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Chapter 6. 낭중지추는 언젠가 드러난다.(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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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낭중지추는 언젠가 드러난다.(3)
#1 사이영11세 시즌
내 인생 첫 번째 빠던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 꼬맹이들은 불타올랐고 건방지게 눈을 찟는 행동을 한 꼬맹이는 1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강판 당했다.
이후 넉넉한 득점을 바탕으로 쉽게 마운드 운영을 할 수 있었다.
대만에서부터 피칭에 감을 잡은 민우가 3이닝을 버텨줬고 이후 야수에 있던 꼬맹이들이 각자 1이닝정도를 책임지면서 우리는 3라운드에 진출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3라운드를 승리하면 하루의 휴식 후 준결승전이 시작된다. 문제는 우리들의 다음 상대가 일본이라는 사실이야.”
꿀꺽!
평소에는 초 하이텐션에 반쯤 정신이 나간 것이 의심되던 녀석들도 다음 상대가 일본이라는 소식에 긴장을 한 듯 마른 침을 삼켰다.
나도 이제 한국에서 11년을 살았기에 한일전에 대해서 어느정도 느끼는 바가 있다.
농구인가 배구에서 16개의 팀이 겨루는 토너먼트가 있었는데 한국은 6연패를 하면서 리그 최하위 15위 16위 결정전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꼴지 결정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기적적으로 일본을 꺾고 15위를 차지했다.
그때 아버지는 ‘허허,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정신이지!’라며 즐거워 하셨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아버지 뿐만아니라 온 국민이 15위를 한 대표팀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솔직하게 내가 11년간 지켜본 한국은 1등 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15위를 하고 찬사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상대가 일본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면 그 대표팀도 욕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 상대가 일본이었고 일본을 이기자 이전의 패배가 가려졌다.
한국인들에게 한일전은 그런 것이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적어도 일본에게는 지면 안 된다.”
마스터의 말은 짧았지만 그 무게는 엄청났다.
심지어 나조차 부담이라는 것이 느껴질 만큼 한일전이 주는 압박감은 대단했다.
“그런데 일본한테 져도 패자부활전이 있지 않나요?”
하아, 민규야 제발 눈치 좀 챙기자!
그런데 이번에는 민규의 이야기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래, 어차피 기회는 한 번 더 남아 있잖아. 내일도 부담가지지 말고 한번 해보자!”
“그렇네! 그리고 어차피 내일 투수는 이영이잖아?”
마스터와 꼬맹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가위 바위 보도 져선 안 되는 한일전, 부담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래봤자 꼬맹이들과 놀아주는 수준의 경기일 뿐이다.
“뭐 3이닝 깔끔하게 막고난 다음에 홈런 2개만 때리면 되나?”
“오, 사이영~ 요즘 홈런 몇 개 쳤다고 좀 건방져졌는데?”
“그래도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출루한 다음에 도루 도루 홈스틸을 홈런이라고 우기는 건 좀 추했어.”
“그건······. 좀 그랬어.”
“하아, 뒤에 타자의 도움없이 득점에 성공하면 그게 홈런인 것을······.”
“저 봐 또 잘난 척 하면서 우기잖아!”
“잘난 척 하는게 아니라 진짜 잘 난거야.”
솔직하게 이건 팩트다.
무려 덴튼 트루 영이 다시 태어난 거니까 잘 난거지!
“저기, 이영아.”
그래, 민우야 너만큼은 같은 편이겠지?
“솔직하게 민규 말이 맞아. 그거 좀 추하긴 했어.”
아무래도 조만간 이 자식들에게 인류의 잃어버린 로스트 테크놀로지 중 하나인 1890년대식 벤치클리어링을 알려줘야 할 것 같다.
#2 첫 한일전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한일전을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운드 위에 올라오니 일본 꼬맹이들도 그냥 내가 쓰러트려온 꼬맹이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시건방진 멕시코놈들보다도 빈약해 보이는 신체 덕분에 더 약해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글러브 속에 숨긴 포심 그립을 꽉쥐고 일본 타자를 노려봤다.
대부분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타자들은 풀 스윙에 한방만 맞아라는 식의 타격이 일반적이다.
나무배트보다 반발력이 더 좋은 알루미늄 배트는 맞았을 때 공을 보다 멀리 날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리틀 리그는 홈런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일본 타자는 홈런을 때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 보인다.
