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Chapter 18. 올해는 다르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Chapter 18. 올해는 다르다. (2)
#1 3회 말
나는 가뿐하게 3이닝 연속 삼자범퇴를 기록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내가 기록한 투구수는 26개 타자당 공 3개를 던지지도 않고 아웃카운트를 얻어냈으니 아주 경제적인 피칭을 하고 있다.
물론 그리즐리 타자들이 초구부터 방망이를 과감하게 돌리는 것을 보고 난 다음부터 맞춰잡는 피칭을 했던게 더욱 주효했다.
“이영이 너 프로에서도 참 쉽게 공을 던지네.”
“병민선배 쉬워 보이는게 제일 어려운 거예요.”
아마 병민 애송이 선배놈은 이 이야기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다.
적어도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팀에서 정상종 수준의 구력은 있어야 어렴풋이 이해 할 수 있는 경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녀석은 감독석에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구태성 정도일까?
“사이영, 아무리 연습경기라고 해도 지명타자자리까지 넘보는건 너무한거 아니냐?”
이선주, 팀의 지명타자를 소화하는 34살의 애송이 지명타자답게 나쁘지 않은 방망이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팀이 필요할 때 번번히 범타로 물러나는 녀석이다.
“제가 선발등판하는 날에는 선배는 편안하게 특등석에서 제 홈런을 감상하시면 됩니다.”
“너, 고등학교 내내 홈런을 10개도 못쳤다면서! 그것도 3개는 한경기에 몰아친 경기고!”
그랬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걸 보니 분명 이선주 저 겁쟁이가 헛소리를 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지켜 보시면 알겁니다.”
3회 말 앞선 이닝에서 타자들이 출루를 했기에 나는 이번 이닝 선두타자로 타석에 나섰다.
조영식이라는 KBO탑 클레스 투수를 상대로 대전 호크스가 2번의 출루를 기록했다는 것 만으로도 대전 호크스의 전력이 많이 올라왔다고 할 수 있겠다.
대전 호크스 팬들 사이에서는 병민 선배가 대전 호크스의 타선을 상대하지 않고도 조영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것만으로도 병민 선배가 KBO 원탑이라는 주장을 펼칠 만큼 우리 타자들은 리그에서 호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습경기고 아직 2월이라 몸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은 조영식이라지만 그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타석에 들어서자 이름도 관심 없는 포수 놈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꼬맹아, 너는 투수면서 타자까지 욕심을 내냐?”
하, 감히 덴튼 트루 영님을 꼬맹이라고 불러? 안되겠다! 너는 나한테 혼 좀 나야겠다.
문제는 내 타격이 리틀리그에서는 압도적이었고 중학교에선 빼어났으며 고등학교에선 괜찮았지만 과연 프로 그것도 KBO 최고 투수를 상대로 경쟁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분명 내 타격능력은 리그를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떨어지는건 사실이다.
리틀리그야 그냥 신체적인 스팩만으로도 압살을 할 수 있었고 중학교에선 알루미늄 배트라는 전설의 명검이 있었지만 고등학교 부터는 겨우겨우 경험으로 팀 내에서 2등이라는 성적을 지킬 수 있었다.
사실 그마저도 22년 경력이 없었다면 진우나 주빈이 녀석보다도 공을 못 쳤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모르는 포수 녀석은 내가 반응을 해주지 않자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 요즘 신인 새끼들은 싸가지가 없어요. 싸가지가! 그래도 중범이 그 녀석은 그나마 싸가지라도 있지.”
포수가 뭐라고 중얼거리건 나는 포수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투수에게 집중했다.
투수가 몸쪽을 향해 빠른 공을 던졌다.
사실 내가 메이저리그에 있을 때는 투수의 몸쪽을 향해 공을 던지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지명타자라는 제도가 없었고 투수도 무조건 타석에 서야했다.
그렇기에 상대편 투수는 투수 타석에서 만큼은 몸 쪽으로 공을 던지는 것을 금기시 했다.
잘못하다가 투수에게 공을 맞히는 순간 그날 경기는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대신 야구를 보러온 관람객들은 야구 대신 집단 패싸움이라는 새로운 스포츠를 볼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조영식은 타석에 설 이유가 없으니 나에게 몸쪽 승부를 걸어왔다.
