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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천재가 마력을 얻어 회귀하면 생기는 일-49화 (49/104)

〈 49화 〉 49. ‘선데이 나잇 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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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선데이 나잇 쇼’

2023년 10월 31일 목요일.

이날은 오후 세시에야 겨우 일어났다.

전날 우승을 확정지은 후 팀 동료들과 클럽에서 밤을 지새우며 아침까지 뒤풀이를 했었다.

그러면서 술도 진창 마셨는데, 집에는 어떻게 돌아왔는지 조차 제대로 기억이 안 나고, 지금도 머리가 계속 울린다.

내가 원래 술에 대단히 강한 사람이고, 웬만해선 절대로 필름이 끊어지지 않는데, 이게 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다.

앙헬로 놈이 여자도 불렀던 것 같은데, 그 이후부터는 도통 기억이 나야 말이지.

어쨌건 이제 시즌이 끝났고, 나는 11월 15일에 한국에 가서 한국의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연말까지 같이 보낸 후 내년 1월 2일에야 뉴욕에 돌아올 예정이다.

당초 계획보다 한국에 머물 시간이 길어졌는데, 가족과 가능한 많은 시간을 더 함께 하기 위해 일정을 조절하였다.

WS의 MVP는 당연히도 내가 선정되었고, 트로피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받게 된다.

원래 작년까지 WS MVP에게도 쉐보레 차량이 제공되었으나, 올해부터 캐딜락으로 바뀌었다.

194~50년대 MLB를 호령하였던 강타자 랄프 카이너는

“홈런왕은 캐딜락을 타고, 타격왕은 포드를 탄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캐딜락이라는 브랜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였고, 또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중 뷰익과 함께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차고에 차가 네 대가 된다.

물론 뭐 그래봤자 에스컬레이드도 거의 타고 다닐 일 없이 주차장에 서있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참고로 스폰 받기로 한 벤틀리 벤테이가는 아직도 차량 인도를 못 받았다.

당초 10월에서 11월 사이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제작이 늦어지면서 내년 1월 이후로 밀렸다.

그러고 보면 내 컬리넌은 비스포크 옵션이 들어갔음에도 꽤 빨리 인도를 받은 편이었다.

주문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인도받았었으니까,

그에 반해 벤테이가는 지금까지 석 달 이상을 기다렸고, 앞으로 석 달을 더 기다려야 하니 여섯 달 이상을 기다리는 건데,

참 오래 걸리기는 더럽게 오래 걸리네.

뭐 그렇다는 거고, 이제 11월 4일 토요일에는 우승 기념 퍼레이드 행사가 있고, 11월 8일에는 백악관을 방문한다.

그리고 11월 12일에는 ABC에서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클라라 쇼어의 선데이 나잇 쇼’에 단독으로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미 9월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고, 얼마 전에야 출연을 최종적으로 확정을 지었다.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인 데다, 미국 내에서 그 인기도 상당한 프로그램이라 많은 연예인, 셀럽, 유명인사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 나도 1회차에 몇 번 출연했던 적이 있었다.

뭐 2회차의 첫 TV 프로그램 출연치고는 나쁘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참고로 그 프로그램은 토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두-세 곡 불러야 하는데, 뭐 1회차에 출연했을 때 불렀던 노래들을 부르면 되겠지?

1회차 때는 쳇 베이커의 ‘She Was Too Good To Me,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토니 베넷의 ‘Blue Velvet’,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로이 오비슨의 ‘Crying’,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Love Me Tender' 같은 곡들을 불렀었는데, 꽤 올드한 옛날 노래들이었고 그렇게 잘 부르진 않았었지만, 내가 불렀을 때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사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고, 야구하는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그렇다고 일요일 밤의 황금 시간대에 지상파에서 전국에 방영되는 인기 쇼를 까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만 이맘때는 NFL 시즌이 한창 때라 이 쇼는 NBC의 ‘선데이 나잇 풋볼’의 시청률에는 밀릴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 쇼의 인기와 영향력은 대단했다.

만일 내가 출연을 해서 ‘선데이 나잇 풋볼’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면 나는 미국 방송 역사에도 이름을 남기게 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 출연 준비에 소홀할 수가 절대로 없었다.

