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3. 사실은. 나 미래에서 왔어.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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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은. 나 미래에서 왔어.
이날 불펜 투구에서 나는 내가 던질 줄 아는 포심 패스트볼, 커터, 싱커 세 구종을 각각 12개씩, 합계 36개의 공을 던졌다.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102.4마일(164.7㎞)이었고, 평균 회전수는 2908rpm, 평균 회전효율은 100%로 평균 유효회전수가 2908rpm 그대로였고,
커터의 평균 구속은 99.2마일(159.6㎞), 평균 회전수가 3357rpm, 평균 회전효율이 100%로, 평균 유효회전수가 3357rpm 그대로였으며,
싱커의 평균 구속은 102.4마일 (164.7㎞)로 포심 패스트볼과 똑같았고, 평균 회전수가 2915rpm, 평균 회전효율이 100%로, 평균 유효회전수가 2915rpm 그대로였다.
내가 던진 모든 공이 완전 마구(魔球)가 되었고, 게리 콜건, 트래비스 바우더, 클리프튼 커슈너, 제이크 디그라프, 맥스웰 슈뢰더, 더스틴 몰랜더, 제이스 그레이너 등의 리그 정상급 에이스보다도 훨씬 대단한 위력이었다.
이런 마구들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이렇게 되면 2회차.
아. 지금부터는 편의상 회귀 전과 회귀 후인 지금을 1회차, 2회차로 나눠서 부르기로 했다.
뭐. 2회차 때는 그대로 투수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음······
그렇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된 타자를 쉽게 포기하는 것도 좀 그런데.
나도 이도류를 해볼까나?
물론 뭐 그렇게 되면 투타 양쪽의 누적에서야 손해를 좀 보겠지만,
음······
뭐 그거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마력이 있다고 했지?
그럼 나도 나타샤처럼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마법으로 바로 다시 나의 시간을 원래대로 되돌리면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잖아.
어디.
“호쿠스 포쿠스 티디부스 아브라카다브라 살라가둘라 멘치카 불라 비비디 바비디 부.”
음······
역시 안 되는군.
그리고.
“얘 좀 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젠장. 옆에 아빠, 엄마가 있는 것을 깜빡했다.
오전 일정이 끝이 난 후, 호텔로 돌아와서 쉬는 중이었는데, 참가 선수, 참가 선수 가족에게는 각각 따로 1인실이 제공되어서 아빠, 엄마와 나는 방을 따로 쓰고 있었지만, 지금 아빠, 엄마는 계속 내 방에 눌러앉아 있었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좀 꺼내 마시고 싶은데, 아빠, 엄마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돌아버리겠다.
내가 불펜 피칭을 마친 후, 아빠는 꼭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이었고, 곧 아빠의 추궁에 시달려야만 했다.
“너 정말 내 아들 태양이 맞는 거냐?”
“응. 맞아. 아빠 아들 왕태양.”
“그럼, 너 설마 진짜로 아빠랑 엄마 모르게 무슨 이상한 주사 같은 거 맞은 거지?”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것을 사서 맞겠어.”
“그럼, 그 공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사실 아빠는 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이 당시 나는 아빠가 운영하는 레슨장에서 항상 아빠랑 같이 연습하고, 훈련했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아빠는 엄마가 모은 돈에다 빚을 내서 레슨장을 차렸다.
레슨장의 시설도 대단히 좋았던데다가, 또 비록 MLB 입성에는 실패했다고 해도, 그래도 미국물을 먹은 아빠가 가르치는 레슨장이라서 레슨장은 꽤 잘 됐었다.
레슨장을 차린지 불과 1년 만에 빚을 다 청산했을 정도니까.
내가 다녔던 서울K-POP연예예술학교는 신생팀에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이었기에 선수도 별로 없었고, 그 환경도 대단히 열악했다.
다른 학교는, 보통 40명 정도, 많은 학교는 70명 정도의 선수가 있는데, 서울K-POP연예예술학교는 내가 다닐 당시를 기준으로 나를 포함해서 20명의 선수가 있었다.
이 학교를 다닐 당시 하루 일과가 어땠냐면, 학교에 오전 9시까지 등교해서 출석 체크를 하고 난 후에 바로 9시 30분에 집합해서, 학교에서 따로 계약한 광나루야구장으로 이동한다.
