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2. 이게 꿈이 아니라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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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게 꿈이 아니라고?
“아들. 어서 일어나. 이러다 늦겠어.”
곤하게 잘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이 목소리는 분명 나의 사랑스러운 나타샤, 아니 사랑스러운 이라는 말은 빼자.
어차피 그녀는 내 아내나 애인도 아니고, 그냥 쿨한 원나잇 상대 아니던가.
분명 그 나타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어젯밤에 그녀 말고 다른 여자를 이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던가?
더군다나 누군지도 모르는 그녀가 나를 아들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국말을 하는데, 그 한국말도 어딘가 대단히 어색하고 어설프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프린스, 빨리 일어나야 해. 늦었어. 이러다 진짜 지각이야.”
이번엔 어설픈 한국말 대신 영어였다.
나를 미국 이름인 프린스로 부르는 그녀.
그랬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가 어째서 내 방에 있는 것일까?
엄마는 엄마 집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잠깐만. 지각이라고?
그 소리에 바로 눈이 떠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What The Fuck?
내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한 20년쯤 젊어 보였다.
“이런 날까지 늦잠을 자면 어떡하니. 빨리 서둘러야만해. 시간 없어.”
젊어진 엄마는 나를 계속 재촉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20년은 젊어진 엄마. 그리고 지금의 이 공간. 내가 누워있는 내 침대.
여기는 분명히 롱아일랜드의 나의 대저택의 내 침실의 내 침대가 아니었다.
2022년 11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내가 머물렀었던 쉐라톤 알링턴 호텔의 한 객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2044년 10월 21일이어야 하고, 나는 롱아일랜드의 내 집의 내 침실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어젯밤 파티에서 만난 나타샤가 누워 있어야 하는 거고.
그래. 분명히 나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깬 거야. 다시 자자.
“아니, 다시 자면 어떡해. 어서 못 일어나!!! 지금 벌써 7시 50분이야. 8시 30분까지 가야 한다고.”
꿈치고는 꽤 생생하군.
그래. 그날 아침 그대로야.
마치 그날 아침으로 돌아온 것 같은.
잠깐만. 돌아왔다고?
순간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에이. 설마. 그런 멍청한, 비과학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리가.
“이게 꿈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나타샤, 고 계집애가 진짜 마녀였고, 나의 시간을 되돌려서 나를 2022년 11월 4일로 회귀시켰다는 건가?
솔직히 이런 바보 같은 일을 세상에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믿겠는가?
“대체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아직도 잠이 덜 깬 것 같은데, 시간 없다니까. 얼른 정신 차려.”
나는 내 볼을 세게 꼬집어 보았다.
“아얏.”
고통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분명 꿈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꾼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2022년부터 2044년까지. 나의 지나간 22년이 모두 꿈이었을 수도 있는.
차라리 그렇게 믿는 편이 마녀랑 원나잇 하다가 마녀의 주술에 갑자기 과거로 회귀했다는 것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꿈을 꾸고 난 이후든, 아니면 정말로 과거로 회귀를 했든, 어찌 되었건, 지금은 2044년 10월 21일이 아니라 2022년 11월 4일이고.
나는 40세의 은퇴한 MLB 레전드 왕태양이 아니라, MLB 진출을 타진하기 위해 2022년 제7회 내셔널 파워 쇼케이스에 참가한 고3 왕태양이라는 거잖아.
하······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려 해도 지금의 이 상황은 참······
어찌 되었건 간에 내가 이룬 그 모든 성공과 부는
♬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 양 간 곳 없고.
라는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전부 다 사라지고, 다시 처음으로 리셋 됐다는 거 아닌가.
“우리 아들, 오늘 아침부터 정말 엄청 이상하네. 괜찮겠어? 어디 아픈 거 아니지?”
하며 엄마는 내 이마를 짚었다.
분명 엄마가 보기에 지금의 내가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 상황을 말한들 엄마가 과연 믿겠는가?
외려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다.
“괜찮아. 꿈을 좀 꿨나봐.”
