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3화 (3/134)

3화

존 메이어의 집이었던 3층 저택은 이제 내 것이 됐다.

아니, 이 표현도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이젠 내가 존 메이어니까.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정신무장에 공을 들였다.

이제 나는 완벽히 귀족이었다.

지구로 돌아갈 방법은 요원하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지구에선 천재 공학자 소릴 듣던 나다.

내 실력이, 그리고 재능이.

이 미래 세계에서 어디까지 통할지를 시험해보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이것만큼은 나보다 잘난 천재들도 해볼 수 없는 일일 테니까.’

진과 자료를 정리하며 나는 내 수중에 커다란 재산이 하나 남아있음을 파악했다.

바로 함선용 엔진 제조 공장이었다.

원래는 도박 빚에 허덕여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고 들었는데 용케 이것만큼은 남겨뒀던 모양.

사명은 아크 팩토리.

엔진은 민간과 군수용을 가리지 않고 생산할 수 있고 연 매출이 2조 크레딧에 이르는 우량기업이었다.

“이야. 이 나이에 회장도 다 해보네. 유일한 내 재산이라는 데 구경이나 가보자고.”

원래는 가주인 윌리엄을 만나는 게 순서였지만 연락을 넣어보니 당분간은 자리를 비워 뵐 수 없다는 비서실 답변이 돌아왔다.

하기야 일국의 대통령도 그렇게 바쁘다는데 행성 하나를 통째로 관리하는 위치에 있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도 이해가 됐다.

아니면 단순히 내 얼굴을 보기 싫었을 수도 있고.

‘차라리 내겐 잘된 일이지.’

철인이라 불리는 백작 앞에서 멀쩡히 손주의 연기를 해낼 자신은 아직 없었다.

의료진이야 날 잘 모르는 인간들이니 대충 연기해도 별 탈 없었지만 아무래도 가족들은 다를 터였다.

그렇게 나는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과 함께 회사를 둘러보러 향했다.

내 회사에 가는 데 연락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래도 알려주고 주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 보는 사람마다 히익- 소릴 내며 기겁을 하더니 납작 엎드리는 게 꼭 무슨 괴물 보듯 하는 광경이 펼쳐졌거든.

사장, 부사장, 상무, 온갖 임원진이 달려 나와 내가 가는 쪽으로 줄을 맞춰 서기 바빴다.

다들 얼마나 시달렸는지 눈만 마주치면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존은 공장에 올 때마다 부하직원들 뺨을 꼭 치고 갔다는군.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때린 이유는 뭐래?’

-공장이 덥다고.

‘······.’

엔진 제조 공장이니까 더운 건 당연하다.

하물며 이곳에선 핵융합 플라즈마를 이용한 함급, 추진체 제조가 진행 중이었다.

마치 여름이 덥다고 직원에게 분풀이한 격이다.

‘대출력 이온엔진에 인공태양이라···.’

본래 지구에선 상용화되지 못했던 기술들.

공학자로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여기서 실무자들을 불러 원리가 어떻냐느니 향후 플랜은 어떻니 하는 것들을 물으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내겐 돈도 있고 허울뿐이지만 귀족가의 일원이라는 명예도 있다. 성공 시기를 앞당기자면 아직까진 이 포지션을 끌고 가는 게 유리할 테지.’

당분간은 백작가의 망나니 연기를 계속할 참이었다.

누군가 성공을 하면 누군가는 뒤처지는 게 세상 이치다.

나는 아직 마주치지 않은 경쟁자들이 계속 존 메이어란 이름을 우습게 여겨주길 바랐다.

그래야 나를 하찮게 보고 방심을 할 거 아닌가.

적어도 내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때까진 그리 여겨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

“이름이 뭐라고 했지?”

“김만식이라고 합니다.”

“만식이···.”

정겨운 이름이었다.

제국엔 다양한 문화권이 존재하는데 그 어딘가에 한국과 같은 문화가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직급은 대리?”

“그렇습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는 김대리에게서 보고서를 건네받았다.

그러면서 슬쩍 뒤편을 보니 불안한 기색으로 나를 따르는 임원진이 눈에 띄었다.

아마 여기 있는 김대리는 불시에 일어날지 모를 분풀이의 제물인 것처럼 보였다.

뺨을 때리려면 대리나 때리고 자신들은 봐달라- 뭐 그런 거다.

김대리가 건넨 보고서엔 아크 팩토리의 매출 경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최근 매출은 감소세에 접어든 것 같은데 이유는?”

내 질문이 의외였을까?