광나루야구장에 도착하면 오전 10시쯤인데, 12시까지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 식사 후 2시부터 4시까지 오후 훈련을 한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서 해산.
선수들이 학교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싶어도 학교에 운동장도 없고, 구장도 없어서, 결국 개인 훈련을 하고 싶다면 사설 레슨장을 이용해야 했다.
심지어는 기숙사도 없어서 합숙도 못 한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이거는 학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 전교생이 1~3학년 다 합쳐서 150명, 한 학년에 50명이었고, 25명씩 두 반으로 나눠놨는데, 그 한 반에서 학교에 제대로 출석해서 수업을 꾸준히 듣는 애는 2~3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현역 아이돌이나 연습생이라 아예 학교에 안 나오고, 어쩌다 나와도 얼굴만 비추고, 출석 체크만 하고 간다.
사실 이 학교가 2010년대 들어서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고, 학교 이름도 서울K-POP연예예술학교로 바뀌면서 연예인 아이돌 사관학교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 과거에는 서울여자실업학교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학교였다고 한다.
서울에서 좀 노는 언니들이 학교 잘리고,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기 위해 최후로 선택한다는 학교였단다.
오죽했으면 학교가 서울K-POP연예예술학교로 바뀐 지가 이미 12년이 되었는데, 그 악명과 소문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겠는가?
뭐 하여튼 아빠가 레슨장을 운영하는 나는 다른 애들에 비해 그 사정이 훨씬 나았다.
시설 좋은 곳에서 무료로 개인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더란 말인가?
그렇다는 거고, 그래서 계속 쭉 같이 훈련을 해왔고, 그만큼 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데. 그런 내가 갑자기 미국에 와서 내가 말도 안 되는 공을 던지니 아빠로서는 당연히 기함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나도 몰라. 갑자기 이런 공이 나오는데, 그럼 어떡하라고.”
진실을 말한들, 그 말을 아빠가 믿을 리가 있겠는가.
“정말, 아빠 몰래 이상한 주사 맞은 거 아니지?”
“그럼 아빠가 보기에 내 몸에 뭔가 특별한 변화가 있어 보여?”
스탠리 할아버지한테 했던 말을 다시 써먹었다.
“그야 딱히······ 그것참. 이상한 노릇이네.”
“이상할 거 없어. 나도 모르게 왔던 입스가 극복된 거로 생각하면 되니까.”
“지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 알지?”
물론 안다. 그러나 진실은 더 말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말이 안 되는 소리를 계속 늘어놓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차라리 아빠한테는 솔직하게 고백을 할까?
아빠가 아무리 내 말을 안 믿는다고 한들, 설마 아들인 나를 정신병원에 처넣겠어?
“사실은. 나 미래에서 왔어.”
“뭐?”
“22년 뒤의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했다고.”
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내가 타자로 전향하여 MLB에서 커리어 통산 3304안타에 1042홈런을 친 레전드가 됐고,
어느 날 마녀랑 떡 치다가 마녀의 마법으로 돌연 과거 회귀를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마력까지 전해 받아서 갑자기 이런 공을 던졌다고 말이다.
그리고 내 말을 들은 아빠의 반응은.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해졌지? 판타지 소설 작가 되도 되겠어.”
당연히 믿을 리가 없었고, 그나마 정신병자 취급을 안 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재밌었어. 그러나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거야.”
지금 당장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아빠한테 사실을 고백한 것이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빠한테는 갑자기 이런 공을 던진 것을 설명할 다른 변명이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뭐 아무튼 그랬다는 거고, 아빠, 엄마랑 같이 있는 것을 깜빡하고 이상한 주문을 외운 것이다.
“그냥. 어젯밤에 본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더라고.”
“또 영화 보다 늦게 잤구나. 그러니까 늦잠을 잤지.”
내가 원래 영화를 좋아한다.
뭐 이후에 낚시, 사냥, 골프, 섹스 등등 다른 여러 취미가 생겼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 감상이 내 유일한 취미였고, 밖에서 친구들과 안 놀고 혼자 있을 때의 시간은 주로 영화를 보면서 보냈다.
