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41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5)
방대철 주임원사는 마치 몰랐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자신을 떠보려고 그러는 것인지 오상진은 100%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주임원사쯤 되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 능구렁이가 10마리 정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 참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네.’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방대철 주임원사를 바라봤다. 그러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슬쩍 얘기를 꺼냈다.
“만약에 말입니다. 4중대장님은 상관의 부정을 알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상관의 부정요? 누굴 말하는 거죠?”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니, 그냥······. 아는 사람 얘기인데. 그냥 얘기를 해와서 내가 고민을 하다가요. 아무래도 4중대장님께서는 많이 배우기도 했고, 육사 출신이고 지금 또 승승장구하고 계시고 말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듣고 있는 오상진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주임원사는 주임원사까지 단 사람이다. 군대에서 나름 짬밥이 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오상진보다도 연륜이 쌓인 인물이다. 그런데 오상진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건 어불성설이었다.
반면 오상진은 과거에서 회귀를 하긴 했지만 이제 갓 중대장이 된 20대 중반의 젊은 사람이었다. 인생 경험 같은 건 방대철 주임원사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방대철 주임원사가 저렇게 얘기를 하니 당혹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상관의 부정이라······. 이걸 나에게 물어보는 것을 보니 나와 관련된 사람인 것 같은데. 설마 대대장님을 말하는 건가?’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하며 방대철 주임원사를 빤히 바라봤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뭐야,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눈치를 보면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이것 참······. 내가 그냥 말해야 하나? 아니면 말아?’
솔직히 방대철 주임원사 입장에서는 이렇듯 미끼를 던지면 오상진이 덥석 물어 주길 바랐다.
이 정도 적당히 띄워주면 보통 젊은 장교들은 제 잘난 맛에 떠들거나 반응이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오상진은 군 생활 십 년 이십 년 한 짬 좀 되는 장교들마냥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반응을 역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오상진의 행동이 불편하고, 괜히 찾아왔나 후회도 되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오상진밖에 없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질질 끄는 것보다 직접 얘기하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네. 좋습니다.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대대장님께서 전 부대에서 내연녀가 있었습니다.”
“내연녀요?”
“네. 여기 증거 사진입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지난번에 받아왔던 사진을 테이블 위에 쫙 나열했다. 그중 하나의 사진이 오상진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에는 송일중 중령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 이것만 가지고는 단언하지 못했다.
물론 사진으로 봐도 가까워 보인다는 것은 알았다.
주변 배경이 군대가 아닌 시가지, 식당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팔짱을 낀 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친밀해서 밖에서도 이렇듯 친밀하게 지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상진 역시도 확실하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오상진도 예전 한소희와 교복을 입고 찍힌 사진 때문에 한바탕 곤욕을 치를 뻔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 속 모습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상진이 사진을 내려놓고 다른 사진들을 확인했다. 그 속에서 뭔가 확신을 가질 만한 사진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다른 사진 역시 두 사람이 가깝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딱 거기까지였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었다.
“이게 다입니까?”
“아니, 이 정도면 됐죠. 뭘 더 합니까? 제가 뭐 서비스 센터 직원도 아니고 말이죠. 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가는 것까지 찍어야 합니까?”
“그럼 주임원사께서는 이 사진만 봐도 확실하다는 것입니까?”
“딱 보면 모릅니까? 답이 나오죠. 이것보다 더 정확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방대철 주임원사가 단호하게 말하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알겠어요. 그럼 이 사진으로 주임원사가 직접 처리하면 되겠네요.”
“네?”
오상진의 답변을 듣고 방대철 주임원사는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게 다야? 뭔가 다른 말은?’
그런 기대를 했지만 오상진의 입에서 달리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주임원사가 이렇듯 확신을 가지고 계시는데 저에게 가져올 이유가 없잖아요. 주임원사가 직접 제보하시면 되잖아요.”
“하아, 아니, 무슨 일을 그리 키우려고 합니까. 내가 설마하니 대대장님 출셋길 막으려고 하는 건 줄 아십니까.”
“그럼 왜 저에게 이걸 보여주셨죠?”
“아니. 우리 대대장님께서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이번 진상조사를 할 때 문제가 생기면 안 되지 않아요. 안 그래요?”
“······.”
