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 솔직히 너무 재수 없어 보인다는 거 알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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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솔직히 너무 재수 없어 보인다는 거 알지?
2023년 2월 22일.
스프링캠프 시작 1주일째.
오늘은 팀의 야수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는 날이다.
지금까지의 스프링캠프가 예비 과정이었다면 오늘부터가 이제 진짜 스프링캠프라 할 수 있었다.
이제 3일 후에 바로 시범경기가 시작된다.
초청 선수 신분인 나로서는 일단, 이 시범경기에서 나 자신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여야 시즌을 MLB에서 시작할 수 있다.
1회차를 포함해 여태껏 내가 치러본 스프링캠프 중, 1회차의 2025, 2026시즌의 스프링캠프 이후 이번 스프링캠프, 이번 시범경기가 가장 중요한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였다.
어쨌건 오늘도 오전 6시에 일어나 웨이트와 필라테스로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실 어차피 나는 지치지도, 다치지도 않는 금강불괴기 때문에 굳이 웨이트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웨이트를 꾸준히 계속하는 것은 순전히 미용을 위해서였다.
살이 찌는 것은 마력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할 이유가 없어도, 또 하기 싫어도 웨이트는 꾸준히 해줘야 한다.
이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근육질 몸매는 계속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라이브 피칭, 라이브 배팅, PFP(Pitcher Fielding practice)가 진행되고, 내일부터 시범경기 전까지는 연습경기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다.
투타를 겸업하는 나는 라이브 피칭을 마친 후, 라이브 배팅까지 해야 한다.
일단 내가 제일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세 명의 타자를 상대하는데, 첫 번째로 상대할 타자는 카를로스 오테로.
2022년 BA에서 발표한 MLB 유망주 랭킹 탑100에서 6위, 팀 내 랭킹 2위에 오를 정도로 양키스 팜에서 가장 기대받는 유망주였다.
1회차 때는 전체 5위, 팀 내 1위였지만, 2회차에서는 나의 존재로 인해 한 순위 뒤로 밀린 것이다.
그리고 기대대로 카를로스 오테로는 HOF 급 레전드로 성장한다.
커리어 통산 500홈런을 쳤고, 3000안타를 때려내며 나와 함께 양키스 타선을 이끌었다.
그렇지만 사실 나와 카를로스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카를로스는 중남미 선수답지 않게, 좋게 말하면 대단히 모범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따분하고 고루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성격적으로 나랑은 전혀 맞지 않았다.
또. 결정적으로 카를로스가 저런 누적 스텟을 기록하고도, 나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던 것, 그래서 카를로스가 나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많이 느꼈던 것이 우리 사이가 안 좋았던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었다.
카를로스는 나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었지만, 미안한 말인데, 사실 애초에 나는 카를로스 따위는 전혀 안중에 두질 않았었다.
어떻게 감히 저따위가 감히 나랑 라이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뭐 그렇다는 거고, 아무튼 첫 라이브 피칭의 첫 타자부터 쉬어가는 타자가 나왔다.
대체 나를 뭐로 보고 이런 배정을 한 건지.
최소한 마이크나 제임스 정도는 돼야 상대할 맛이 나지. 이건 뭐.
어쩌면 이 라이브 피칭으로 카를로스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원래대로라면 카를로스는 이번 시즌 7월에 처음으로 MLB에 콜업이 된다.
하지만 이 라이브 피칭 결과가 반영이 돼서 혹시 콜업이 늦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적당히 봐주면서 할 수도 없다.
어쨌건 나는 코칭스태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아담에게 찍혀 있지 않은가.
포수인 케빈 사네즈외 사인을 교환했다.
몸쪽 높은 코스의 사인이 나왔다.
마운드에 올라오기 전에 이미 내가 좋아하는 코스를 말해주고, 의견을 교환했기 때문에, 여기서 의견충돌이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카를로스는 좌타자였지만, 나는 왼손에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내 글러브는 양손 투구를 하기 위해, 오른손, 왼손으로도 다 쓸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글러브다.
참고로 헬멧도 특별히 더블플렙 헬멧으로 준비를 해뒀는데, 사실 원래 스위치 히터도 더블플렙 헬멧은 잘 안 쓰고, 왼쪽과 오른쪽 헬멧을 따로 준비하지만, 나는 헬멧을 매번 바꿔 쓰기가 귀찮아서, 그리고 또 튀어보이려고 더블플렙을 선택한 것이다.
