이가 없었다.

지금 은퇴를 신청하면 퇴직금이라도 몇 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갤 들었다.

그렇게 가장 늦게까지 궁둥이를 붙이고 있던 맥키프까지 퇴근 준비를 하던 그때, 연구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비서실에서였다.

“소집? 여기에? 알겠소.”

기묘한 일이었다.

퇴근이 몇 분 남지 않은 시각.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 없는 망나니가 처음으로 연구실에 소집을 걸었다.

잠시 뒤 긴장된 표정을 한 임원들을 비롯해 많은 인력이 연구실로 모였다.

그럼에도 전혀 비좁은 느낌은 없었다.

한때 70명도 넘는 연구진이 활동했던 공간이다.

맥키프는 오히려 오래간만에 사람이 들어찬 것 같아 기분이 썩 흡족하기까지 했다.

“다들 모였군.”

그리고 문제의 젊은 회장이 등장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왔다는 그는 이전과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일단 무차별적인 손찌검을 멈췄다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죽음이 망나니를 온화하게 한 것인지 아니면 잠시 수그리고 있을 뿐인 건지.

정답은 알 수 없지만 그보다 궁금한 건 이 자리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이유였다.

“퇴근이 얼마 안 남은 시간인데 이렇게 자네들을 모은 건 얼마 전 꺼낸 입찰 건 때문이야.”

오딘에서 내려온 엔진 주문에 따른 공개입찰.

처음 입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맥키프는 회장이 드디어 미쳤구나 싶었다.

함선을 이루는 수많은 부품 중 가장 중요한, 함선의 심장이라 불리는 게 바로 엔진이다.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수년을 매달려도 결과물을 뽑아내기 힘든 영역.

연구비를 거의 없애다시피 한 결과, 아크 팩토리는 로얄 머신에 기술 우위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로얄 머신과 경쟁을 해보겠다니···.

맥키프는 존의 귀를 꼬집어 비틀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구소장이 누구지?”

“접니다.”

불손한 눈빛을 차마 다 희석하지 못한 맥키프가 불퉁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나에 대한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원래 존이 워낙 개판이었어야지.

‘인정.’

맥키프의 속내를 대번에 간파한 존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현재 우리가 만드는 엔진과 로얄머신사의 물건과의 차이가 얼마나 되나.”

“6퍼센트 이상 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최고 출력 4퍼센트, 에너지 효율 2퍼센트. 수치로는 별거 아닌 듯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격차입니다.”

자, 들었지?

이제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개소린 집어치워.

맥키프는 그런 심정으로 수치를 읊었다.

성능 6퍼센트의 차이.

이는 엔진 단가를 10퍼센트가량 싸게 맞춰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그런 숫자였다.

아차 하는 순간에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다.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오딘은 반드시 스펙이 뛰어난 엔진을 채택할 터였다.

“설명 고맙군.”

“아닙니다.”

“자, 연구소장의 말대로 우리가 가진 엔진으론 로얄 머신과의 경쟁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회장의 말에 임원들은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입찰을 취소할 참인가?

만약 자신이 존의 입장이었다면 이들은 응당 그리했을 것이다.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나는 미래는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마르크 메이어의 분노는 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회장은 계속해서 대결을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이번 대결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다. 물론 방법도 있고.”

“그···방법이 대체 뭡니까? 회장님?”

궁금증을 참지 못한 부사장이 손을 들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기 모인 인원들은 입찰이 끝나는 날까지 회사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갈 거다. 궁금한 사람은 그대로 남고, 아니면 지금 문을 열고 나가라. 명예퇴직으로 처리해주겠다.”

임원들, 그리고 연구진들이 눈빛을 교환한다.

상식적으로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부도 직전의 회사.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와 입찰이니 뭐니 개소릴 지껄이는 망나니 회장.

상식적으로 퇴직금이나 챙기고 자릴 뜨는 게 맞았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다들 쉽게 자릴 뜨지 못했다.

묘한 분위기가 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정말로 회장이 이 상황을 타개할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감돌았던 것.

적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씩 근무한 사람들.

만약 회사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다들 퇴근도 안 하고 회사에 처박혀서 운명을 함께하겠다는데 동의한 거지?”

침묵으로 모두의 동의를 받은 존은 대형 스크린을 띄웠다.

그곳엔 빠른 속도로 빼곡한 문자와 각종 도식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새 엔진의 설계도와 존에 의해 개량된 마법식이었다.

“프로젝트명은 이클립스, 우린 지금부터 공개입찰을 위한 프로토타입 엔진 제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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