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27. 나는 지는 게 싫다. 정말 죽도록 싫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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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나는 지는 게 싫다. 정말 죽도록 싫다.
고인이 되신 보스가 그러셨단다.
“나는 지는 게 싫다. 정말 죽도록 싫다.”
물론 나도 정말 지는 게 죽도록 싫다.
더욱이 보스턴 따위한테 지는 건 더욱 미치도록 싫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4월 6일 경기는 앙헬로의 결정적인 행복 수비로 인해 7:4로 패하고 말았다.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한 나의 활약으로도 팀의 패배를 막을 수가 없었다.
후······
그리고 4월 7일. 3연전의 마지막 경기였다.
오후 1시 경기를 끝낸 후, 뉴욕으로 이동해서 하루 쉬고, 볼티모어, 휴스턴과의 7연전을 치르게 된다.
그래서 오늘 경기는 양 팀의 에이스 게리 콜건과 프레디 샌더슨의 자존심을 건 맞대결이었다.
어제 경기를 놓친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오늘 경기만큼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열한 투수전 끝에 3:2로 경기를 내주고야 말았다.
게리가 7이닝 4피안타 2실점 10K, 샌더슨이 7이닝 6피안타 1실점 9K의 호투를 했지만, 결국 샌더슨이 팀 타선의 지원을 한 점 더 받아서 승리를 가져갔다.
그리고 나도 4타수 1안타 1홈런 1타점으로 침묵하며, 10할이었던 타율을 7할 6리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라이벌 팀과의 원정 3연전에서 루징 시리즈를 기록했기 때문일까?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의 분위기는 다소 처져있었고, 적막과 고요만이 가득했고, 나서서 장난을 친다거나 떠들 엄두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후 여덟 시에 뉴욕에 도착해서 해산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맥주 열 캔을 사서 가서 그것을 다 마시고 잠을 잤다.
맨정신으로는 분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오전 12시에야 기상했다.
집에서 0.9마일(1.6㎞) 정도를 걸어서 Obao Noodles & Bbq라는 베트남 요리 전문점으로 가서 베트남 쌀국수로 아침 식사 겸 해장을 했다.
밥을 먹은 후에는 택시를 잡아타고 구장으로 이동했다.
술 마신 다음 날은 웬만하면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이동 중인데, 기사가 운전하면서도 틈틈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혹시, 태양 왕 맞죠?”
역시 나를 알아본 것이다.
아까 식당에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택시 기사가 나를 알아볼 줄은······
“네. 안녕하세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좋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메츠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기사는 양키스 팬이 아니라 메츠 팬인 것 같았다.
뭐 그래도 나를 알아봐 준 팬인데, 그런 티를 낼 수야 있나.
“감사합니다.”
사인까지 해줬고, 사진도 찍어줬다.
나의 이 팬서비스로 이 사람이 양키스 팬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또 이 사람이 양키스 팬이 아니라고 해도, 어쨌건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팬이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설령 저 사람이 보스턴의 팬이었다고 해도, 내가 아무리 보스턴이라는 팀을 혐오한다고 해도, 저 사람이 날 알아본 이상 무조건 사인을 해줬을 것이다.
팬이 있어야 프로 스포츠가 있는 거고, 팬이 있기에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돈을 벌며 먹고 산다.
어떤 농구 감독이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너희들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데에도 대접받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팬들한테 잘해야 한다.”
백 번, 천 번, 만 번, 옳으신 말씀이다.
나는 팬들에게 정말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또 팬서비스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팬서비스를 정말 개판으로 하는 선수를 보면 대단히 안타깝다.
한국에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전부 팬서비스가 좋다는 오해를 많이 하는데,
사실 한국에 비해 이게 크게 부각되고, 공론화되질 않아서 그렇지, 여기 메이저리그도 팬서비스가 개판인 선수가 수두룩하게 많다.
그 옛날에 알버트 벨 같은 선수는 관중에게 공을 집어 던져 갈비뼈에 금을 가게 만든 적이 있었고,
전설의 약쟁이 호세 칸세코는 10살짜리 꼬마 팬한테 사인을 대가로 금품을 갈취한다거나, 사인을 요청하는 팬한테 ‘꺼져라. 새끼야.’라고 폭언을 한다던가,
당장 얼마 전에 양키스에서 쫓겨난 산티아고 놈만 봐도 관중에게 손가락 욕을 하지 않았던가?
