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38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72)
“으음, 살려달라······. 아니, 잘못을 하지 말든가. 왜 나에게 살려달라고 합니까. 난 그냥 조사를 할 뿐인데 말이죠. 내가 김 하사를 죽인다고 했습니까?”
“제발 살려주십시오. 부탁입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저 이거 알려지면 정말 끝입니다. 한 번만 좀 살려주십시오.”
김만식 하사가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조인석 소령이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을 좀 잘 살지 그랬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겠습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제발 한 번만······.”
김만식 하사는 울며불며 조인석 소령의 전투복 하의를 붙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조인석 소령이 피식 웃었다.
“으음, 아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합니까?”
“네?”
무릎을 꿇고 있던 김만식 하사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 내가 무슨 말을 했냐고요.”
그 말에 김만식 하사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말이다.
‘가, 가만 생각을 해보자. 만식아! 잘 생각을 해야 해.’
김만식 하사는 조인석 소령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어? 잠깐! 아까 말했던 것 중에 정도가 심하면 낮아질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나보다 심한 사람이 있다면 넘어가 준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 표정을 읽은 조인석 소령이 입을 열었다.
“뭐, 혹시 아는 거라도 있습니까?”
“······.”
“솔직히 나라고 일일이 조사를 다 할 수도 없고 말이죠. 아시잖아요. 인원은 적은데 조사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부분을 좀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조인석 소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김만식 하사는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아. 그것이 말입니다.”
“있긴 있나 봅니다. 어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얘기를 한번 해보시죠.”
조인석 소령은 얘기를 듣겠다는 듯 의자 뒤로 몸을 눕혔고, 팔짱을 꼈다.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때 김만식 하사의 머릿속으로 두 사람이 떠올랐다.
‘홍성율 중사······.’
홍성율 중사는 김만식 하사와 짝을 이뤄서 여자에 환장한 사람이다. 솔직히 생긴 것은 진짜 봐주지 못할 정도인데 맨날 여자를 밝혔다. 그래서 김만식 하사도 홍성율 중사를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했다.
‘가만······. 홍성율 중사? 이 사람 가지고 내가 넘어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다른 한 명을 더 생각했다.
‘방대철 주임원사······. 그 사람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사람이지.’
김만식 하사의 표정이 점점 굳게 변했다.
‘그래,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어.’
결심을 굳힌 김만식 하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조인석 소령이 재미있어할 만한 얘기를 주절거렸다.
“제가 생각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
“네. 한 사람은 홍성율 중사고, 다른 한 사람은 방대철 주임원사입니다.”
“뭐? 주임원사?”
“네. 방대철 주임원사부터 얘기를 하면 말이죠.”
김만식 하사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자신보다 더한 죄를 가진 사람을 팔아야 했다. 그것만이 살길이라며 연신 주절주절거렸다.
똑똑똑.
조용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조인석 소령이 말했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곳으로 홍성율 중사가 임시 조사실로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본 조인석 소령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했다. 그 눈빛을 본 홍성율 중사는 긴장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뭐해요. 앉으세요.”
이미 김만식 하사의 조사가 끝나서일까? 조인석 소령이 분위기를 잡고 말했다. 홍성율 중사가 흠칫 놀라면서 대답했다.
“아, 네!”
재빠른 동작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눈동자가 많이 흔들렸다. 사실 김만식 하사와 달리 홍성율 중사는 걸리는 것이 많았다.
김만식 하사 같은 경우 얼굴이 잘생겨서 여자들을 후리고 다닌 것은 맞다. 그러나 여자들 쪽과 김만식 하사는 서로 좋아해서 만났다. 중간에 유부녀와 잠깐의 만남이 있었던 것 빼고는 따지는 것은 좀 어려웠다.
반면에 홍성율 중사는 달랐다. 그 때문에 전출을 신청하고 군복을 벗은 여자 군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거의 홍성율 중사는 리틀 방대철 주임원사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매수를 당해 그의 모든 죄까지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으음. 이대로 방대철 주임원사를 파고들 경우 분명 자신을 대신할 희생양을 내세울 거야. 그 인물이 바로 홍성율 중사 같고 말이지.’
조인석 소령이 속으로 생각을 했다.
그런 사실을 홍성율 중사 본인조차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살짝 목을 움츠렸다. 그를 보며 조인석 소령이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왜 불려 왔는지 압니까?”