“무슨 꿈?”
“그냥. 행복한 꿈.”
“그래. 이 엄마도 우리 아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야겠지?”
“알았어. 잠시 씻고 나올게.”
“시간 없으니까 서둘러야해.”
엄마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욕실에 들어가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
몸에 찬물이라도 끼얹으면 바로 꿈에서 깨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는데,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인데, 그런 일이 있을 리가.
“빨리 씻어. 이러다 늦어.”
밖에서는 엄마가 계속 성화였다.
나는 늦잠이 많은 편이었고, 매일 아침마다 엄마가 나를 깨우고, 성화를 부렸는데,
더군다나 오늘은 대단히 특별한 날이었다.
서울K-POP연예예술학교 3학년 졸업반인 나는 11월 3일 목요일부터 11월 6일 일요일, 나흘에 걸쳐 진행되는 2022년 제7회 내셔널 파워 쇼케이스에 대전고등학교 2학년을 재학 중인 황태규라는 후배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여 참가했고,
오늘 11월 4일은 오전 8시 15분부터 MLB 스카우트 데이가 진행이 되는 날이었다.
스카우트의 연설이 시작되는 시간이 8시 30분. 적어도 8시 30분까지는 쇼케이스 장소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날 나는 그만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물론 호텔에서 글로브 라이프 필드까지는 차로 3분, 도보로 17분 거리로 가까웠기 때문에, 다행히도 지각을 면할 수는 있었지만, 그날, 아니 이날, 종일토록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에 시달려야만 했다.
쇼케이스는 나흘에 걸쳐 진행되었고, 첫날은 소집일, 둘째 날인 오늘은 MLB 스카우트 데이로, 스카우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야수들은 수비와 주루, 타격 훈련을 하고, 투수는 수비 훈련과 불펜 투구를 한다.
그 후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홈런 더비의 예선전이, 그리고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홈런 더비 본선전과 10이닝 연습경기가 있다.
그 연습경기는 내셔널 팀과 아메리칸 팀으로 나눠서 진행되는데, 나와 태규는 내셔널 팀에 속해서 경기했었고,
이 쇼케이스에는 미국에서 나름 야구 좀 한다는 어린 학생 선수들이 모이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때의 참가자 중에 훗날 MLB에서 두각을 보이는 선수는 분명 없었다.
그러고 보면 제이든 헌터, 카일 길모어, 제이크 호킹, 매튜 아비넷, 리키 돌란, 다 그리운 이름들이군.
특히 헌터는 나와는 인연이 대단히 각별한 투수였는데, 2032시즌에 시즌 74호 홈런을 때려내며 약쟁이 본즈가 가지고 있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경신할 당시의 허용 투수가 바로 이 친구였다.
현재는 텍사스의 야구 명문 사우스레이크 캐럴 하이스쿨에 재학 중일 것이고, 이후 밴더빌트 대학교에 진학한 후, 2025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18순위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지명을 받게 될 것이다.
헌터는 분명 촉망받던 유망주였으나, 안타깝게도, 기대대로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했고, 저니맨으로 전락하였고, 결국 2034시즌엔 결국 KBO리그 행을 선택하게 된다.
참. 이때, 쇼케이스 당시만 해도 정말 태산처럼 높게만 보였던 투수였는데. 설마 AAAA 투수가 될 줄은.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도 투수였었다.
210㎝, 130㎏의 축복받은 피지컬에서 내뿜는 최고 구속 158㎞, 평균 구속 155㎞의 불같은 강속구는 충분히 위력적이었고, 그로 인해 뉴욕 양키스에 150만 달러라는 계약금을 받고 입단할 수 있었다.
말했지만, 나는 미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MLB 드래프트 지명 대상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에이전트인 지미는 나의 신분을 두고 MLB 사무국에 유권 해석을 요청했는데,
그것은 나를 자유계약선수로 인정을 할지, 아니면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선수로 인정을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나를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선수로 인정을 한다면, 계약 금액에 상한선이 걸리고, 마이너 계약밖에 따내질 못하지만, 일반적인 자유계약선수면 그런 부분과 관계없이 보통 FA 선수처럼 계약을 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선수가 아닌, 보통의 FA가 되는 것이 나한테는 이득이었다.
