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Chapter 18. 올해는 다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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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올해는 다르다. (3)
#1 첫 승리!
비록 연습경기지만 우리는 전년도 1위를 했던 그리즐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팀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비록 군사적 지식은 없지만 야구를 전쟁으로 봤을 때 실력만큼 중요한 게 바로 팀의 사기다.
항상 의기소침해 있으면 할 수 있는 플레이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야구는 아주 사소한 플레이 하나가 결과를 완전하게 뒤바꿀 수 있는 스포츠다 보니 사기가 매우 중요하다.
팀원들의 행동만 봐도 얼마나 사기가 올라갔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시합전만 해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기운이 없던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고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얼마 만에 곰 사냥이냐?”
“그러게 말이야! 작년에 우리가 16전 1승 15패하지 않았어?”
도대체 뭘 했기에 16번 붙어서 고작 1번밖에 못 이겨? 이게 말이 되냐?
“그 1승도 병민이가 이 악물고 완봉해서 거둔 값진 승리였잖아.”
갈수록 가관이네, 병민 선배가 나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KBO에서 손에 꼽히는 투수다.
그런 투수가 등판했는데 겨우 1승을 거뒀다? 이건 팀이 얼마나 맛탱이가 갔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그만큼 호크스에게 그리즐리는 넘을 수 없었던 벽이란 이야긴가? 후, 갈 길이 멀다.
적어도 전년도 우승팀인 그리즐리인 만큼 이번년도 호크스의 우승을 위해서는 무조건 짓밟아놔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리즐리와의 연습경기는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뭐, 정규경기에서 짓밟아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구태성은 오늘의 승리에 큰 의미를 두었고 불타오른 팀의 사기에 기름을 끼어얹었다.
“오늘 수고 많았다! 오후 훈련은 없다. 대신 오늘 식당에서 회식이 있을 예정이니 모두 씻고 6시 까지 식당으로 집합한다.”
“오예에에에에에에에!” “우어어어어어어!”
좋단다. 안그래도 실력이 부족한 녀석들이 뿌로로 센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지 노는건 제일 좋아한다.
이 팀에서 그나마 놀 수 있는 녀석은 투수조에서 나랑 병민선배, 야수조에서는 고작 정상종 정도다.
나머지는 흙이 묻어 유니폼인지 넝마인지도 모르게 굴려야 하는 녀석들뿐이다.
나는 씻고 집합시간까지 여유가 생겨서 잠시 헨드폰을 들여다 봤다.
수지는 지금 자고있을 시간이니까 부모님께 연락해볼까?
[사이영 : 엄마! 아빠! 방금 시합끝났어요.]
[어마마마 : 아들 고생 많았어.]
[아바마마 : 왜 맨날 엄마를 먼저 찾아? 아들 실망이야!]
[사이영 : 아빠! <곰이 하트를 바닥에 던지는 이모티콘>]
[아바마마 : <곰이 하트를 줍는 이모티콘>]
[어마마마 : 잘들 논다. 잘들 놀아! <토끼가 밥상을 뒤집는 이모티콘>]
어머니의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다.
이럴때는 괜히 어머니의 기분을 긁어서 좋을게 없다.
[사이영 : 엄마, 오늘 우리가 누구랑 붙은지 아세요? 그리즐리랑 붙었어요.]
[어마마마 : 안 그래도 기사가 떴어! <링크>]
나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링크를 확인해 봤다.
[올해는 다르다! 대전 호크스]
일본 오키나와에서 대전 호크스와 서울 그리즐리간의 연습경기가 있었다.
전년도 9위 팀인 대전 호크스와 저년도 1위 팀인 그리즐리간의 경기는 누가 봐도 그리즐리의 압승이 예상되었다.
특히 이날 선발이 KBO 최고의 투수인 조영식이었기에 더욱 그리즐리의 패배가 확실시 되었다.
하지만 경기는 2:0 대전 호크스의 승리로 끝났다.
오늘의 MVP가 있다면 15억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루키 사이영(19세)일 것이다.
사이영은 9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를 기록하며 대전 호크스의 승리를 이끌었다.
