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Chapter 9. 성장하는 소년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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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성장하는 소년들(1)
#1 사이영 13세 시즌
첫날 심상치 않았던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이튿날부터는 큰 사건 사고 없이 합숙이 잘 진행되었다.
합숙훈련도 이제 슬슬 마무리가 될 시기. 이휘현은 사이영이라는 야생마를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야생마는 길들여지지 않기에 야생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감독으로서 방치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지만 크게 상관없는 것이 사이영은 진짜 중학생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녀석이었다.
처음에는 3학년들 조차 사이영과 새로운 신입들을 꺼려했지만 사이영이 하는 훈련량을 본 2,3학년들은 사이영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이영의 훈련양은 많은 부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예정된 기상시간인 7시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워밍업으로 간단한 산책을 하고 7시에 아침 운동 준비를 끝낸다.
‘내가 살다살다 기상시간보다 일찍일어나서 훈련하는 녀석은 처음봤지.’
이휘현은 가끔 내가 프로에서 사이영처럼 열심히 했다면 아직까지도 그라운드에서 야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이영이 간단하게 아침에 산책을 하고 샤워를 끝내는 반면 기존의 부원들은 좀비처럼 비틀 거리면서 일어난다.
간단한 몸풀기 체조이후 아침 식사를 하는데 사이영은 식사도 남달랐다.
정해진 식사를 천천히 꼭꼭 씹어가면서 식사시간을 모두 먹는데 사용했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맛없는 반찬이 나와도 모든 반찬을 싹 비울만큼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침 훈련에 힘들어 하는 부원들과 달리 사이영은 폴대폴 훈련을 가뿐하게 마치고 자진해서 폴대폴을 10세트 더 달릴 만큼 훈련에 열정적이었다.
이후에도 사이영은 정해진 피칭훈련을 소화한 다음에 따로 맨손으로 할 수 있는 필라테스 운동을 했다.
오후 훈련에서도 사이영은 그 어떤 부원들보다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훈련 스케줄이 5시에 끝나고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사이영은 못 다한 개인 훈련을 해야 한다며 그라운드에 남아서 배팅 훈련을 했다.
프로조차 혀를 내두를만큼 엄청난 강도의 스케줄이었지만 사이영은 지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이영만 그렇게 말도 안되는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리고 사이영의 훈련세션을 처음으로 알게 된 판타스틱 4는 큰 충격을 받았다.
‘미친, 이영이 저 녀석은 매일 저렇게 훈련을 해온건가?’
싸가지는 없지만 자존심은 있는 김진우가 다음날 사이영의 훈련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4일차에 6시 새벽 훈련에 참여한 녀석은 최주빈이었다.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이렇게 악착같이 해야 이영이 저 녀석만큼 할 수 있구나!’
5일차 우민규까지 합세해 훈련을 했다.
“너희들 나만 빼놓고 운동을 하는거야? 엄마가 따돌림은 나쁜거라고 했어!”
생에 처음으로 눈치껏 행동한 우민규를 본 사이영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이휘현은 판타스틱 4가 모두 뭉친날부터 팀의 분위기를 지켜봤다.
그때부터 시켜서 훈련을 하던 녀석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라도 더 훈련을 하겠다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정병민을 비롯한 2, 3학년들도 사이영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유성중은 짧지만 알찬 합숙훈련을 마치게 되었다.
#2 스토브리그
지긋지긋한 꼬맹이들과 한달동안 합숙을 한 나는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중학교 리그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스토브리그가 시작된다.
전국에는 90개가 넘는 중학교 야구부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 훈련일정에 맞춰서 스토브리그가 진행되는데 프로에서 스토브리그와 달리 진짜 한겨울에 야구를 하는 미친 리그다.
그래도 토너먼트 방식이 아닌 리그 방식으로 오전 오후를 나눠서 일주일간 모인 팀들과 짧은 경기를 하는 방식의 리그였다.
내가 살다 살다 겨울에 야구를 한다는 소리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듣는다.