지미도 그것을 노리고 유권 해석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안타깝게도 나는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지미는 내가 프로 경력이 없지만, 미국인이기 때문에 바로 FA가 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지만,
MLB 사무국에서는 내가 미국인인 건 맞지만,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아마추어 선수기 때문에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나를 FA 선수로 인정을 하면, 향후 이를 악용하는 꼼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나의 사례를 따라 우수한 유망주가 드래프트가 아닌 FA가 돼서 직접 원하는 구단과 좋은 조건의 계약을 맺기 위해 미국의 학교가 아닌 외국의 학교로 유학을 가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의 신분을 둘러싼 이 논쟁은 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FA가 돼서 더 좋은 조건의 계약을 맺는데는 실패했었지만, 그래도 150만 달러라는 금액도 아마추어 선수 계약금으로는 꽤 거액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제구력은 완전히 절망적인 수준이었고, 2023년 스프링캠프의 연습 경기에서 루키리그 팀을 상대로 여덟 타자 연속 사사구라는 처참한 망신을 당한 후, 그 충격으로 입스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대로라면 우리 부자가 대를 이어 MLB 무대를 밟지 못한 채 실패한 투수가 될지도 몰랐다.
“아들아. 넌 꼭 MLB에서 성공해야 한다.”
아빠는 마이너와 독립리그만 전전하다 끝내 MLB를 밟지 못한 것이 크게 한이 맺힌 나머지, 내가 야구를 시작한 이래 항상 나한테 귀에 딱지가 않도록 이런 말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투수를 포기하고, 바로 타자 전향을 선택하였고, 그것이 나의 투수 경력의 끝이었다.
나는 공만 빨랐지, 투수로서 완전 엉망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에 반해 헌터는 구속은 분명 나보다 조금 떨어졌다고 해도, 나보다는 분명 한 수, 아니 두 수는 위에 있던 투수였다.
이때의 헌터는 심지어 미래의 ‘사이 영 컨텐더’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뭐 그 미래의 ‘사이 영 컨텐더’는 처절하게 폭망했지만.
사실 MLB라는 것이, 미국 야구라는 것이 절대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웬만큼 재능이 있어도 버텨내기가,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정글 같은 곳이다.
물론 나는 그 정글에서 결국 살아남았고,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아예 역사를 새롭게 다시 썼다.
하지만 그거는 타자로서의 이야기고, 내가 계속 투수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나보다 몇 수는 위에 있었던 미래의 ‘사이 영 컨텐더’도 버텨내지 못하고 폭망했는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런 점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역시 이번에도 바로 투수를 포기하고, 타자를 하는 것이 맞겠지?
하아······
이제 와서 내가 이룬 부와 명예,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날아가고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하지만, 나는 강인한 사람이니, 지금의 이 시련을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
이날의 스케줄은 간단했다. 오전 8시 25분까지 집합을 하여, 8시 45분에 스카우트의 연설이 있고, 오전 9시부터 11시 15분까지 훈련을 한 후, 팀 미팅을 마치고 해산한다.
이후 계속 자유시간을 갖다가 6시 30분부터 환영 만찬이 시작된다.
물론 당연히 그 자리에는 스카우트들과 에이전트들도 참석한다.
어린 선수들은 그렇게 에이전트, 스카우트들과 안면을 트는 것이다.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스카우트 조슈아 심슨의 연설이 끝나고, 투수조는 스트레칭과 수비 훈련이 끝난 후 불펜 피칭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긴장 되지?”
불펜까지 따라온 아빠가 내게 물었다.
과거에는 이때 내가 어떻게 대답했었더라?
그것보다 이때의 아빠도 내가 알던 아빠보다 대단히 젊어보였다.
“너무 떨 것 없어.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알았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텍사스. 사우스레이크 캐럴 하이스쿨 제이든 헌터.”