뭐 상관없다. 타석에 서있는 순간만큼은 나는 타자고 몸쪽이건 바깥쪽이건 내가 공을 쳐서 상대 투수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스트라이크!”
살짝 높았다고 생각했지만 주심은 이번 공에 스트라이크를 줬다.
이정도 공이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볼 카운트를 뽑아내기는 쉽지 않다.
역시 KBO라고 하지만 리그에서 탑이라는 소리를 듣는 투수의 공은 만만치 않다.
어디서 공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는 폼도 좋지만 확실히 리그에서 탑이라는 소리를 듣는 투수들은 볼 끝이 살아있다.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까지 꿈틀하면서 한번 더 움직이는 조영식의 패스트 볼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어때? 이게 바로 대 그리즐리의 1선발 영식이의 최강무기 라이징 패스트 볼이다!”
“심판님, 오키나와라 그런지 2월에도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너, 이 자식이!”
“케쳐, 조용히 해.”
“끄응,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모기를 잡는데는 심판님의 위엄만한게 없어요.”
이제 진짜 조영식에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다.
데드볼 시대건 라이브볼 시대건 투수들이 투수 타석에서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얕잡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제구가 되는 공을 스트라이크 존 안에만 넣으면 상대 타자를 제압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생각이 틀린건 아니다.
대부분의 투수는 공을 던지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공을 때리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KBO에서 탑이라는 소리를 듣는 조영식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가장 자신있으면서도 제구가 가능한 패스트 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왔다.
따 악!
내가 때린 타구는 정확하게 투수의 키를 넘겨 중전 안타가 되었다.
타자가 다음에 어떤공이 날아 올지도 알고 그 공의 궤적도 확인했는데 그 공을 놓친다?
그건 아무리 투수라도 그날은 특타를 해야만 할 만큼 엄청난 실수다.
“오, 투수가 방망이도 칠 줄 알아? 제법인데?”
하아, 그리즐리가 아니라 그냥 팀 이름을 떠벌이즈로 바꾸는 걸 추천한다.
어찌된게 이 놈의 팀은 포수부터 1루수까지 수다를 안 떨면 죽는 병에 걸린 녀석들 마냥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건다.
사실 이는 베테랑들이 루키에게 자주 써먹는 전술이기도 하다.
아직 경험이 없는 루키들을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작은 빈틈을 만들어 실책을 만들어 내는 플레이 그것이 바로 트레쉬 토킹이다.
문제는 그 트레쉬 토킹을 거는 상대가 메이저에서 22년을 굴러먹은 이 몸 덴튼 트루 영이라는 것이 문제지!
“그러게요. KBO를 주름잡는 에이스라기에 잔뜩 긴장했는데 공이 너무 가볍네요.”
“뭐? 이 새끼가? 선배가 만만해?”
오이오이, 루키를 도발하려고 했다가 자기가 루키에게 도발당하면 어쩌자는 거야.
“경기나 하시죠?”
“너, 내가 누군지 모르냐?”
너는 내가 누군지 아냐?
“네, 제가 야구는 대전 호크스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도 아시죠? 저 이번해만 KBO에서 뛰고 메이저 가는거요. 그냥 용병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말 잘하는 용병. 오케이?”
그리즐리의 주장이자 4번타자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을 담당하고 있는 정창길은 자신을 도발하고 있는 루키를 매섭게 노려봤다.
‘15억짜리 계약금을 받았다고 KBO를 너무 물로 보는 것 같은데? 그래 올해 좀 편하게 가려면 이 건방진 새끼의 기를 초장에 눌러놔야겠어.’
정창길은 1루를 밟고있는 상황에서 투수에게 견제구를 주문했다.
“피처 퍼스트!”
조영식은 반사적으로 정창길에게 공을 던졌다.
뭐야? 지금 내가 1루를 밟고 있는데?
조영식의 공을 받은 정창길이 자연스럽게 공을 받고 내 소중이를 향해 태그를 했다.
퍼억!