겨울에 야구를 하다가는 다치기가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감독들도 실제 경기를 한다기보다는 상대방의 전력을 확인하는 정도의 경기를 하는데 다행히도 나는 마운드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어제 저녁 감독은 은밀하게 나를 감독실로 불렀다.
혹시 하는 마음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준비를 했지만 다행히도 내가 생가각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내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는 스토브 리그에서 이영이는 투수가 아닌 3루수로 잠깐 출전할거다.”
“예? 3루수요?”
“그래, 리틀리그에서 투구수를 모두 소진하면 3루를 봤다며?”
“네, 사실 유격수를 봐도 되지만 저 대신 뛰어줄 녀석이 있어서 3루를 봤습니다.”
“나는 이번 춘계 대전시장배 대회에서 우승을 노릴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 소년 체육 대전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네 역할이 절대적이다.”
하, 야알못인줄 알았는데 변태지만 이 아저씨 사람 보는 눈이 있다.
“리틀 리그에선 네가 제법 유명한 편이지만 중학교 마운드에 적응을 못한다는 소문을 뿌릴 예정이다. 이번 보강훈련의 성과가 나쁘지 않으니까 일단은 정말 중요한 경기에 너를 올릴 생각이다.”
오, 나 이거 무슨말인지 알아! 감독의 이야기는 사나이의 로망에 불을 지피는 이야기였다.
“설마, 제가 비밀병기 입니까?”
“그래, 유성중의 비밀병기는 바로 사이영 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경기에 3루수로 선발출장하게 되었다.
“풉, 야, 너 야구 못해서 투수 짤렸다며?”
“너무 놀리지 마! 이영이도 심란 할 거야.”
“그래, 진우야. 친구들끼리 그렇게 놀리는 거 아니야. 나는 계속해서 홈 플레이트를 지키는 ‘선발’포수가 되었지만 말이야.”
이 자식들 합숙캠프에선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들처럼 내 뒤에서 꽥꽥거리며 나를 괴롭히더니 이제는 대 놓고 나를 놀리고 있다.
“후, 너희들이 감독님의 높은 뜻을 어찌 알겠느냐. 심지어 주빈이 네 이놈! 너는 진화? 진수? 여튼 그 선배가 갑자기 부상으로 빠져서 선발출장하게 된 거잖아!”
“진목 선배거든?”
아, 내 공 하나도 제대로 못잡는 얼치기 이름이 진목이었나?
“흥, 시끄럽고 중학교 경기라고 쫄아서 얼타지 말고 잘해.”
“너나 잘하세요.” “너나 잘하세요.” “너나 잘하세요.”
못난이 꼬맹이 3명 놈이 합창을 한다.
아주 그냥 모조리 주둥이에다가 내 직구를 던져버리고 싶다.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 3루로 향했다.
야구에서는 센터라인이 중요하다고 한다.
당연히 야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투수, 그리고 그 공을 받아주는 포수, 그리고 2루를 지키는 2루수와 유격수, 마지막으로 중견수를 센터라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3루 역시 수비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포지션이다.
야구에서는 뭐든지 왼손이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좌타자는 우타자보다 1루에 가깝다.
애매한 내야 타구가 나올 경우 당연히 좌타자가 살아서 1루에 도착할 확률이 더 높다.
나와 비슷한 타격폼을 보유한 슈퍼 소닉이란 별명을 가진 이대현이라는 애송이도 좌타자인데 많은 내야안타를 만들어 냈다.
심지어 투수는 왼손 투수가 더 귀하다.
내가 야구를 할 때부터 ‘왼손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잡아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왼손 투수는 크게 유리하다.
기본적으로 오른손 투수는 우타자에게 강하고 좌타자에게 약하다.
그리고 왼손 투수는 좌타자에게 강하고 우타자에게 약해야 하는데 강하다.
왜냐하면 그만큼 좌투수가 귀하기 때문에 좌투수의 공이 낯설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좌우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타자에게 강했다.
