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101. 1008 대첩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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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08 대첩
그나마 다행인 점은 6-7-8-9, 뒤로 이어지는 타순이 앞의 타순에 비해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시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돌풍을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선발진의 안정화가 컸지, 타선은 상위 타순을 제외하면, 하위 타순의 활약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만, 이번 시즌 커리어 처음으로 OPS 0.800을 넘긴 케빈 케핑거는 플루크가 많이 낀 성적이었다 해도 제법 괜찮은 활약을 했는데, 이 친구는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무사 2루의 한 점 차. 여기서 상대 팀이 정석으로 나온다면 당연히 번트를 시도할 것이 뻔했다.
더군다나 타자 오스틴 넬슨이 이번 시즌 주로 6번을 쳤다고 해도 원래 그 공격력과 생산성이 뛰어난 타자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상대 팀의 감독인 토드 키팅어가 스몰볼 성향보다는 빅볼 성향에 가까운 감독이라 해도 포스트시즌 경기의 이런 상황에서는 번트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일단 우리 팀의 수비 위치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이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가 굳이 상대 팀의 번트를 강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주자가 3루에 간다고 한들 후속 타자가 외야 플라이를 반드시 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괜히 이를 과하게 의식하며 주자를 3루에 보내지 않을 집착을 하다 보면 외려 허를 찔려 더욱 안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오스틴 넬슨은 번트 모션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구는 스트라이크군요. 바깥쪽 코스의 공이었는데, 오스틴 넬슨이 대단히 아쉬워합니다.❞
예상대로 상대 타자는 번트 모션을 취했고, 초구는 바깥쪽으로 다소 많이 빠졌는데 이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되었다.
음······
이건 뭐 주심의 퇴근 본능인가?
어이가 없네.
그러는 한편, 상대 팀의 3루 코치는 계속 사인을 내고 있었는데, 번트 모션을 취했음에도 우리 팀의 수비 위치가 변화가 없으니까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 같은 거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번트 모션인데요. 아. 강공으로 전환. 그대로 높은 공을 받아 때렸습니다. 3루 라인 선상으로 날카로운 타구였지만, 3루수가 몸을 날려서 잡아냅니다. 레이 징커슨이 정말 좋은 수비를 해줬네요.❞
상대 타자는 예상했던 그대로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로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어냈지만, 레이 징커슨이 정말로 좋은 수비를 해줬다.
“좋았어.”
“레이, 넌 최고야.”
아웃 카운트가 하나 올라가는 순간 고요하던 우리 더그아웃에서는 힘찬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아직 경기 끝난 거 아니다.
아직도 아웃 카운트는 무려 두 개나 남아있고, 상대 팀의 하위 타순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가 지금 타석에 들어서 있다.
“거를까?”
아담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투수코치 키스에게 의견을 물었다.
확실히 케빈 케핑거보다 그 뒤의 피터 일슬러, 마크 에들린, 이 두 명이 상대하기 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1루를 채우고 더블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아니. 그냥 가도 될 것 같아.”
키스의 생각은 아담이나 나와는 다른 것 같았다.
음······
“데이터를 보니까 케빈 케핑거가 아구스틴을 상대로 4년 동안 안타가 없더군.”
뭐 그런 데이터가 있다면야.
그런데, 4년이라고 해봐야 아구스틴이 케핑거를 몇 번 안 만났을 텐데, 그런 표본이 적은 데이터가 의미가 있나?
어쨌건.
❝아. 여기서 대타가 나오는군요. 케이든 자일스가 케빈 케핑거를 대신하여 대타로 나옵니다.❞
상대 팀 더그아웃에서도 그 표본이 적은 데이터를 의식했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대타를 냈다.
케이든 자일스라······
글쎄다?
일발의 장타력은 있지만, 정확도와 선구안은 대단히 떨어지는 전형적인 공갈포인데, 안타 하나가 필요한 이 시점에서는 다소 부적절한 대타인 것 같긴 한데,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건 거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이번에는 타격코치 데렉이 먼저 나서서 의견을 냈다.
