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44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8)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솔직히 계속 부대에 남아 있을 생각이었다면 나는 정말 짜증이 났을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요새 들어서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딱히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되더라고. 오히려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전역하기 전에 제대로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 그럼 진짜 정치권으로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지난번에 말했잖아. 생각은 기울여졌고 언제쯤 옷을 벗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지. 의원님은 하루라도 빨리 벗으면 보궐선거라도 밀어주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보궐선거까지는 시간이 너무 짧고 내 지역구도 아니고. 거기까지 기대는 하지 않아. 다음 총선 때 운 좋게 비례대표라도 자리가 나면 그때 도전을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지.”
임규태 중령의 얘기를 듣고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 근데 너무 편안하게 가시는 것 아닙니까.”
“이 친구가······. 아무리 비례대표라고 해도 그게 어디 편안한 자리인가. 최 의원님께서 밀어주신다고 해도 내가 알아봤는데 비례대표가 만만치 않다는 거야. 게다가 나도 나름 정치 수완도 갖춰야 하고 말이야. 또 비례대표 같은 경우 지역구가 없다 보니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잖아.”
“그건 그렇죠.”
“내가 군복을 벗고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데 한 번만 하고 끝낼 수는 없잖아. 결국은 나도 비례대표를 하면서 살아남아 내 지역구를 받아야 하거든. 그러려면 엄청 열심히 해야 하고.”
“네, 하긴 그것도 그렇겠습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정치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곤 해.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 사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우리 와이프? 우리 와이프 웃겨.”
“왜 그럽니까?”
“아니, 처음에 내가 군복 벗는다고 하니까. 미쳤냐면서 이제 곧 대령 진급도 얼마 남지도 않았다면서 장군까지는 달아야 하지 않냐며 그러는 거지. 중령으로 퇴임을 해봐야 어디 가서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냐며 악담을 하는데······.”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 모습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어후, 사모님. 성격이 화끈하십니다.”
“내가 그 모습에 반해서 결혼을 했잖아. 아무튼 그랬는데 요즘은 정치한다며 하니까 좀 많이 바뀌었어.”
“사모님께서 임 중령님을 믿어 주시는 건가 봅니다.”
“믿기는 개뿔! 처음에 정치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구박했는 줄 알아. 정치는 무슨 아무나 하냐며 악담을 퍼붓는데······. 어후.”
“하하하, 그러셨습니까.”
“그래서 내가 너무 억울해서 바로 의원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잖아. 와이프 때문에 정치 못 하겠다고 말하니까, 의원님께서 직접 선물을 사 들고 집으로 찾아오셨다는 것 아니야.”
“의원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집에 찾아온 의원님을 본 와이프가 또 엄청 좋아했잖아. 사실 우리 와이프 의원님 팬이거든. 어쨌든 그날 술을 한잔했는데 그때 의원님께서 임 중령을 꼭 데리고 가고 싶다. 그렇게 와이프에게 말했잖아.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밥상이 달라지더라.”
“그래요.”
“아무튼 내 마누라지만 참 속물이야. 속물.”
그래도 임규태 중령이 말은 저렇게 했지만 부부 사이가 원만했다. 그래서 자식이 세 명이나 있다. 물론 임규태 중령의 나이가 있다 보니 애들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 임규태 중령이 초창기에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었다.
“애들 때문이라도 군 생활 오래 해야 해.”
그런데 갑자기 군복을 벗겠다고 했으니 아내가 반대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짝은 잘 만났는지 그런 임규태 중령을 지지하고 믿어줬다.
‘훗, 말은 저렇게 해도 두 분 참······. 보기 좋네.’
오상진이 속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임규태 중령이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건 그렇고 오 대위 자네는 정치 안 할 거야?”
“제 주제에 무슨 정치입니까. 안 합니다.”
“이 친구가······. 내가 꼭 얘기를 해줘야 해? 꿩 대신 닭이라고 자네 대신 내가 뽑힌 거잖아.”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의원님께서 필요하시니까 중령님을 선택하셨죠.”
“아니야. 아니야. 자네가 당장에라도 하겠다고 하면 어떤 지역구라도 빌려주겠다고 하실 분이야.”
“의원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그렇게 말씀하셨다니까. 지난번에 그렇게 말씀하셨어. 처음 보궐선거를 말씀하셔서 내가 부담스럽다고 말했거든. 그러면서 내가 농담 삼아 말했지. 나중에 의원님 지역구나 물려주십시오. 그런데 의원님께서 뭐라고 하셨는 줄 알아.”
“뭐라고 하셨습니까?”
“안 된다고 하지. 아주 딱 잘라서 말씀하시더라.”
“아······.”
“그러면서 서운하게 듣지 말라며 얘기를 해주시더라. 만약 자네 오면 그 지역구 물려줘야 한다면 절대 안 된다고 하시더라.”
“그냥 해보신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친구야. 내가 그때 얼마나 무안했는데. 의원님도 너무 정색하시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고.”
“그랬습니까.”
“내가 의원님이더라도 나보다는 자네가 맞지. 요즘 의원님 따라서 이리저리 사람들 만나고 하면서 정치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바닥이 장난 아니야. 내가 군 생활을 하면서 군 내부 정치에 신물이 나고 그랬잖아. 그런데 진짜 정치인들이 하는 정치는 차원이 달라. 적어도 우리는 같은 육사끼리 밀어주고 키워주는 의리 같은 것은 있잖아. 물론 일심회인지 뭐라고 해도.”