더블플렙 헬멧은 1회차 때도 나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였다.
내가 알기로는 나 때문에 미국의 어린 학생 선수들 중 더블플렙 헬멧을 사용하는 선수가 늘었다고 한다.
일단 처음에는 스리쿼터에 가까운 사이드암으로 던질 거다.
그리고 와인드업과 함께 공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퍼어엉.’
하는 굉음과 함께 공이 포수의 미트에 제대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카를로스의 방망이가 따라나오지 않았기에 볼이었다.
참. 카를로스는 웬만하면 초구는 그냥 지켜본다는 사실을 깜빡했군.
비록 아쉽게 볼이 되긴 했지만, 초구부터 바로 106.1마일(170.75㎞), 3339rpm의 포심 패스트볼은 모두를 경악시키기에는 충분했을 거다.
3339rpm이라······
방금 공은 거의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세상에.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저게 말이 돼?”
“아무리 봐도 쟤는 인간이 아닌 것 같아.”
“그게 아니라 새로 나온 약을 하는 걸수도 있지 않을까?”
더그아웃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마운드까지 들려왔지만, 저런 말들은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저렇게 떠드는 애들 중 MLB에서 생존할 수준의 애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것 같다고?
그래. 나는 인간이 아니라 초인이고 신이다.
다시 와인드업을 하려는데,
“잠깐.”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담이 마운드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잠깐 공 좀 봐도 되지?”
하······
뭐. 그래. 얼마든지 봐라. 부정한 이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본다고 뭐가 나오겠냐?
“모자도 벗을까요?”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모자도 벗었다.
“계속 말하지만, 약물이나 이물질 투구, 그 어떠한 부정적인 방법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으니 아담도 더는 트집을 잡지 못했고, 투구가 재개됐고,
‘부웅’
2구째는 카를로스의 방망이가 크게 돌아갔다.
105.5마일(169.8㎞), 3028rpm의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싱커에 보기 좋게 속은 것이다.
“어라? 지금 오버핸드로 던진 거 맞지? 오버핸드랑 사이드암이 전부 가능하다고?”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거참 시끄럽구먼.
공 한 개 던질 때마다 저렇게 떠들 생각인가?
현재 볼 카운트는 1-1. 이제 제3구다.
‘부웅.’
3구째도 같은 코스로 104.8마일(168.6㎞), 2997rpm의 싱커였고, 카를로스의 방망이가 다시 따라 나왔다.
아이고 시원해라.
여름에도 선풍기가 따로 필요 없겠군.
같은 코스의 공 두 개에 연속으로 헛스윙을 하다니. 통산 500홈런, 3000안타 타자가 제대로 체면을 구기는구나.
하기야. 뭐.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먼 미래의 이야기고, 지금은 어디까지나 유망주 신세다만, 이래서야 어디 그렇게 되겠어?
이제 볼 카운트는 1-2. 유리한 볼카운트면 바로 승부를 봐야지.
이제 다시 몸쪽 깊은 코스다.
그리고.
‘퍼어어엉.’
하는 묵직한 굉음과 함께 공이 포수 미트에 정확히 빨려 들어갔고,
그렇게 카를로스는 105.2마일(169.3㎞), 3087rpm의 포심 패스트볼에 멍한 표정을 지으며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솔직히 카를로스 정도는 삼구삼진으로 잡아냈어야 하는데, 4구까지 온 게 좀 창피하군.
다음에 상대할 타자는 오스왈도 캄포스.
현재 양키스의 주전 유격수로, 마이크 스켈튼, 제임스 저스티스와 함께 양키스의 타선을 이끄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재미있겠군.
캄포스는 우타자였지만, 이번에는 오른손에 글러브를 꼈다.
오른손으로 던져봤으니, 이젠 원래의 왼손으로도 던져봐야지.
그리고.
‘따악.’
초구는 105.7마일(170.1㎞), 2969rpm의 바깥쪽 꽉 찬 코스로 들어간 포심 패스트볼이었는데, 오스왈도는 이걸 커트해서 파울을 만들어냈다.
역시 메이저리거라는 건가?
그리고.
‘따악.’
