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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회 차 레전드 투수 사이영-64화 (64/70)

〈 64화 〉 Chapter 20. 2번째 데뷔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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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2번째 데뷔전 (3)

#1 부모의 마음

사무진 최나영은 사이영이 등판하는 날이면 사이영 몰래 사이영의 경기를 관람했다.

두 사람에게는 사이영은 참 특별하고 고마운 아이였다.

처음에는 사이영이 환생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지만 사이영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자신들이 호크스를 응원하면서 고통을 받자 자신들을 위해서 공을 던지겠다고 이야기한 아들은 어릴 때부터 힘든 훈련을 꾸준히 소화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하게 된 두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고였다.

“여보, 우리 이영이 참 잘 컸죠?”

“그럼요! 우리 이영이가 주황색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걸 보게 될 줄이야.”

“‘보통’아이였다면 꼬맹이 시절 때 우리와 한 약속은 기억도 못했을 텐데······.”

“우리 아들이 ‘보통’아이는 아니잖아요.”

“암! 우리 아들이 보통은 아니죠! 하하하!”

“여보, 그만하고 앉아요. 팔불출 소리 들어요.”

“아, 내 아들 내가 자랑하겠다는데 누가 말려요. 저 아이가 내 아들이다! 왜 말을 못하게 하냐구요.”

사이영은 물만난 고기처럼 데뷔전 첫 번째 공으로 KBO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1회를 삼자범퇴로 마무리 하기까지 단 9개의 공이면 충분했다.

비교적 강팀인 창원 티라노즈의 타선조차 사이영의 공을 칠 수 없었다.

물론 창원 티라노즈는 타격으로 유명한 팀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높은 투타의 벨런스를 자랑하는 팀이었기에 작년에도 타격성적만 보면 4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사이영은 KBO 평균 이상의 타선을 상대로 9구 3삼진 이닝을 데뷔전부터 보여주면서 호크스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3루에 모여있던 호크스 팬들은 이제 막 1회가 끝났는데 ‘행복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호크스라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호크스라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호크스라 행복합니다!”

그 중에는 사무진 최나영 부부도 함께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영이 아빠라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영이 엄마라 행복합니다!”

다만 호크스라 행복한게 아니었다.

#2 동기사랑 나라사랑

2회초 우리의 공격은 6번 타자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우리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시작되었는데 ‘비교적’ 나쁘지 않은 우리팀의 상위타선과 달리 우리팀의 하위타선은 정말 10개구단 최악이라는 소리가 나올만큼 비관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지명타자 이선주의 방망이가 나보다 안 좋아서 내가 선발등판하는 경기는 이선주 대신 내가 타석에 설 수 있겠는가?

내 메이저리그 22년차 경력이 말해주는데 투수는 타고나는 직업이다.

내가 한때 이런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투수는 마치 시인과 같아서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게 아니라고, 이 말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타자는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리와 같다.

투수가 타고난 감각과 어깨로 공을 던지는 예술가라면 타자는 수년간 갈고 닦은 기술로 투수의 공을 때리는 기술자에 가깝다.

“이, 이영아!”

고교시절 조치현에게 사이영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스타였다.

아니, 사이영과 같이 야구를 하는 F4맴버들은 당시 모든 고등학생들의 목표이자 경쟁상대이면서 롤모델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치현은 사이영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우연히 사이영과 같은 팀이 되면서 급속도로 팀의 중심이 되는 사이영을 보자 섣불리 말을 걸수도 없을 만큼 벽이 느껴졌다.

“여, 동기 무슨 일이야?”

말은 살갑게 했지만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것 하나였다.

[뭐지 이 찐따는?]

찐따의 정체는 조치현, 나와 같은 1년차 루키로 아직 팀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녀석이지만 수비실력 만큼은 인정을 받아 주전 2루수를 꾀찬 녀석이다.

다만 내야유틸 박상일이 조치현보다 방망이가 미세하게 좋아서 언제 2군으로 내려갈지 모르는 불안한 녀석이기도 하다.

아, 2군은 안 가려나? 1군 수준이 이런데 2군은 어떻겠어?

조치현은 마치 누군가 들을까 무섭다는 듯이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낮게 속삭였다.

“내가 8번타자잖아.”

과거 데드볼 시대에서는 투수가 9번타자인게 당연했지만 현대 야구에서 9번타자의 입지는 조금 다르다.

바로 팀의 상위타자와 연결되는 타자로 적어도 하위타순에서 가장 찬스를 잘 만들 수 있는 타자가 9번 타자를 치게 된다.

즉 이 시대에 투수에게 밀려서 8번 타자를 치게 된 내 불쌍한 동기녀석은 팀에서 ‘버린’ 방망이라는 소리다.

“그래, 동기야 드디어 네가 네 위치를 자각하게 되었구나. 너는 8번 타자 팀에서 제일 못치는 녀석이지.”

“······방법이 없을까?”

“아!”

나는 그동안 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둬들여 용병들까지 어울려서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물론 오늘부터 승리를 거두고 치고 나가면 이 좋은 분위기는 계속 유지가 될 것이고 개막 2연전에서 연패라도 하는 순간 이 좋았던 분위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물론 오늘 경기는 이길거지만 다음 경기가 문제다.

우리팀 타격은 입에 침을 발라도 좋다고 할 수 없을 지경이고 사실상 반쯤 타격에 대해서는 포기하기도 했다.

