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52. “너가 야구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길래” (수정)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52. “너가 야구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길래”
어쨌건 그리하여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이날은 오전 11시에 아빠의 레슨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된다.
월드스타의 기자회견 장소로는 좀 초라하긴 하다만, 어차피 많은 인원을 초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레슨장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 기자회견은 내 유튜브 계정에서 라이브 스트리밍되는데, 따라서 이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이 내 유튜브 계정에 처음으로 올라가는 영상이 되는 거다.
물론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만, 일단 내 계정 말고는 딱히 라이브 스트리밍을 할 계정이 없지 않은가.
굳이 라이브 스트리밍까지 하는 이유는 기자회견을 해도 내 말이 왜곡되어서 기사가 나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증거로 남겨놓기 위해서다.
뭐 아무튼 11시가 되었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는데, 초대받지 않은 인원들이 많이 몰리면서 레슨장이 꽤나 북적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에 출입증을 발급하고, 인원을 통제했어야 했는데, 그 점에 있어서 내가 너무 안일했나 보다.
“우선, 좋지 않은 일로 가십에 오르내린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합니다. 오늘 지금 이 자리는 지난 11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모 가라오케 업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사실과 전혀 다른 헛소문을 바로 잡기 위한 자리입니다. 설명이 끝난 후에 여러분의 질문은 따로 받지 않겠으니, 집중하여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질문을 받아봤자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닌 뻘질문만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질문을 받아봤자 공연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날 저녁 저는 저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서울 장충동의 모 족발집에서 서울K-POP연예예술학교 1기 동기들과 모임을 했고, 우리 일행은 이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가라오케로 이동하였습니다. 그 업소는 모임에 참석했던 친구의 외삼촌이 운영하던 업소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매체에서는 우리 일행이 그 소위 말하는 접대부를 불러 놀았다고 보도를 했고, 인터넷상에서는 그게 사실인 양 헛소문이 퍼졌는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늘에 맹세코 이는 절대로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일행은 접대부를 불러 불건전하게 놀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금부터 공개할 CCTV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프로젝터를 통해 우리가 있던 방의 CCTV 영상이 재생되었고, 영상이 다 나간 후 우람한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갔다.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친구 외삼촌이 운영하는 가라오케에 가서 건전하게 논 게 뭐가 문제입니까? 그게 그렇게 죽을죄를 진겁니까? 그게 부모 욕이 나올 만큼 잘못한 건가요? 그렇게 따지면 여러분들은 인생을 얼마나 똑바로 살았습니까? 아. 그리고 그 친구의 외삼촌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불법이나 암흑가의 일에 종사하시는 분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 자영업자십니다.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 악성 루머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과 무분별한 신상털기로 인해 당사자가 대단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번 사건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명예훼손도 피해를 본 당사자들과 논의하여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고, 그 손해에 대한 배상도 철저히 받아낼 예정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선처와 합의는 절대로 없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세요.”
나는 일단 말을 멈췄다.
따로 웅변이나 연설을 배우진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이 연설은 정말 명연설이었다.
“다음으로 폭행 사건 당시의 상황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설명에 앞서서 사건이 일어났던 방의 CCTV 영상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던 방의 CCTV 영상이 그대로 재생되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방은 우리 일행이 있던 방의 옆 옆 방이었습니다. 영상에 나온 것처럼 저와 시비가 붙었던 이들은 같이 있던 여성을 추행하려다 여성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일단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고, 상대방을 다치게 한 점에 대해서는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그 신체적인 접촉은 상대방을 말리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났던 일이었고, 또한 상대방은 칼이라는 흉기를 사용하여 저를 위협하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제가 먼저 시비를 걸고 상대방을 폭행했다는 내용 역시 명백한 허위 사실이고, 이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책임 역시 함께 물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내 할 말만 마치고, 기자회견을 끝냈다.
CCTV 영상이라는 너무도 확실한 증거 앞에 그 누구도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생방송 스트리밍 동영상을 지금 무려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지켜보고 있다.
구독자 수가 0명인 계정의 라이브 스트리밍에 무려 10만 명의 시청자가 몰린 것도 어떻게 보면 사실 대단한 기록 아닐까?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까 봐 하는 말이지만, 뷰봇 같은 거는 절대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프로그램은 쓰는 방법도 모르고, 어디서 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래서 그 10만 명 중 500명이 구독을 눌러줘서 현재 이 유튜브 계정의 구독자 수는 500명을 돌파하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그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의 조회수가 100만을 돌파하였고, 구독자도 2,500명으로 확 늘었다.