주먹 하나는 남을 만큼 배트를 짧게 쥔 꼬맹이는 맹랑하게도 얼마든지 커트를 해주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하,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슈우우우우웅! 파아앙!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갔는지 공은 굉음을 일으키며 주빈이 녀석의 미트로 빨려들어갔다.
“스트라이크!”
타자는 놀랐는지 두 눈만 꿈벅거리면서 공이 지나간 흔적을 찾았다.
그래, 이 맛에 투수하지!
박해민은 오늘따라 유난히 파이팅이 넘치는 사이영의 피칭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영이도 한국인이니까 일본과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겠지.’
사실 박해민은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 대한야구협회에서 2M 리틀 야구단에 지원을 해주면서 당부했던 내용이 바로 ‘일본에게는 져선 안 된다.’였다.
거기다가 3라운드부터는 케이블로 한국에 중계까지 되었다.
물론 13세 이하의 리틀 리그 월드시리즈를 챙겨보는 야구팬들은 몇 명 없겠지만 그래도 한일전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사이영이 보여주는 투구는 그런 박해민의 걱정을 한방에 훌훌 털어버릴만큼 시원했다.
‘오늘따라 공끝이 더 더러운거 같은데?’
박해민은 스피드 건으로 사이영이 던진 공의 구속을 확인했다.
128km/h
130에 가까운 공은 사회인 야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속구다.
안 그래도 마운드와 플레이트간의 거리가 짧은 13세 이하 리틀 리그에서 제구가 되는 130짜리 직구는 사실상 치트키나 다름없다.
심지어 사이영의 공은 구위가 좋아서 조금 더 뻗어나가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인지 전력분석원이 알려준 일본의 교타자 사루토비 조차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좋아. 역시 수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구나! 문제는 공격이다.’
대만의 에이스 첸 포링 못지않은 투수가 일본에는 여럿 있다는 것이다.
‘미쓰히데, 마쓰이, 혼다중 마쓰이는 지난 경기에 던졌으니 이번 경기에는 못나온다. 적어도 오늘 선발 미쓰히데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이번 시합의 승패를 나누겠지.’
일본의 2번 타자는 어떻게든 출루를 하기 위해서 번트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3번트 아웃으로 타석에서 내려와야 했다.
3번 타자도 비슷한 방식으로 내야 수비를 흔들면서 버스터를 시도해봤지만 안 그래도 치기 힘든 사이영의 공을 버스터로 맞추기는 더 어려웠기에 허무하게 아웃이되고 말았다.
그렇게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1회초를 마친 사이영은 덕아웃으로 향하는 꼬맹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몇주 전에 대만전에서 형이 하는거 잘 봤지? 어떻게든 공을 끝까지 지켜보고 허리를 이용해!”
“어휴, 저 잔소리! 아주 그냥 귀에 못이 박히겠네.”
“그래도 이영이가 대만전에선 잘 한 것도 사실이잖아.”
민규 꼬맹이 비교적 맞는 말을 하는 편이지만 디테일이 틀리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대만전에선 잘한 게 아니라 대만전에서도 잘 한 거야.
“너희들 내 잔소리 듣기 싫으면 나보다 안타를 한 개라도 더 쳐야 할 거야. 아니면 계속해서 내 무용담을 듣게 될 테니까.”
“더러워서 내가 치고온다! 민규야 가자.”
“응!”
진우 녀석은 싸가지는 없지만 승부욕 하나만큼은 엄청난 편이다.
그래서 경기 시작전에 이렇게 도발을 해주면 가끔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까~~~~앙!
이런 식으로!
똑딱이라는 소리를 듣는 진우지만 이번 타석에서 만큼은 외야로 공을 보내는데 성공했다.
워낙 발이 빠르다보니 2루까지 달렸고 그 다음 타자는 우리 팀 최고의 교타자인 민규다.
민규는 가볍게 밀어쳐서 2루수의 키를 넘기는 적시타를 때렸고 2루에 있던 진우는 빠른 발을 이용해 홈까지 들어왔다.
진우가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야. 자칭 야구천재 봤냐? 이게 바로 장타라는 거야.”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눈빛 그러나 나는 내 꼬맹이들을 그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는다.
“하, 안 되겠군 내가 진짜 장타가 뭔지 보여줘야겠군.”
잘 봐. 진짜 장타라는게 뭔지 보여줄게.
