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Chapter 21. 이길 때는 확실하게 이겨야 하는 이유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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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이길 때는 확실하게 이겨야 하는 이유 (2)
#1 2차전
2차전의 선발은 병민선배다.
병민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중학교 1년이지만 짧고 굵게 나에게서 투수의 기본을 배운 학생으로 큰 부상없이 잘 성장해줘서 KBO에서 손꼽히는 토종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나는 병민 선배 옆에서 러닝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너는 어제 그렇게 던지고 오늘 훈련을 하냐?”
“제 루틴 알고 계시면서 그러신다. 그리고 고작 100개도 안던지고 골골 거리면 투수 하면 안되요.”
“보통 투수들은 100개를 안 던져도 한 이틀은 골골 거려야 하거든?”
“제가 보통 투수는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오늘은 좀 편하시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내가 개막전에서 이를 악물고 던진 이유는 초반에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면서 치고 나가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음에 선발 등판하는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선배 오늘 완봉하면 저한테 소고기 사셔야합니다.”
“허! 너 계약금으로 15억 받았다면서? 나도 이제 프로 3년차야! 내 연봉이 아직 1억이 안된다 이자식아!”
“에이, 제가 돈이 없어서 소고기를 얻어먹겠습니까? 얻어먹는 소고기가 맛있으니까 얻어먹죠.”
“하아, 너 친구들 좀 불러주면 안될까?”
“제 친구들이요?”
내 첫 등판을 본 꼬맹이들은 나에게 축하 문자를 남겼었다.
물론 수지와 뜨밤을 보내느라 확인은 늦었지만 말이다.
[골든리트리버 : 오올, 첫 등판에 노히트 노런? 우리 이영이 살아있네!]
건방진 시고르브자브종 녀석이 감히 누구부고 살아있다는 건지!
[눈치0할 : 외야수 실책만 아니었으면 퍼펙트게임인데······. 힘내]
눈치 없는 민규녀석은 여전히 눈치없게 내 속을 긁었지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어린중범 : 데뷔전에 노히트 노런이라니 인정, 그래도 메이저리그 데뷔는 내가 빠를걸?]
기필코 올해 호크스를 우승시키고 내년에 메이저 데뷔를 해서 진우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것이다.
[선비 : 축하해.]
그나마 민우 녀석이 남긴 메시지가 정상적이었지만 은근 투쟁심이 넘치는 녀석은 지금 이순간에도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녀석들은 지들 앞가림 해야해서 바쁠거에요.”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요즘 가슴에 와닿아.”
“무슨 뜻이에요?”
“녀석들이 억제기 였다는 것을 내가 몰랐던 거지.”
······흥! 그 누구도 덴튼 트루 영님을 억제 할 수 없다.
그리고 솔직하게 내가 그 녀석들을 억제해준 거지 그 녀석들이 나를 억제했다는 허위주장은 내 입장에선 받아 들일 수 없는 소리다.
“선배, 진짜 억제기 해방되기 전에 그냥 조용히 운동이나 하시죠.”
정병민은 아직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몸을 살짝 떨렸다.
“······그럴까? 갑자기 러닝이 하고싶네.”
#2 불안한 2연승
2차전 선발 등판한 병민 선배는 깔끔하게 8이닝 무실점으로 창원 티라노즈를 막아냈다.
그동안 호크스 타선은 5점이라는 넉넉한 점수를 벌어다줬지만 문제는 호크스의 불펜이었다.
단 1이닝을 남기고 갑자기 소설작가에 빙의한 호크스 불펜은 호크스 팬들의 염통을 쫄깃하게 해줄 대하막장드라마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에 2연속 안타를 맞을 때만 해도 호크스 팬들은 그르려니 했다.
┗>아, 어제 경기랑 오늘 병민이 던지는거보고 야구라는게 얼마나 심장에 해로운 스포츠인지 잠시 망각했다.
┗>그래도 설마 아웃카운트 3개잡는데 5점이나 필요하겠어?
