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Chapter 20. 2번째 데뷔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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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2번째 데뷔전 (2)
#1 데뷔전의 의미
1890년 8월 6일은 나뿐만 아니라 야구 역사에서도 아주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바로 전대미문의 대 투수 덴튼 트루 영님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 있던 날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 있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관중, 내 공을 받아주던 마누라 같던 짐머 아저씨의 표정 하나하나 전부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날은 내가 애송이처럼 공을 던진 날이었다.
하긴 데뷔전을 치르는 루키가 애송이가 아니면 누가 애송이겠는가?
다행히도 그날따라 오늘처럼 컨디션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컨디션이 나빴다면 데뷔전을 스스로 망쳐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그때 나는 멍청했다.
만약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나는 당장 타임머신을 타고가서 그때 어리버리하던 내 뒤통수에 샷건을 겨누고 똑바로 안하면 갈겨버린다고 으름장을 놀 것이다.
나는 루키처럼 공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첫 등판 완봉 3피안타로 나는 위대한 출발을 알렸다.
그리고 오늘 목표는 당연히 인생 1회차때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1890년 막 메이저에 데뷔한 어리버리 루키도 아니고 1911년 10월 11일에 은퇴한 중년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려 22년 동안 메이저에서 군림했던 기억을 그대로 전생보다 더욱 강력해진 나는 첫 번째 등판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인생 2회차때 까지 야구에 내 열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때까지 한 노력이 옳다면 나는 분명 인생 1회차의 데뷔전 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물론 상황은 많이 변했다.
1회차 데뷔전에서는 투구거리가 고작 15m인 반면 2회차에는 18.44미터로 늘어났고 던지는 공은 반발력이 더욱 강해진 라이브 볼이며 타자들의 기술은 135년 전과 비교하면 말도 안될만큼 진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나는 오늘 역사를 다시쓸 것이다.
#2 경기시작
창원 티라노즈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근본없는 구단이다.
그럼에도 우승 횟수는 무려 1번으로 호크스와 우승횟수가 똑같은 구단이다.
그리고 작년에도 2위를 하면서 컨텐더팀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있는 강팀이다.
티라노즈의 선발은 외국인 용병으로 180정도 되는 키에 다양한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였다.
구속도 150km/h 이상이 나오는걸로 봐서 마음먹고 던지면 150km/h 중반 이상은 나올 것이고 구위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슈우우웅 파앙!
덕아웃에 있어도 빌 이라는 투수가 얼마나 잘 준비된 투수인지 알 수 있다.
“아이고, 우리 이영이 어떻하나? 상대 선발이 하필이면 빌 제임스라니!”
정상종이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왜? 정말 위로를 받아야 하는 녀석은 빌이라는 녀석인데? 녀석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라는 위로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거니까.
“작년에도 방어율이 2점 중반이었죠?”
무식한 진목아, 방어율이 아니라 평균자책점이란다.
어찌된게 이 나라는 영알못들이 천지다.
심지어 감독조차 패스트 볼을 직구라고 부를 정도로 용어가 중구난방이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된다는게 신기하다.
“오늘은 공이 더 좋아보이네요.”
“선배들이 못치셔도 상관업습니다. 어차피 제가 타석에 나갈거니까 제가 홈런치고 완봉으로 틀어막으면 1승이겠네요.”
창원 티라노즈의 에이스 빌 제임스의 호투에 점점 무거워져가던 덕아웃의 분위기는 루키의 허풍덕분에 다시 가벼워졌다.
올해 3번 타자자리를 차지한 정상종이 배트를 꺼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푸하하하하! 이제 막 프로에 입단한 애송이한테 업혀갈 순 없지.”
누가 애송이라고? 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 녀석이! 홈런치고 들어오는 순간 등에 손바닥 도장을 찍어 줄 테다!
따 악!
정상종은 내 속마음을 들었는지 홈런에 조금 모자라는 2루타를 쳤다.
볼넷을 골라서 살아나간 중범 애송이가 이악물고 달린 결과 천금같은 1점을 획득했다.
“1점이라, 이 경기 이겼네요.”
비록 후속타자들은 범타로 물러났지만 오늘 내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는데 1점은 차고 넘치는 점수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를 애송이라 부른 정상종 애송이는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나는 녀석의 등에 내 손도장을 찍는 것을 조금 미뤄야만 했다.
그리고 올라간 마운드, 환생을 하고 처음으로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 앞에서 공을 던지게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던지는 공에 주목을 한다는 생각에 온 몸에 솜털이 곤두섰다.
물론 첫 번째 데뷔전도 이랬다.
당시에는 이런 감각에 지배되어 오로지 포수 짐머 아저씨의 미트만 보고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인생 2회차가 되어서야 이 감정과 감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를 찍고있는 카메라를 보면서 씨익 웃어보였다.
이제 마음먹고 진심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겠네!
사이영이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웃는 장면을 가장 먼저 본 PD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야, 지금 당장 사이영 저 표정을 송출시켜!”
“알겠습니다.”
당연히 이 장면은 전국에 송출이 되었고 해설자들도 이 광경을 지켜봤다.
-아, 사이영 선수 웃고있어요.
-저 선슈, 이제 막 프로가 된 시닌선슈거든요? 그런데도 여유가 있쓰요!
-허규연 해설위원님은 사이영 선수에 대해서 좋게 평가를 하시는 군요?
-일단 잘쉥겼지 않슴미까?
┗>엌ㅋㅋㅋ 등판과 동시에 양아들각 떳냐?ㅋㅋㅋ
┗>허이영 허이영 허이영 허이영 허이영 허이영 허이영 허이영!