마스터에게 듣기로 일본의 투수가 제법 공을 잘 던진다고 들었는데 지금보니 공은 좀 빠르지만 뭐랄까? 공 끝이 너무 날리는 녀석이었다.
이런 공은 제대로 맞으면 진우같은 똑딱이에게도 장타를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타석에서 수 많은 강속구를 경험해본 타자되시겠다.
저런 꼬맹이의 패스트 볼은 나에게 강속구라고 할 수도 없는 공이다.
#3 2회초
쳇, 타격감이 너무 좋아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 끝이 너무 깨끗해서 나도 모르게 퍼 올린 공은 팬스 근처에 있던 우익수에게 잡히고 말았다.
물론 내 타구 덕분에 3루에 있던 골든 ‘멍청이 1호’ 리트리버 녀석이 홈까지 들어올 수 있었지만 희생플라이는 안타가 아니다.
안타를 친 멍청이 3형제는 나를 놀려댔지만 이 번 만큼은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래도 1회 말 멍청이 3형제가 낸 3점으로 든든한 리드를 하게 된 나는 벤치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일본 꼬맹이들에게 풀기로 했다.
평소와 달리 살짝 팔을 내린 쓰리쿼터의 투구폼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쓰리쿼터 투구폼이라고 하지만 거의 사이드암이나 다름없는 투구폼에서 나오는 직구는 예전 kbo에서 전설적인 애송임이 던졌다는 뱀직구같은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다.
나는 힘차게 우타자를 향해 공을 뿌렸다.
내공은 타자의 몸을 향해 날아가는 듯 하면서도 꿈틀거리며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갔다.
슈우우우웅! 빠아앙!
“스트라이크!”
그래, 이 맛이지!
이번 공은 평소보다 손에서 더 오래 긁힌 공은 굉음을 내면서 주빈이 녀석의 미트에 박혔다.
이제 전성기 시절의 절반 정도 되는 위력이 나오나?
공을 던진 나를 제외한 타자, 포수 모두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봤냐? 이것들아! 투수가 희생플라이라도 치면 고생하셨습니다. 하면서 머리를 조아릴 것이지 어디 감히 10분 내내 투수를 놀려대는 것이냐!
거기 일본 꼬맹이! 얌전히 나의 크로스 파이어에 불타 죽어라!
최주빈은 오늘따라 더욱 강한 공을 뿌려대는 사이영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저 녀석 제구가 좋아서 공을 받는 시늉이라도 하지 저 녀석 제구가 진우 정도면 나도 포수 때려치웠을지도 몰라.’
심지어 사이영이 우타자에게만 던지는 사이드암은 타자의 몸에 가려서 ‘보고’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더욱 사이영의 제구가 돋보였다.
‘세상에 저런 투수만 있다면 포수는 프레이밍 같은걸 할 필요도 없을 텐데.’
프레이밍은 볼이 될지도 모르는 공을 스트라이크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다.
당연히 스트라이크가 되는 공은 프레이밍을 할 필요가 없다.
“나이스 볼! 계속 이렇게만 하라고 애송이!”
내 청각에 이상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저 시고르브자브종 녀석이 나에게 방금 애송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애송이라, 아직 88년은 이르다! 애송이!
스몰 야구를 추구한다는 일본은 좌우 놀이를 좋아하는지 우타자 다음에는 항상 좌타자를 배치했다.
좌타자는 기본적으로 1루 베이스에 3M정도 가깝고 우투수인 내 폼을 훤히 볼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내가 불리한 싸움을 해야한다.
슈우우우우웅! 퍼엉!
물론 싸움이라는 건 수준이 맞아야 성립이 되는 것이다.
내 공을 건드릴 만큼 수준이 높은 타자여야 내가 불리한 싸움을 하는 것이지 내 공을 건드릴 수조차 없는 낮은 수준의 꼬맹이들에게는 좌타자의 이점은 조금 더 빨리 자신의 덕아웃으로 들어가 1초라도 더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 밖에 없다.
간단하게 2이닝을 막은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일본의 늙은 꼬맹이를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나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표정이 그대로 들어나는 일본감독, 하지만 어쩌겠나?
상대가 바로 난데!
일본 감독의 바램과 달리 나는 4이닝동안 무실점을 수확했고 팀은 승기를 굳혔다.
문제는······.
“여, 왔는가? 사완용.”
“진우야, 이영이가 일본을 상대로 안타를 하나도 못 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친일파는 아닐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