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74. 메이저리거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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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메이저리거의 자존심
“너희들은 태양이 우리 팀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이 몇 %라고 생각해?”
브랜던 리치먼은 진지하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 50% 정도는 되겠죠.”
“50% 이상은 될 거예요.”
그리고 그에 대한 데이브 윈들러와 아담 쿤의 대답은 같았다.
물론 질문을 한 리치먼 본인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이런 질문을 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리치먼의 질문은 계속됐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태양과 장기 계약을 체결한다면,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앞의 질문과 달리 리치먼은 이에 대해 확신을 못 하고 있었기에 물어본 것이다.
“못해도 4억 달러는 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제가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윈들러와 쿤의 대답은 엇갈렸는데, 특히 쿤은 아예 대답을 회피했다.
“좋아. 그럼 다시 묻지. 그럼, 너희들은 20년 11억 달러라는 액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20년 11억 달러.
이것이 바로 태양 왕의 에이전트 지미 윈튼이 찰리 스테인하우어에게 전한 최초의; 요구액이었다.
스테인하우어에게 그 말을 전해 들었던 순간 리치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윈튼, 혹은 태양이 미친 게 아니면, 스테인하우어가 자신을 놀리는 거던가. 둘 중 하나였다.
지금껏 MLB에서 계약 총액 5억 달러를 돌파한 선수도 없는 마당에 그 두 배가 넘는 액수라니······
게다가 심지어 그 계약 기간도 무려 20년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뭐에요. 지금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농담 따먹기라도 하잔 거예요?”
지금 쿤이 느끼기에도 20년 11억 달러라는 요구액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러게. 농담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을 마침과 동시에 리치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윈들러의 말은 리치먼과 쿤의 어이를 완전히 가출하게 했다.
“20년 11억 달러면, 연평균으로 따지면 5500만 달러고, 10년이라고 치면 5억 5천만 달러잖아요. 그 정도면 할 만한데요?”
그야말로 기적의 계산법이었다.
그 어이없는 헛소리에 리치먼은 재떨이를 집어 들어 던지고픈 충동이 들었지만, 이를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런데 윈들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다른 선수였다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액수겠죠. 하지만 태양이잖아요.”
“넌 언제부터 태양의 에이전트가 됐어?”
리치먼은 윈들러의 말을 끊고 대놓고 빈정댔다.
리치먼이 기억하기로는 지금껏 윈들러는 태양 왕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로 일관해왔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언행을 보면 이건 완전히 태양 왕의 대변인, 혹은 에이전트 수준이었다.
그리고 태양 왕의 새로운 에이전트는 리치먼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생각해보세요. 태양은 투타 겸업을 하면서, 두 사람 몫을 해내고 있어요. 그만한 에이스와 주포를 데려오려면 최하 연평균 3500만 달러 이상이죠? 합하면 7000만 달러잖아요. 그런데 태양이 요구하는 5500만 달러를 둘로 나누면 2750만 달러가 되잖아요. WAR 20을 기록하는 투수와 타자를 각각 2750만 달러에 쓰는 거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큰 이득이죠.”
윈들러의 기적의 계산법대로 태양 왕 정도 되는 투수와 타자를 각각 2750만 달러에 쓸 수 있다면 이는 분명 이득일 것이다.
그러나 리치먼은 윈들러의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이득? 네 논리대로면 태양을 연평균 4000만 달러에 잡으면, 연평균 2000만 달러 선수 두 명을 쓰는 거니까 그게 훨씬 더 이득이겠네?”
“그렇기야 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후려치려다가 만일 태양이 떠나면요? 우리는 WAR 20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잃는 거라고요.”
윈들러의 말은 순전히 공갈·협박이었지만, 충분히 현실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리치먼이 윈들러와 쿤에게 태양 왕이 팀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에 관해 물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는 태양 왕을 잡는 데 최선을 다할 거지만, 그래도 만일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가정도 일단 해둬야 했다.
“네 말대로 잘못하면 우리는 태양을 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선수 한 명에게 연평균 5500만 달러, 20년 11억 달러를 퍼주면서 끌려다녀야 하는 건가?”
라는 리치먼의 말은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윈들러는
‘그러는 단장님이야말로 그 선수 한 명한테 지금까지 계속 끌려다니셨잖아요.’
라는 말을 목구멍에서 집어삼켰다.
이때 말이 없이 리치먼과 윈들러의 논쟁을 잠자코 듣고 있던 쿤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는 거예요? 아직 시즌이 안 끝났잖아요. 혹시 태양이 장기계약 이야기를 먼저 꺼냈어요?”
“멍청한 찰리 놈이 지미를 만나서는 먼저 나불댄 모양이야. 지미가 거기에 좋다구나 액수를 말한 거고.”