KBO투수들은 지명타자 때문에 타석에 서지 않지만 사이영은 지명타자 대신 본인이 직접 타석에 서서 4타석 1안타 1볼넷으로 영양가 높은 ······<중략>······
대전 호크스는 외치고 있다.
“올해는 다르다!”라고!
우리가 올해는 다르다라고 외쳤던가? 하도 시끄러운 시장통이라 관심도 없었다.
[어마마마 : 아들, 정말 올해는 다르겠지?]
[사이영 : 엄마, 올해는 아들이 있잖아요. <힘자랑을 하는 토끼 이모티콘>]
[어마마마 : <곰을 안아주는 토끼 이모티콘>]
[아바마마 : 늘 기자들은 약팀들에게 “올해는 다르다.”라는 기사로 어그로를 끌곤 하지. 하필이면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아서 타이탄즈가 아닌 호크즈가 당했네.]
[어마마마 : 여보! 지금 우리 아들을 못 믿겠다는 거예요?]
[사이영 : 아빠, 엄마 싸우지마세요.]
잠시 부모님의 톡이 사라졌다.
[아바마마 : 범인은 최, 나······.]
[사이영 : 아빠? 무슨 일이에요.]
[어마마마 : 해치운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나보네?]
그리고 두분의 연락이 끊겼다.
아버지 살아는 계시죠? 그래도 어머니가 부활주문은 사용해 주셨으니 다행이네요.
#2 회식
비록 알콜은 한 방울도 찾기 힘든 회식이지만 선수들은 신나게 고기를 구우면서 웃고 떠들었다.
아마도 저 녀석들은 오후 훈련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때 누가 내 접시에 고기를 올려 놓았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봤는데 그 녀석은 놀랍게도 박중범이었다.
“중범선배?”
“짜식, 그래도 대 유성중 후배라고 오늘 좀 던지더라?”
심히 양아치 같은 중범이지만 병민 선배 말로는 ‘겉은 까칠하지만 속은 말랑한’ 갭모애 속성이라고 했다.
내가보기엔 싸가지 없는 김진우가 어린 시절부터 성공가도를 달려서 안하무인이 되면 딱 중범이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좋다. 오늘부터 네 별명은 [늙은 진우]다.
“뭐 너도 이렇게만 던지면 곧 나처럼 슈퍼스타가 될 수 있을거야.”
하아, 진우도 그렇지만 중범이 이 녀석도 개념은 많이 없다.
만약에 중범이 저 녀석이 나보다 후배였다면 진우에게 그랬듯이 예절주입 툼 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날려버리겠지만 선배니까 내가 참아줘야겠지.
KBO는 루키가 날뛰기 너무 힘든 환경이라니까.
메이저리그도 루키헤이징이다 뭐다 말이 많긴 한데 그래도 오가가는 죽빵속에 꽃피는 문화가 있는 반면 유교탈레반의 KBO는 신인이 제대로 된 보복을 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
박중범 너는 진짜 세상에세 제일 운좋은 녀석인줄 알아라.
내가 루키라 참아주는 거지 짬밥이 조금만 찼어도 진우가 누워있을 밭 옆자리는 네 자리가 되었을거니까.
“선배 말씀드렸잖아요. 이영이 진짜 대단하다고 말이죠.”
“그러게, 병민이 네 말이 맞은거 같네. 그런데 창길 선배한테 박치기 한 거 고의는 아니지?”
아앗, 설마 1890년대의 로스트 테크놀러지의 일부가 현대인에게 들켜버린건가?
나는 태연하게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다.
“그럼요. 제가 미친놈인가요? 창길선배 같은 대선배에게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물론 내 꼬맹이들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면(특히 민규) ‘너 미친놈 맞잖아.’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겠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 녀석들은 모두 메이저로 가버렸다.
즉 내 범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녀석은 나에게 당한 창길이라는 개자식 말고는 없다는 뜻이다.
“하긴, 창길선배가 어떤 선밴데 당하고만 있겠어?”
“그럼요! 당하고만 있을 사람은 아니죠.”
제발 당하고만 있지 말아줘.