그리고 첫 번째 호명은 역시나 헌터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헌터는 이때 최고 구속 96마일(154.5㎞)의 포심 패스트볼, 82마일(132㎞)의 커브, 84마일(134.2㎞)의 서클 체인지업을 던졌었다.
헌터는 깊게 숨을 내쉬고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투구 폼이 참 간결하게 예뻤다.
‘슈우웅’
‘펑’
하는 둔탁한 굉음과 함께 패스트볼이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엑셀런트.”
내셔널 팀의 투수 코치 마틴 그린슬레이드와 아메리칸 팀의 투수 코치 딘 웰란은 나란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헌터라니까. 대단해.”
“우리하곤 차원이 다른 수준이야.”
“미래의 게리 콜건”
스카우트고, 코치고, 에이전트고, 선수고, 공 한 개 던진 것 가지고 여기저기서 찬사가 쏟아졌다.
물론 헌터의 미래를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냥 코웃음만 나왔다.
게리 콜건?
게리 콜건은 현 MLB 최고의 선발 투수 중 한 명으로, 9년 3억 2천 400만 달러라는 투수 역대 최고 금액 FA 계약의 주인공이었다.
제2의 게리 콜건이 아니라 제2의 호세 레이예스겠지.
호세 레이예스는 서울 피닉스의 에이스로, 전형적인 AAAA 투수였다.
그러고 보면, 헌터가 나중에 뛰게 되는 팀도 서울 피닉스였다.
헌터의 투구가 계속되고,
“트로이 타마락 하이스쿨 리키 돌란.”
리키 돌란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이 친구도 그러고 보니까, 나중에 KBO행을 선택했지?
여기가 무슨 KBO 동창회라도 된 것 같군.
‘슈우웅’
‘펑.’
92마일(148㎞)
저러니 KBO에 가지
아. KBO리그를 비하할 목적으로 한 말은 아니니 오해 않길 바란다.
뭐 어쨌건 참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는데, 실전 피칭이 아닌 불펜 피칭이라고 해도, 22년 만의 피칭인데 과연 내 몸이 제대로 기억하고 따라줄까?
130㎞대 배팅볼이라도 던진다면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하긴 뭐 내가 꿈을 꾼 게 맞는다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우스 코리아 서울 K-POP 엔터테인먼트 아트스쿨 태양 왕.”
드디어 마지막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잘 해.”
아빠의 응원과 함께 마운드에 올랐고,
‘후우.’
숨을 한번 깊게 들어 마신 후, 힘차게 와인드업을 했다.
몸이 아직 내 투구 폼을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공이 글러브에서 빠져나갔고,
‘퍼어엉.’
하는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음······
순간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왜들 그러지?
랩소도를 한 번 쳐다봤다.
어?
What The Fuck?
저게 내가 던진 공이라고?
105.3마일(169.5㎞)에 3057rpm, 100%의 회전효율, 3057rpm의 유효 회전수,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뭐 PED라도 복용한 것인가?
구속이야 그렇다고 치자. 저 회전수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래.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다시 한 번 던져보자.
‘퍼어엉.’
제2구도 105.5마일(169.8㎞)에 3029rpm, 100%의 회전효율, 3029rpm의 유효회전수가 찍혔다.
이거 설마 내가 미쳐서 환각을 겪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 내가 미친 게 맞을 거야.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어.
애초에 마녀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고, 회귀라는 것은 더 말이 안 되는······
잠깐. 마녀라고?
“이거 아무래도 랩소도가 고장이 난 것 같군요.”
저 사람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스카우트 콜린 덴스모어군.
뭐 솔직히 나도 그렇게 믿고 싶은데, 랩소도가 갑자기 고장이 날 리가 있냐.
“아니. 딱 봐도 무척 위력적인 공인데, 랩소도가 고장이 난 건 아닌 것 같군. 그래서 더 이상하단 말이야. 미스터 왕. 혹시 그건 아니겠지?”
