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구 천재가 마력을 얻어 회귀하면 생기는 일-15화 (15/104)

〈 15화 〉 15. ❝이건 진짜 미쳤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15. 이건 진짜 미쳤습니다.

나의 연타석 홈런으로 점수는 다시 6:5로 역전이 되었고, 나는 세 번째 타석에서 교체되었다.

이후 경기는 우리 팀의 리드가 끝까지 유지된 채 9:6으로 우리 팀이 승리를 가져오며, 기분 좋은 2연승을 거두었다.

그래서 시범 경기 두 경기 동안 나는 4타수 4안타 4홈런 9타점 타율 1.000, 출루율 1.000, 장타율 4.000, OPS 5.000의 타격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가고, 2월 27일 월요일이 되었다.

오늘부터는 각 팀의 주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잠시 팀을 이탈하게 된다.

3월 9일부터 3월 23일까지 열리는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문이다.

사실 WBC라는 대회 창설 초창기만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각 팀은 WBC라는 대회에 대단히 부정적이었고, 또 선수들의 WBC 참가를 막기도 하였지만,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가 새로 바뀌면서 새 커미셔너가 야구의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선수들이나 구단이 WBC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구단이 대놓고 적극적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참가를 막는 경우는 거의 찾기 힘들게 되었다.

물론 뭐 그렇다고 해서 구단이 선수들의 WBC 참가를 반기는 건 또 절대로 아니지만.

아무튼 지난 2017년 대회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미국 대표팀은 대회 2연패를 위해 이번에도 스타급 선수들을 대표팀에 차출하였다.

그리하여 양키스에서는 제임스 저스티스와 마이크 스켈튼이 미국 대표팀으로 WBC에 참가하고, 오스왈도 캄포스가 베네수엘라 대표팀에 참가하며 잠시 팀을 이탈하게 된다.

에이스 게리 콜건은 미국 대표팀의 참가 제안을 받고도 고심하다가 결국 참가를 포기했는데,

아무래도 야수와 달리 투수는 부상 위험 때문에 아직도 WBC 참가를 기피하는 분위기고, 결정적으로 게리와는 철저한 앙숙인 트레비스 바우더가 참가를 결정했다는 것이 게리가 참가를 거절한 이유였다.

그래서 그 와중에

***

@TravisBauder

내 생각에 겁쟁이 게리는 조국의 명예와 영광보다 자기 개인의 돈벌이와 영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나는 그런 놈은 미국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

라는 트래비스 바우더의 SNS 멘션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모 축구 감독의 명언이 다시금 1승을 거두었는데,

게리는 저 멘션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그냥 무시로 일관했고,

그래서 사태는 더는 확산하지 않은 채, 그저 바우더는 역시 또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어야 했지만,

***

@AngelOviedo

트레비스, 조국을 대표하게 된 것을 축하해. 조국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너의 어깨와 팔꿈치를 바치길 기도할게. 너의 앞날에 부디 행운이 있기를······

@TravisBauder

@AngelOviedo님에게 보내는 답글

실패한 선수가 열등감에 부들대는 거 잘 봤어. 너는 WBC  대표팀에 뽑힐 실력이나 됐었냐?

***

앙헬 오비에도라는 은퇴한 선수가 트레비스의 SNS 멘션을 보고, WBC서 부상이나 당하라는 식으로 저주의 조롱을 하자, 이에 욱한 트레비스 바우더가 또다시 그 선수를 비꼬고 놀리면서, 싸움이 이쪽으로 엉뚱하게 옮겨붙었다.

앙헬 오비에도라는 선수는 트레비스 바우더의 말마따나 MLB에서 철저히 실패한 선수였고, 2021시즌을 마지막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현재는 마이너리그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트레비스와 앙헬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함께 뛰던 시절,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는데,

트레비스 바우더라는 저 아저씨는 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았기에, 저 아저씨를 싫어하는 선수가 그토록 많은지 모르겠다.

물론 뭐 이번 사건은 선수보고 부상이나 당하라고 저주를 하는 앙헬 오비에도라는 실패한 전 선수의 SNS 멘션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거긴 했다만.

다시 말하지만, SNS는 인생의 낭비다.

인생에서 SNS 말고 할 게 얼마나 많은가?

그 시간에 책을 더 읽는다던가, 밖에서 논다던가,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하는 그 귀한 시간에 그런 쓸데없는 일을 왜 하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뭐 그렇다는 거고, 기존 선수들이 잠시 이탈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무쪼록 그들이 노력이 결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상대 팀은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고든 M 스테인하우어 필드에서 홈경기로 펼쳐지며, 내가 선발 투수로 등판한다.