#3 두목곰의 원한
뿌드득!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정창길은 남몰래 이를 갈았다.
정창길이 누구던가? 재작년 리그 MVP이자 수년간 리그 수위급 타자로 군림하며 특유의 더러운 성격으로 선수들도 무서워 하는 싸움꾼이었다.
심지어 한번은 외국인 투수와 신경전 끝에 벤치클리어링을 시도하면서 KBO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메이저리그식 벤치클리어링을 보여준 사나이였다.
물론 정창길은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뛰어난 선수였다.
특유의 더러운 성격은 오직 야구장 그것도 그라운드 안에서만 보여줬고 팬들에게는 항상 밝고 웃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래서 팬들은 정창길의 투지넘치는 모습에 ‘두목곰’이라는 별명을 선물해 줬다.
190cm에 가까운 피지컬에 더러운 성격, 그리고 자신만큼 큰 외국인 투수에게도 덤벼드는 저돌성으로 인해 정창길은 선배들에게도 건드려선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그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했다.
난생 처음 보는 루키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심지어 루키 녀석은 루키라면 용서 받을 수 있는 ‘실수’를 저질러 자신을 공략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긴 해.’
실제로 정창길 본인 역시 신인시절에 실수인척 몇 번 거친 플레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사이영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때 사이영의 플레이는 누가 봐도 ‘신인이라면’ 할 수 있었던 실수였고 앞선 자신의 행동에도 아무렇지 않다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즉 앞에서 자신이 사이영을 도발했던 플레이가 없었으니 팀 동료들도 녀석의 플레이를 ‘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창길은 고통속에서도 사이영이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후배를 개 좆으로 본 대가입니다. 선배님]
‘사이영이라고 했던가? 두고 보자. 이번일은 꼭 복수해주마.’
“이야, 그런데 오늘 그 루키 공을 봤어? 진짜 너무 빠르던데?”
“빠르기만 한게 아니라 공이 좀 뜨는 느낌이 있지 않았어?”
“그래! 마치 영식이형 공을 보는 것 같았다니까?”
“루키가 그런 공을 던지는게 말이 되나?”
“에휴, 더러워서 빨리 은퇴를 하던가 해야지. 어찌된게 요즘은 해마다 괴물같은 녀석들이 툭툭 등장하는 거야.”
패배하고 돌아가는 그리즐리의 버스안 분위기는 축 쳐져있었다.
#4 연전연승
그리즐리전을 시작으로 대전 호크스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연습경기 6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그 중에는 KBO보다 한단계 높은 리그인 NPB의 소프트뱅크, 요코하마도 있었기에 대전 호크스의 선수들은 더욱 기세가 올랐다.
전이라면 망설였을 타구에도 거침없이 몸을 날렸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휴, 이제야 좀 팀 다운 팀이 완성된건가?’
물론 연습경기라는 것이 상대팀도 전력이 안 올라와있고 실제 연습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팀들은 정규시즌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경우가 많았다.
정규시즌은 144경기를 이겨야 하는 경기다보니 당연하게 부상과 각종 이슈로 인해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프링캠프 초기에 모습을 떠올린 구태성은 마치 두통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두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구태성의 통증을 사라주게 만든 선수는 단연 사이영과 정상종이었다.
특히 정상종은 정말 기대조차 하지 않은 선수였다.
사이영이 당첨이 예정된 복권이었다면 정상종은 상장폐지를 앞둔 주식과도 같았다.
에이징커브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정상종은 매년 성적이 안 좋았고 작년에는 최악의 시즌이었다.
하지만 상장폐지를 앞둔 회사도 정부의 구제나 M&A를 통해서 기적적으로 부활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시즌 정상종이 그러했다.
연습경기지만 정상종은 3할이 넘는 타율과 4할이 넘는 출루율 그리고 6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다.
정상종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야수들은 정상종을 기준으로 똘똘 뭉쳤다.
그 효과로 인해서 연습경기 6연승을 거뒀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었다.
이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정상종의 컨디션이다.
‘설마 오버페이스나 약물은 아니겠지?’
구태성은 제발 자신의 예상이 틀리길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