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Chapter 5.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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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5)
#1 사이영11세 시즌, 리틀 리그 월드시리즈 대만예선 결승전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녀석을 향해 씨익 웃어줬다.
사실 야구 팬들이 가지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도루의 저지는 포수가 하는게 아니라 투수가 한다는 것이다.
포수에게 도루저지율이라는 스텟이 붙기는 하지만 포수가 하는 것은 결국 투수가 던진 공을 받아서 2루나 3루에 공을 뿌리는 것 말고는 하는게 없다.
오히려 투수는 주자가 뛰지 못하게 견제를 하고 퀵모션을 빠르게 투구를 해야하며 빠르게 포수에게 공을 던져줘야 한다.
이 조건이 모두 부합되어야지만 포수는 투수가 던진공을 받아서 주자를 잡기위한 도루저지를 할 수 있다.
리틀야구에서는 도루의 조건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결국 투수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나도 커리어 내내 주자들이 달리는 것이 엄청 신경쓰였다.
그래서인지 타자가 도루에 성공하면 그렇게 짜증날때가 없었다.
아마 지금 마운드 위에서있는 저 애송이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여기서 저 애송이를 더 열받게 하는 것이 있다.
실룩 실룩!
언제든지 너 따위에게는 3루정도는 훔쳐줄 수 있다는 몸놀림, 그것만으로도 투수는 나에게 신경이 쓰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나는 투수 녀석을 도발하는 백만불짜리 미소를 날려줬다.
가끔 연습도중에 진우 녀석에게 날려줬을 때 약 98%의 확률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날 뻔 했던 미소다.
뿌드득!
어이구, 꼬맹아 이제 영구친데 평생을 아껴줘야하는 치아를 너무 막 갈아대는 거 아니냐?
아, 요즘 임플란튼가 뭔가도 잘 되서 괜찮긴 하다더라!
“볼!”
아니나 다를까 공격적인 피칭으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던 녀석이 볼을 던졌다.
분명 포수가 피치아웃(주자가 도루할 것에 대비하여 스트라이크존 보다 훨씬 높거나 옆으로 빠지는 공을 던지는 것)을 한거겠지?
멍청하기는, 2루 도루보다 3루 도루가 훨씬 더 어렵다.
심지어 리틀 야구에서 3루 도루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대만팀 감독은 똥이라도 집어먹은 표정으로 배터리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애송이들은 내가 혹시 도루를 할까 노심초사하면서 감독의 사인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야구는 대부분 사인으로 이루어지는 경기다.
리틀야구때부터 항상 덕아웃을 확인하라고 교육하는 것도 야구에서는 의사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성이 아닌 사인은 종종 오류가 나기도 한다.
지금처럼 선수들이 감독의 사인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감독이 실수로 사인을 잘못 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경기 중에 팔짱을 끼는 사인을 도루라고 했을 때 감독이 추워서 자신도 모르게 팔짱을 낀 경우가 있다.
그 사인을 봤을 때 나는 감독이 미친놈인줄 알았다.
그때 내가 3루에 있을 때였거든!
3루에서 나에게 도루사인을 내는 건 홈스틸을 하라는 이야기었고 나는 감독이 미친놈이라고 생각 했지만 일단 감독의 사인에 따라 홈스틸을 시도했다.
결과는? 당연히 아웃! 감독은 적반하장격으로 왜 시키지도 않은 도루를 하느냐고 나에게 따졌다.
나는 감독에게 왜 3루에 있는 나한테 홈스틸을 하라고 했냐고 따졌다.
이런게 야구다.
조금만 멘탈을 흔들어 주면 팀 자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것! 그래서 나는 야구가 재미있었다.
이왕 적팀에 의사소통을 무너졌다.
“볼!”
투수는 2연속 피치아웃을 선택했고 대만 감독은 그제야 대만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지시를 내렸다.
말투를 보아하니 너 밥은 먹었니 같은 친절한 물음은 아닌 것 같고 욕이 섞인 질책이겠지.
감독의 질책을 받은 배터리는 정신을 차린 듯 나와 승부가 아닌 타자와 승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배터리가 방심한 틈을 노려 3루를 훔쳤다.
“세이프!”
후,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나간 주자가 연속 도루에 성공에 스코어링 포지션에 도찬한 것만 해도 미칠텐데 홈스틸이라도 해버리면 아주그냥 볼만하겠어?