내가 봐도 지금은 거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 저 녀석 스윙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 느낌이 대단히 좋지 않아.”
그랬다.
지금 저놈 연습 스윙하는 것을 보니까 히팅 포인트를 앞에다 두고 체중을 빠르게 앞다리로 이동시키고 있는데, 이는 빠른 공에 대처하는 가장 정석적인 스윙이었다.
저놈 빠른 공 상대 타율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구스틴의 빠른 공이 통타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네 생각은 어때?”
데렉의 의견을 들은 이후, 아담은 다시 키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저 녀석은 이번 시즌 15타석에 대타로 나와서 단 1안타였어. 그런 타자를 굳이 의식해서 거를 필요가 있나? 그냥 가자고.”
키스의 의견은 나나 데렉과는 달랐다.
음······
“내 의견이 그렇다는 거고,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키스의 말처럼 결국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아담이었지만, 아담은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는 사이에
‘따악.’
벌써 아구스틴의 손에서는 초구가 빠져나갔고, 타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높은 공을 잡아당겼습니다. 대타 케이든 자일스의 이 타구가 우중간으로 멀리 뻗어갑니다. 아. 그대로 펜스를 넘겨버리고야 맙니다. 아구스틴 산타크루즈가 케이든 자일스에게 역전 홈런을 허용하고 맙니다.❞
98.5마일(158.5㎞)의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이 제대로 공략당하며 결국에는 역전 홈런을 맞고야 말았다.
어째 이렇게 될 거 같더라니······
“괜찮아. 이길 수 있어. 우리에겐 아직 한 번의 공격 기회가 남았잖아. 그래. 어차피 여기서 이대로 끝나면 게임이 너무 재미없잖아. 아구스틴이 게임 막판의 재미를 위해, 끝내기의 영웅이 탄생할 수 있게 발판을 깐 거야. 좋게 생각하자고.”
역전 홈런이 나온 직후 축 처진 더그아웃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아담의 조크였지만, 이거 아구스틴을 비꼬는 걸로 들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높은 공을 잡아당겼습니다. 이번에도 우중간으로 멀리 날아갑니다. 아. 이 타구도 그대로 펜스를 넘어가네요. 이 백투백 홈런으로 아구스틴 산타크루즈가 이번 이닝에만 벌써 네 개의 장타를 허용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후속 타자인 피터 일슬러에게도 홈런을 맞으며, 백투백 홈런이 되고야 말았고, 결국에는 아구스틴은 이닝을 끝마치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음······
다른 타자들은 다 이해한다 해도, 저런 타자한테 홈런을 맞은 건 좀······
그보다 아구스틴이 맞은 그 네 개의 장타가 전부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이었다는 것이 어째 좀 찜찜하다.
이거 설마 쟤네들, 휴지통 놈들처럼 사인을 훔치는 건 아니겠지?
“게리, 오늘 내가 바깥쪽에 던진 하이 패스트볼이 그렇게 안 좋았어?”
고개를 푹 숙이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아구스틴이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앉은 게리한테 질문했고,
“글쎄? 내가 보기에는 분명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태양, 네가 보기엔 어땠어?”
게리는 가만히 있는 나를 끌어드렸다.
“공 자체는 평소보다 조금 안 좋았지만, 그렇게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어요.”
뭐 공을 던진 아구스틴 본인이 더 잘 느끼겠지만, 아구스틴이 오늘 아구스틴이 장타를 허용했던 그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들은 평소보다는 위력이 좀 덜했을지언정, 그 지경으로 난타당할 수준의 배팅볼은 절대로 아니었다.