올 게 왔다고 생각했는지 김대리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나는 긴장하지 말고 아는 대로 답해보라고 했다.

“로얄 머신사와의 경쟁이 원인입니다···.”

진은 로얄 머신이 친척이 운영하는 기업임을 알려주었다.

나와는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마르크 메이어가 중책을 맡은 곳이었다.

“이유 없이 매출이 떨어질 리는 없을 테고. 품질이 우리가 더 부족한가?”

김대리는 올게 왔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순간 연기를 위해 대리의 뺨을 쳐야 하나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왠지 고향 후배 생각이 나게 하는 그를 때리고 싶진 않았다.

‘매출은 높은 기업인데 연구비 지원은 형편없군. 이러니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첨단산업이란 대개 연구비 잡아먹는 하마다.

다시 말해, 연구비 지원이 없으면 기업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크 팩토리의 연구비는 소재, 과학 분야에 걸쳐 10억 크레딧이 전부였다.

아니, 10억이라도 남겨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나?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당연히 망나니 존이었다.

“연구비를 늘려야겠군.”

“예?”

“자네들! 이리 다 와봐.”

나는 도살장에 끌려온 듯한 임원들을 불러서 사내유보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일단 여유가 되는 대로 연구비를 늘려볼 참이었다.

“회사에 운용할 수 있는 여윳돈이 얼마나 남았어.”

내 질문에 이제는 완전히 질려버린 사장이 덜컥 무릎을 꿇자 임원들이 우수수 주저앉았다.

“없습니다. 회장님.”

“없, 없어?”

“저번 달 어음도 간신히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

“3개월 뒤 만기 어음이 또 옵니다.”

그의 얼굴에서 이건 못 막는구나 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얼마짜린데.”

“3500억입니다. 회장님···.”

개 미친 씨발 존.

나는 똥을 뿌리고 죽어버린 망나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으득 갈았다.

*

이런 알짜배기 회사를 담보로 존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다 쓰고 다닌 걸까.

명문가의 망나니는 흥청망청 쓰는 돈도 월드클래스였던 모양이다.

“추가 대출은 가능하지?”

트라카 행성의 왕은 윌리엄 백작.

각종 대기업뿐 아니라 은행까지도 메이어의 손이 닿아 있었다.

지구였다면 어림없을 일이지만 글로벌 자금이 혈연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면 추가 대출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추가 대출이 막혔지 않습니까. 회장님.”

“누가 감히 메이어의 대출을 막아?”

“백작님이요···.”

백작도 끝내 망나니의 행패를 두고 보지 못했던 모양.

백작이 저 새끼를 돕지 말라는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존 메이어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이놈이 파일럿 훈련을 받은 것도 가주 자리에 욕심이 났다기보단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하고 용서를 빌던 과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진짜 방법 없어?”

임원들을 다그쳐 보지만 없는 수를 만들어내는 건 저들도 불가능한 일.

이대로 인생 하드모드에 돌입하나 싶던 그때, 진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존. 조금 전 공장 데이터에 대한 분석이 끝났다.

‘혹시 희망찬 소식도 있어?’

-확실하진 않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해.

‘어서 말해 줘.’

진이 내놓은 방안을 들은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임원들에게 말했다.

“오딘에서 들어온 공개입찰 건 있지. 마감 끝나기 전에 신청해. 우리도 참여하겠다고.”

내 발언에 뒤따르던 모든 인원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행성 오딘.

제국 전방에 위치한 후작령인 오딘은 현재 전시체제에 들어가 막대한 물량의 군수 물품을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그 엄청난 물량을 맞추기 위해 제국 행성 곳곳에 지원 발주를 넣었는데 트라카 행성에 할당된 거래 규모는 자그마치 70조 크레딧에 달했다.

여기서 이윤을 3퍼센트만 남겨도 2조가 넘는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는 셈이었다.

문제는 이 건에 대해 아무도 우리가 신청할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는 점.

가격도, 품질도.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물건은 로얄 머신에 밀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회장님. 이건 승산 없는 싸움입니다.”

뺨을 맞을 땐 맞더라도 한마디 올리고자 했던 부사장이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저희는 지금도 로얄 머신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고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조이기 시작하면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부사장의 말인즉, 입찰에 참가해도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있다.

괜히 이런 와중에 상대 심기를 건드려 더욱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부사장의 발언에 맞추어 동의한다는 듯 고갤 끄덕이는 임원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는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난폭하게 서류를 휘둘렀다.