그래서 뭐 그렇다는 거고, 어쨌건 해장도 해야 하니 감자탕 4인분과 해물파전, 매운 낙지볶음과 순대볶음을 배달 시켜 늦은 점심 식사를 하였다.

혼자 먹기에는 대단히 많은 양이지만, 혼자 다 먹을 수 있다.

식사를 끝낸 후에는 며칠 전 받았던 판결문을 다시 봤다.

예전에 한국 기레기가 김호경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어 소설을 써 갈기고, 그걸 지네들 미국 사이트에 게시하여 나의 명예를 훼손했던 것을 미국 법원에서도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었는데,

바로 그 건이었다. 그에 대해 나는 총 3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진행하였고, 그놈들이 합의를 구걸해 왔지만, 당연히 합의는 없었다.

그래서 1주일 전에 판결이 난 1심은 그놈들이 나한테 3억 달러 전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며 나의 승소로 끝났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판결문이었다.

물론 뭐 이게 끝이 아니라 2심, 3심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 판결이 뒤집힐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여전히 계속 꾸준히 악플러를 잡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겁도 없이 악플 달고 까부는 놈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러고 며칠이 지나 11월 4일 토요일이었다.

이날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우승 기념 퍼레이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양키스타디움을 출발해서 맨해튼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로어 이스트 사이드까지 행진을 했는데, 덕분에 이날 맨해튼의 교통은 완전히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행진하는 동안, 우리가 행진하는 곳의 차량 운행은 완전히 통제되었고, 또 약 300만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나와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정말 대단한 열기였는데, 그만큼 뉴욕이라는 도시가, 또 우리 양키스 팬들이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단히 굶주려 있었다.

여담이지만, 1회차 때 2032시즌 내가 양키스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해서 기념 퍼레이드를 했을 때는 무려 50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려 지금보다 더욱더 화려하고 시끄러웠었다.

그때는 우리 팬들이 더욱 더 오래 우승에 굶주려 있었고, 또 긴 암흑기를 보낸 이후라 그만큼 우승에 대한 감동이 더 컸었으니까.

나도 1회차 때 7회, 그리고 이번에 1회까지 여덟 번의 우승을 해봤지만, 그때의 1회차 첫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상대 팀이 다저스였었네?

3차전까지 모두 내준 후 네 경기를 모두 이기며 리버스 스윕을 했었었지.

아. 그리고 참고로 이번 월드시리즈의 흥행은 양키스와 다저스라는 역대급 매치업으로 인해 많은 기대를 모았었는데, 실제로 7차전까지 전 경기가 모두 매진이 되었고, 시청률도 매 경기 20% 이상의 시청률이 나왔는데, 특히 마지막 7차전은 무려 35.9%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이 찍히며 기대대로 역대급의 흥행을 하였다.

그래서 사무국도, 양키스, 다저스 두 구단도, 지금 아주 입이 찢어질 것이다.

어쨌건 그러고 다음 날인 11월 5일에는 좀 당혹스러운 뉴스가 나왔다.

《앙헬로 푸엔테스,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

기어이 앙헬로 놈이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기사의 내용에 의하면 그날 우승 후 뒤풀이 때 앙헬로 놈이 여자를 불렀는데, 그 여자를 호텔로 데려가서 약을 탄 술을 먹여 기절시킨 후 성폭행을 했고, 해당 여성이 앙헬로 놈을 고소했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앙헬로 놈은 내년 1월에 여자친구를 폭행하여 법적인 처벌을 받고 162게임 출장 정지 징계를 받게 되는데, 그 이전에 이런 심각한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물론 뭐 아직 혐의가 정식으로 확정된 건 아니라서 일단은 조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무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우승 후 좋은 분위기에 흙탕물이 튀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11월 8일 백악관 만찬에는 앙헬로 놈은 당연히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월드시리즈 우승팀의 선수 신분으로 백악관에 초청을 받아 왔지만, 앞으로 20년 정도 후에는 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어 월드 시리즈 우승팀의 선수들을 초청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1월 12일. 마침내 이날은 내가 ‘클라라 쇼어의 선데이 나잇 쇼’에 출연하는 날이었다.