첫 영상을 업로드 한 후 불과 하루 만에 아빠 유튜브 구독자 수의 절반을 채운 것이다.
그리고 11월 23일 목요일.
오늘은 예정했던 대로 아빠 유튜브의 영상을 녹화하는 날이다.
아빠의 레슨장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이 영상은 어떻게 하면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지, 그리고 올바른 투구 폼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설명할 것이다.
아마도 이 영상이 많은 학생 투수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영상을 녹화한 후에는 예정에 없던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하였는데, 구독자 5천 명의 하꼬 채널에 2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몰렸다.
먼저 내가 썰을 풀고, 이후에 시청자가 올리는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이었는데, 채팅창에는 정말 많은 질문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 중 한 질문이 또 구설을 만들고야 말았다.
“이성후 선수는 과연 MLB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또 포스팅 금액은 얼마나 나올까요? 라고 아이디 파이터즈이성후 님이 질문을 해 주셨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성후는 현재 KBO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MLB 포스팅 자격을 얻어 MLB 진출에 도전하게 되는데, 1회차 때는 우여곡절 끝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하였지만, 한 시즌 만에 KBO리그에 유턴하였다.
애초에 이성후는 MLB에서 통하기에는 장타력이 부족했었고, 빠른 공에 대한 대처도 전혀 안 됐었다. 더군다나 볼티모어 오리올스라는 팀과는 상성도 맞지가 않았다.
KBO리그에서 난다 긴다 했던 몇 명의 선수가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MLB에 도전했었지만, 다들 처참하게 실패했었는데, 확실히 볼티모어 오리올스로서는 KBO리그에 완전히 학을 뗄만도 했다.
그것보다 지금 질문은 참 쓸데없는 질문이고, 이런 질문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데, 아빠는 그걸 또 굳이 읽었다.
“이성후 선배, 그리고 이성후 선배의 팬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성공할 확률은 제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성후 선배는 장타력이 부족하고, 빠른 공에 대한 대처가 전혀 안 되잖아요. 그 정도 수준의 타자는 AA, AAA에도 널리고 널렸어요. 분명히 실패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아마 입찰하려는 구단은 볼티모어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볼티모어 팀으로서나, 또 이성후 선배 본인으로서나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실제로 1회차 때 볼티모어 오리올스 외에 다른 구단들은 모두 무응찰이었고, 볼티모어 쪽 조건도 별로 좋지는 않았었다.
뭐 어쨌건 나의 객관적이고도 솔직한 분석에 채팅창은 그야말로 크게 난리가 났다.
***
↳ 파이터즈이성후 : ㅋㅋㅋㅋㅋㅋㅋ, 와. 이성후 무시 개 쩌네. 너 따위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 싸우자파이터 : 너가 야구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길래 감히 선배한테 그런 망발임? ㅋㅋㅋㅋㅋㅋㅋ
↳ 동방불패 : MLB 부심 쩌네요. 그깟 MLB가 수준이 얼마나 높다고 ㅋㅋㅋㅋㅋㅋ
↳ 용용 : 말을 좀 재수 없게 했지만, 솔직히 틀린 말한 것도 아니잖아. 이성후 따위가 무슨 MLB? ㅋㅋㅋㅋㅋㅋ
↳ 양키스최고다 : 왕태양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냐고? 그럼 이성후가 MLB 가서 4할 치고, 85홈런 치고 1.673 OPS, 340 wRC+ 하고, MLB 모든 기록 다 다시 쓸 수 있냐? 이성후 같은 하찮은 선수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한테 그런 망발임?
↳ 싸우자파이터 : 응. 그래서 넌 학폭범이나 열심히 빨아 ㅋㅋㅋㅋㅋㅋ
↳ 양키스최고다 : 응. 그래서 넌 고소.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ㅋㅋㅋㅋㅋㅋㅋ.
↳ 타격달인이성후 : 팩트는 이성후가 MLB 못 가면 백호범도 절대로 못 간다는 거임.
↳ Love백호범 : 이 새끼 웃기는 새끼네. 가만히 있는 백호범은 왜 건드려? 병신이냐?