“애들이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에 확실히 노림수를 가지고 받아 치던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구스틴의 이 질문에는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심증은 있지만, 직접적인 확실한 물증이 없는 이상 의심이 간다 해도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어쨌건 그러는 동안에, 6:4로 우리 팀이 두 점을 리드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팀의 9회 말.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클로저인 호아킨 로메로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좌완 투수로, 포심 패스트볼의 최고 구속이 95마일(152.9㎞)에 불과한데, 마무리 투수치고는 그리 빠른 구속이라 할 수는 없지만, 6피트 5인치(195.6㎝)의 큰 키를 활용한 극단적인 오버핸드 투구 폼으로 인해 디셉션이 대단히 좋기에 많은 삼진을 뽑아내는 투수였다.
실제로 호아킨 로메로는 현재 MLB에서 그 릴리스 포인트가 가장 높은 투수인데, 무게 중심의 이동이 대단히 어설프고, 불안정함에도, 제구도 괜찮은 수준이고,
또 보통 이런 유형의 투구 폼을 가진 선수는 큰 부상에 대한 우려가 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몸에 특별한 이상을 찾기가 힘든데, 실제로 1회차때도 큰 부상을 겪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그것도 참 희한할 노릇이었다.
뭐 요는 구속이 별로 안 나온다고 얕봐서는 절대로 안 되는 투수라는 이야기다.
우리 팀의 타순은 5번 제임스부터 시작되는데, 사실 제임스를 제외하고는 별로 그렇게 기대가 되는 타순은 아니었고,
솔직히 말해서 여기까지 왔으면 우리 팀의 패배는 거의 90%는 확정된 것 같다.
물론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니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아직 10%의 확률이 남아있다.
❝낮은 공에 헛스윙합니다. 아. 공이 뒤로 많이 빠져나가는데요. 낫아웃 상황입니다. 포수가 잡아서 1루로 공을 뿌렸지만, 제임스 저스티스는 이미 1루에 도착해있습니다. 두 점 뒤진 양키스의 9회 말.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선두타자가 출루에 성공했습니다.❞
일단 제임스가 낫아웃으로 살아나가자, 처져있던 더그아웃은 다시 활기가 감돌기 시작했고,
“좋아. 할 수 있다. 해보자!!!”
“사무엘, 날려버려. 아주 박살을 내버리라고!!!”
“사무엘, 주인공은 바로 너야!!!”
타석에 들어서는 사무엘을 향해 각기 저마다 힘찬 응원을 보냈다.
그와 반대로 상대 팀의 더그아웃은 고요했는데, 누가 보면 우리 팀이 승리 팀이고, 상대 팀이 패배 팀인 줄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더그아웃뿐만 아니라 관중석에서도 응원의 함성이 쏟아지고 있는데, 사무엘이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의 바람대로 과연 한 건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나 2루수 땅볼이군요. 2루수가 잡아서 우선 2루에 먼저 던집니다. 선행 주자가 지워졌고, 다시 볼 1루에 연결됩니다. 1루에서도 아웃되며 더블 플레이가 되고 맙니다. 아. 지금의 이 더블 플레이는 대단히 치명적이네요.❞
과한 기대가 지나친 중압이 되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사무엘은 초구에 정말 얼탱이가 없는 허접한 공을 건드려 병살을 치고야 말았다.
음······
뭐.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우리 팀의 패배는 거의 99.9% 정도까지는 확정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포스트시즌 14연승이 여기서 이렇게 끊기는구나.
“미안해. 잘못했어. 일부러 그러려는 건 아니었는데, 내가 정말로 죽을죄를 지었어. 용서해줘.”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사무엘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우리 모두에게 용서를 빌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사실상 대역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일부러 그러려던 것도 아니었잖아.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역전 홈런을 맞은 내가 죽일 놈인 거야.”
아구스틴이 사무엘 놈을 토닥이며 위로했는데, 하긴 아구스틴이야 말로 오늘 경기의 패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오리지널 대역죄인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부터라는 말도 있잖아. 우리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
이렇게 말을 한 아담 본인조차도,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이 경기를 뒤집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물론 0.1%의 가능성이라도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
❝툭 갖다 맞춘 타구가 1, 2루 간을 빠져나갑니다. 안타입니다.❞
일단 레이가 안타를 때려내며 2사 이후에 다시 주자가 나갔다.
