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8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46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80)
오상진이 살짝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얘기를 그것도 직접 홍민우 소령 입으로 할 이유는 없었다. 오상진이 바로 입을 열지 않자 홍민우 소령이 말했다.
“내가 왜 4중대장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지.”
“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네에게 솔직하게 말할게. 나, 대대장님께 팽당했네.”
“네?”
“더 솔직히 말해서 대대장님과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되었어.”
“······.”
오상진은 앞선 것보다 더욱 놀라운 말에 감히 답을 하지 못했다. 홍민우 소령은 이왕 얘기한 김에 솔직하게 다 털어놨다.
“자네가 이곳에 온 이후 대대장님 계획들이 꼬였거든. 그 일을 전부 내 탓으로 돌리더라고.”
“아, 그랬습니까.”
오상진이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홍민우 소령이 피식 웃었다.
“됐어, 이 친구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 쪽 라인도 아니었고. 우리가 자네를 제대로 대우해 주지도 않고 이곳으로 보냈는데 무슨 대접을 받으려고 하겠나. 다 피차 서로 잘못한 거지. 자네는 자네 일을 한 것이고, 우린 우리 일을 한 것뿐이야. 안 그래?”
“네. 뭐······, 그리 생각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무튼 나는 더 이상 대대장님을 서포트할 생각이 없어. 물론 내가 작전과장으로서 대대장님께서 부대에 있는 한 계속 보좌는 할 거야. 하지만 예전처럼 사적인 문제까지 수습하고 처리해 줄 생각은 없어.”
“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기철 소령이야.”
홍민우 소령의 말에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이기철 소령도 아십니까?”
“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따지자면 내 후배이기도 하고······. 뭐 자네도 그렇지만.”
“······네.”
“이 소령 말이야. 참 성실해. 착하기도 하고······. 사실 김명주 대위가 이기철 소령과 만난 것도 송일중 중령님 때문이야.”
“네?”
“김명주 대위는 이기철 소령과 결혼하기 전부터 송일중 중령과 만나고 있었어. 주변의 시선에 눈치 보이고 의식하면서 이기철 소령과 그냥 결혼을 한 거야. 이기철 소령이 김명주 대위를 많이 좋아했거든.”
“······.”
“혹시 자네 이 얘기는 어디까지 들었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주임원사가 와서는 김명주 대위 얘기만 했나? 아니면 다른 얘기는 없었어?”
“그게······.”
오상진이 뜸을 들이자 홍민우 소령이 지레짐작을 했다.
“혹시 아이 얘기도 했나?”
“네.”
“하아······ 거기까지 얘기했으면 자네도 다 안다는 소리네.”
그 말에 오상진의 눈이 치켜떠졌다. 이 말은 김명주 대위의 아이가 송일중 중령의 아이가 맞다는 소리였다. 놀란 눈이 된 오상진을 본 홍일중 중령이 애써 미소를 보였다.
“맞아. 자네가 생각하는 그거······. 솔직히 내 입 밖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송 중령님 나한테 직접 고민 얘기를 했어.”
“그렇습니까?”
“그래. 김명주 대위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겠냐고 말이야.”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당연히 아이를 지워야 한다고 얘기를 했지. 그리고 김명주 대위하고 관계도 정리를 해야 한다고 하고. 송일중 중령님도 알겠다고 했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명주 대위가 아이를 낳았고, 송일중 중령님은 소문을 피하듯 김명주 대위를 떠나 이곳으로 오신 것이지. 그래서 다 끝났다고 생각을 했는데 참······.”
“아닙니까?”
“요새 들어서 다시 연락을 하는 분위기야.”
홍민우 소령이 직접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느 정도 눈치만 챈 것이었다. 김명주 대위를 만나던 송일중 중령은 이 부대로 넘어와서 상당히 의욕도 상실하고, 열성이 떨어졌다. 최근 들어 약간 김명주 대위를 만나던 그 시절의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홍민우 소령이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오상진은 이 얘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송일중 중령과 김명주 대위와의 관계를 정리해도 문제는 아이였다. 그런데 다시 두 사람이 만난다면 이기철 소령만 정말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이 일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기철 소령에게 이 같은 사실을 전하는 것이 맞나 고민을 하고 있어. 막말로 내가 이기철 소령하고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
“네?”
“오해는 하지 마. 싸운 것은 아니고 이기철 소령이 김명주 대위랑 대대장님과의 관계에 대한 소문을 들었겠지. 그래서 나한테 연락을 했었고, 내가 별일 없다고 얘기를 했었거든. 그 당시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잖아. 그런데 이제 와 그것이 아니다. 사실은 이랬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많이 곤란한 상황이 되겠지.”
홍민우 소령의 말에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홍민우 소령은 자신의 면피를 위해서 책임을 회피하고 걱정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홍민우 소령의 생각에 오상진은 뭔가를 기대한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쓴웃음을 짓는데 홍민우 소령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나는 지금 대대장님하고는 선을 그은 상태야. 그리고 가능하면 이번 전수조사에서 다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야. 이에 자네 생각을 묻고 싶군.”
“제 생각 말입니까?”
“그래.”
“굳이 제 생각이 중요하십니까?”
“나한테는 중요해. 가능하면 4중대장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으면 하거든.”
그 말에 강요든 협박처럼 말은 했지만 부탁도 들어가 있었다. 오상진이 고민을 했다.
“제가 오래 몸담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 3대대가 올바르게 바로 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자네도 그런 생각이지?”
“네. 그렇다고 해서 작전과장님을 도울 생각은 없습니다.”
홍민우 소령이 피식 웃었다.