↳ 타격달인이성후 : 너 나 알아? 언제 봤다고 욕이냐? 너야말로 병신 새끼냐?
↳ Love백호범 : 너 어디 사냐? 전번 대 씨발놈아.
↳ 타격달인이성후 : 010-XXXX-XXXX이다. 씨발놈아. 넌 꼭 전화해라.
↳ 서울의이명규 : 솔직히 말해서 크보 타자 중에 MLB에서 통할만 한 선수가 없는 건 분명히 팩트임.
↳ 야구에산다 : 그건 맞지. 애초에 크보는 딱 AA 수준임.
↳ 종로김두한 : 왕태양이 KBO 타자였으면 타율 5할에 OPS 2.000, 100홈런 이상도 가능할 듯.
↳ 영웅전설 : 이건 또 뭔 개소리야. 타율 5할에 100홈런? 병신 새끼 만화를 너무 많이 봤네. ㅋㅋㅋ
↳ 나사나이다 : 크보가 어째서 AA임? 그럼 크보에서 타율 1할에 OPS 0.550치다 쫓겨났던 후안 퀸타나가 올해 마이애미 산하 AAA에서 OPS 1.050 이상 치다 콜업되어서 OPS 9친 건 어떻게 설명할 거임?
↳ 쿠거스우승 : 그건 플루크라고 밖에는. ㅡㅡ;;
↳ 나사나이다 : 플루크건 어쩌건, 니들 논리대로라면 크보에서 OPS 0.550이었던 후안 퀸타나가 MLB에서 OPS 9 이상 쳤으니 MLB가 크보 한참 밑이겠네?
↳ 프라이드치킨 : 오늘 저녁은 짬뽕 먹을까? 짜장면 먹을까?
↳ 중화반점 : 난 짬뽕에 탕수육
↳ 가나다라마바사 : 나는 짜장면에 탕수육 부먹.
↳ 프라이드치킨 : 탕수육은 찍먹 아님? 저 새끼 야만인이네.
↳ 중화반점 : 뭔 개소리야. 탕수육은 부먹이 진리지. 너야말로 야만인이네.
↳ 가나다라마바사 : 프라이드치킨 저 새끼 패드리퍼네. 상종을 말아야 할 새끼구먼.
↳ 프라이드치킨 : 내가 언제 패드립을 했다고 ㅡㅡ;; 병신 새끼가 생사람 잡네.
↳ 가나다라마바사 : 개새끼야. 너가 우리 엄마보고 야만인이라며.
↳ 프라이드치킨 : 내가 언제 병신아.
↳ 가나다라마바사 : 탕수육 부먹이면 야만인이라며, 씨발놈아. 우리 엄마도 탕수육 부먹이시다. 그게 패드립 아니냐?
↳ 날으는돈까스 : 그래서 이성후 VS 백호범은 누가 위임?
↳ Love백호범 : 당연히 백호범. 이성후 따위는 애초에 레벨이 안 된다니까.
↳ 타격달인이성후 : 백호범 따위가 어딜 이성후한테 비빔? 그리고 씨발놈아. 전번 깠잖아. 전화 안 하냐? 전화할 깡도 없냐?
***
도대체 뭣 때문에 지들끼리 저렇게 열을 내며 싸우는지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
사실 빈말로라도 좋은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테지만, 내가 원래 그런 입에 걸린 말은 못 하는 성격이다.
아마 곧 있으면
《왕태양 “이성후, MLB에서 절대로 성공 못 해.” 비하 파문》
《왕태양 “이성후 수준 타자는 마이너에도 널리고 널려.” 막말 파문》
뭐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도배 되겠지?
무엇보다 내가 너무 말을 솔직하게 해서 아빠도 좀 당황한 것 같았는데, 심지어 11월 말이고, 벌써 겨울이 다 되어감에도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아.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태양이 개인의 의견이 이렇다는 겁니다. 성후, 정말 좋은 타자죠. 저는 항상 성후를 응원합니다.”
아빠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채팅창은 지들끼리 싸우느라 바빴다.
보니까 아주 가관이었는데, 어쨌건 그렇게 스트리밍이 끝났고, 당연히 아빠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
“인마. 좀 좋은 말로 포장을 해줘야지. 그렇게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하면 어떡해?”
이렇게 말하는 거 보면 아빠도 분명 이성후의 실패를 예견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원래 거짓말 못 하는 거 알잖아. 그러게 그런 질문을 왜 읽었어.”