102.2마일(164.5㎞), 3017rpm의 바깥쪽 낮게 떨어진 커터였지만, 오스왈도는 이것도 커트해냈다.
그 바람에 그의 방망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0-2로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볼 카운트.
여기서 곧바로 승부를 결정지어야겠다.
그리고.
‘부웅.’
104.7마일(168.5㎞), 3128rpm의 하이 패스트볼을 오스왈도가 이번에는 커트해내지 못하면서 간단하게 삼구삼진이었다.
“후우.”
오스왈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고, 내가 다음에 상대할 마이크 스켈튼이 타석에 들어섰다.
마이크는 건강하기만 하다면 50홈런을 때려낼 파워를 가지고 있다.
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MLB에서 가장 빠른 타구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타자였고,
유리몸이라 매 시즌 골골대면서도 꾸준히 30홈런은 때려주다가, 결국 커리어 500홈런 달성에 성공하고, HOF 입성에도 성공했다.
뭐. 파워 히터로 일세를 풍미했던 타자였지만, 약점이야 뭐 명확하다.
선구안이 좋질 않고, 삼진이 대단히 많다는 것.
특히 바깥쪽 공이나 스트라이크존 바로 위 코스로 날아오는 공에는 전혀 속수무책인데,
물론 뭐 그렇다고 공갈포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국 내게는 그냥 쉬운 타자라는 이야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일단 한 번 봐라.
지금부터는 바깥쪽 코스로만 빠른 공을 계속 던질 거다.
우선 초구.
‘퍼어엉.’
103.5마일(166.6㎞), 3223rpm의 포심 패스트볼이었지만, 너무 빠졌다.
볼 카운트 1-0에서 제2구.
‘부웅’
105.7마일(170.1㎞), 3011rpm의 낮게 떨어진 싱커에 크게 헛스윙을 했고.
볼 카운트 1-1에서 제3구.
‘퍼어엉’
바깥쪽 꽉 찬 코스로 104.2마일(167.7㎞), 2997rpm의 포심 패스트볼이 들어갔다.
1-2에서 이제 제4구.
‘따악.’
바깥쪽 코스의 103.9(167.2㎞), 3054rpm의 하이패스트볼이 커트를 당했다.
이걸 커트해 냈다고?
1-2에서 제5구.
‘퍼어엉.’
마이크는 분명 이번에도 바깥쪽을 예상했겠지만, 몸쪽 깊은 코스로 106마일(170.6㎞, 3229rpm의 포심 패스트볼을 찔러 넣어서 결국 삼진을 잡아냈다.
원래는 바깥쪽 코스로만 던지려고 했지만, 상대 타자가 바깥쪽을 예상하였기에 허를 찌른 것이다.
그렇게 세 명의 타자를 상대로 12개의 공을 던져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첫 라이브 피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와서 타격을 준비하려는데 게리가 말을 걸어왔다.
“정말 대단한 투구였어.”
“고마워요.”
“다만, 이건 내 생각인데, 오버핸드, 스리쿼터, 사이드암, 언더핸드, 바꿔가면서 던지는 것보다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렇게 자주 바꿔가면서 던지면 오히려 타자가 구질과 궤적, 습관을 예측하기가 쉽거든.”
물론 게리의 조언은 나도 이미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지금은 연습이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실전에서는 스리쿼터에 가까운 사이드암으로 주로 던지다가 어쩌다 허를 찌를 때만 바꿔 던지려고요.”
“뭐. 그렇다면야 다행이고. 그리고 아직 시즌이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지금부터 벌써 그렇게 힘을 쓸 필요는 없어. 길게 봐야지.”
“네.”
나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고 말해봐야 안 믿을 테니까, 그냥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야지.
어쨌건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드디어 나의 타격 기회가 돌아왔다.
상대 투수가 공교롭게도 또 훌리오 팔라시오스였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
기분 좋게 타석에 들어서려 할 때 타격코치 데렉 보스워스가 나를 붙잡고 물었다.
“괜찮겠어?”
“네?”
“아담하고 키스한테 들었어. 훌리오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런. 내가 그런 티를 너무 많이 냈나?
“괜찮아요. 물론 솔직히 훌리오가 좀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문제입니다.”
“좋아. 앞의 투구는 정말 멋졌어. 좋은 타격 기대하지.”
데렉의 격려를 뒤로 한 채 그대로 타석에 들어섰다.