아직까지 희망회로를 돌리던 호크스 팬들은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잡고 쓰리런 홈런을 맞는 투수를 보고 희망회로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쿠옹······. 현역때는 본인이 직접 집필을 하시더니 감독이되자마자 문하생들에게 그 필력을 전수해 주신겁니까?
┗>쿠옹은 막장드라마가아니라 그냥 떡밥만 뿌리고 우리를 낚은거지. 그런데 쟤들은 우리를 낚기보다는 패배를 낚을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ㅅㅂ! 이게 야구지! ㅅㅂ! 이게 야구지! ㅅㅂ! 이게 야구지! ㅅㅂ! 이게 야구지! ㅅㅂ! 이게 야구지!
┗>아, 뭐하냐? 진짜 넉넉하게 이길 각이 나왔는데 이제 2점 남았다!
덕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단 구태성은 이제 선택의 순간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불펜에 쓸만한 녀석은 주칠중이랑 이정균뿐이다. 주칠중은 그나마 안정적인 운용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티라노즈의 타선을 막기에는 구위가 떨어진다. 이정균은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된 선수라 데이터가 없다.’
보통 감독이라면 구관이 명관이라며 주칠중을 올렸겠지만 구태성은 달랐다.
“정균이 올려.”
“알겠습니다.”
자신이 해야할 지시를 끝낸 구태성은 마운드를 향해 걸어갔다.
마운드 위에는 반쯤 넋이 나가있는 변용병이 있었다.
변용병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쥐고 있던 공을 구태성에게 넘겨줬다.
그 모습을 본 구태성은 문득 사이영이 떠올랐다.
‘사이영 그 녀석이라면 재미삼아서 홈런 좀 맞아봤다면서 죽어라고 공을 놓지 않을 테지?’
하지만 모든 투수들이 사이영만큼 굵고 튼튼한 신경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감독이 된 자신은 변용병같은 선수들의 멘탈도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이었다.
“수고 많았다.”
구태성이 어깨를 두드려주자 변용병의 고개가 더욱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시즌은 길고 앞으로 너를 증명할 기회는 남아 있다.”
‘그 기회가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구태성이 생각하는 마무리의 제일조건은 자신감이었다.
자신의 공을 믿지 못하는 마무리는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없다.
그리고 오늘 변용병은 오늘 몇 없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부상에서 이제 막 복귀한 이정균은 마운드 위에 서게 되자 만감이 교차했다.
‘사이영 그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그 압도적인 구위를 믿고 공을 던지겠지?’
이정균은 대전 호크스에서 정병민 다음으로 사이영에게 큰 영향을 받은 투수였다.
사이영은 스프링캠프에서 유독 뒤처지는 이정균을 집중적으로 마크해서 끝까지 훈련을 완수하게 도왔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도 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이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 이정균은 정말 악착같이 스프링캠프 훈련을 소화했다.
그 결과 부상으로 인해 떨어져 있었던 체력은 부상을 당하기 전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을 만큼 몸이 올라왔다.
몸이 회복되자 자연스럽게 구위도 올라왔고 구위가 올라오자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생겼다.
“잘 부탁한다.”
막상 마운드 위에서 자신에게 공을 전해주는 구태성을 보면서 이정균은 지옥같았던 스프링캠프 대신 불펜에서 몸을 풀면서 타 두었던 커피가 생각났다.
“불펜에 커피를 타 놨는데 커피가 식기 전에 끝내겠습니다.”
다행히 구원 등판한 이정균은 갑작스러운 등판에도 당황하지 않고 마운드에서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그리고 정병민의 시즌 첫 번째 승리를 지켜내고 팀의 첫 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3 사이영은 웃고 있다.
투수에게 가장 괴로운 상황은 덕아웃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야구를 지켜보는 일이다.
물론 매일 매일 공을 던지면 어깨가 망가질 것이기에 나는 최대한 오래, 그리고 최대한 많이 공을 던지기 위해 그 고통을 참으며 야구를 봤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야구를 하는 것이지만 그 다음으로 재미있는 것은 야구를 보는 것이다.