그랬다. 애초에 아빠가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안 읽었으면 될 일이었다.
많고 많은 질문 중에 왜 하필 그런 질문을 골라 읽었던 말인가?
내 말에 아빠는 더 이상의 추궁을 포기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스트리밍 생방송으로 구독자 수가 무려 1500명이 늘었고, 슈퍼챗과 투네이션 후원도 200만원이나 터졌으니 아빠로서는 절대로 손해를 본 장사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한게, 엠게, 야구 갤러리, MLB 갤러리 등 여러 야구 게시판에서 내 발언이 크게 논란이 되고 어그로가 끌리면서 영상의 조회수도 엄청나게 잘 찍히고 있다.
물론 싫어요 찍는 놈이 많은 것이 함정이지만, 영상의 싫어요가 아무리 많이 찍힌다 한들 영상의 수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래서들 유튜브 영상 섬네일을 자극적으로 만들고, 제목도 낚시하면서 어그로를 끄는 거구나.
뭐 그렇다는 거고, 그러고 며칠 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보세요. 왕태양 선수의 번호가 맞나요?”
경상도 사투리 억양의 말투였는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 야구 선수 양준영이라고 합니다.”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지명타자였던 양신 양준영을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나보다는 한참 선배였고, 별다른 인연도, 친분도 없었는데, 이 양반이 갑자기 내게 전화를 왜 한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내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한참 후배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물론 어디까지나 그냥 예의를 차릴 겸 빈말로 한 말이다.
“아. 그래? 우선 이번 시즌 MLB에서 보여준 좋은 성적에 대해서 축하해.”
그렇다고 대뜸 바로 말을 까버리는 이 놀라운 친화력.
“감사합니다.”
솔직히 좀 띠꺼웠지만, 우리 아빠보다도, 서울K-POP연예예술학교 양기택 감독님보다도 한참 선배인 양반이니 그냥 뭐 그러려니 했다.
“바쁠 테니 간단하게 용건만 말할게. 혹시 한국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야?”
“올해 연말은 한국에서 보낼 예정입니다.”
대체 내 사생활은 왜 캐묻는 것이며, 나는 거기에 왜 또 답변을 해준 것일까?
“그러면 잘 됐네. 그 매년 12월에 우리 재단에서 주최하는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 라는 거 알지?”
“네. 알죠.”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는 그 이름 그대로 양준영 야구재단에서 개최하는 자선야구대회였는데, KBO리그의 양대 톱스타이자 라이벌이었던 양준영과 이정범이 각각 팀을 이뤄 이벤트 매치를 치른다.
이벤트 매치이다 보니 현역 선수 외에 은퇴 선수가 참여하기도 하며, 다른 종목의 선수, 심지어는 야구나 스포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연예인이나 셀럽들도 대거 참여한다.
“대회에 참가해 주면 안 될까? 어디까지나 좋은 취지로 개최되는 이벤트 대회니까 너무 큰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어.”
“글쎄요? 제가 참가하는 것이 대회에 누가 되지는 않을지.”
“무슨 소리야. 현역 메이저리거, 그것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가 참여해준다면 오히려 우리로서는 정말 크나큰 영광이지.”
그건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사실 1회차 때도 몇 번 초청을 받았었고, 아빠나 양기택 감독님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몇 번 참가하긴 했었다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참가하고 싶지가 않았었는데, 정말 억지로 참여했던 거였다.
일단 나는 한국의 야구인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고, 또 야구도 더럽게 못 하면서 꼴에 선배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잘난 척을 하는 인간들을 보는 것도 정말 역겨웠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 주먹이 안 나갔던 게 다행이었다.
“저야 가고 싶지만, 이성후 선배나 이정범 선배가 껄끄러워하지 않을까요?”
가고 싶다는 말은 그냥 빈말이고, 정말 가기 싫었기 때문에 이성후 핑계를 댔다.
며칠 전에 내가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정확한 평가를 했던 이성후, 그리고 그 아버지인 이정범으로서는 당연히 나를 껄끄러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그 유튜브? 정범이나 성후는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둘 정도로 그렇게 쪼잔한 애들이 아니야.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싫다고 딱 잘라서 거절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돌려가며 계속 거절했는데도, 정말 끈질겼다.
어쩌면 이 양반도 일부러 어그로 좀 끌어보려고 나를 초대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