“진짜로 투타 겸업을 하는 건가? 진짜 골 때리는 자식이네.”
“시도야 좋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
“오타니 보고 겉멋만 잔뜩 들었네. 쯧쯧.”
더그아웃의 이런 비아냥 따윈 뭐 다시 말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저렇게 주절대는 애 중에 카를로스를 빼면 메이저에서 성공하는 애는 단 한 명도 없으니까.
1회차 때, 사실 뭐 안 그런 투수가 어디 있었겠냐만, 훌리오도 내 봉이었다.
훌리오가 좌완 투수임에도, 왼쪽 타석에 들어선 나는 배트로 오른쪽 담장을 가리켰다.
나의 이 제스처에 더그아웃은 또다시 술렁였다.
“예고 홈런이라고? 저런 건방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온갖 폼은 다 잡네.”
“저러고 삼진이면 얼마나 쪽팔릴까?”
“이봐. 훌리오. 저 철없는 건방진 애송이 따윈 삼진으로 돌려세우라고.”
“아니야. 그냥 맞춰버려.”
심지어는 이런 야유까지 터져 나왔다.
“조디, 봤지? 3구 안에 오른쪽 담장을 넘겨주지.
나는 포수 조디 뱀포드한테 확실히 장담했다.
“건방진 놈. 삼진당하고 울지나 마라.”
“초구는 낮게 떨어진 커브를 던질 건가?”
내 말에 조디는 대답이 없었다. 표정을 보니 놀란 것처럼 보였다.
“대답이 없는 거 보니까 맞나보군.”
그리고 진짜로 낮게 떨어진 커브가 들어왔다.
“진짜였네?”
“흥.”
조디는 말이 없었다.
“다음 공도 맞혀줄까? 바깥쪽 포심이겠군.”
조디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역시 정답인 것 같다.
그리고 진짜로 바깥쪽으로 96.6마일(155.5㎞)의 포심 패스트볼이 들어왔지만, 스트라이크존에서 약간 벗어났다.
“맞군.”
“어떻게 안 거지?”
조디는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글쎄? 그걸 그렇게 쉽게 말해 줄 수야 있나. 이제 3구네? 다시 낮게 떨어지는 커브겠군. 이번에는 걷어 올려서 오른쪽 담장을 넘겨주지.”
“흥. 어떻게 훌리오가 던질 구종을 미리 아는지는 몰라도, 너무 건방 떨지 마라.”
그랬다.
사실 훌리오는 공을 던질 때, 구종마다 글러브의 모양이 바뀐다.
대단히 간단한, 진짜 눈치 채기 쉬운 습관인데, 그럼에도 이 습관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내가 제일 먼저 눈치를 채고 꽤 오래 재미를 봤는데,
그러고서 결국 10년 뒤에야 이 습관이 드러났고, 멍청한 훌리오 놈은 그때서야 겨우 그 습관을 고치게 된다.
뭐 아무튼.
‘따악.’
바깥쪽 낮게 떨어진 공을 골프를 치듯이 걷어 올렸다.
별로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타구는 계속 뻗어 나갔고, 결국 담장을 넘겨버렸다.
“어때? 이래도 건방이라고 할 텐가?”
라는 마지막 대사를 조디에게 남기고, 위풍당당하게 타석에서 퇴장했다.
“대단한 파워군.”
“진짜로 홈런을 쳤다고?”
“에이. 우연이겠지.”
“그런데, 타격 폼은 진짜 교과서적으로 완벽하지 않았어?”
드디어 나의 위대함이 제대로들 실감이 나나보군.
“정말 전에 타격을 해본 적이 없어?”
데렉이 벙찐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선의의 거짓말이다.
“대단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야. 정말 타고났어.”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까지 야구를 잘해도 되나 싶네요.”
“너는 다 좋은데,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겠어. 솔직히 너무 재수 없어 보인다는 거 알지?”
말을 마치며, 데렉은 한숨을 내쉬었다.
“위대한 사람만이 재수 없어 보일 수 있는 거죠.”
“말이나 못하면.”
1회차 때도 그랬지만, 데렉은 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코치다.
그래서 나와도 되게 잘 맞았었고, 대단히 친했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코치다.
아무튼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에 상대할 투수는 존 엘벡.