“그러려고 자네를 찾아온 것이 아니야. 그냥 자네의 생각, 의지를 알아보려고 온 것이야. 막말로 나는 이 일이 끝난 후 내 입지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몰라.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나도 대한민국 군인이고 나도 한때는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야. 진짜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살았겠어. 난 이런 생각이 들어.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오히려 내가 더 안 좋은 쪽으로 물들기 전에 어쩌면 내가 정신을 차릴 기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
오상진은 말없이 얘기를 들었다. 그리곤 홍민우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오상진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더 이상 이곳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녹차 잘 마셨네.”
홍민우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따라 오상진도 함께 일어났다.
“수고하게.”
홍민우 소령이 손을 들어 말을 한 후 중대장실을 나갔다. 나가는 그를 본 오상진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날 오후 오상진의 휴대폰으로 장석태 대위의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한 오상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장 대위님이 어쩐 일이지.”
오상진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신보안, 3대대 4중대장 대위 오상진입니다.”
-오상진 대위!
“네. 장 대위님. 안녕하셨습니까.”
-오 대위. 잘 지냈어? 요새 정신없다며.
“잘 지내지 못합니다. 죽겠습니다.”
-왜? 군 전수조사 때문에 그래?
“네.”
-그렇지 않아도 임 중령님께 얘기는 들었어. 거기 주임원사가 아주 꼴통이라며.
장석태 대위의 말에 오상진이 바로 웃었다. 만약에 부사관들이 있는 자리에서 꼴통이니 뭐니 저런 소리를 했다면 아주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장석태 대위는 예나 지금이나 말의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습니까?”
-무슨 일로 전화했겠어. 오랜만에 목소리나 들을까 해서 전화했지.
“정말 그 일로요?”
-그럼 뭐? 은지가 지금 85사단을 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전화를 했다고 생각해?
“아닙니까?”
-이 친구가······. 날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니까.
“하하하.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디까지 진행되었어요?”
-지금 이리저리 파고 있는데 윤태민 소위 소송 관련해서 기사는 이미 나갔어. 그거 봤어?
“제가 좀 요새 정신이 없어서 못 봤습니다.”
-그 기사 나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부 장관이 전수조사 지시를 내렸잖아. 그것 때문에 좀 묻혔지.
“아, 그래요.”
오상진은 대답을 하고는 살짝 미안해졌다. 박은지 통해서 사실 윤태민 소위와 관련된 기사들을 조사하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전에 조인범 상병의 대한 기사도 부탁을 했었고 말이다.
이에 박은지는 알게 모르게 조인범 상병부터 시작해 윤태민 소위, 그 과정에 85사단에 대한 군 문제를 꾸준히 파헤치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고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최익현 의원을 통해 전수조사가 발표되었다. 박은지 입장에서는 괜히 헛심을 쓰게 된 꼴이 된 것이다.
“아, 정말 은지 씨에게 미안해집니다.”
-어허, 그런 소리 하지 마. 사실 은지가 내게 그런 얘기는 했어. 자신이 너무 뜸을 들인 것 같다고 말이야. 그냥 적절한 시기에 터뜨려야 도움이 되었을 텐데 분위기 본다고 약간 묵혀 뒀던 것이 오히려 뒷북을 친 느낌이라고 말이야.
“아, 그랬습니까?”
-그래. 솔직히 많이 아쉽지 않으면 거짓말이지. 어쨌든 지금은 지난 일이니까. 괜찮아.
“정말입니까?”
-그럼! 나는 괜찮지. 은지는 모르겠고.
“그러니까요.”
-대신에 말이야. 내가 자네 대대 주임원사 얘기를 들었잖아. 그 얘기 은지에게 넘기면 어때? 은지도 나름 조사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은지 씨가요?”
-어. 오 대위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뭐, 상관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주임원사 관련해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후후후, 은지가 좋아하겠네.
“이거 뭐, 은지 씨 좋아하라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말이야. 오늘 저녁에 한잔 어때? 얼굴을 겸사겸사 볼 겸 해서 내가 내려가지.
“알겠습니다. 장 대위님께서 내려오신다면 환영입니다.”
-하하하, 당연하지. 바쁜 자네보고 올라오라고 할 수는 없잖아.
“넵!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이따 보자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오상진은 바로 박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언제나 밝은 목소리의 박은지가 있었다.
-어멋! 어멋! 상진 씨. 너무 오랜만이다.
“은지 씨. 미안해요. 내가 연락이 너무 늦었죠?”
-많이 늦었죠. 그것도 엄청 많이요.
“미안합니다.”
-알았으면 됐어요. 그런데 혹시 제 남친이 전화를 했나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어후, 말하지 말라니까. 입은 가벼워서는······.
“은지 씨, 혹시 서운한 것 있었어요? 그랬다면 신경 쓰지 못해서 미안해요. 내가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어요.”
-아니에요. 서운하기보다는 추가적으로 뭔가 디테일하게 사건을 파고들고 들지 못해서 좀 그랬죠. 그래서 제가 상진 씨 부대에 대해 살짝 한번 떠봤던 거예요. 그걸 또 고스란히 가서 전화를 했네. 어후······.
“그래도 장 대위님이 은지 씨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알죠. 아니까, 만나는 거죠. 그래도 남자가 너무 가벼워. 진짜······.
박은지가 말은 저렇게 했지만 그 속에는 사랑하는 감정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두 분 잘 지내시죠?
-갑자기 왜 얘기가 그렇게 나와요? 혹시 소희 씨하고 싸웠어요?
“싸워요? 전혀요. 저희는 싸움이 뭔지도 몰라요.”
-어멋! 진짜······. 걱정 마요. 우리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그보다 우리 커플끼리 한번 봐야죠. 너무 못 봤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언제 시간 한번 맞춰보도록 하죠.”
-좋죠.
이렇게 얘기를 하다가 오상진이 본론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