이 선수들이야 뭐 워낙 행실이 막장이었던 선수들이라 뭐 그렇다 쳐도,
아무튼 뭐 내 말은 메이저리그라고 팬서비스가 무조건 좋은 선수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가 은퇴하기 1년 전이었던 2042시즌에 당시 메이저리그서 막 떠오르던 신성인 앤디 브로드웨이라는 선수가 이런 인터뷰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남는다.
“열 살 때 저는 다저스 팬이었고, 피터 그리펜이라는 선수는 어린 저의 영웅이고 우상이었습니다. 하지만 2028년 5월 17일 이후로 피터 그리펜이라는 선수는 더는 저의 우상,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제 인생의 목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LA 다저스와 저 거만한 피터 그리펜을 깨부수는 것이 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영웅이자 우상으로 여기는 어린이 팬들한테 제가 피터 그리펜으로부터 받은 그런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하루에도 백만 번씩 다짐합니다.”
상당히 당찬 친구였는데, 오죽 한이 맺혔으면 인터뷰서 그런 말을 했겠는가.
그리고 어떤 축구 선수가 팬서비스를 엉망으로 하는 동료에게 이런 일침을 날린 적이 있다.
“팬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걸 명심해라. 대부분의 팬들은 앞으로 평생 너희와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마주 볼 일은 없을 거다. 아마 본다고 해봐야 30초 정도가 고작이겠지. 그 30초 동안 너희가 그 사람들에게 평생 남을 인상을 심어주는 거다. 매번 우리를 응원해주러 와주는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냥 우리가 가볍게 웃으며 사인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 있다. 그게 싫다고 그냥 평생 개새끼로 남고 싶으면 그 판단은 네 몫이다.”
양키스에도 팬서비스가 안 좋은 선수들이 많았고, 그런 선수를 볼 때마다 안타까워서, 한때는 나도 그 선수들에게 이런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 잔소리도 결국 어느 순간부터 안 하게 되더라.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는데, 그놈들이 그냥 평생 개새끼로 남고 싶다는데, 나 혼자 입 아프게 떠들어 봐야 뭐하겠는가?
어쨌건 뭐 그렇다는 거고, 택시 기사는 내가 자신의 택시에 타준 것이 일생의 영광이라며 택시 요금을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요금을 내려 해도,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 어쩔 수 없이 공짜 택시를 타게 됐다.
택시에서 내려서 주차장을 통해 구장에 들어가려는데, 앙헬로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이미 운동을 끝내고 나오는 것 같았다.
“태양, 출근이 늦네? 롤스로이스는 어쩌고 택시를 타고 와?”
“어젯밤에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음주운전 할까 봐 놓고 왔어.”
“뭐야?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너야 너.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루징 시리즈를 당한 것이 원통하고 분해서 잠이 안 와서 마셨다.
왜? 불만 있어?
“다음에 술 마실 일 있으면, 혼자 마시지 말고, 불러 달라고. 얼마든지 같이 마셔줄 테니.”
“알았어.”
“그럼, 수고하라고.”
앙헬로가 자신의 그 멍청한 포드 F150 랩터를 타고 사라졌고, 나는 옷을 갈아입고 웨이트실로 향했다.
여러 선수가 이미 와서 운동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제일 늦게 구장에 도착한 것 같았다.
웨이트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까 오후 네 시였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하려는데, 카를로스가 실내 연습장 방향으로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혼자 남아서 연습 배팅을 할 모양이었다.
간신히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됐고,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지만, 개막 이후 계속 좋지 않은 타격감을 보이고 있던데다, 특히 4월 6일, 4월 7일 경기는 합계 8타수 무안타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렇게 노력을 한다고 슬럼프에서 벗어나지는 것도 아닌데, 참 딱하다.
슬럼프라는 것은 누구에게든 온다.
타자 슬럼프가 찾아오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체력이 떨어졌다거나, 혹은 야구 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이 생겨 야구에 집중할 수 없을 때, 아니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정신적인 압박을 받을 때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져서 소심해졌을 때도 슬럼프는 찾아온다.
심지어는 컨디션이 지나치게 좋을 때도 슬럼프가 올 수도 있는데, 현재 상태가 너무 좋아서 폼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면 그게 반대로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무리하게 장타를 욕심내다가 스윙이 커져서 타격 폼이 무너지기도 한다.