솔직하게 루키인 신분으로 건방지게 선배들의 타격 메커니즘에 ‘일해라 절해라’ 하는 것은 ‘뇌절’이다.

지금이야 귀여운 후배 정도의 포지션이다보니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귀여움을 듬뿍 받을 수 있겠지만 타격 메커니즘에 대해서 입을 여는 순간 ‘건방진 루키’놈이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조치현 저 녀석은 나랑 같은 ‘루키’신분이다.

즉 내가 어느정도 조언을 해줘도 되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마음같아서는 건방진 중범 선배부터 개조를 해버리고 싶지만 하필이면 중범선배 녀석은 나랑 같은 중학교 출신의 ‘직속선배’다.

아, 녀석은 왜 하필 유성중을 나와가지고!

사이영이 말 없이 깊은 고민에 빠진 듯 하자 애가 닳은 조치현이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아, 내가 중범이 녀석 때문에 우리 동기님을 버렸구나.

내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안하긴 하다.

방법? 차고 넘치지 그전에 우선 확인할 것이 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동기님은 어떤 타자가 되고 싶습니까?”

“어떤 타자? 뭐 홈런을 뻥뻥 때리면서 평균 4할에 가까운 타율과 6할이 넘는 출루율이면······.”

젠장! 글렀다. 이 자식은 떡잎부터 누런 녀석이다.

“우리 동기님 키가 몇이지?”

“170!”

장담하는데 저 녀석이 170이면 민규는 눈치가 있는 편이다.

“우수리는 떼고 말씀하셔야지?”

“169.7?”

분명 프로에서 체격은 경쟁력이다.

하지만 녀석은 특유의 재빠른 몸놀림과 번뜩이는 제치 그리고 강력한 어깨를 경쟁력으로 당당하게 프로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흠, 일단 우리 동기님은 장타력은 포기하셔야겠죠?”

‘그래도 나 정도면 손목 힘도 나쁘지는 않은데?’

눈 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녀석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

“양심이 있으시다면 말이야. 고교야구에서 상대하던 투수들이랑 프로랑 공이 같아?”

“솔직하게 고교야구에서 너를 상대할때가 더어려웠던······.”

짜식 역시 악마의 자식들 같은 꼬맹이들과 달리 바른말만 하는 천사의 자식이었구나?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나는 제외 해야지!”

“······음, 그렇게 따지면 선배님들 공이치기 어렵지.”

“그래, 상황이 변했는데 너는 고작 고교야구때의 느낌을 잊지 않고 풀 스윙을 하고 있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

사이영의 지적을 받은 조치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사이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올라가봐, 벌써 일제선배가 아웃당했네.”

“어? 어! 일단 올라가볼게.”

녀석은 아쉽다는 듯이 나를 보면서 대기타석으로 향했다.

“애송이 동기님, 일단 살아나가기만 하면 내가 실전 꿀팁을 알려줄게!”

‘실전꿀팁이라······.’

조치현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사이영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나는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상위타선에서 빠른 발을 이용해 장타도 곧잘 생산하는 타자였다. 하지만 인정하자 프로에서만큼은 나는 애송이다!’

7번 타자인 이수담조차 삼진으로 물러서고 조치현의 타석이 왔다.

조치현은 프로데뷔 첫 타석이라는 부담감과 압박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KBO에서 손에 꼽히는 선발투수 빌의 첫 번째 공에 어림도 없는 헛스윙을 한 조치현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 모습을 본 빌은 속으로 내심 조치현을 비웃었다.

‘애송이네. 키도 작고, 정말 꼬마 같잖아?’

마운드 위에 서있는 투수들은 본능적으로 타석에 있는 타자가 사냥감인지 사냥꾼인지 느낄 수 있는 감이 있다.

내가 보기에 빌이라는 녀석은 내 동기를 사냥감으로 점찍은 듯 하다.

그 증거로 나 못지 않게 짧은 인터벌로 공을 던졌다.

투수의 저런 행동은 둘중에 하나다.

일단 ‘애라 모르겠다!’하고 공을 던지는 경우와 타자가 어떤 공을 던져도 내 공을 칠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저렇게 공을 던진다.

나도 그렇고 빌이라는 녀석도 후자의 케이스인 것 같다.

나는 대기 타석에서 배트링(배트의 무게를 무겁게해 스윙스피드와 파워를 올려주는 도구)을 빼지도 않고 기다렸다.

나 뿐만이 아니라 경기장에 있는 모든 팬들조차 조치현의 안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듯 했다.

티라노즈 팬들은 축제라도 된 것 마냥 애송이 검투사의 패배를 즐겼고 호크스 팬들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조치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뿌드득!

조치현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데뷔전, 데뷔타석이라고 해도 타자는 타석에서 투수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상대하는지 알 수 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표정, 몸짓만으로도 빌이라는 거인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뭔데! 감히 나를 졸로 보는건데!’

분노에 몸을 맡긴 조치현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갔다.

부우우우우웅! 따        악!

조치현이 친 타구는 정확하게 우익수 앞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데뷔전의 중압감에 짓눌려있던 어린 타자가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숨만 죽이고 있던 호크스 팬들은 어린 타자가 불러온 승전보에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오, 가끔 야구에서는 이름도 없는 투수가 나 같은 위대한 투수의 공을 때려내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 야구라는 스포츠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야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결과가 명확하게 나오는 스포츠다.

수 많은 예상을 무너트리고 언더독이 탑독의 목을 물어뜯는 순간(upset)은 야구장을 찾아온 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기적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 그 기적에 기적을 더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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