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45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9)
“알겠습니다. 일단 기다리세요. 자꾸 이런 식이면 나도 더는 도울 수가 없어요.”
오상진의 단호한 말에 방대철 주임원사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아, 진짜 왜 그러십니까. 제가 속이 타서 그렇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4중대장님만 믿습니다.
“네,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오상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인간은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오상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막말로 오상진 역시 주임원사들을 많이 상대를 해봤다. 지난 회귀 전에 봤던 주임원사들을 떠올렸다.
그들 중에서도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주임원사들도 많았다. 마치 자기 일처럼 후배 부사관들을 챙기고 말이다. 그러나 방대철 주임원사처럼 앞에서는 일하는 척하며 뒤에서는 온갖 추잡한 짓을 다 벌이는 인간들도 있었다.
솔직히 맘 같아서는 이런 방대철 주임원사 같은 사람들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부대 일로 엮이는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상진은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이것 참······. 고민이네.”
오상진이 중얼거릴 때 또 한 번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홍민우 소령이었다.
“작전과장님은 아침부터 왜?”
잠깐 바라보던 오상진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충성. 4중대장입니다.”
-어, 4중대장. 출근했나?
“네. 출근했습니다.”
-그래? 괜찮으면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얘기 말씀입니까?”
-어, 그래.
“지금 대대로 올라갑니까?”
-아냐, 아냐. 내가 4중대로 가지.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한편, 그 시각 통화를 마친 홍민우 소령이 옆에 서 있는 이재식 대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4중대장이 어제 임규태 중령을 만났단 말이야?”
“네.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하아······.”
홍민우 소령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홍민우 소령은 이재식 대위에게 임규태 중령을 잘 감시하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이재식 대위는 임규태 중령을 감시했다. 처음에는 임규태 중령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인석 소령과 황영호 대위만 주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이 생각하기에 임규태 중령 성격상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분명 어떤 움직임을 취할 것이라 예상해서 이재식 대위에게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라고 일러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때마침 이재식 대위가 임규태 중령의 뒤를 밟았고, 그때 오상진과 함께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데?”
“제가 확인한 바로는 4시간 정도 수원의 고급 한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나온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 이후로는 바로 헤어져 각자 집으로 복귀한 것으로 압니다.”
“일단 둘이 무슨 얘기를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만났다는 것은 확실한 거지.”
“네.”
“4시간 정도 같이 있었고.”
“네.”
“하아, 이것 참 뭔가 불안한데······.”
홍민우 소령의 표정이 굳어지며 고민을 했다. 이재식 대위가 슬쩍 물었다.
“4중대장은 출근했다고 합니까?”
“어. 출근했어. 그래서 내가 직접 가 보려고.”
“그냥 부르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무슨 얘기를 어떻게 주고받았는지 모르는데 여길 어떻게 불러. 만에 하나 4중대장이 저쪽으로 붙거나 이상한 얘기를 하면 어쩌려고.”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서 상황 파악을 할 테니까. 자네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네. 과장님.”
홍민우 소령이 밖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원래는 지금의 상황을 통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생각이었다. 방대철 주임원사와 송일중 중령과 반목하고 있는 이 과정을 즐길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치고받고 싸울 때 자신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차기 대대장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물론 사단 작전처의 배운혁 중령이 자신을 대대장 자리에 그냥 앉히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을 하고 일단은 자리가 비고,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어쨌거나 홍민우 소령 스스로도 위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상황이 현재는 중요한 것이었다. 길이 꽉 막혀 있는데 차가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최대 변수는 오상진이었다. 오상진은 홍민우 소령의 예상을 항상 벗어났고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런 와중에 임규태 중령까지 만났다고 하니 정말 불안했다.
“어제 주임원사가 4중대장을 찾아갔다고 하더니······. 설마 그 일 때문인가? 진짜 주임원사 편은 아니겠지.”
복도를 걷던 홍민우 소령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임원사실로 시선이 돌아갔다. 잠깐 바라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홍민우 소령이 애써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가장 좋은 그림은 두 사람이 서로 양패구상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오상진이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거나 하면 추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었다.
물론 중대장이라는 자리가 그리 대단한 자리는 아니지만 오상진은 육참 라인의 한 사람이고, 그곳에서 가장 예뻐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85사단 3대대에 오상진을 보낸 것도 일심회 핵심 멤버에 가까운 곽종윤 준장이나 그를 따르는 세력들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설마······ 트로이의 목마인가?”
홍민우 소령은 거기까지 생각을 했다. 그러자 절로 소름이 돋아났다. 그 정도라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아니야. 정말 4중대장이······.”
