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Chapter 18. 올해는 다르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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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올해는 다르다. (1)
#1 사전 미팅
2월 중순이 되고 미국으로 향했던 한국의 프로팀들이 하나 둘 오키나와로 들어왔다.
그 동안 우리는 오키나와에서 팀워크 훈련을 하면서 우리의 첫 번째 상대 서울 그리즐리를 기다렸다.
서울 그리즐리는 총 8회 우승에 빛나는 전통의 강호로 최근 2년간 연속우승을 거두며 왕조 건설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팀이었다.
나는 연습게임의 첫 번째 투수로 낙점되어 감독실로 불려갔다.
“어서와라.”
구태성의 감독실은 오키나와의 한 호텔에 1인실로 제법 호화로운 방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것보다 좋은 호텔을 잡을 여력이 있지만 루키라는 죄명으로 돈을 함부로 서용하지 못하는 형벌을 받는 중이다.
사실 루키가 아니라도 단독으로 행동 할 수 없는곳이 야구단이다.
야구단은 생각보다 규율이 강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데 세상 모든 구기종목중에 공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유일한 구기종목이 바로 야구이기 때문이다.
아마 메이저리거들 중에서도 일부 은퇴를 앞둔 슈퍼 스타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구단의 양해를 받아서 약간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같은 호텔에의 룸을 스위트 룸으로 업그레이드 한다거나 그런 작은 일탈 말이다.
사실 나도 현대의 메이저리거의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뭐해? 안 앉고.”
아. 애송이 앞에서 잠시 딴생각을 했군!
“그런데 저를 왜 부르셨어요?”
“내일은 네가 프로에 적응을 할 수 있는지 체크를 하는 연습게임이니 6이닝 정도만 던지게 할 생각이다.”
“저도 나이가 있지 이제 한계투구 같은 건 졸업했습니다.”
내가 연습때야 어깨를 아끼지 연습 게임까지 어깨를 아끼진 않는다.
연습 게임도 비록 기록에는 남지 않지만 내가 서있던 마운드고 나는 내 마운드를 다른 투수가 밟는 걸 싫어한다.
비록 리틀리그, 중학야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규정이라 내가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고등학생때부터는 내가 출전한 경기는 모두 내손으로 마무리 지었다.
“팔이 빠지지 않는 한 제가 자발적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구태성은 단호박과 같은 사이영의 태도에 골치가 아팠다.
‘역시, 저 빌어먹을 욕심은 한도 끝도 없군.’
감독 입장에서 사이영 같은 투수가 마운드에 대한 욕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 달가운 일이다.
하지만 사이영의 욕심은 지나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났다.
“어차피 시즌 시작되면 지겹도록 던질 거 아냐.”
“감독님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게 지겨우십니까?”
사이영의 질문에 구태성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게 지겨웠다면 내가 호주까지 가서 현역생활을 이어갔을 리가 없지.’
구태성은 학생시절부터 현역때까지 엄청난 혹사를 당해야 했다.
그래서 자신이 지도자가 되면 절대 제자들을 혹사시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실제로 구태성 밑에서 3년동안 야구를 배운 학생들은 혹사를 당하지 않고 철저한 투구 수 관리를 통해 경험을 쌓아줬다.
프로 구단들은 구태성이 대전고를 맡은 3년 동안 [믿고 쓰는 대전고 투수]라는 브랜드가 생길 만큼 구태성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 동원해서 선수들을 키워냈다.
하지만 그런 구태성의 신념에 벗어나는 유일한 선수가 사이영이었다.
‘진짜 사이 영이 이런 말을 했다지? ’투수는 시인과 같아서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 지는게 아니다.‘ 라고! 이영이 저 녀석은 어쩌면 가장 그 주장에 어울리는 투수일지도 모른다.’
사이영에게는 압도적인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재능조차 빛이 바랠 만큼 사이영의 노력은 더욱 눈부셨다.