또한 타자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가 너무 많이 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거나 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많은 연습을 하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된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지금의 카를로스는 심리적으로 좀 위축이 되어 있을 뿐이지, 스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의 슬럼프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다.
그런데 지금 이놈이 연습 배팅을 하는 것을 잠깐 보니까, 원래 타격 폼을 바꿔가며 스윙을 하는 것이었다.
음······
아무래도 저놈 슬럼프가 좀 오래 갈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조언하는 것도 쓸데없는 오지랖이고, 또 녀석도 별로 반기지는 않을 테니, 그냥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데렉이 알아서 조처하겠지.
그것보다 나는 집에 가서 차를 가지고 나와 다시 공항에 가야 했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녁 여섯 시에 뉴욕에 도착하신다.
그래서 컬리넌이 아닌 사이버트럭을 타고 픽업하러 공항에 갔다.
컬리넌은 4인승이라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두 태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이버트럭을 끌고 간 것이다.
참고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연세는 올해로 65세시고, 2044년에도 정정히 살아계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장충동에서 족발집을 하신다.
장충동 족발골목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인 ‘평안도 왕족발’이 두 분이 운영하시는 족발집이다.
원래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평양에서 족발 장사를 하셨다는데, 증조할아버지가 해방 이후 월남하셔서 장충동에 자리 잡으신 이후 할아버지가 가게를 물려 받으셔서 지금에 이르고 있고,
나중에 할아버지 이후에는 고모들이 가게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때 상속을 두고 큰고모랑 둘째 고모랑 싸우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사실 내가 족발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고, 많이 먹을 때는 1주일에 네~다섯 번을 먹었던 사람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 족발보다 더 맛있는 족발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어쨌건 가족들을 픽업하고, 밖에서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9시였다.
그렇게 휴일이 지나갔고, 4월 9일 일요일이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홈 3연전의 첫날.
홈 개막전이었다.
홈 개막전인 만큼 오늘 경기는 반드시 승리를 가져와야 한다.
이날은 마리아노 리베라가 홈 개막전 시구를 위해 양키스타디움을 찾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HOF 100% 득표자.
약쟁이 때와는 달리 모두가 그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반갑다. 네가 태양이구나. 너의 활약 잘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한 좋은 활약을 기대하마.”
“고마워요. 마리아노”
덕담을 듣고는 악수를 했다.
이윽고 경기 시간이 되었고, 식전 개막 행사와 함께 마리아노가 마운드에 올라오자 관중석 여기저기서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았던 커터가 재현되었다.
“와우. 마리아노는 지금 다시 현역 복귀해도 될 것 같아. 대단한데?”
“역시 마리아노는 마리아노야. 세상에······”
더그아웃에서도 감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음······
확실히 내가 봐도 지금 당장 마리아노가 와서 던져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몇 명보다는 더 잘 던질 것 같긴 하다.
어쨌건 오늘 경기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
1. T.J. 르몽드 2B
2. 왕태양 DH
3. 제임스 저스티스 RF
4. 마이크 스켈튼 LF
5. 오스왈도 캄포스 SS
6. 루이스 카루소 3B
7. 에릭 빈스 1B
8. 케빈 사네즈 C
9. 카를로스 오테로 CF
P. 도니 클라우드
***
***
1. 짐 벨에어스 CF
2. 닉 가이슬러 LF
3. 스티브 팔켄버그 RF
4. 웨스 다이아몬드 1B
5. 페데리코 살가도 DH
6. 펠릭스 바르가스 3B
7. 마크 로저스 SS
8. 엘로이 시슬러 C
9. 호라시오 인판테 2B
P. 라이언 맥베스
***
카를로스가 결국에는 9번까지 강등이 되고야 말았다.
음······
이건 더 좋지 않은데?
안 그래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심리적으로 큰 압박을 느끼고 있는 놈을 타순 강등까지 시켜버리면 더욱 쫓기게 될 건 자명한 일 아닌가.
당장 여론부터가 카를로스의 타순을 내리거나, 선발 라인업에서 빼야 한다고 난리이다 보니 결국 감독도 여론을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이게 카를로스한테 어떤 영향을 줄지······
뭐 사실 팬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게, 나야 뭐 카를로스가 어떤 선수가 될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알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카를로스의 타격에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카를로스의 미래를 모르고 있다고 가정하고, 누가 나한테 저놈이 미래에 500홈런-3000안타 타자가 될 거라고 말한다면, 그걸 어떻게 믿겠는가?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냥 도태되는 거고.
