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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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대전 호크스 스프링캠프 (5)
#1 갈등
이정균은 잠시의 짜증을 참지 못하고 새파란 후배에게 짜증을 낸 자신이 역겨웠다.
‘빌어먹을!’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게 되자 이정균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또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후배가 먼저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화를 풀기도 애매해서 그냥 대치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선배들이 달려와 이정균을 저지했다.
“야, 야! 정균아 네가 참아.”
“그래, 이영이 저 녀석이 눈치가 없지만 그래도 훈련을 열심히 하는 죄 밖에 없잖아.”
누가 눈치가 없다고? 너 얼굴 딱 기억해 놨다. 너는 내가 책임지고 민규 녀석이랑 24시간 면담 시켜준다.
한편 이정균은 선배들이 달려와 자신을 막아 세우자 오히려 오기가 솟구쳐 올랐다.
“놔보세요. 태민이형! 저 녀석이 자꾸 시비잖아요.”
원하는 데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함, 그리고 재능 넘치는 후배의 도움은 이정균의 열등감을 부채질 해버렸다.
삐익!
한영명이 달려와 두 사람을 떼놓았다.
“뭣들하나? 이것들이 아주 체력이 남아돌지? 이영이 저 녀석 말처럼 훈련이 아주 쉬웠나봐?”
20~30대의 혈기왕성한 수컷들이 모여 있는 야구단의 특성상 팀원들간의 마찰도 종종 생기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코칭스텝들은 항상 선수들을 물가에 내 놓은 아이마냥 늘 선수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특히 이렇게 힘든 훈련을 할 때면 멘탈이 터지는 선수 하나쯤은 꼭 나오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일단 무리에서 문제아들을 떼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정균, 사이영은 오늘 라이브피칭 열외하고 따로 코어 훈련을 하도록 한다.”
잠시 후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플렝크를 하고 있는 사이영에게 다가온 이정균이 사과했다.
“이영아, 미안하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말았네.”
이런 녀석들이 있다.
남 앞에서는 큰소리를 떵떵치다가도 단 둘이 대면하게 되면 자기 객관화가 누구보다 빠른 녀석들이 말이다.
이런 녀석들의 특징은 자존심이 강하고 매우 양심적인 녀석들이다.
이런 녀석에게 꼬맹이들에게 하듯이 툭툭 시비조로 성격을 긁으면 평생 앙숙이 되는수가 있다.
나랑 호너스 ‘빌어먹을’ 와그너 녀석처럼 말이다.
심지어 ‘빌어먹을’ 와그너 녀석은 상대편이었으니 오히려 앙숙이 되는게 편했지만 이정균이라는 애송이는 같은 팀이니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
“아닙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나댔습니다.”
“나도 네가 도와주려고 그런 건 아는데 몸이 안 따라와 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욱해버렸어.”
“선배는 부상으로 회복훈련만 하셨다면서요. 당연히 체력이 부족할거에요. 그래도 페넌트레이스를 버티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잖아요. 지금 구슬땀을 흘리면 내년에 연봉이 높아지지 않겠어요?”
이정균은 자신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의 사이영을 보고 더욱 부끄러워졌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선배가 싫지 않으시다면 제가 선배를 도와드릴게요.”
“······고맙다.”
고맙긴, 나도 너 같은 쩌리가 활약을 해줘야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을야구 할 거 아냐.
다음날부터 이정균의 행동이 달라졌다.
비록 체력적으로는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늘 뒤쳐졌지만 사이영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훈련을 완주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정균은 체력이 붙으면서 신체 벨런스가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제구력과 구위가 동시에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한영명은 이정균을 칭찬했다.
“좋아! 너희들도 정균이좀 보고 배워!”
사이영에게 노계파로 분류된 베테랑들은 영계파에 또 다른 강자가 나타나자 불안한 마음에 훈련에 전념했고 영계파들은 기량이 급상승한 이정균을 보고 라이벌의식을 불태웠다.
그 결과 대전 호크스의 투수팀 전력이 동반상승하기 시작했다.