그 결과 값이 바로 지금의 사이영이었다.
‘내가 고교3년 동안 지켜본 사이영은 덕아웃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였고 핵인싸 그자체였지만 마운드에서만큼은 짐승 아니, 맹수같았지.’
심지어 감독인 자신조차 함부로 마운드에 발을 대는 것을 꺼리게 할 만큼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데 확고한 맹수!
그리고 사이영이라는 맹수는 9이닝까지 끝까지 버텨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연습게임은 다르잖아!’
“그럼 들어나 보자. 왜 그렇게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는 거야?”
“습관이 될 거니까요.”
“습관?”
한국 속담중에 세 살 버릇이 여든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습관이 무섭다는 이야기로 마운드에서 뒤가 있는 투수는 절실함을 잃는다.
나는 요즘 투수들이 데드볼 시대의 투수들만큼 못 던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뒤가 있다는 여유에서 오는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100구 120구를 던지고 체력이 떨어져서 구위가 떨어진다면 나는 팀의 승리를 위해 마운드를 물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8할이 넘는 완투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절실함을 가지려는 습관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히 연습경기라고 내 마운드를 넘겨주는 버릇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저는 모든 경기에서 완투를 하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완봉이 더 좋겠죠. 뭐 노히트 노런이면 더할나위가 없겠구요. 하지만 개인적인 목표는 전 경기 퍼팩트 게임을 목표로 공을 던지는 겁니다. 그렇기에 저는 연습경기에서 조차 내 마운드를 다른 투수들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은겁니다.”
사이영의 이야기에 구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일 그리즐리와의 경기에서 한번 제대로 날아봐라.”
“아, 그리고 제가 선발인데 당연히 지명타자는 없겠죠?”
참고로 내 고등학교 시절 내 슬러쉬 라인은 0.311/0.498/0.587로 팀에서 민규 다음가는 타자가 바로 나였다.
“······미친놈. 9번 타자로 타석에 세워주지.”
9번 타자인가? 아주 익숙한 타석이군!
“밤늦게 까지 방망이를 돌린게 아깝지는 않겠네요.”
#2 연습게임
그리즐리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왔다.
전년도 우승팀 선수들답게 녀석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승자의 여유가 묻어나왔다.
나는 저런 녀석들과 상대하는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메이저 22년 동안 대부분의 팀이 약탐이었던 나는 저런 승자들과 자주 경기를 벌여야 했다.
그리고 511승 315패라는 전적이 이야기 해주듯이 당연히 저런 승리자들도 내 앞에서는 더욱 자주 패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 훨씬 강하고 튼튼한 어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22년 동안 공을 던졌던 기억과 감각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습게임이라고 해도 내가 프로에서 어느정도 통할지 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이기에 나는 오늘 평소와 같이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이야, 준현이형! 올해는 시작이 좋네요.”
“그러게말이다. 연습게임부터 보약 달달하겠네.”
평소 양아치스럽게 행동하던 박중범이 발끈하면서 덕 아웃에서 시시덕거리던 놈팡이들을 노려봤다.
“중범아. 내가 야구선수는 뭐라고 했지?”
“스타는 야구만 잘하면 되지만 존경받는 야구 선수가 되려면 야구도 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네가 이영이 같은 녀석에게 존경받는 선배이자 존경받는 야구 선수가 되려면 저런 양아치들과 어울리지 마.”
“끄응! 그렇게 하겠습니다.”
역시 내 어깨를 갈아 넣어 가며 정상종의 컨디션을 끌어올린 건 최고의 투자였다.
완벽하게 부활한 정상종은 내가 될 수 없었던 팀의 리더가 되어주었다.
양아치같이 행동하는 중범인자 종범인지 하는 애송이도 정상종 앞에서만큼은 순한 양이나 다름없었다.
비교적 젊은 우리팀의 특성상 정상종이라는 리더가 중심을 잡아주자 자연스럽게 타자들의 기량도 올라왔다.