이 영감의 이름은 스탠리 오스틴.
27세의 나이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프런트 인턴 직원으로 입사한 이래 뉴욕 메츠, LA 다저스, 시애틀 매리너스, 텍사스 레인저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의 구단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치며 야구계에 몸을 담은 지가 올해로 50년이 된, 이 바닥에서는 진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으로 현재는 뉴욕 양키스의 해외 스카우트 총괄이었다.
양키스 구단은 내가 2학년이던, 작년서부터 나를 주목했었고, 저 영감은 나를 꾸준히 관찰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나에 대해서 저 영감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원래 제가 고등학교 들어간 이후 계속 입스가 있었는데, 이제야 그 입스가 회복이 된 것 같네요.”
지금의 이 상황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어쨌건 내가 입스를 겪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입스로 인해 투수를 포기했었지.
난 거짓말은 안 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제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제가 묻죠. 스탠리 씨는 저를 꾸준히 지켜보셨습니다. 제 몸에 뭔가 특별한 변화가 있어 보입니까?”
“분명 근육도 그대로고, 특별한 변화는 없어 보이네만.”
나는 모자를 벗었고, 모자와 글러브를 모두에게 보였다.
“그리고 보신 것처럼 저는 파인타르를 포함한 그 어떠한 이물질도 숨기지 않았고, 방금 투구에 이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대체 방금 공들은 어떻게 된 건가?”
“입스가 없어지니 제 본래 실력이 나온 것 아닐까요?”
지금의 이 현상에 대해 내심 짚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실대로 말하겠는가?
내가 미래에 베이브 루스를 뛰어넘은 레전드로 MLB 역사에 길이 남고, 은퇴 후에 어느 날 마녀랑 떡치다가 마녀의 주술로 갑자기 열여덟 살 과거로 회귀했다고 그러면 분명히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것이다.
미국의 정신병원은 한국의 정신병원보다 훨씬 끔찍하다고.
아. 물론 나는 한국의 정신병원이건 미국의 정신병원이건,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가본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럼 투구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스탠리 영감도 더는 추궁을 이어가지 못하게 비켜섰고, 나는 투구를 재개했다.
나는 포수에게 싱커를 던질 것이라는 사인을 보냈다.
이때의 내가 던질 줄 아는 구종은 단 세 개.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 즉 커터, 그리고 싱커, 패스트볼 종류의 세 개가 다였다.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무기는 패스트볼이 아니겠는가?
물론 뭐 슬라이더나,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너클볼 등 다른 변화구도 쥐는 그립이나 던지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단 한 번도 던져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고교 레벨에서는 저 세 종류의 패스트볼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뭐 제구가 안 됐었다는 점이 함정이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분명 싱커나 커터도 원래보다도 훨씬 더 강한 위력이 나올 것이다.
‘퍼어엉.’
106마일(170.6㎞)에 2959rpm, 100%의 회전효율, 2959rpm의 유효 회전수가 랩소도에 찍혔다.
“당신은 원래부터 야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고, 또 절 안으면서 제 마력(魔力)도 조금이나마 가져가셨으니, 다시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파이팅. 멋진 활약 기대할게요.”
나는 나타샤, 아니 마녀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마녀의 마력이 나에게로 전해졌고, 그 마녀의 마력 덕분에 본래보다 더욱 위력이 있는 공을 던지게 됐다.
이거 아니고서는 저런 말도 안 되는 공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지금의 이 상황도 분명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뭐 애초에 내가 과거로 회귀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나는 사실 대단히 논리적인 사람이고, 오컬트 같은 그런 비과학적인 것도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인데,
어찌 되었건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이 상황은 분명히 일어난 일이고, 그렇다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아니. 믿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군.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이 상황에 아직 완전히 적응을 한 건 아니다만, 뭐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만큼 언젠가는 적응하겠지.
본디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 아니겠는가.
그런데 다른 이들은 뭐 이렇게 어물쩍 대충 속여 넘긴다고 해도 아빠는 어떻게 속여 넘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