2023시즌 대전 호크스의 투수진은 용병과 정병민을 제외하면 수준급 이하로 평가를 받았지만 짧은 스프링캠프 훈련기간 동안 대전 호크스의 투수들은 괄목상대 했다.
작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정병민과 함께 압도적인 기량으로 벌써부터 개막전 1선발로 점쳐지고 있는 사이영, 그리고 2명의 용병으로 탄탄한 선발진이 구축되었다.
아직 5선발에 대한 문제가 구태성을 괴롭혔지만 사실 5선발은 어느 팀에나 문제가 있는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이정균 덕분에 뒷문도 든든해졌다.
‘이정도면 리그 중간? 아니 그 이상의 투수진이 구축되었다고 해도 좋다.’
투수진이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안 야수진은 여전히 총체적 난국이었다.
대전 호크스는 나이든 베테랑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비교적 젊은 선수들 위주로 야수진을 꾸렸다.
당연히 수비의 구멍은 숭숭 나있었고 어린 나이에 성공을 맛본 몇몇 타자들은 자기관리를 못하고 폼이 망가져버렸다.
“대균아, 애들은 어때?”
과거 대전 호크스 팬들에게 별명이라는 진명을 얻은 김대균은 대전 호크스의 타격코치가 되어있었다.
“아직 어린 녀석들이라 시즌이 시작되면 어느 정도 몸이 올라오겠지만 아무래도 팬들에게 욕은 좀 먹을 것 같습니다.”
“누가 가장 큰 문제지?”
“박중범 그 녀석이 문제입니다.”
박중범은 4년간 대전 호크스의 중견수를 맡은 젊고 재능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너무 이른 성공이 독이 되었을까?
이번 스프링캠프 지옥훈련에 적응을 못하고 낙오가 된 상황이었다.
실질적으로 팀의 1번타자이자 중견수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에 구태성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하아, 어떻게 된 팀이 투수진이 괜찮아지니까 야수진에 문제가 생기냐?”
“그래도 감독님이 오시기 전에는 투수진은 병민이 하나 믿고 가는 팀이었고 야수진은 그나마 투수진에 비교해서 조금 괜찮은 수준의 팀이었습니다.”
“······그게 팀이냐?”
“······팀은 팀이죠. 감독님이 계실때랑은 많이 다른 팀이지만 말이죠.”
“야수중에 이번에 2라운드 11차로 뽑은 조치현은 어때?”
“조치현요? 그 녀석 확실히 수비 하나만큼은 탈 고교급이 맞았습니다. 지금 당장 유격수에 세워도 충분히 밥값은 해줄겁니다.”
“문제는 정상종이 갑자기 부활했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스프링캠프 초반만해도 망가진 시계처럼 하루에 2번 정도 공을 맞추던 녀석이 갑자기 타격감이 살아났습니다.”
“훈련 끝나고 따로 훈련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아무래도 자신감인 것 같습니다.”
구태성은 타석에서 자신감에 가득 찬 타자가 얼마나 끈질기고 무서운 타자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타석에서 자신감을 가진 타자는 확실한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가지고 있어서 유인구를 던져도 쉽게 아웃카운트를 뽑아낼 수도 없고 자신감을 가지고 확실한 스윙을 하기에 결과도 더 좋다.
“정상종이 기량을 되찾았다? 이것 참 골치가 아프군.”
정상종은 그 누구보다 유격수에 대한 애착이 강한 선수였다.
타격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구태성은 정상종을 대수비 요원 정도로 생각했지만 정상종이 타격능력을 되찾았다면 판 자체를 다시 짜야했다.
“정상종이 전성기 기량을 되찾았다면 어느정도지?”
“FA직전에 MVP투표에서 아슬아슬하게 2위를 차지한 녀석입니다. 당시에 정상종만큼 잘 치는 유격수는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정상종 같은 5툴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
‘야구 참 쉽지 않아.’
구태성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갔다.