애초 팀에서는 나를 5선발로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로드리고와 산티아고의 상태가 영 좋질 않은 상황인지라 아무래도 3선발을 맡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

1. T.J. 르몽드 2B

2. 앙헬로 푸엔테스 1B

3. 브라이언 게인즈 CF

4. 카를로스 오테로 RF

5. 루이스 카루소 3B

6. 케빈 사네즈 C

7. 로건 덤브릴 LF

8. 에릭 빈스 DH

9. 해리 코니즈 SS

P. 왕태양

***

***

1. 마이클 블랙 CF

2. 시드 하스 LF

3. 파블로 리라 1B

4. 패디 킨슬러 3B

5. 얀디 퀸테로 RF

6. 에드윈 크리브다 DH

7. 랜디 크로닌 C

8. 야디에르 로비라 SS

9. 헤수스 곤잘레스 2B

P. 마이크 크로포드

***

양키스도 마찬가지겠지만, 피츠버그도 대부분 유망주 선수들로만 선발 라인업을 꾸렸는데, 이들 중 특히 시드 하스, 패디 킨슬러, 마이크 크로포드는 훗날 메이저리그를 호령하게 되는 대스타다.

또 물론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대부분의 선수들은 트레이드, FA 등의 이유로 피츠버그에 끝까지 머물지 못한다.

“플레이 볼.”

어쨌건 원정팀 피츠버그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날도 여전히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주셨다.

역시 선수는 관중이 많이 들어와야 더 힘이 난다.

상대 팀의 첫 타자는 마이클 블랙이었다.

메이저에서는 결국 자리를 못 잡고, 결국 KBO의 인천 파이어드래곤즈를 거쳐 NPB의 한신 타이거즈,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하게 되는 선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대단히 쉬운 타자라는 이야기다.

일단은 왼손으로 투구하기 위해 오른손에 글러브를 꼈다.

블랙은 스위치 히터라 오른쪽 타석에 들어섰다.

메이저리그 룰에 의하면, 스위치 피처와 스위치 히터가 서로 대결할 때는, 투수가 먼저 자신의 투구 방향을 선택하여 마운드에 올라야 하고, 그 후에 타자가 자신의 타격 방향을 결정한다.

그리고 결정이 모두 완료되었으면, 해당 타석에서는 결정한 방향으로만 투구/타격을 해야만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투수가 부상을 당한 경우에는 타석 중간에 투구 방향을 변경할 수 있다.

일명 ‘밴디티 룰’이었다.

그러나 이 룰은 만들어지고도 MLB에서 사용되는 일이 대단히 드물었는데, 이 룰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 펫 밴디티라는 투수가 일단 메이저리그서 꾸준히 던지는 투수가 아니었고, 더욱이 그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스위치 히터와 대결한 경우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참고로 메이저리그의 스위치 피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면,

우선 라이브볼 시대 이전의 데드볼 시대였던 1882년 토니 멀런이라는 선수가 경기 도중에 한 번 양손 투구를 시도했던 게 최초였고, 이후에 1884년에 래리 코크런, 1888년에 엘튼 체임벌린, 그리고 조지 휠러라는 투수가 경기 중 양손 투구를 시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라이브볼 시대 이후 그렉 해리스가 1995년 9월 28일. 딱 한 경기에서 양손 투구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의 투수들은 사실 본격적인 스위치 피처라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고,

최초의 본격적인 스위치 피처가 바로 위에 언급한 팻 밴디티라는 투수고, 이 투수도 메이저리그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고, 그래서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사실상의 두 번째 스위치 피처다.

물론 나는 팻 밴디티처럼 실패한 스위치 피처가 아니고, 성공한 스위치 피처가 될 것이다.

뭐 어쨌건.

“스윙.”

❝와우. 106.2마일, 3339rpm. 인간의 힘으로 이런 공을 던질 수도 있는 거네요. 그 주인공은 앞선 두 경기에서 무려 네 개의 홈런을 때려낸 태양 왕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태양 왕은 오타니 슈헤이처럼 투타 겸업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오른손으로도 최대 106.2마일을 던질 수 있는 스위치 피처라고 합니다. 이 선수가 과연 인간이 맞기는 한 걸까요? 그 힘과 재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정말 대단합니다.❞

초구는 106.2마일(170.9㎞), 3339rpm의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갔고, 블랙은 106.2마일의 하이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한 채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볼.”

❝방금은 싱커였는데요. 저 싱커도 무려 106.1마일에 2954rpm이 찍혔습니다. 정말 대단한 위력입니다.❞

2구는 바깥쪽으로 낮게 떨어뜨린 106.1마일(170.75㎞), 2954rpm의 싱커였지만, 아쉽게도 상대 타자의 배트가 따라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따악.’