오상진이 말없이 바라봤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답답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잘 들어봐요. 우리 대대장님 아닙니까. 이런 일이 있다고 하면 무슨 망신입니까. 그러니 우리 차원에서 입단속도 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대책을 세우자, 그런 의미에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까. 그럼 내가 왜 찾아왔겠어요.”
방대철 주임원사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오상진은 속지 않았다. 방대철 주임원사 인간 자체가 정상적인 이유로 나설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방대철 주임원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방대철 주임원사는 최윤희뿐만이 아니라 박지영 중사까지 치근덕거렸다는 증거도 있다. 본인이 직접 헌병대에 증거를 넘겼다. 그래서 방대철 주임원사의 행동이 우습기만 했다. 오상진이 별다른 말이 없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좋습니다. 좋아요. 내가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기 뭐야. 4중대장님이 중재를 좀 서 주십시오.”
“네? 중재요?”
“네. 이대로 가다가는 부대 작살 나게 생겼어요. 나도 뭐, 알게 모르게 본인 아니게 실수한 것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지켜보니 조사위원회들이 계속 내 뒤만 파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그게 왠지 대대장님께서 사주한 것 같습니다.”
“대대장님께서요?”
“척하면 척이지 않아요. 저기 뭐냐. 윤태민 소위 건으로 대대장님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니까. 부사관인 나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뭐, 장교끼리 물고 빨고 하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죠. 솔직히 정말 서운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부대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해왔습니까. 아니지, 대대장님 오시기 전에 이 부대에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이러니 너무 서운해요. 솔직히 맘 같아서는 이걸 가지고 폭로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터뜨리면 우리 부대 체면은 뭐가 됩니까. 그래서 내가 4중대장님께 온 것이 아닙니까.”
오상진이 얘기를 잘 듣고 있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방대철 주임원사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4중대장님께서 잘 좀 중재를 해주십시오. 우리끼리 서로 물고 뜯어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시잖아요.”
방대철 주임원사가 능구렁이처럼 웃었다.
그런 방대철 주임원사의 모습에 오상진은 어이가 없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윤태민 소위 건은 상부에 보고가 된 것이었다. 또한 윤태민 소위 건 때문에 전국의 군부대에 전수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 고작 윤태민 소위 때문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모든 것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척하고 마치 자신은 피해자라고 말을 하는 것이 역겹기만 했다.
“하아, 주임원사. 이건 내가 중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두 사람이 알아서 하시면 될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저하고 대대장님 사이는 주임원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아요. 정 중재가 필요하면 작전과장님을 찾아가시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오상진이 정중하게 중재 거절을 했다. 하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코웃음을 쳤다.
“작전과장? 홍 소령은 말도 하지 마시죠. 그 양반이 제일 나쁜 양반이라니까요.”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 양반 내 뒤에서 뒷조사나 하고 있고. 또 장교들 통제하면서 부사관들 무시하라고 시키고 있고 말이죠.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게 나쁜 사람인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다른 부사관들이 있었다면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에 맞장구를 쳐 줬을 것이다. 실제로 대대에서는 장교들과 부사관들과의 반목이 심한 상태였다.
부사관들은 그 책임을 홍민우 소령에게 돌리고 있고, 장교들은 책임을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렇듯 서로를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홍민우 소령에게 중재를 하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오상진이 이 판에 끼어드는 것은 좀 웃긴 일이었다. 게다가 그럴 생각도 없고 말이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방대철 주임원사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상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따지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 대대에 부임한 지 고작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서서 중재를 합니까.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그럴 겁니까? 부대가 지금 난리도 아닌데 정말 그럴 거냐 말이에요.”
“미안합니다. 지금은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솔직히 말해서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방대철 주임원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를 통해서 송일중 중령의 외도 증거까지 본 상황이다.
이제 와 방대철 주임원사와 송일중 중령 사이에 들어가 중재를 한다고 해서 대대장이 고분고분 따를 이유가 없다. 송일중 중령 입장에서는 오상진이 장교인데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에 넘어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자체가 배신이라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방대철 주임원사는 이런 오상진과 송일중 중령 사이를 악화시킬 목적도 있을 것이다. 뭐, 원래부터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오상진 입장에서는 이런 행동을 보이는 방대철 주임원사의 의도를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오상진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아, 젠장······. 호락호락하질 않네.’
솔직히 방대철 주임원사도 처음부터 오상진에게 중재를 요청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오상진이 송일중 중령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어쩌면 연결고리로 써먹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역시나 오상진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