지금도 엄마랑 아빠가 나가고 나 혼자 남게 되면, 이 호텔 방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가, 혹은 TV로 영화를 보는 것밖에는 없었다.
사실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도, 이곳 텍사스 알링턴은 딱히 유흥을 즐길 거리가 없는, 대단히 심심한 도시였고, 더군다나 지금의 나는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지금 내 수중에는 출국 전에 환전해 온 200달러 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아빠랑 엄마한테 유흥업소 가게 돈 좀 달라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방구석에서 조용히 영화나 보면서 시원한 맥주나 한 캔 때려야지.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안다.
이를 이용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토토를 하거나, 혹은 주식이나 코인을 하거나.
참. 선수로서 토토는 하면 안 되는군.
하다 걸리면 피트 로즈처럼 될 테니까. 물론 뭐 안 걸리면 되긴 하다만.
그래도 그런 짓을 하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지 않지.
더군다나 내가 아무리 유흥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고 해도, 도박 같은 건 별로 취미가 없어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시간에 클럽을 가거나 파티를 하거나 콜걸을 부르고 말지. 괜히 돈만 버리는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저녁이 되었고, 만찬 시간이 되었다.
1회차 때나 지금 2회차나 만찬은 참 화려하고 성대하게 진행이 되었다.
물론 학생 선수들을 위한 만찬이다 보니 술이 없다는 것이 대단히 아쉬웠다.
이런 만찬에서 술이 빠지다니······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 선수들은 부모와 함께 이 쇼케이스에 참가를 했고, 이 만찬 행사에도 부모가 함께 참석하였다.
물론 나도 당연히 아빠 엄마와 같이 참석하였다.
뭐 다들 아는 얼굴들이었지만, 저쪽 테이블에 태규가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진짜 오랜만에 보는군.
아침에는 내가 지각하는 바람에 라커룸에서 미처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고, 훈련 때는 태규는 야수고, 나는 투수라 훈련을 따로 했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황태규는 이미 말했지만, 나보다 한 학년 아래로 올해 2학년이다.
사실 태규와 나는 이번 쇼케이스에 참가하기 전까지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다.
한국의 야구판이 워낙에 좁고,, 서로 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로 엮여있다고는 하나, 나는 서울에서만 학교를 다녔고, 태규는 충청권에서만 학교를 다녔으니, 서로 접점이 있었을 리가 당연히 없었고, 이번 쇼케이스에서 알게 되면서 친해진 거다.
학교 폭력 사건 이후 한국의 야구판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대단히 안 좋게, 또 무섭게 났지만, 태규 녀석은 워낙 친화력이 좋아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한테 다가왔고, 그렇기에 녀석과 나는 이전까지는 접점이 없었지만,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내가 미국에 간 이후로도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
한국의 야구인들 중에 나와 계속 연락하고 지냈던 이들은 서울K-POP연예예술학교 동기, 후배들, 그리고 태규가 전부였다.
사실 서울K_POP연예예술학교 애들이야 전부 대학에서 야구를 때려쳤으니 야구인이라 할 수도 없지만.
그래서 태규는 분명 좋은 동생이고 착한 후배였다.
나는 MLB 진출을 노리고 이 쇼케이스에 참가했지만, 태규는 MLB 진출을 노린다기보다 한국 파워 쇼케이스 홈런 더비의 우승자 자격으로 이 쇼케이스의 홈런 더비에 참여하기 위해 온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규는 내일 예선전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이때 참교육을 너무 심하게 당한 탓에, 그 후유증으로 가장 중요한 고3 시즌을 폭망해 버렸고, 결국 드래프트에서도 5라운드까지 밀리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홈런 더비의 우승자인 블레이저 키스트도 그 말로가 참 좋지 못했군.
키스트는 이 홈런 더비에서 예선과 본선 합계 33홈런을 치며 우승을 했다.
특히나 118마일(189.9㎞)이라는 어마어마한 타구 속도로 꽂힌 510ft(155.4m)짜리 대형 홈런은 대단한 화제를 모았고,
이후의 키스트는 파워 히터로 전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지만, 결국 공갈포로 선풍기만 시원하게 돌려대다가 KBO와 NPB, 아시아 무대를 전전하게 된다.