2022년 BA에서 발표한 MLB 유망주 랭킹 탑100에서 29위. 팀 내에서는 4위에 올라 있다.
미래의 200승 투수. 사이 영 상도 두 번을 탔다.
그러나 누적 스텟이 부족한 탓에 HOF는 계속 물을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실 나의 회귀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존이 아닐까?
시즌 개막 직전에 팀의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에 구멍이 나게 되고, 원래대로라면 그 자리에 존이 들어가지만, 이번엔 아마도 당연히 내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거 그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불쌍해지는군.
뭐. 불쌍한 건 둘째 치고, 그렇다고 해도 절대로 봐주는 건 없다.
이번에도 왼쪽 타석에 들어선 나는 배트로 좌측 담장을 가리켰다.
“또냐? 실전에서도 저 지랄 하다가 헤드샷 한 번 처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쯧쯧.”
“지가 베이브 루스야. 뭐야? 폼은 정말 있는 대로 다잡네.”
더그아웃에서는 다시 야유와 조롱 소리가 들렸다.
아니지.
내가 베이브 루스 따위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조디. 봤지? 이번엔 좌측 담장을 넘겨주지.”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엔 어떤 공을 던질지는 안 맞출 거냐?”
“그걸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사실 모른다.
멍청한 훌리오 따위와 달리 존에게는 특별한 버릇이 전혀 없다.
“그럼, 내가 말해주지. 한복판에 포심 패스트볼을 꽂아 넣을 거다. 칠 수 있으면 쳐보던가.”
저렇게 말을 하면, 분명 내가 유인구라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내 생각엔 조디 말처럼 그대로 한복판에 포심 패스트볼이 꽂힐 것 같다만?
그리고.
‘따악.’
98.2마일(158㎞)에 2469rpm의 포심 패스트볼이 가운데로 높게 들어왔다.
이건 뭐 완전히 홈런을 치라고 던져준 공이군.
간다!!! 간다!!!! 간다!!!!! 호옴런!!!!!
좌측담장을 그대로 넘겨버렸다. 그것도 꽤 멀리 날아갔는데, 비거리가 450ft(130m) 이상은 나올 것 같았다.
“뭐야? 진짜로 한복판이었어? 고마워. 덕분에 약속을 지켰어.”
“시끄러워. 얼른 꺼져. 다음 타석에선 맞춰줄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내가 이렇게 조디를 약을 올리는 건, 아무런 악의 없이, 그냥 어디까지나 조크다.
뭐 어쨌건 다시 휴식을 취한 후,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에 상대할 투수는 넬슨 이바네즈.
현재 양키스의 4선발로, 2021시즌에는 11승 12패. 4.7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2022시즌에는 9승 7패에 4.1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세 번의 어깨 수술 끝에 결국 67승으로 안타깝게 커리어를 일찍 마감했지만,
부상만 아니었어도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 투수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이번에는 배트로 중앙 담장을 가리켰다.
“저 자식 진짜 왜 저래? 진짜로 빈볼 맞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넬슨. 저 건방진 놈의 콧대를 꺾어줘.”
더그아웃에서는 또 한 번 야유가 터져 나왔지만, 내가 그런 거에 굴할 사람이던가?
내가 이렇게 오버를 하면서 어그로를 끄는 건 사실 튀고 싶어서, 관심받고 싶어서였는데,
내 의도가 확실히 성공했다.
“조디. 이번엔 중앙 담장을 넘길 건데, 이번에도 어떤 공을 던질지 가르쳐줄래?”
“흥.”
조디는 대답이 없었다.
“알려주기 싫으면 말고.”
초구는 일단 지켜봤다.
94.3마일(151.8㎞), 2278rpm의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스로 빠졌다.
볼이었다.
“조디. 그걸 그렇게 잡으면 어떡해. 스트라이크가 볼이 됐잖아.”
그랬다.
사실 완전히 존에서 빠진 것도 아니었고, 프레이밍만 잘했으면 충분히 스트라이크가 될 수도 있던 공이었다.
“헤드샷 처맞고 싶지 않으면 그 입 좀 제발 닥치지 그래.”
프레이밍은 1회차 때부터 조디의 꾸준한 약점이었던 지라 친절하게 충고를 해줬는데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외려 짜증을 낸다.
아무튼 1-0에서 제2구.
과연 어떤 공이 들어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