“네, 뭔 그런 것은 있죠.”
오상진은 바로 호응을 해줬다.
“그런데 정치는 그런 것이 없어. 앞에서도 뒤통수를 때리고 어찌나 살벌하던지. 가끔씩 의원님이 몇 년 동안 겪었던 본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주변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엄청 살벌해. 그 일들이 이제 내 일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무섭긴 해.”
“중령님은 잘하실 겁니다.”
오상진이 임규태 중령에게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음에도 임규태 중령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서 말인데 자네도 오래 있지 말고 빨리 올라와서 나 좀 도와줘. 그렇다고 자네더러 내 뒤치다꺼리하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내 옆에나 있어 줘. 아니면 나보다 먼저 올라가서 나를 끌어주면 더 좋고.”
“아후. 무슨 말씀입니까. 중령님이 먼저 올라가서 자리 잡으십시오.”
그 말에 임규태 중령이 씨익 웃었다.
“진짜지. 내가 먼저 올라가서 자리 잡는다. 자네는 무조건 정치판으로 오는 거지?”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아직 저는 젊습니다. 이제 중대장밖에 못 했지 않습니까.”
“군대를 얼마나 오랫동안 있으려고. 아니면 군대에 미련이라도 있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가 알기론 자네 재산도 좀 있잖아.”
임규태 중령이 대놓고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오상진의 재력은 최익현 의원이 짐작은 하고 있었고, 그를 통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상진은 두 사람 앞에서 아닌 척은 하지 않았다.
“저의 재력은 재력이고 말입니다.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디까지 올라가려고? 설마하니 육군참모총장까지 노리는 것은 아니겠지.”
“안 될 것 같습니까?”
오상진의 말에 임규태 중령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으음······. 이러면 안 되는데.”
“네?”
“자네가 꼭 그렇게 얘기를 하면 육군참모총장을 할 것 같단 말이야.”
“하하하, 그냥 한 말이죠. 육군참모총장을 아무나 합니까.”
오상진이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임규태 중령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자네는 아무나가 아니지. 자네 동기들 중에서 자네보다 진급 빠른 사람이 누가 있어. 이번에 중대장 수행하고 나면 나보다 훨씬 빨리 소령으로 진급할 텐데······.”
“아닙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여기 와서 실적도 못 내고 있습니다.”
“그건 자네 생각이고. 자네를 좋아하는 윗분들은 다 생각하고 있어. 나도 사단장님하고 가끔씩 얘기를 하면 자네 얘기를 꼭 해.”
“네? 사단장님께서요.”
“자네는 사단장님을 잘 모르지?”
“네. 존함만 알고 있습니다.”
“자네는 모르지만 사단장님은 잘 알고 계셔. 사단장님도 약간 중립 노선이시긴 하지만 육참 라인에 반쯤은 발을 담그고 계셔. 그래서 자네 얘기를 자주 들으시는 모양이야.”
“그러십니까.”
“그래. 일심회에서도 자네는 유명인일걸. 그러니까 군대에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적당한 때에 나와. 내 경험담인데 시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군대에 물들어 버리면 초심을 잃게 마련이야. 사람이 초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 네가 군대에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응을 해버려. 그러면 그 초심을 찾기 어려워져. 그러니 초심을 지킬 수 있을 때 그 마음만 가지고 나와.”
“네, 알겠습니다. 저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자 다시 한잔 받아.”
“네. 중령님.”
오상진은 임규태 중령에게 다시 술을 받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잔을 기울였다.
차에서 내린 오상진은 터벅터벅 중앙현관을 통해 들어갔다. 오른쪽으로 틀자 행정실이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 문을 열고는 인사를 했다.
“다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중대장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다들 오상진을 향해 인사를 했다. 오상진도 미소를 보이며 손을 들어 화답했다. 그런데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물었다.
“중대장님.”
“응?”
“어디 불편하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으응, 어제 좀 과음을 했더니······. 괜찮아. 오늘 일과 준비들 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애써 말을 한 후 문을 닫고 중대장실로 걸어갔다. 오상진은 중대장실로 들어와 전투모를 벗어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는 어제 마신 숙취가 해결되지 않았는지 지끈거리를 머리를 매만졌다.
“으으으······ 머리 아파.”
아침에 일어나 냉수 한 잔을 마신 것이 다였다. 그래서인지 속도 쓰리고 머리도 엄청 아팠다. 이럴 때는 한소희가 해주는 북엇국이 생각났다.
“하아······. 소희 씨라도 있었다면 아침에 북엇국이라도 끓여줬을 텐데······.”
예전 집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한소희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데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응?”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방대철 주임원사였다.
“하아······.”
그의 이름을 확인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었다.
“예, 주임원사.”
-4중대장님 출근하셨습니까?
“네. 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어제 했던 얘기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때 내가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을 텐데요.”
-하, 지금 그렇게 한가하실 때가 아닙니다. 나는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고 어제 잠 한숨도 못 잤는데······. 4중대장님은 속 편한 얘기를 하십니다.
오상진은 맘 같아서는 확 뒤엎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뜩이나 지금 속도 불편해서 짜증이 난 상태였다. 일단은 좀 더 침착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