어쨌건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 같은데, 도니는 비록 다섯 점이나 내주긴 했지만 5이닝 8피안타 3사사구 5실점으로 어쨌건 5회는 버텼다.
그리고 나는 홈런은 치지 못했지만, 5타석 4타수 2안타 4타점 1볼넷, 두 개의 2루타를 기록하였고, 나의 맹활약에 힘입어 팀은 12:7로 승리를 거뒀다.
카를로스를 뺀 선발 라인업의 모든 타자가 안타를 기록하였고, 카를로스만 4타수 무안타였다.
모두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퇴근하려 할 때, 카를로스만 계속 그대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카를로스, 그러고 집에 갈 건가?”
데렉이 카를로스를 보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요. 전 남아서 자정까지 연습 좀 더 하고 갈 겁니다.”
오늘 경기가 15시 10분에 시작됐고, 지금 시각은 막 일곱 시가 넘었다.
그런데 자정까지 남아서 연습을 하겠다니······
확실히 보통 독종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 텐데······
“태양, 넌 왜 안 가고 다시 왔지?”
“라커에 핸드폰을 두고 와서 찾으러 왔습니다.”
그랬다.
나는 제일 먼저 씻고, 제일 먼저 옷을 갈아입고, 차에 탔는데, 핸드폰을 라커에 두고 온 것을 알고는 핸드폰을 찾으러 다시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다시 나가려는데,
“좋아. 태양, 너한테 내가 묻겠는데, 너는 카를로스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지?”
뜻밖에도 데렉이 나한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너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카를로스에게 문제점을 조언해 주는 것보다 동료인 네가 직접 말해주는 것이 카를로스에게 더 와닿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음······
대체 데렉이 무슨 생각인 걸까?
“알고는 있지만 말 못 합니다.”
“그러지 말고 말해보게. 동료 아닌가.”
“말하면 카를로스가 고깝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내가 아는 카를로스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글쎄?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카를로스, 네 생각은 어때?”
카를로스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지 말고 말해봐. 카를로스가 네 말을 듣고 내일 안타를 친다면 너한테도 좋은 거잖아.”
“좋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현재 카를로스에겐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찾을 수 없고, 심리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끼며 쫓기고 있고, 위축되어 있다보니 좋은 타격을 할 수 없는 겁니다. ”
“제대로 봤군, 역시 똑똑해.”
데렉 정도 되는 코치가 카를로스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를 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만, 하도 저리 귀찮게 매달리니 결국 말하고야 말았다.
“태양의 말대로야. 카를로스, 현재 너의 타격에서 기술적으로 잘못된 부분은 전혀 없으니까 굳이 여기서 더 연습할 필요가 없어. 가서 쉬라고.”
“하지만,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습니다. 이대로라면 저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카를로스, 잘 들어. 타격이란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이야. 그리고 열 번 중에 세 번만 성공해도 사람들에게 좋은 타자라고 칭찬을 듣지. 열 번 중에 무려 일곱 번을 실패했는데도 말이야. 그만큼 타격이라는 것이 어렵다는 거야. 열 번을 다 잘 치려고 욕심을 낼 필요는 없어. 단순하고, 편하게 생각하라고.”
데렉이 항상 타자들에게 강조하던 말이었고, 정말 귀에 딱지가 날 정도로 지겹도록 자주 들었던 말인데, 지금 또 들었다.
물론 뭐 말이야 백번, 천 번 옳은 말이고 명언이지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안타를 때려내느냐 보다 어떻게 때려내느냐가 더 중요하죠.”
“좋은 말이군. 누구한테 들은 건가? 한국에서 들은 건가?”
“글쎄요?”
물론 데렉한테 들은 말이다. 1회차 때의 데렉.
“뭐. 좋아. 이렇게 하지. 카를로스. 오늘부터 앞으로 3일간 경기 외에는 절대로 방망이를 잡지 말도록 해. 그리고 요새 매일 일찍 나오던데, 경기장에 일찍 나올 필요도 없어. 딱 3일만 내 말 듣고 그렇게 해보라고. 확실히 좋아질 거야.”
음······
확실히 좋은 처방이긴 하다만, 과연 효과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