#2 청백전
스프링캠프는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몸을 다시 만드는 1차 훈련을 시작으로 실전감각을 끌어올리는 2차 훈련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현지에서 치르는 연습게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통 1차 훈련을 15일 정도 하고 나서 2차 훈련부터는 청백전이나 오키나와에 캠프를 차린 팀들을 상대로 연습 훈련을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오늘은 자체 청백전이 있는 날이다.
나는 어웨이 팀인 청팀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팀 1번타자는 박중범, 병민 선배에게 듣기로는 유성중학교 출신으로 병민선배의 직속 선배였다고 한다.
상당히 양아치스러운 스타일의 박중범은 껄렁껄렁하게 껌을 씹으며 타석에 섰다.
나를 보는 띠꺼운 눈빛 아주 옛날에 저런 비슷한 눈빛을 가진 애송이가 있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김진우, 자신이 세상에세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애송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저 양아치가 썩 마음에 들었다.
왠지 그나마 친해지기 쉬운 스타일이랄까?
“야, 후배야 한 가운데로 좋은거 하나 찔라봐라."
방금했던말은 취소다.
지금 당장 저 양아치 인중 한가운데로 165km/h짜리 포심 패스트 볼을 찔러넣어버리고 싶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좌타자인 녀석을 상대로 녀석의 몸쪽을 향해 깊숙하게 공을 찔러넣었다.
슈우우우우우웅! 뻐 엉!
비록 사이드 암으로 던져서 구속은 느리겠지만 우완 사이드암 투수가 좌타자 몸쪽 깊숙한 코스로 찔러 넣는 나의 패스트 볼은 가장 먼 곳에서 예리하게 꺾여서 들어가는 컷 패스트 볼처럼 종보다는 횡적인 무브먼트가 좋은 공이었다.
물론 좌타자에게는 투구 폼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각적으로 몸쪽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때리기 위해선 아주 강한 담력과 기술이 요구된다.
저런 껄렁껄렁한 녀석이 때릴만큼 내 공은 가볍지 않다는 뜻이다.
“야! 내 말 안 들려? 좋은거 하나 찔러보라니까!”
중학교때 내가 했던 명언이지만 나는 나보다 야구 못하는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물론 원작자는 디지데몬에 나오는 데몬이지만 말이야.
두 번째 공도 몸 쪽을 향하는 포심 패스트 볼을 던졌다.
특히 이번엔 몸 쪽 높은 곳을 향해 던졌으니 저 양아치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 것은 덤이다.
하아, 저따위 수준의 타자가 지금 대전 호크스의 현재이자 미래라 불린다는 건가?
생각보다 더 열심히 해야 대전 호크스의 우승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동안 집중적으로 갈군 투수진은 그나마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타자는 내 소관이 아니다.
짜증을 내면서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양아치를 정상종이 불러세웠다.
“중범아.”
“네, 선배님.”
“그래도 선배라고 불러는 주네? 나는 네가 워낙 안하무인이라 이제는 선배도 안 보이는 줄 알았지.”
‘아, 이 꼰대새끼는 또 왜 지랄이지? 요즘 다시 타격감이 살아났다고 그러나?’
“아닙니다. 선배님!”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팀 워크를 무너트리는 행동이다. 당장 이영이에게 사과를 해라.”
비록 대전호크스 팬들에게는 실세로 통하는 박중범이지만 박중범도 이제 고작 프로 4년차의 애송이일 뿐이었다.
프로에서 산전수전 다 경험한 정상종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박중범은 이를 악물고 새파란 후배에게 사과를 해야했다.
“미안하다.”
하, 그래도 완전 쌩양아치는 아니구나? 선배들에게는 숙일줄 아는 타입인가?
내가 밤에 어깨를 갈아넣어가면서 정상종의 타격 컨디션을 올려준 건 바로 정상종에게 이런 모습을 기대해서였다.
나는 정상종에게 양아치를 치는 양(아)치기 개의 역할을 기대했다.
팀에 제대로 된 리더가 있으면 박중범 같은 양아치도 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다.
이제야 이 빌어먹을 팀에게서 한줄기 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팀의 리더가 살아나는데 혁혁한 공이있는 나는 비선실세가 되겠지?
이게 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