3루에 도착한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제는 더 이상 욕심이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3루 베이스를 밟고 투수를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뭐가 못마땅한지 눈살을 찌푸리더니 나를 무시하고 타자를 바라봤다.
“볼!”
흥! 저런 말랑카우같은 맨탈을 가진 녀석을 나와 비교했다고? 야알못 시고르브자브종 녀석아!
지금 볼 카운트는 1-3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트다.
투수는 당연히 쉬운공으로 승부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첸 포링은 이 상황이 짜증날 뿐이었다.
‘아 오늘 진짜 안 풀리네!’
첸 포링은 오늘 경기가 있기 전에 감독에게 한국 팀 투수을 조심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첸 포링은 이번 경기에서 가볍게 한국팀을 누르고 리틀 리그 월드시리즈 본선에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팀 투수는 생각보다 더 뛰어난 피칭으로 첸 포링 팀의 타선을 잠재웠다.
그리고 2회, 첸 포링은 선두타자로 나온 상대팀 투수를 상대로 2스트라이크까지 잡았을 때 솔직하게 상대를 무시했다.
‘뭐야? 생각보다 쉽잖아? 7할이 넘는 강타자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2스트라이크로 몰린 녀석은 교묘한 배트 컨트롤로 연달아 파울타구를 만들더니 짜증나는 표정으로 첸 포링의 맨탈을 건드렸다.
자신도 모르게 어께에 힘이 들어간 첸 포링은 평소에는 절대 하지않을 폭투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미친 놈은 그 상황에서 힘차게 배트 플립을 하고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1루에 나가고 말았다.
이것만해도 기분이 나쁜데 생각지도 못한 도루까지 당하자 첸 포링은 냉정을 잃고 말았다.
감독에 사인도 보지않고 피치아웃을 연달아하자 덕아웃에서 감독의 욕설이 들렸다.
“이 새끼들아! 감독 말도 듣지 않을거면 내려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첸 포링은 감독에게 모자를 벗어 사과를 하고 타자와 상대를 했다.
문제는 타자와 싸움을 집중한 나머지 주자에 대한 견제를 까먹은 첸 포링은 3루 도루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휴, 이제야 저 토끼같은 녀석이 달릴 생각을 포기했나?’
문제는 주자와 싸움을 하다보니 볼카운트가 너무 몰려버렸다는 것이다.
‘희생플라이 한방이면 홈으로 들어온다. 차라리 볼넷을 주더라도 어렵게 승부하는게 맞아.’
하필이면 한국팀 벤치에서 절대 방망이를 휘두르지 말라는 사인이 나왔다는 것을 첸 포링이 알 리가 없었다.
“볼, 포볼!”
‘아, 제길! 저 녀석에게 완전 말렸어.’
포볼을 준 첸 포링은 짜증을 감추기 위해서 모자를 고쳐쓰고 땀을 닦았다.
“야! 뭐해!”
잠시 땀을 닦기 위해 고개를 숙인 첸포링은 어느새 홈플레이트 근처까지 달려온 주자를 잡기위해 서둘러 공을 던졌다.
와, 완벽한 타이밍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잖아?
투수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은 나는 통산 첫 홈스틸을 기대했지만 망할 투수놈이 생각보다 빨리 포수에게 공을 던졌다.
한가지 다행인건 다급하게 던진공이 원바운드 되어 포수의 자세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달리는 속도를 이용해 덤블링을 하면서 포수를 피했고 바로 홈 플레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세잎!”
아슬아슬하게 포수가 나를 향해 글러브를 밀어봤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나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마냥 당당하게 덕아웃으로 들어왔다.
“봤냐? 이것이 바로 ‘조금 러닝타임이 긴 홈런’이라는 거다!”
“무슨 미친소리야? 너 삼진이잖아.”
“하아, 이래서 야알못들이랑은 대화를 하면 안 되는데.”
“고생했다. 어디 아픈데는 없지?”
역시 나를 걱정해주는건 마스터뿐이다.
“말짱합니다.”
마스터는 내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나를 칭찬해줬다.
나는 당당하게 덕아웃에 있는 내자리로 향해서 다리를 꼬고 야구를 바라봤다.
그 옆에 민규가 앉았다.
“여기서 보면 야구가 달라보여?”
“여기는 홈런을 친 타자만 앉을 수 있는 명예로운 벤치라는 곳이야. 전 이닝에 안타도 못친 너는 앉을 수 없는 곳이지.”
“어? 그런거야?”