순간 해가 떠있는데 별이 보일만큼 충격을 받았다.
“크윽!”
녀석이 고개를 숙인 나에게 다가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선배를 개 좆으로 본 대가다. 앞으로 처신 똑바로 해.”
축하한다. 개자식아!
너는 나를 완전하게 빡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잘못하다가는 수지와 사랑의 결실을 맺어보지도 못할 뻔 했다.
이 개자식은 팀 내 양아치 박중범은 그래도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더러운 성깔을 보이지만 손찌검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중범은 나름 선배들에게는 깍듯이 대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 개자식이라면 그리즐리 1루에 있는 이 개자식은 뭐랄까 나의 즐거운 고향 데드볼 시대의 흔한 개자식중 한명인 것 같았다.
이대로 맞고만 있을 내가 아니다.
나는 아슬아슬한 리드를 잡으며 투수에게 두 번째 견제구를 던지도록 유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조영식이 진짜 견제구를 날렸다.
나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귀루를 하면서 조영식의 견제를 피했다.
물론 여기까지도 내가 유도한 플레이 하지만 내 진짜 목적은 투수의 신경을 빼앗는것이 아니다.
안 그래도 견제사를 위해서 한껏 다리를 벌리고 공을 잡은 녀석이라 목표물이 정확하게 보였다.
퍼억!
“꾸얽?!”
나는 상체를 일으키면서 전력을 다해 녀석의 소중하지 않은 소중이를 머리로 박았다.
“어라? 선배 괜찮으세요?”
이것이 바로 데드볼 시대의 장난이다.
그래도 나는 신사적으로 녀석을 향해 보복구를 던지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녀석이 내 소중이에 테그를 한 것은 시합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내가 상체를 일으키면서 녀석의 소중이를 때린것도 시합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녀석이 어느 정도 손속에 사정을 뒀기에 나도 일어나는 힘을 살짝 줄인거지 만약에 방금 전 일격으로 수지를 과부(?)로 만들었다면 녀석도 2세는 더 이상 생산 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겠지!
녀석은 많이 아팠던지 무릎을 꿇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아 이런 고통에는 전통의 민간요법이 최고지!
톡, 톡, 톡!
나는 녀석의 더러운 엉덩이를 만지기는 싫었지만 일단은 남자들만의 의리로 녀석의 꼬리뼈를 토닥여 주었다.
그러면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낮게 속삭였다.
“이건 후배를 개 좆으로 본 대가입니다. 선배님.”
함무라비 법전 때부터 내려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상대방의 기를 꺾어 놓는데 더 없이 좋은 방식이다.
내 공격에 고개를 숙인 개자식은 한참 더 끙끙 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상대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선배 괜찮아요?”
“야,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정말 실수였어요.”
나는 마치 실수라는 듯 죄송한 얼굴을 하면서 녀석을 바라봤고 녀석은 자신이 한 잘못이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루키라는 신분은 선배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이런 실수는 루키라는 신분 덕분에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크흠, 나는 괜찮으니까 다들 야구하자.”
“네, 선배님! 너 앞으로 조심해.”
그리즐리 선수들이 1루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당당하게 1루 베이스를 밟고 다시 한 번 때려보라는 듯이 다리를 활짝 벌렸다.
이번에도 내 가랑이 사이로 태그를 한다면 나는 녀석의 알을 터뜨릴 기세로 보복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내 가랑이에는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고 오직 경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뭐지? 한 번 더 가랑이에 테그를 하면 그대로 턱주가리에 헤딩을 해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감이 좋네.’
그래도 잠시나마 데드볼 시대로 타임머신을 태워준 녀석이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또 작게 속삭였다.
“신에겐 아직 12가지의 반칙인 듯 반칙 아닌 반칙 같은 플레이가 남아있습니다.”
녀석의 큰 덩치가 움찔거리는 건 나만 봤을까?
잠깐의 소란스러움은 있었지만 연습경기이기도 하고 나와 개자식만의 짧은 신경전이었기에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우리팀은 양아치 중범의 적시타로 1점을 낼 수 있었고 내가 득점을 올리며 첫 번째 연습게임은 우리들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