말을 하면서도 리치먼은 이를 부득 갈았다.
그가 판단하기에는 사실 태양 왕의 장기계약 문제는 시즌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았다.
그보다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는 구멍이 나 있는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와 내야를 어떻게 보강하느냐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트레이드도 알아보고 다니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스테인하우어가 공연히 입을 놀리는 바람에 일이 하나 더 늘고야 말았다.
심지어 그 일은 보통 일도 아니고, 팀을 뒤흔들 수도 있는 대단히 중대한 일이었다.
“제 생각에는 현재 태양의 장기계약은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문제는 시즌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으니까, 일단 선발 투수랑 2루수나 좀 구해주세요.”
일단 쿤의 생각도 리치먼의 생각과 일치했다.
사실 이 문제에서는 현장에서 팀을 이끄는 그가 오히려 리치먼보다도 더 골치를 썩고 있었다.
스콧 허프가 토미 존 수술로 아웃된 후 양키스는 마이너 유망주 글렌 록우드와 안토니오 카스티요를 콜업하여 기회를 줘봤지만, 그들은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윈들러는 리치먼과 쿤의 의견에 또다시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 미리 태양의 장기계약을 끝내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시즌 후에 논의하게 되면, 그때는 경쟁이 붙을 테고, 태양이 요구하는 금액도 더 올라가겠죠.”
“그야 그렇지만······”
물론 리치먼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특히 양키스보다도 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다저스가 끼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그도 이미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팀의 시급한 문제를 제쳐놓은 채, 태양 왕의 장기계약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만일 태양을 놓쳤을 때, 아니, 태양이 다저스로 갔을 때의 그 역풍을 생각해 보세요. 감당되겠어요?”
윈들러의 노골적인 공갈·협박에 리치먼은 어이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 자식이 진짜로 돌았나.’
그러나 리치먼의 생각과 달리 윈들러는 전혀 돌지 않았고,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러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윈들러는 며칠 전 스테인하우어에게 불려가서 그와 나눴던 밀담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
“어떻게든, 브랜던을 설득해서 그 계약을 반드시 성사 시켜.”
“아무리 태양이 대단한 선수라고 해도, 20년 11억 달러는 말도 안 되는 계약입니다. 브랜던이 설득될 리도 없고, 저도 설득하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을 해봐. 만일 그 계약으로 인해 사치세가 훨씬 초과되고, 팀 상황이 악화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어?”
“당연히 브랜던이겠죠.”
“역시 똑똑하군. 그럼 브랜던이 쫓겨나면 브랜던의 그 자리는 누가 앉게 될까?”
“제가 협조하면, 단장이 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너 하기에 달렸지. 네가 날 열심히 도와주는데, 내가 설마 너를 외면하겠어?”
***
그랬다.
윈들러가 지금 나서서 브랜던을 충동질하는 이유는 구단주인 스테인하우어의 지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라고 지금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는데,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내가 아무리 단장이 되고 싶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비겁하게 프락치 노릇까지 해야 하는 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해?’
일단 이런 회의부터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럴 때 마다 그는 이렇게 결의를 다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도 혁명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일 뿐. 이렇게라도 해서라도 브랜던의 독재를 끝내지 않는다면, 이 구단에 미래는 없다. 오로지 나만이 이 구단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
그의 뇌는 이미 단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어리석은 욕망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만일 일이 성공하여 리치먼을 쫓아낸다 하여도 스테인하우어가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가?
또 설령 스테인하우어가 약속을 지켜서 그가 단장이 된다 한들, 과연 그가 지금의 리치먼처럼 전권을 휘두를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질 못하고 있었다.
이 멍청한 혁명가가 꾸미는 이 어리석은 혁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
20년 11억 달러.
연평균으로 치면 5500만 달러인데, 사실 이 금액도 나로서는 대단히 많이 양보한 거다.
1회차 때 맺었던 계약이 15년 8억 2천 500만 달러였고, 그때도 연평균 5500만 달러였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 강해지고, 투타겸업까지 하고 있음에도 계약 기간을 늘려서 같은 규모의 연봉을 요구했다.
내가 이 이상 어떻게 더 양보한단 말인가?
브랜던 아저씨야 어떻게든 깎아보려 발악하겠지만, 나는 한 푼도 깎을 생각이 없다.
나는 뉴욕 양키스라는 이 구단을 정말로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구단이 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나도 뭐 별수가 없는 거 아니겠는가.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듯이 선수에게 있어서 연봉은 곧 자존심이다.
내가 아무리 양키스라는 이 구단을 정말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이 구단에서 계속 뛸 수는 없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사실 양키스 아니면 갈만한 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내 몸값을 맞춰줄 수 있는 팀은 결국 양키스와 다저스뿐일 거다.