이제 케빈과 트로이만 버텨낸다면, 내 타석까지 연결되는데, 과연 그런 기적이 있을 수 있을까?
일단 지금 케빈의 타석이 고비였다.
그런데?
❝오!!!! 지금은 등에 맞았습니다. 몸쪽 깊이 들어온 공을 케빈이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여기서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며 케빈이 1루로 걸어 나갔고, 그 순간 이곳 양키 스타디움은 마치 경기에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광란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트로이가 아웃을 당하면 그대로 경기가 끝인데, 너무 지나친 설레발 아닌가?
어찌 되었든 비록 2사라 해도 주자가 두 명이 나갔고, 트로이만 어떻게든 출루를 한다면, 이제 나의 타순으로까지 연결된다.
분명 우리가 경기에 지고 있긴 하지만, 일단 우리에게 대단히 유리한 흐름인 건 분명히 맞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트로이의 임무가 몹시 막중했다.
“트로이, 굳이 치려고 덤빌 필요는 없어. 집중해서 볼을 끝까지 잘 보고, 출루에 포커스를 맞추라고.”
데렉이 타석에 들어서려는 트로이를 붙잡고 지시를 했는데, 굳이 그렇게 강조하여 지시하지 않아도 트로이는 공을 잘 보고, 출루 능력이 좋은 선수이니 알아서 잘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따악.’
안타깝게도 트로이는 데렉의 지시를 비웃기라도 하듯 초구부터 내따 방망이를 돌렸고, 이것이 배트가 부러진 채 빗맞은 땅볼 타구가 돼서 유격수 쪽으로 굴러가자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끝마쳤다.
그런데?
❝잡아당깁니다. 배트가 부러졌고, 빗맞은 땅볼 타구입니다. 유격수가 대시해서······ 오!!!! 지금 마크 에들린이 공을 잡지 못하면서 주자가 모두 살았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범한 유격수 땅볼 타구에서 거짓말 같은 실책이 나오며 우리의 영웅, 우리의 구세주 태양 왕 앞에 누상에 주자를 꽉 채워집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요?❞
여기서 뜻밖에도 상대 팀 유격수의 포구 실책이 나오며 누상에 주자가 모두 사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 이건 정말 믿기지 않는 기적이다.
이야. 이것 참. 경기가 이렇게 재밌게 되네.
그리하여 2사 만루의 역전 찬스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타석. 홈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서 치면 영웅이지만, 못 치면 바로 역적, 갤주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 타석도 그냥 평소와 똑같은 타석일 뿐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쫓길 수밖에 없는 건 오히려 상대 팀이다.
겨우 두 점을 앞선 마지막 수비의 2사 만루의 위기에서 마지막에 나를 상대하는데, 상대 팀으로서는 당연히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크 에들린이 팀의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는데요. 과연 우리의 신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은총을 내려주실까요?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준비를 해도 될까요?❞
보니까 상대 팀 투수는 이미 잔뜩 쫄아있었다.
그렇게 담이 작아서 무슨 클로저를 하겠다고. 쯧쯧.
결국에는 상대 팀 포수가 먼저 타임을 요청하였고, 감독과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대체 무슨 역적모의를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런다고 한들,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오늘 수고했다. 오늘 패배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무 마음 쓸 필요 없어.”
뭐 이런 위로라도 하는 건지도 모르지.
어쨌건 잠깐의 시간이 지나갔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그런데?