심지어 내가 유독 약했던 호너스 ‘벌어먹을’ 와그너 녀석도 우투우타였다.
아, 이게 아니지? 여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야구를 하는 인간들 중에서 좌타자보다 우타자가 더 많다는 소리다.
그리고 밀어치는것보다 당겨치는 것이 더욱 강한 타구가 나온다.
즉 3루는 상대적으로 많은 우타자들이 잡아당긴 강한 타구가 많이 날아오는 포지션이라는 뜻이다.
리틀리그에서 3루수를 보긴 했지만 당시 리틀리그 꼬맹이들은 방망이를 사용한다기보다는 그냥 방망이에 휘둘리는 수준의 타격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처리하기 어려운 공이 많지는 않았다.
오늘 선발투수는 같은 투수조에서 인상 깊지 않은 공을 던져서 이름도 모르겠는 2학년 애송이 선배다.
이름이······안인상이었나?!
솔직하게 그나마 투수조 중에 내 눈에 1%정도 차는 공을 던지는 애송이는 3학년에 병진인가 병신인가 하는 꼬맹이 뿐이다.
그마저도 그 나이 수준에 ‘나쁘지 않은’ 공을 던지는 정도지 엄청 잘 던지는 건 아니다.
심지어 또래 수준에 나쁘지 않은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슬라이더라는 근본 없는 변화구까지 익힌 욕심쟁이다.
“병진선배.”
“병진이 아니라 병민이다.”
아, 다행이잖아. 병신이라고 안 했으니까!
“여튼 선배, 선배 그 나이에 슬라이더 같은 근본 없는 변화구 뿌리면 팔꿈치 그냥 아작납니다.”
“······.”
사실 정병민은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감독의 눈에 띄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양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정병민도 슬라이더가 부상위험도가 매우 높은 구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슬라이더를 익힌 이유는 중학야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였다.
'녀석의 이야기 처럼 어쩌면 내 몸은 망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
손에 익지 않은 슬라이더를 겨우내 던지다보니 어느새 팔꿈치에 통증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통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너 같은 녀석은 내 심정을 모른다.”
하, 저 병신인지 병진인지 하는 꼬맹이 자식이 고민이 많아 보이네.
지금 당장은 변화구를 가지고 있다는게 큰 메리트로 느껴질지 모른다.
“저 같은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요?”
“뭐?”
정병민은 실력은 있지만 싸가지가 없는 후배를 바라봤다.
‘분명 녀석은 나보다도 많은 훈련을 해왔겠지······.’
그것은 지난 한달간의 합숙훈련으로 알 수 있었다.
악착같이 한번이라도 더 폴대를 향해 달리는 모습, 하체를 강화하기 위해서 스쿼트를 하루에도 수백개를 하는 모습, 코어운동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체조를 하는 모습까지 합숙훈련에서 사이영은 괴물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힘든 운동을 소화했다.
판타스틱 4라고 불리는 녀석들조차 사이영과 훈련을 끝내고 나면 지쳐 쓰러질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사이영은 응당 1학년이 해야 하는 훈련 후 사용된 야구공을 줍거나 배트를 정리하는 것 같은 잡일을 하고 선배들에게 필요한 식수담당까지 차질 없이 수행해낸 괴물이었다.
“넌 괴물이잖아.”
“괴물이라, 그건 류형진이라는 애 음 여튼 그 선배 별명이잖아요. 저는 괴물이 아니에요.”
야구의 신이랄까? 건방진 베이브 ‘진짜 애송이’ 루스 놈이 나에게서 뺏어간 별명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만약 제가 괴물이라면 그 괴물도 던지기 꺼려하는 근본 없는 변화구를 선배는 던지고 계신거에요.”
“······.”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아시죠? 뿌로로에서도 비슷한 애피소드가 있었는데 여튼! 먼저 출발한다고 도착지에 먼저 도착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나같이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는 녀석은 어쩌란 말이냐?”
“선배, 재능 있어요.”
적어도 내 눈에 1%라도 차는 직구를 던졌잖아 이 애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