헌터와 돌란을 포함해 키스트까지 이 쇼케이스 참가자 중 무려 세 명이나 이후 KBO에서 뛰게 되니, 지난 회에도 말했지만, 이 쇼케이스는 미래의 KBO리거 동창회라고 할 수도 있었다.
참. 태규까지 네 명이구나.
118마일 510ft. 뭐 이제 17살짜리가 그런 총알같이 빠른 거대한 타구를 만들어 냈다는 건 뭐 충분히 전미가 열광할만하긴 했지만,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참고로 나는 이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122마일(196.3㎞)로 날아가는 522ft(159.1)짜리 대형 홈런을 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홈런 더비에 태규가 아니라 내가 참가했었으면 당연히 우승했을 텐데.
뭐 어쨌건.
“태규, 오랜만이다.”
태규한테 가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연락은 계속 하고 지냈었지만, 얼굴을 못 본지는 한 2년이 된 것 같은데, 뜻밖에도 내가 회귀를 하면서 어린 태규를 보게 된 것이다.
“무슨 소리예요. 형, 어제도 봤었잖아요.”
아. 나는 태규를 오랜만에 보지만, 태규는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태규한테 말을 거니까 태규 부모님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후······
원래대로라면 태규 부모님한테도 인사를 하는 게 맞겠지만, 저 사람들이 나를 저렇게 벌레 보듯이 쳐다보는데, 내가 거기다 무슨 인사를 하겠는가.
기분 상해서 인사 안 한다.
“이따가 또 보자.”
인사를 하고, 아빠, 엄마가 있는 우리 테이블로 돌아가려는데,
“너는, 저런 나쁜 애랑 대체 왜 어울리는 거니? 맞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쟤랑 어울렸다가 협회에 찍히려고 그래?”
태규 엄마의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눈이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따졌다.
“태규 어머니. 저 어머니한테 그런 말 들을 정도로 잘못한 일 없고요. 또 태규 때리거나 괴롭힌 일 없습니다. 제가 어머니한테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네. 어머니 걱정하시는 일 없게, 앞으로 태규랑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요. 걱정 놓으세요.”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착한 후배, 동생을 잃었다.
아니 잃은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린 거고, 내가 손절한 거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동생이라고 해도, 내가 그 엄마라는 여자한테 이런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그 동생과 계속 가깝게, 친하게 지낼 이유는 없는 거다.
난 한 번 아닌 거는 확실하게 아니다.
“아. 형. 왜 그러세요. 화 푸세요. 엄마도 저를 걱정해서 하신······”
더 들을 필요도 없이 나는 그대로 획 돌아섰고, 내 테이블로 돌아갔다.
“뭐야? 무슨 일 있었니? 너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굳은 것을 본 엄마가 물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들, 기분 안 좋더라도, 좋은 날이잖아. 기분 풀어. 이 예쁜 엄마를 보며 웃으렴.”
그건 그랬다.
솔직히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엄마 중에서 당연히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뻤다.
“그런데 태산, 여기 다 좋은데, 음악이 너무 지겹지 않아?”
“그러게, 너무 따분하네.”
지금 만찬장에서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클래식을 제일 싫어한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이건 아무 쓸모없는 이야기지만, 음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디까지나 참고로 이야기를 하는 건데, 내 영어 이름이 프린스가 된 건, 사실 대단히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아빠와 엄마가 처음 눈이 맞을 당시 스트립클럽서 프린스의 노래가 흘러 나왔었다고, 내 이름을 프린스로 지은 거였다.
그때 그 빌어먹을 클럽에서 그나마 프린스의 노래가 흘러나왔기에 다행이었지, 만일 퀸의 노래라도 흘러나왔으면 내 이름은 퀸이 될 뻔했다.
퀸 왕. 딱 봐도 이상하잖아.
사실 프린스라는 이름 자체는 대단히 멋진 이름이라고는 생각한다만, 그래도 태양도 대단히 멋진 이름이라, 태양이라는 이름에 그렇게 크게 불만은 없다.
그래서 MLB 등록명을 미국 본명인 프린스 왕이 아닌 태양 왕, 그러니까 Tae-Yang Wang이라고 등록을 했다.