❝아. 지금 자동고의사구인가요? 네. 자동고의사구가 맞네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태양 왕을 거르고, 마크 크라웃과의 승부를 선택했습니다. 글쎄요? 우리의 신이 아무리 무섭다고 한들, 이렇게 되면 한 점 차의 만루에서 마크 크라웃을 상대하는 건데, 이 역시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지금 이 선택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서는 결과가 좋게 나오면 다행이겠지만, 안 좋게 나온다면 그 파장이 대단히 클 것 같네요.❞
뜻밖에도 지금 이 상황에서 상대 팀은 나를 거르고 크라웃과의 승부를 선택했다.
음······
아무리 내가 무서워도 그렇지. 겨우 두 점 차의 만루인데, 여기서 자동고의사구라니······
글쎄다?
하기야. 뭐 상대 팀으로서는 6:4로 이기나, 6:5로 이기나 어차피 이기는 건 똑같으니, 비록 점수를 주더라도 승리 확률이 높은 쪽에 배팅을 하겠다는 건데,
뭐 그렇게 따지면 지금의 이 선택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선택은 분명 아니긴 하다.
예를 들어서 만일 내 뒤의 타자가 경수나 현호 같은 놈이었다면 2점 차의 만루더라도 나를 거르는 것이 분명히 맞다.
하지만, 내 뒤에는 크라웃이 있다.
이건 뭐 호랑이, 사자를 피하겠다고 곰의 우리로 스스로 뛰어드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지금 크라웃의 눈은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하기야. 그로서는 지금의 이 상황이 한없이 모욕적일 거고,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거다.
말은 안 해도,
‘이 개새끼들이 나한테 감히 이런 모욕을 줘? 그래. 나를 선택한 것을 눈물 질질 짜며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줄 테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이 개새끼들아.’
지금 분명 저런 심정일 것이다.
“너희들, 감당되겠냐?”
1루로 걸어간 나는 상대 팀 1루수 우게스 산도발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지만, 이놈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투수가 와인드업을 한다.
어쩌면 지금 이 공으로 바로 경기가 끝이 날 수도 있다.
❝초구는 볼입니다. 지금 몸쪽으로 좀 깊었는데요. 어? 지금은 사구가 선언됩니다. 포수 오스틴 넬슨이 이 사구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여기서 몸에 맞는 공이 나오며 밀어내기가 되고야 말았다.
상대 팀은 감독까지 뛰쳐나와서 강하게 항의하지만,
“응. 사구 맞아. 들어가.”
“추하다. 그러고도 너희들이 프로팀이냐?”
우리 홈 관중들은 그런 상대 팀에 강한 야유를 보냈고,
❝지금 느린 화면이 다시 나오고 있는데요. 아. 공이 분명히 마크 크라웃을 스쳤네요. 이건 주심이 정말로 잘 봤습니다. 그러면서 스코어 리셋. 경기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판정은 절대 번복되지 않았다.
상대 팀의 뜻하지 않은 자폭으로 동점까지 만들었고, 분위기는 이제 우리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으니 내친김에 이대로 끝을 내야 한다.
6:6 동점의 2사 만루, 이제 카퍼의 타석이었다.
과연 카퍼가 여기서 끝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상대 팀 선수들의 표정을 보니, 이미 다들 멘탈이 완전히 나간 듯 보였다.
음······
❝아!!! 공 뒤로 빠졌습니다!!!! 3루 주자 트로이 푹스가 홈에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스코어는 이제 7:6. 끝내기입니다. 믿기지 않는, 정말 거짓말 같은 기적이 연달아 일어나며 양키스가 이 경기를 뒤집었습니다. 이야. 세상에 이런 경기도 다 있군요. 이렇게도 이길 수가 있는 거였습니까?❞
상대 팀은 2사 만루에서 밀어내기 고의사구와 사구로 동점을 만들어 주더니, 이번에는 결국 밀어내기 폭투로 역전 끝내기 점수까지 조공해 주었다.
와······
세상에 이렇게도 이길 수가 있는 거구나.
야구를 수십 년째 해오지만, 이 마지막은 정말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예능이고, 막장이었던 것 같다.
이것이 이른바 1008 대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