“그런데 오늘 상대 선발이 누구지?”
“조영식 선배라는데요?”
“영식이? 크흠! 오늘 경기가 쉽지는 않겠네.”
조영식은 작년 토종 선발중에서 정병민과 더불어 가장 괜찮은 성적을 기록한 베테랑이었다.
심지어 올해 FA인 조영식은 올해를 최고의 해로 만들어 FA대박을 노리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흐, 그 첫 상대가 하필이면 호크스라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쉽게쉽게 넘어 갈 수 있으니 오리혀 좋다고 해야하나?’
저기 건방지게 불펜에서 몸도 풀지 않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녀석이 조영식인가?
당연히 연습경기에서 전력투구를 하는 정신 나간 투수는 없을테니 초반에 점수를 내면 경기는 끝나겠지?
“플레이 볼!”
심판의 구령에 맞춰 마운드에 올라간 나는 곧장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뿌렸다.
쌔애애애애앵~~~ 뻐 엉!
보름간의 훈련 덕분에 내 몸 컨디션은 어느정도 올라온 상태다.
물론 아직까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정도 수준이면 연습경기에서는 충분히 먹히겠지?
연습게임이지만 전광판에는 사이영이 던진 구속이 찍혀서 나왔다.
[163km/h]
메이저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구속에 그리즐리 덕아웃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여기 스피드 건 고장난거 아니야?”
“에이, 그래도 고장은 아닐겁니다. 우리 투수들 사이에서 여기 구속 정확하게 나오기로 소문이 난 곳인데요.”
“그럼 이제 2월인데 163짜리 공이 실화라는 소리야?”
“그건 그렇네요. 오늘만 고장이 난건가?”
뭐야? 야구하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참고로 내가 공을 던지던 시절에는 RPM은커녕 구속조차 가늠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당연히 나는 구속에 목을 메달지도 않았고 공을 던지고 구속을 확인하려는 습관도 없었다.
내가 마운드에서 가지는 습관은 오직 더욱 빨리 공을 던져서 상대 타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첫 번째 구속에 정신을 못차리는 타자를 향해 나는 두 번째 공을 던졌다.
[164km/h] [166km/h]
세 번째 공을 던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전생에 던졌던 사이클론이라는 별명의 직구를 재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이 보다 더 강력한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뇌를 빼놓고 구위로 압도를 하는 투수가 아니다.
월터 ‘애송이’ 존슨은 나보다 더 좋은 피지컬로 쉽게 쉽게 공을 던졌지만 나는 그렇게 공을 던지지 않는다.
멍청한 기자들은 월터 '애송이' 존슨 같이 던지면 환호를 한다.
그리고 기레기들에게 현혹된 대부분의 평론가는 월터 존슨 같은 녀석을 최고의 투수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육체적 능력까지 강화시킨거지 그렇다고 머리까지 비우는건 아니다.
초구 패스트 볼을 예상하고 한껏 굳어있는 2번타자에게는 낙차 큰 12to6 커브를 3번 연석 먹여줬다.
3번 타자는 정신을 못차리고 스트라이크 존에서 3개는 빠지는 공에다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나는 덕아웃에 들어오면서 팀 동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뭐? 우승팀? 별거없네!”
“캬! 우리 루키 배짱하나만큼은 알아줘야겠네!”
“그러게 말이야! 이영아 네가 최고다!”
프로는 말보다는 실력이 우선인 세계다.
그것은 1890년이건 2020년이건 다르지 않다.
나는 우리 팀에게 내 노력과 진짜 실력을 보여줬고 이제 당당하게 팀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았다.
“선배님들 저런 녀석들한테 무시당하셨습니까? 상종 선배는 가볍게 치는 커브볼을 연속으로 던졌는데 방망이가 스치지도 못하던데요?”
“선배 이영이 커브볼을 칠 수 있으세요?”
정상종은 부끄럽다는 듯이 뺨을 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