❝3구는 몸쪽 낮게 들어온 101.1마일의 컷 패스트볼을 커트해 냈습니다. 볼 카운트는 1-2. 컷 패스트볼이 무려 101.1마일이 나왔군요. 이건 진짜 미쳤습니다.❞

3구는 101.1마일(162.7㎞), 3216rpm의 커터가 커트 당했지만, 어쨌건 1-2, 투수에게 유리한 볼 카운트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4구. 높은 공에 다시 헛스윙하면서 마이클 블랙이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105.2마일, 3048rpm이었네요. 놀라운 게 저런 공이 제구까지 제대로 되고 있습니다. 이건 뭐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네요.❞

105.2마일(169.3㎞), 3048rpm의 포심 패스트볼이 다시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갔고, 그렇게 무난하게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어서 상대할 타자는 시드 하스.

리그 상위권의 슬러거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커리어 통산 2209안타, 458홈런으로 뭔가 2% 부족한, 어중간한 성적을 남긴 채, 용두사미로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는데,

2044년 시점에서는 HOF 투표 재수에서 득표율 52%를 받았었으니, 아마 한 7~8수만 하면 이 친구도 HOF에 들어갈 수 있지 않았었을까 싶다.

이 친구는 우타자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투구를 하기 위해 왼손으로 글러브를 바꿔 꼈다.

그리고.

“볼.”

❝몸쪽으로 높은 공이 들어왔지만, 배트가 나오지 않았고,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른손으로 던진 공도 105.5마일, 2997rpm이군요. 정말 무지막지한 구위인데, 한편으로는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부터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네요.❞

물론 뭐 그래봤자, 아직은 상대하기 쉬운 타자긴 하지만, 그래도 앞의 마이클 블랙과 비교하면 공을 좀 더 잘 보고, 참을성이 있다.

방금의 105.5마일(169.8㎞), 2997rpm의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온 패스트볼도 마이클이었다면 분명 방망이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시드는 이 공에 배트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볼이 되고 말았다.

초구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했는데, 뭐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이기리라는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테니 이에 동요하지 않는다.

❝배트가 두 동강이 났고, 땅볼 타구가 됐습니다. 투수가 직접 잡아서 1루에 던져 타자 주자를 아웃시킵니다. 105.4마일의 싱커였네요.❞

2구는 105.4마일(169.6㎞), 2911rpm으로 몸쪽 낮게 떨어뜨린 싱커로 땅볼을 유도해 냈고, 그렇게 내 의도대로 투수 땅볼을 만들어 내며 빠르게 아웃 카웃트를 올렸다.

이어서 상대할 타자는 파블로 리라.

지금이야 피츠버그 팜에서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라지만, 이후 공갈포로 전락해서 NPB로 가게 되는 실패한 선수가 된다.

그리고.

“스윙.”

“스윙.”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3구도 똑같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에 또다시 헛스윙하며 파블로 라라가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시범경기 첫 등판, 메이저리그 첫 실전 등판에서 첫 이닝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태양 왕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파블로 라라는 고맙게도 바깥쪽 낮은 코스로 던진 105.6마일(169.9㎞), 104.7마일(168.5㎞), 104.9미일(168.8㎞), 포심 패스트볼 세 개에 연속으로 헛스윙을 해주며 삼구삼진을 당해주었다.

그래서 1이닝 2K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봐. 태양. 첫 경기서부터 그렇게 무리할 필요는 없어. 힘을 빼고 편하게 던져도 돼.”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니 아담이 나에게 말을 하였다.

사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는, 아담은 나에게 말도 제대로 걸지 않았을 정도로 나는 아담에게 완전히 찍혀 있었는데,

그런 그도 어제와 그제 나의 타석에서의 활약을 보고 마음이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았다.

“그렇게 힘을 실지는 않았는데요.”

설마 이렇게 말대답을 했다고, 아담에게 다시 찍히지는 않겠지.

나는 아담의 속이 그렇게 좁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글쎄? 나나 키스, 여기 있는 모두가 보기에는 별로 그렇게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물론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상관하지 않겠어. 다만 그렇게 무리해서 페이스를 끌어 올리다가 다쳐도 아무도 책임져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 명심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뭐. 마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절대로 지치지 않고, 또 다치지도 않는다고 말해줘 봐야 절대로 믿지 않을 테니, 그냥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놔둘 수밖에.

뭐 어쨌건 1회 말 양키스의 공격.

상대 팀의 선발 투수인 마이크 크로포드도 이후 비록 사이 영 상 수상 경력은 없지만, 꾸준히 수상권에 들면서 리그 정상급의 선발 투수로 우뚝 서게 되는 투수다.