그리고서 나중 되면 나한테 썬 킹(Sun King)이라는 닉네임, 별명이 새로 생기게 되었는데, 이 역시 대단히 마음에 드는 닉네임이었다.
뭐 그렇다는 거고, 음식의 맛은, 솔직히 말해서 그저 그랬다.
내 입맛이 워낙 고급이 돼서 그런 건가?
음······
그러고 보면, 이것도 적응이 좀 필요하겠군.
이때, 누군가가 우리 테이블로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아빠한테 반갑게 인사를 하며 친한 척을 했다.
“태산. 정말 오랜만이야. 여기서 너를 볼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는데, 정말 반가워. 하나도 안 변했네. 예전 그대로야.”
“어? 너, 맥스 맞지? 와. 진짜 오랜만이다.”
이 사람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카우트인 맥스 애스턴이었다.
아빠가 마이너를 전전하던 시절 LA 다저스 산하 AAA 팀인 라스베이거스 51s에서 아빠와 함께 뛰었다고 하는데, 대단히 친했었다고 한다.
“세상에. 아까 그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던 놀라운 애송이가, 네 아들 프린스였을 줄이야. 내가 이놈 아기 때 기저귀도 갈아주고, 우유도 먹여주고, 놀아주고 그랬었는데, 이놈이 벌써 이렇게 컸어?”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를 하더니 돌연 내 뺨을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너, 나 기억하니? 네가 갓난아기 때 내 옷에다 오줌을 쌌었어.”
내가 아기 때야 뭐 나는 전혀 기억이 없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리 친구 아들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 뺨을 잡아당기다니, 참 놀라운 친화력이었다.
“그때가 진짜 우리 태양, 돌도 안 지났을 때인데, 얘가 그걸 기억하겠냐?”
“태양? 얘 이름 프린스 아니었어?”
“아니. 한국에서는 태양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줬지.”
“한국말을 못 해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어감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프린스가 더 나은 것 같아.”
1회차와 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대사였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맥스라는 이름이 어감이 더 이상한 것 같다만?
“어쨌건, 정말 반갑다. 어떻게 한국 가자마자 바로 연락을 딱 끊냐? 나 정말 섭섭했다.”
그러고 보면, 아빠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마이너에서 함께 눈물 젖은 샌드위치를 먹던 동료들과 연락을 딱 끊었었다.
“미안하게 됐다. 한국에서 워낙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까 연락할 틈이 없었어.”
연락할 틈이 없었다기보다는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거 아닐까?
“한국에서는 요새 뭐 해?”
“뭐. 애들 가르치고, 이것저것 하고 있어. 그러는 너는 요새 뭐하냐? 여긴 어쩐 일이야?”
“스카우트가 선수 보러 왔지, 뭐 하러 왔겠냐? 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일해.”
“출세했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내 아들 좀 잘 봐줘.”
아빠가 굳이 이런 청탁 안 해도, 어차피 모든 구단이 지금 안달이 났을 거다.
“그런 부탁은 오히려 내가 너한테 해야지. 프린스 정도면 모든 구단에서 앞다투어 모셔갈 테니 말이야. 잘 좀 봐줘. 우리 팀 좋은 팀이야. 그런데, 프린스한테 대체 어떤 훈련을 시킨 거야?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된 공을 던질 수 있는 거지?”
“우리 태양이 날 닮아서 워낙 재능이 뛰어나긴 하지.”
“무슨 소리야. 너 따위는 프린스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이런 말 하면 내가 너무 불효자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다.
“그게 지금 아들이 듣는 앞에서 아빠인 나한테 할 소리냐? 그리고 내가 너보다는 훨씬 잘 던졌던 거로 기억한다만?”
맥스 아저씨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을 테지만, 아빠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가 아빠를 잘 아는데, 이건 진짜로 기분이 상한 거다.
“이 자식, 잘 삐지는 것도 여전하네. 농담이야. 기분 풀어.”
“농담이면, 아무 말이나 막 씹어 뱉어도 되는 거냐?”
이런······
우리 아빠 눈 완전히 돌았다. 이러다가 멱살을 잡을지도 모른다.
이거 설마 여기서 사고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