“이런 병신들···. 어차피 가만히 앉아서 어음 만기가 돌아와도 죽는데 무슨 심기 타령이야!”

이번엔 망나니 연기가 아니라 내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분노였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할 적에 이런 인간들을 수없이 봐왔다.

미국인의 도전 정신이 특별히 강하다는 건 다 거짓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했다.

특히 이미 세를 갖춘 이들 중엔 현재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공을 바라면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싶어하는 이율배반적인 인간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부류였다.

“당신. 로얄 머신한테 뒷돈 받아먹은 거 있어?”

“절대 아닙니다!”

“그럼 입 다물어. 어차피 우리가 살길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3500억이 누구 개집 이름도 아니고.

백작이 지원까지 끊으라고 한 마당에 시일 내에 돌파구를 마련할 길은 아무리 봐도 이것밖엔 없었다.

“다들 꺼져. 가서 계획서 작성하고 입찰 준비나 해. 내 말 알아들었어! 뺨 맞기 싫으면 다들 나가서 밥값을 하라고!”

내가 악을 써대며 외치자 임원들이 우르르 도망치기 바빴다.

김대리는 자리를 지켰다.

내가 뒷덜미를 쥐고 놔주지 않았거든.

공장 견학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으니 길 안내를 위한 직원 한 명 정돈 있어야 할 거 아닌가.

나는 안색이 검게 변한 김대리를 놔두고 다시 진에게 물었다.

‘자, 이제 네 말대로 입찰까진 해결했어. 하지만 문제는 이다음이잖아?’

이번 대규모 계약을 따내자면 제품의 품질이 경쟁 상대인 로얄 머신보다 앞서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다못해 반도체 분야라면 어떻게 손이라도 써봤을 텐데 우주 엔진이니 초합금이니 하는 영역은 내 전문이 아니었다.

이를 두고 진은 그래도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며 플랜을 이야기했다.

-제국이 세력권을 급속도로 넓히게 된 계기가 뭔 줄 알아? 바로 기술에 마법을 접목시키면서부터야.

‘그러고보니 진은 마법의 정령이라고 했잖아! 그럼 제품 개선 문제는 이미 해결된 거나 다름없는 거지?’

-아니.

‘······?’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 보인 적 없는 진이지만 나는 그가 왠지 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품질 개선은 가능해. 단, 그대가 마법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만.

*

부지 면적만 10만평에 달하는 아크 팩토리.

이곳의 중심에 공장의 심장으로 불리는, 플라즈마 화력탑이 있었다.

“저게 플라즈마 발생 장치인가?”

“그렇습니다.”

“저건?”

“저쪽에 있는 건 상온초전도체 라인입니다.”

“상온초전도체라고? 대체 소재가 뭐야? 한계 온도와 압력은?”

상온초전도체라니.

궁금증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반도체 공학자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단어였다.

내 격한 반응에 당혹스러워하는 김대리를 붙잡고 이것저것 캐묻고 있을 때 진이 머릿속으로 자료를 보내왔다.

-공장 내부자료를 통해 파악한 중심부 설계도야. 제국 기준으로는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고 하더군. 마법 쪽은 아무리 봐도 구식이지만.

‘아름다운걸···.’

비록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이 첨단 과학 기술의 결정체는 도면만으로도 내 가슴을 뛰게 하기 충분했다.

-그대 눈엔 보이지 않을 테니 스캐닝해서 보여주지. 이제 보이나?

진은 한층 더 나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격벽의 안쪽, 기관 중심부를 투시해 이 거대한 구조물이 어떤 흐름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진은 차분하게 마법 초보자인 내게 이것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이것을 설명하는 이유는 내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단기간 내에 성능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계약은 했지만 마법의 주체는 내가 아닌 계약자가 되어야 해. 심신안정화 마법 같은 간단한 일은 내가 해도 큰 차이가 없지만 대규모 작업은 얘기가 달라지니까.

‘대규모 작업을 진이 주도적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대의 심장과 뇌가 바싹 구워지겠지.

‘살려주세요···.’

그렇게 격벽 안쪽에 새겨진 수십 개의 룬문자.

마력 소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을 들으며 나는 잠자코 침묵을 지켰다.

이때 진은 내가 설명을 단숨에 이해할 것이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은 마법의 종족도 아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단계였기 때문이라나.

그런데, 정말로 놀랍게도.

‘진. 나 이해한 거 같은데?’

-뭐?

‘지금 네가 말한 거 다 이해한 거 같다고.’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진이 들려주는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서 척척 조립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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