결국 양키스가 아니면 선택지는 다저스뿐인데, 캘리포니아의 소득세가 뉴욕과 비교하여 현저히 높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사실 다저스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팀이다.
이게 왜 그러냐면,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2주마다 급여를 받는데, 문제는 선수가 급여를 받을 때 그 선수가 경기를 한 주에서 그 소득세를 떼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LA 원정 중에 급여를 받는 날이 겹친다고 치면, 뉴욕주 소득세가 아닌 캘리포니아주 소득세를 내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만일 다저스에서 뛰게 되면, 같은 서부지구에 속해 있는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원정을 더 자주 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캘리포니아주 소득세를 내야 하는 날이 그만큼 더 많아질 수밖에 없게 되는 거다.
따라서 다저스에서 받는 5500만 달러는 양키스에서 받는 5500만 달러와 비교할 때 실수령액에서 상당히 큰 차이가 있고, 크게 손해를 보는 건데,
서부지구 팀들을 기피하는 선수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만일 내가 다저스에 간다고 치면 최소 20년 15억 달러, 그러니깐 연평균 7500만 달러는 받아야 하는데, 그 정도 액수는 아무리 다저스더라도 맞춰주기가 힘들 거다.
그래서 결국 양키스밖에 없다는 건데,
1회차 때는 내가 장기계약을 체결할 때는 이미 브랜던 아저씨는 쓸려나가고 찰리가 구단 운영의 전권을 행사하던 시기라 호구 찰리를 거의 협박해서 순조롭게 계약을 따냈었지만,
이번에 브랜던 아저씨와 협상하는 거라 협상이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뭐 협상은 내가 아니라 지미가 하겠지만.
그리고 지금 장기계약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지미의 분명한 실수였다.
지금 굳이 내가 먼저 나서서 장기계약을 구걸할 이유가 없다.
장기계약은 시즌 후에 논의를 해도 늦지 않고,
그보다 드디어 롱아일랜드 킹스 포인트에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 매물로 나왔는데, 다가오는 휴일에 이 집을 일단 한 번 보러 갈 예정이다.
1995년 준공된 이 저택은 5.3에이커(6488평)의 대지에 13개의 침실, 14개의 욕실, 정원, 실내수영장, 실외수영장, 테니스 코트, 게스트하우스, 온실, 개인 선착장을 모두 갖췄는데,
현재 4000만 달러에 올라왔다.
무엇보다 집이 해변을 바라보고 있고, 개인 선착장까지 갖췄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든다.
만일 이 집을 구입하여 이사를 한다면, 여기에 초호화 요트 두세 대를 사서 정박해 놓고, 매일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아무튼 뭐 그렇게 올스타브레이크가 끝이 났고, 2024년 7월 18일 드디어 후반기가 개막되었다.
우리 팀은 오늘부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홈 4연전을 치른다.
이날 경기는 저녁 7시 경기였기에 오후 2시에 출근을 했는데, 라커룸에서는 벌써부터 고함이 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고 하니, 알렉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담한테 혼이 나고 있었다.
“너는 메이저리거의 자존심도 없어? 그래. 햄버거가 그렇게 처먹고 싶었냐?”
“죄송해요.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알렉스가 버거킹에서 스태커를 사 먹는 걸 구단 직원이 목격하여 아담한테 보고를 한 모양인데, 그러니까 지금 아담은 알렉스가 고작 햄버거 하나 사 먹었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혼을 내는 거였다.
“너는 자랑스러운 메이저리거야. 메이저리거면 메이저리거에 맞는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거야. 앞으로 조심해. 너희들도 모두 마찬가지야. 이번에는 그냥 경고로 끝나지만, 다음에 또 같은 일이 있을 시 벌금이야.”
음······
지금 상황은 보기에 따라서는 아담이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메이저리거의 품위와 자존심이 있지. 메이저리거가 모양 빠지게 햄버거가 뭐란 말인가.
더군다나 양키스는 빡빡한 복장 규정, 용모 규정까지 있을 정도로 품위를 철저하게 따지는 구단인데,
그런 명문 팀 양키스의 선수가 모양 빠지게 줄을 서서 햄버거를 사 먹는다?
이는 당연히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렉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워밍업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씩씩거렸다.
“태양, 내가 정말 그렇게 심하게 잘못한 거야? 고작 햄버거 하나 사먹은 게,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렇게 사람을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망신을 줄 일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무시했다.
음······
전에도 말했지만, 사실 알렉스 이놈은 라커룸 분위기를 해칠 빌런이 될 잠재력이 대단히 높은 놈이었다.
그동안은 용케 조용히 잘 지냈었는데, 설마 이 일을 계기로 빌런으로 거듭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