물론 농사일도 보람되고 재미있긴 하지만 상대방을 이긴다는 그 짜릿함만큼은 농사에 비할바가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고이고 고인 고인물들은 야구를 즐기는 다른 방법을 알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애송이들의 불안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오늘 승리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병민 선배는 내 옆에서 자신의 승리가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는 것을 태연한척 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 거 봐요. 제가 늘 투수라면 어깨위에 있는 기관을 모자걸이로 쓸게 아니라 투구수를 아끼는데 활용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지금 병민 애송이가 불안에 떨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가 연산군도 아니면서 투구수를 흥청망청 쓰니까 8회 시작부터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떻게 꾸역꾸역 막아낸 건 칭찬해줄 일이지만 나 같으면 애당초 그런 일이 발생할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잘 던진거지. 잠시 8회에 흔들리긴 했지만 무실점이잖아.”
“선발이라면 완투를 할 생각을 하셔야죠.”
“내가 워낙 정이 넘쳐서 우리 선배님들이 활약할 기회를 주고 싶었달까?”
짜식, 훌륭한 선발투수가 되었구나.
이럴 때 나는 꼬맹이들을 키운 보람을 느끼곤 한다.
“역시, 선배님 존경합니다. 그나저나 정균이형도 진짜 대단하네요.”
“그래, 토미 존 수술을 하고 바로 복귀해서 저런 공을 던질 수 있다니······.”
사실 나는 정균이라는 꼬맹이가 저렇게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정도 되면 투수들의 체형만 봐도 대충 어느 정도의 공을 던질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프링캠프때부터 정균이를 밀착마크를 했다.
이 빌어먹을 구단에는 없는 것이 너무 많고 그 아쉬움을 달래려면 부러진 도자기도 다시 이어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성깔도 있는 것이 저렇게 위기상황에 몰려도 쫄지 않을 거라는 확신까지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정균이 녀석은 내 예상보다도 좋은 공을 뿌리면서 팀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자, 선배 나가셔서 인터뷰 하면 제 덕분에 이겼다고 꼭 말씀하셔야합니다. 아니면 소고기 20인분입니다.”
“에휴, 지긋지긋하다.”
나는 승리인터뷰를 하러 올라가는 병민 선배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4 좀이 쑤시는 사이영
개막 2연전의 승리 덕분일까?
우리는 주중에 대전으로 돌아와 대구 리카온즈와 주중 3연전을 치렀다.
그리고 개막 2연전의 연승 덕분에 팀의 사기가 올라서인지 톰과 핫토리가 리카온즈의 타자들을 잘 묶으면서 2경기 모두 승리를 거뒀다.
“코치님! 감독님께 말씀 드려서 내일 저를 등판시켜 주십시오.”
“이 무슨 개소리야? 이영아 너 지난주 토요일에 등판한 거 잊었어? 이제 목요일이다. 휴식일이 겹쳤지만 그래도 5인 로테이션을 돌리면 너는 금요일에 등판해야지.”
“아, 너무 쉬었더니 어깨가 썩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나는 프로를 하고 4일이나 쉰 적이 없다.
이런 나에게 5일을 쉬고 6일째에 등판하라는 소리는 아예 한 경기를 쉬라는 소리나 다름 없다.
내 최적의 투구사이클은 3일 등판이지 6일 등판간격이 아니다.
“응, 헛소리하지마.”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이 시대에 알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다.
아, 욕구불만이 생길 것 같다.
이럴때는 단톡방이 최고다.
[사이영 : 이 허접들아! 열심히 해라.]
[골든리트리버 : 왜 무슨일이야? 선배들이 괴롭히기라도 해?]
[어린중범 : 야, 쟤가 선배눈치 볼 녀석이냐? 딱 보니 코치나 감독님한테 떼를 쓰다가 이빨도 안들어간거 같은데.]
[골든리트리버 : 오 그럴듯한데?]
[눈치0할 : 그랬구나. 이영아 너도 이제 어른이야 떼를 쓸 때 써]
[선비 : (누런 강아지가 검은 강아지에게 술잔을 건네는 이모티콘)]
내가 앓느니 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