밤 10시에 생방송으로 진행이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오후 5시에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리허설을 했다.

이날 부를 노래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곡이었던 ‘Moon River', 이글스의 ‘Desperado’ 세 곡이 최종적으로 선택되었다.

내가 이런 노래들을 부를 것이라고 그 리스트를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넘겼고, 제작진과 상의하여 그중 두 곡을 최종적으로 선택해서 추렸는데, 여기에 원래 리스트에 없던 ‘Desperado’가 제작진의 추천으로 선곡이 되었다.

이미 이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해서 노래를 불렀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밴드와 함께하는 라이브는 확실히 부담된다.

게다가 이 라이브는 차후 라이브 음원으로도 발매가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울K-POP연예예술학교에 다닐 때 보컬 레슨이라도 받아둘 걸 그랬나 보다.

그렇게 두 시간을 리허설을 했고, 이후에 스튜디오에 도착한 메인 MC 클라라 할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 프로그램은 1999년에 처음 방영을 시작한 이후 올해로 24주년이었는데, 클라라 할머니는 24년째 이 프로그램을 지켜오고 있었다.

내가 1회차 때 이 프로그램에 몇 번을 출연하긴 했었지만, 사실 나는 클라라 아줌마가 MC일 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없었다.

올해 64세인 클라라 할머니는 내년에 은퇴하고, 이후에는 사라 파울러라는 여배우가 프로그램을 물려받아 ‘사라 파울러의 선데이 나잇 쇼’가 되는데, 사라도 무려 19년이나 이 프로그램을 지키며, 이 프로그램은 2044년에는 무려 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토크쇼로는 역대 최장기간 방영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르게 된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사라는 바로 클라라 할머니의 딸이었고, 지금은 프로그램의 보조 MC로 출연하며 MC 상속을 준비 중이었다.

어쨌건 생방송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뭐 이미 생방송을 여러 번 해봤기에 특별히 떨린다거나 그런 거는 없었다.

그리고 이윽고 쇼가 시작되었고, 방청객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클라라 아줌마와 사라가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반가워요. 여러분. 오늘도 좋은 밤이에요. ‘선데이 나잇 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4년째 이어지고 있는 고정 인사 멘트 후에 클라라 아줌마와 사라의 잡담이 잠시 이어졌다.

별로 웃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음에도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 좋아. 사라, 우리 잡담은 이제 그만하고, 오늘의 손님을 모셔보자꾸나. 오늘은 대단히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소개에 앞서 우선 이분의 노래를 한 곡 들어보겠습니다. 이분이 준비한 오늘의 첫 곡은 'Desperado'입니다.❞

무대의 조명이 잠시 꺼졌고, 밴드가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내가 무대에 오르자 무대의 조명이 다시 켜졌다.

무대의 조명이 다시 켜지고, 내 모습이 보이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다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 환호와 박수는 노래가 끝난 이후에도 다시 터져 나왔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 쇼에 우리가 모신 손님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을 대표하는 스타죠. 메이저리그의 모든 역사를 새롭게 다시 쓴 태양 왕입니다.❞

클라라 아줌마의 소개 멘트 후에 나는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했고, 드디어 본격적인 토크가 시작됐다.

생방송이었지만, 토크의 질문의 내용은 사전에 준비됐던 대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무난히 토크가 진행됐다.

❝그래서 그놈이 그 몸이 약한 불쌍한 친구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좋은 말로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고 말렸죠. 그런데 이놈이 어디 내 말을 듣습니까? 오히려 우리 엄마를 모욕하더군요. 그걸 어떻게 참습니까? 그래서 순간 욱하는 마음에 펀치를 날렸는데 이 놈이 그대로 나가 자빠져서는······❞

지금은 오성식이를 응징하고 억울하게 학교 폭력 누명을 썼던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학교 폭력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서울K-POP연예예술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거죠.❞

❝태양이 말한 서울K-POP연예예술학교는 수많은 K-POP 스타들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합니다. 그 학교생활은 어땠었나요? 노래를 생각보다 꽤 잘하시던데, 그 학교에서 배운 건가요?❞

❝학교에서는 그 K-POP 스타들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야구부여서 학교 수업도 거의 안 들었었거든요. 학교생활이라······ 학교 야구부 생활은 정말 끔찍했었죠. 아무리 막 창단된 신생팀이라 해도 그렇게 열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팀 운영에 비리까지 있었거든요. 솔직히 별로 유쾌한 기억은 아니네요.❞

그랬다.