민규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이닝에 홈런을 치고 앉을게.”
하아, 저 눈치없는 녀석! 어서 와서 이 몸을 더 칭찬하란 말이다!
사실 전생에도 한 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홈스틸 때문에 나는 기분이 상당히 좋은 상황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총합나이 99살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서 나를 찬양하라고! 이 야알못들아!
“얘들아 선발 투수는 예민하니까 일단은 이영이 근처로 가지마.”
싸가지 없는 진우 녀석이 팀원들에게 속삭이는게 들렸다.
“야구 바보병 옮아!”
수영장에서 너무 일찍 건져준 것이 내 패착이었군! 적어도 CPR을 할 정도로 담궈버렸어야 했는데!
#2 사이영11세 시즌, 리틀 리그 월드시리즈 대만예선 우승!
대만의 선발 투수는 그대로 무너졌다.
하긴 어린녀석이 낫아웃 출루, 도루, 두루, 홈스틸 콤보는 충격이 크긴 클거다.
내 홈스틸 이후 연달아 볼넷을 내준 녀석은 민우의 안타로 4실점을 하고 내려왔다.
이후 바뀐 대만의 투수는 야알못 삼형제 녀석들에게 차례대로 홈런을 맞으면서 경기는 기울었다.
“이영아, 이제 홈런을 쳤으니까 여기 앉아도 되지?”
“아, 여기가 홈런친 타자들만 앉을 수 있다는 그 벤친가?”
“역시, 여기서 보는 경기는 확실히 경치가 남다르군!”
“주빈아, 여기서 유일하게 삼진을 당하고 앉아있는 녀석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닌데?”
“나도 방금 홈런쳤어.”
하! 이자식들 누구 덕분에 투수가 내려갔는지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같은 녀석들! 이래서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된다고 하는거였어!
참고로 나는 전 타석에 아슬아슬하게 담장을 못넘긴 3루타를 친 상황이다.
“똑바로 두고봐라! 형님께서 ‘조금 짧은 홈런’이 아니라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보여줄게!”
아직까지도 바뀐 투수는 우리팀의 타자를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고 금방 내 타석이 돌아왔다.
이거 조금만 더하면 우리가 콜드게임으로 이기겠는데?
결승전 역시 선수보호를 위해서 7이닝까지만 진행되었고 콜드게임룰 역시 적용이 되고 있었다.
고작 3이닝에 벌써 9득점을 한 상황 심지어 8득점의 빅이닝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었다.
홈런을 쳐야하는 나는 투수가 아닌 타자가되어 초구부터 적극적인 공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나라고해도 한복판에 들어오는 공이아니면 담장을 넘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침 초구부터 치기좋은 한복판의 공이 들어왔다!
까아아앙!
소리좋고! 타구속도 좋고! 발사각도 좋고! 이건 보나마나 홈런이다.
나는 얌전히 방망이를 땅에 내려놓고 전력으로 1루를 향해 달렸다.
그런데 3루에 서있는 3루코치 꼬맹이가 열심히 팔을 돌리고 있었다.
뭐야? 홈런인데 왜 저렇게 열심히 팔을 돌려?
“홈런 아니야! 외야 팬스 맞고 튕겨나왔어!”
뭐? 홈런이 아니라고?!
나는 이를 악물고 전력질주를 했다.
2루를 지나 3루까지 도착할때까지 3루 코치 꼬맹이는 계속해서 팔을 돌렸다.
이건 내 걸음이면 홈까지 갈 수 있다는 싸인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나는 젓 먹던 힘을 다해 홈까지 달렸다.
다행히 외야수의 어깨가 소녀어깨라서 그런지 연계 플레이를 해야 했고 나는 비교적 여유있게 홈 플레이트에 도착했다.
“세이프!”
결국 나는 파워로 홈런을 치지는 못했지만 빠른 발로 홈런을 치면서 인사이드 파크 더 홈런을 쳤다.
“하, 봤냐? 이것이 바로 홈런이라는 거다.”
“나가기 전에 담장을 넘긴다던 멍청이는 어디갔지?”
“저기 덕아웃에 서 있잖아.”
빌어먹을 꼬맹이놈들 기억력이 너무 좋다. 할수만 있다면 마취총 달린 시계로 녀석들을 재워버리고 싶다.
[리틀 리그 월드시리즈 대만 예선, 대한민국 2m리틀 야구단 우승!]
리그 MVP 사이영(11세,대전초등학교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