2022시즌엔 5월 이후 첫 콜업되어 155와 3분의 2이닝을 던졌고, 12승 10패에 4.57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오스카 페르난데스와 라이벌로 비교되었다.

훌리오 놈은 자기가 오스카의 라이벌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오스카의 라이벌은 따로 있었다.

물론 냉정히 말해서 마이크도 오스카와 라이벌로 비교되기에는 작년 시즌 성적도 그렇고, 이후 커리어 누적에서도 그렇고, 분명히 처지는 것이 맞다.

아예 두 투수를 비교하는 것이 오스카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오스카가 사이 영 상을 세 번을 타게 되지만, 마이크는 사이 영 상을 한 번도 못 타본 거에서 종결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스카와 마이크는 이후에 한 팀에서 같이 뛰게 된다.

라스베이거스 워리어스에서 두 투수가 원투펀치를 이루게 된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라스베이거스 워리어스는 새로 창단한 신생팀이 아니라, 지금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결국 연고이전을 단행하여 라스베이거스 워리어스가 된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시 차원에서 MLB 팀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나 신생팀 창단으로 인한 리그 확장은 2044년까지 없었고, 그때까지도 MLB는 계속 30 구단 체제로 유지되니, 결국 기존 팀들의 연고지 이전밖에는 방법이 없었는데,

그래서 라스베이거스가 꾸준히 노리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지역의 계속되는 홀대에 결국 백기를 들고 2030년에 연고지 이전을 선택하게 된다.

2030년이 될 때까지 그 열악한 오클랜드-앨러메다 카운티 콜리세움을 계속 썼으면 말 다 한 거 아니겠는가?

가난한 스몰마켓 팀이었던 애슬레틱스는 워리어스가 된 후 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한 연고 이전과 함께 상당한 관중을 끌어모으며, 빅 마켓 팀이 되었고, 오스카 페르난데스와 마이크 크로포드를 한 번에 지른 것이다.

한편 애슬레틱스마저 오클랜드를 떠나자, 오클랜드라는 도시에는 스포츠팀이 한 팀도 남지 않게 되었고, 그때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클랜드시에서는 MLB 구단을 다시 유치하고 싶다고, 워리어스에 새 구장 지어줄 테니 제발 다시 돌아와 달라고 징징댔지만, 버스가 이미 지나간 것을 어쩌겠는가?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MLB 사무국의 또 하나의 골칫거리이던 탬파베이 레이스는 뭐 샬럿이나 몬트리올로의 이전 떡밥이 꾸준히 돌긴 했지만, 결국에는 탬파베이를 탈출하는 데는 실패한다.

여긴 뭐 그나마 다행히도 탬파에 새 구장을 짓긴 했다만.

여기서 잠시 썰을 하나 더 풀자면, 사실 1회차 때 나도 커리어 말년에 라스베이거스 워리어스로 트레이드될 뻔했었다.

그때가 2040년, 내 나이 36세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일단 라스베이거스는 내가 태어난 내 고향이었고,

또 라스베이거스 하면 또 유흥의 도시 아니겠는가?

그만큼 즐길 거리가 많고, 나랑은 대단히 잘 맞는 도시였으며. 게다가 라스베이거스에도 내 별장이 있었다.

구단주까지 나서서 제발 와달라고 적극적으로 사정했었고, 그래서 내가 동의만 하면 트레이드가 되는 거였지만, 고심 끝에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다.

무엇보다 양키스 원클럽맨으로 은퇴하고 싶은 열망이 컸었고, 또 홈팬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트레이드를 추진한단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에는, 그야말로 생지옥도가 펼쳐졌는데,

좀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그 당시의 뉴욕은 거의 폭동 직전이었다.

심지어 당시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양키스 구단을 비난했을 정도였으니.

내가 여배우 주디 코스텔로가 미래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고 말한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있을까?

아마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그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스캔들 메이커, 파티 걸이 진짜로 미국 대통령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던 이래 가장 황당한,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참고로 그 아줌마는 파티 자리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고, 나한테 끈덕지게 추파를 던졌지만, 내가 아무리 여자를, 그것도 창녀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연상은 절대로 내 취향이 아니다.

우리 엄마가 1982년생인데, 그 아줌마랑 동갑이다. 엄마뻘 아줌마랑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나?

그 아줌마 딸 도로시도 나한테 정말 끈덕지게 달라붙었었는데, 만일 내가 도로시랑 결혼했으면 미국 대통령 사위가 되는 거였다.

물론 뭐 그렇다고 해서 아깝다거나 그런 건 뭐 전혀 없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여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고, 또 도로시라는 애는 원나잇 파트너면 몰라도, 배우자로서는 대단히 부적절한 애였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