서울K-POP연예예술학교 야구부는 그 환경이 정말 열악했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뭐 전에도 그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는 한번 말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 말한 거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서울K-POP연예예술학교 야구부 2년 동안 라면만 먹고 뛰었을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니겠는가?

내가 이런 말 하면 아무도 안 믿는데, 진짜였다.

그것도 경기 당일에도 경기를 앞둔 선수들한테 인당 천원짜리 컵라면을 먹였었다.

서울K-POP연예예술학교의 야구부의 선수들 인원이라 해봐야 총 20명이다.

도시락 업체에서 한 사람당 만원짜리 도시락을 시킨다고 해도 20만원 밖에 안 된다.

그런데, 그 20만원이 아깝다고 경기를 앞둔 선수들한테 인당 천원짜리 컵라면을 먹인 거다.

운영비를 걷어봤자, 그게 다 김덕배 주머니로 갔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

아. 여기서 김덕배는 서울K-POP연예예술학교 야구부의 부장이었다.

선수단에 대한 지원은 개판으로 하고, 뒤로는 야구부 예산을 삥땅치면서도, 사사건건 야구부에 간섭이었고, 심지어 감독의 작전, 선수기용에까지 간섭하는 월권까지 하던 대단히 나쁜 놈이고, 순 도둑놈의 새끼였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임춘애도 아니고, 그런 열악한 대우와 모욕을 받으면서 3년을 견뎠다.

그런 개판인 학교 야구부에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어쨌건 토크는 계속 진행이 됐다.

❝태양은 한국의 언론과 사이가 대단히 안 좋다고 알고 있고, 또 양키스 입단식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을 창녀만도 못하다고 비하하기까지 했었는데요.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이 질문은 대본에 없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클라라 할머니가 이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알 것 같다,

❝네. 아마 클라라도 제 생각에 동의할 것 같은데요?❞

❝네. 동의해요. 오. 맙소사. 한국에서 또 저를 욕하겠군요. 태양, 당신이 나를 함정에 빠뜨렸어요.❞

그 말에 방청석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클라라 할머니도 한국 기레기의 장난질에 크게 당한 적이 한 번 있었다.

예전에 클라라 할머니가 이 쇼에서

“한국의 K-POP은 그 음악을 들어보면 그 음악이 다 그 음악인 것 같고, 개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발언이 한국의 기레기들에 의해

“한국 K-POP 가수들은 성형수술을 심하게 해서 다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것 같고, 누가 누군지 전혀 구분을 못 하겠다.”

이렇게 발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자극적으로 왜곡이 되어서 기사가 도배됐고, 그러자 분노한 한국의 네티즌들이 클라라 할머니의 개인 SNS로 몰려가 악플을 도배해서 결국 클라라 할머니가 SNS를 닫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건이 있었다.

아무튼 웃고 떠들다 보니 한 시간이 벌써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벌써 쇼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자. 벌써 쇼를 마칠 시간이군요. 태양, 오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노래 두 곡을 청하려고 하는데,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 건가요?❞

❝네. 엘비스 프레슬리가 불렀던 ‘Can't Help Falling In Love’ 그리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햅번이 불렀던 ‘Moon River' 두 곡을 준비했습니다.❞

❝태양의 나이에 맞지 않은 참 올드한 선곡이지만,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네요. 그럼 태양의 노래 두 곡을 들으시면서 오늘의 쇼를 이만 마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그리하여 노래 두 곡을 더 불렀고, 2회차의 첫 TV 쇼 프로그램 출연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날 방송의 시청률은 NBC의 ‘선데이 나잇 풋볼’의 시청률을 크게 앞질렀는데, 이는 무려 10년 만이라고 했다.

이로써 나는 미국 방송 역사에도 그 이름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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