홍민우 소령이 의심을 했지만 그 의심의 싹이 이미 심어진 상태에서는 쉽게 뽑아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몰고 독립중대인 4중대로 왔다. 차를 주차하고 곧장 4중대장실로 갔다.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이 책상에 앉아 있다가 홍민우 소령을 발견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성, 오셨습니까.”
“어, 그래. 무슨 자리에서 일어나나. 그냥 앉아.”
“아닙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래.”
오상진은 자신의 자리에서 걸어 나와 앞에 마련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지.”
“커피와 녹차 있습니다.”
“녹차가 좋겠군.”
“네.”
오상진은 바로 커피포트를 켰다. 물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사이 녹차 티백을 꺼내 종이컵 두 개에 넣었다. 그 모습을 홍민우 소령이 찬찬히 바라봤다.
잠시 후 물이 끓고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부은 후 티백을 들었다 놨다 했다. 몇 번 그 행동을 하고는 종이컵을 들고 홍민우 소령에게 갔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 고마워.”
홍민우 소령이 슬쩍 오상진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돌려 말하지 않고, 그냥 말하겠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말이야. 어제 임 중령님을 만났나?”
그 말에 오상진이 움찔했다. 놀란 눈으로 홍민우 소령을 봤다.
“그걸 어떻게······.”
“아, 오해하지는 말고 이재식 대위가 근처에 일이 있다가 두 사람을 봤다고 하더군.”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재식 대위는 홍민우 소령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만약 이재식 대위가 봤다는 것은 자신이나 아니면 임규태 중령의 뒤를 따라왔다는 소리였다.
‘이것 참······.’
오상진의 속으로 살짝 어이없어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한다고 해도 씁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또한 홍민우 소령이 오해하지 말라고까지 말을 했다. 그러니 따질 수도 없었다.
“네. 맞습니다. 임규태 중령님하고 만났습니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혹시 말이야.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물어도 되나?”
“그건 죄송합니다. 사적인 얘기입니다. 신경 쓰실 만한 대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상진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홍민우 소령이 더 불안해했다.
“4중대장.”
“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얼마나 알고 있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 말입니까? 글쎄 말입니다. 제가 더 얼마나 알아야 합니까?”
오히려 오상진이 반문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홍민우 소령이 헛웃음이 났다.
처음 오상진이 부대에 왔을 때는 눈치가 없어 보였다. 윗사람들에게 예쁨만 받다 보니 제 잘난 맛에 사는 것 같고, 여기 4중대까지 내려왔으면 알아서 눈치껏 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는 것 같고. 중대장인데 대대장인 송일중 중령이나 자신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뭐라고 할까? 제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수많은 초보 장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상진 같은 애들이 정치력까지 있으면 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오상진은 달랐다. 말하는 것을 보니 마치 자신을 떠보는 듯한 말을 하고, 뭔가 속내를 숨기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오상진에 대해 파악을 완전히 잘못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능구렁이였는데 지금까지 속내를 숨기고 있었던 건가?’
그런 생각이 드니 홍민우 소령은 더 이상 오상진을 저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주임원사하고 대대장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그 얘기는 들었지?”
“네. 어제 주임원사가 절 찾아와서 얘기를 해줬습니다.”
“그래? 어제 주임원사가 뭐래?”
“그냥 저에게 사진 몇 장을 보여줬습니다.”
“사진? 혹시······. 김명주 대위 사진 말이야?”
“어? 아시네요.”
“하아, 알지. 내가 왜 모르겠어. 내가 대대장님 전 부대에서도 모셨던 것은 알고 있지?”
“네.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전 부대 얘기야. 김명주 대위도 내가 잘 알고 있고.”
“네.”
오상진이 빤히 홍민우 소령을 바라봤다. 마치 해명을 요구하듯이 말이다. 그 눈빛을 본 홍민우 소령이 고민을 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송일중 중령에 커버를 쳤을 것이고, 두둔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한배를 같이 타야 할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제 방대철 주임원사가 찾아와 김명주 대위 사진을 보여줬고, 그 직후에 임규태 중령을 만났다. 어쩌면 송일중 중령에게 불리한 얘기가 흘러나왔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대대장님 편을 든다? 그럼 4중대장이 날 대대장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겠지.’
홍민우 소령은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 솔직히 말을 했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대장님하고 김명주 대위랑 불미스러운 관계는 맞아.”
그 말을 들은 오상진이 살짝 놀랐다. 그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정말입니까?”
“맞아. 사실 두 사람과 관계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 다른 사람들은 소문으로 어림짐작만 하고 있지. 나는 그 당사자고 그 일을 뒤에서 처리도 했으니 알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