그리고 사이영이 던지는 역사적인 첫 번째 공이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쌔~~~~~~~~~~~~ 앵! 뻥!
전광판에는 사이영이 던진 공의 구속으로 167km/h가 찍혀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창원 티라노즈 팬들은 전광판에 찍힌 구속에 열광했다.
비록 상대팀 투수라지만 KBO에 이런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손에 꼽힐만큼 적었다.
하지만 정작 이런 강속구를 던진 사이영은 덤덤하기만 했다.
오, 방금 던진 공은 전성기 때 내가 던지던 ‘사이클론’에 한 없이 가까운 공이잖아?
‘사이클론’은 내 전성기 시절 결정구로 투스트라이크까지 몰아붙였을 때 호너스 ‘빌어먹을’ 와그너나 타이 ‘멍청이’ 콥같은 타자를 상대로 던졌던 공이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고 해도 모든 공을 전력으로 던질 수 없다.
이건 덴튼 트루 영이 아니라 덴튼 트루 영의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된다.
그렇기에 완급조절을 해야지만 완봉을 할 수 있다.
무식하게 전력으로 공을 던지는 것은 불펜에서 올라와서 몇이닝정도만 던지면 될 때 사용하는 투구법이지 선발에게 어울리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사이영의 ‘완급조절’된 ‘진심’ 패스트 볼을 받은 서진목은 왼손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크윽, 이거 공이 말도 안 되게 무겁잖아?’
이번 시즌 호크스 선수들은 정말 혹독한 훈련을 했지만 호크스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훈련량을 소화한 선수는 서진목이었다.
서진목은 오로지 사이영의 공을 받기위해 160km/h가 넘는 피칭머신의 공을 수백개씩 받으면서 사이영의 구속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막상 정규시즌에 사이영이 던지는 공은 연습경기때 던지던 공보다 훨씬더 무거웠다.
‘잘못하다가는 팔목이 부러질지도 모르겠는데?’
서진목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손목 스트레칭을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
“나이스 볼!”
심판의 콜이 떨어지자 진목 선배가 나에게 공을 던져주면서 한마디를 한다.
“오늘 공 좋은데?”
흥, 애송이 포수주제에 좋은 공을 보는 법은 아는 군!
아, 그리고보니 1890년 8월 6일과 2024년 3월 30일의 차이는 투수에게 불리하기만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포수의 미트와 방호구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무슨 개소리냐 싶겠지만 나와 함께 베터리를 이루던 짐머 아저씨는 내 공이 너무 강해서 미트에 진짜 미트(고기)를 덧대서 공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내 공을 제어해야만 했고 이후 간간히 얻어맞는 안타가 나올 때마다 나는 전력으로 공을 던질 수 없는 현실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포수의 미트는 1890년대 미트보다 훨씬 더 과학적으로 포수의 손목을 보호해줄 수 있게 변했다.
비록 1890년보다 투구거리가 3.44미터가 늘어나고 공의 반발력은 말도 안 되게 높아졌지만 그따위 제약은 내가 더 강한공을 던질 수 있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 초구! 167km/h 빠른 속구가 박청솔 선수의 몸쪽으로 파고듭니다.
-박청솔 선슈같은 베테랑들은 저런 패슈트볼에 바능하기가 힘들슈 있슙니다.
-누가 저런 선수를 이제 막 데뷔한 루키라고 생각 하겠습니까?
-정말 오랜만에 호크스에 대형 신인이 들어왔네요.
-샤이영선슈는 계약금으로 15억을 바다거든요? 지금은 그 돈이 아깝지 아늘겁니다.
-허규연 해설위원님 말씀처럼 저런 선수라면 15억이 아니라 30억을 주고서라도 영입하려고 할겁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사이영 선수의 2구! 아, 박청솔선수의 방망이가 크게 헛돕니다.
-저런 방법으로는 공략을 할 수가 없거든요?
-심지어 샤이영선슈의 인터발은 매우 짧은 편입니다.
-타자로 하여금 섕각할 쉬간을 주지 않는 피칭입니다.
┗>엌ㅋㅋㅋ 누가 프라할배좀 말려봐! 흥분하면 할수록 발음이 안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미 수십년간 허규연의 해설에 익숙해진 야구팬들은 편안하게 해설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게 중계지!
┗>맞지 맞지! 이제는 좀있다가 선슈가아니라 슨슈로 바뀐다 바라!
선두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은 나는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부러졌다.
아, 리그 수준이 너무 낮아서 오히려 투구수가 많아지겠네!
나는 3개의 공을 모두 스트라이크 존에 넣으면서도 끊임없이 타자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고 있었다.
3개 공은 모두 스트라이크로 던졌지만 2번째 공은 타자가 치기좋게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로 던졌다.
만약 타자의 방망이에 공이 맞더라도 공에 담긴 힘이 타자의 방망이를 밀어낼 것이고 자연스럽게 스윙의 힘이 줄어들어 내야 플라이 정도가 나올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팀의 수비를 믿어야 한다지만 그래도 우리 내야수 정도면 내가 속했던 팀들 중에선 손에 꼽힐정도로 괜찮은 수준이다.
물론 그 당시 메이저리그의 수준이 매우 낮았다는 건 둘째치고 내가 공을 던지던 구단의 대부분은 약팀인건 사실이었다.
하아, 빌어먹을 리그 수준이 떨어져서 투구수가 늘어나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투구수를 한 개라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슈우우우우우웅 뻐엉!
“스트라이크!”
에라 모르겠다!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지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때로는 이런 경우도 있다.
좋은 몸을 놔두고 왜 굳이 머리가 고생해야하지?
머리야,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이제 몸이 고생 할 테니 너는 좀 쉬어!
나는 더 빠르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