“전수조사 차원에서 전부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전수조사라고 해서 아무나 막 부르고 그러진 않는데······.”
“그럼······.”
홍성율 중사가 의문을 느꼈다. 이에 여유를 가진 조인석 소령이 말했다.
“홍성율 중사.”
“네.”
“자네가 왜 두 번째로 이곳에 왔는지 압니까?”
“네에?”
홍성율 중사는 분명 조인석 소령의 말을 들었음에도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되물었다.
“왜, 이곳에 2번째로 왔는지 아느냔 말입니다.”
“어, 그게······.”
홍성율 중사는 앞서 김만식 하사보다는 당당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죠?”
“제가 치기 어린 마음에 사고를 친 것이 있습니다.”
“사고? 무슨 사고죠?”
홍성율 중사는 조인석 소령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혹시나 알면서 물어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면서 물어보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한 자신에게 뭘 원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홍성율 중사를 다그치듯 조인석 소령이 책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탕!
“이봐요. 홍 중사!”
“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눈알을 굴립니까!”
“······.”
홍성율 중사는 압도적인 기세를 내비치는 조인석 소령을 당황한 듯 바라봤다.
“지금 내가 말하는 말에 똑바로 말합니다. 쓸데없는 잔머리 굴리지 말고 말입니다.”
“······네.”
“홍성율 중사!”
“네.”
“자네는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하면서 법에 저촉될 만한 상황이라든지, 군인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생활을 했지! 맞아?!”
“어······, 그것이.”
“대답 제대로 하라고!”
조인석 소령이 또 한 번 눈을 부라리며 강하게 말했다. 홍성율 중사가 움찔하며 겁에 질린 눈빛이 되었다.
“아, 네에. 네······.”
“좋아. 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만에 하나 내가 조사를 해서 자네 군 생활에 문제가 있는지 조사를 하던 중 군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행동을 했을 경우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단순히 옷 벗는 걸로 끝나지 않을 않습니다. 군 재판소에 회부되는 것은 물론, 불명예제대로 연금수령도 받지 못할 겁니다. 제 말 알아들었죠.”
“아, 그, 그것이······.”
홍성율 중사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뭔가 할 말이 잔뜩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더 할 말 있습니까?”
“······.”
“아까 대답은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대답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게······ 죄송합니다.”
홍성율 중사는 계속해서 죄송하다고만 말했다. 이에 조인석 소령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좋아요. 좋습니다. 홍 중사는 도대체 뭐가 그리 죄송한 것인지 어디 한번 말씀해 보세요.”
조인석 소령은 자신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홍성율 중사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요. 세상 사람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습니다.”
“······.”
홍성율 중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좋아요. 지금부터 홍 중사가 잘못했던 것을 여기에 하나하나 다 씁니다.”
조인석 소령이 볼펜과 A4 용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홍성율 중사가 힘겹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참고로 나중에 조사를 해서라도 뭐 하나라도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조인석 소령이 강하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물론 조인석 소령은 홍성율 중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이리저리 들리는 소문도 많았다. 방대철 주임원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홍성율 중사도 얘기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홍성율 중사 같은 사람은 방대철 주임원사와 마찬가지로 놔두는 것보다 더 많은 잘못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그냥 현재 드러난 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도 나쁜 짓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이 넘쳐서 바깥으로 나도는 소문들이 많을 뿐이다.
그렇다고 방대철 주임원사도 아니고 홍성율 중사를 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홍성율 중사에게 고해성사의 시간을 준 것이다. 이에 조인석 소령이 단단히 으름장을 놔서인지 홍성율 중사가 A4 용지에 자신의 잘못을 빼곡히 적기 시작했다.
‘뭐야 이 자식······.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기에 뒷장까지 넘겨서 쓸려고 하지? 아예 한 장을 다 채우려는 건가?’
한참을 적던 홍성율 중사가 고개를 들어 빤히 조인석 소령을 바라봤다. 조인석 소령이 표정을 관리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뭡니까?”
“저 한 장으로 부족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자요. 그럼 더 써요.”
조인석 소령이 A4 용지 한 장을 더 꺼내 줬다. 홍성율 중사는 자신의 죄를 쓰고 또 썼다. 물론 조인석 소령이 그냥 해본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군 생활을 해 오면서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 모든 것을 다 놓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반성문을 겸한 자신의 잘못들을 적어 낸 A4 용지가 무려 4장이나 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조인석 소령은 어이가 없었다.
“홍 중사는 이러고도 군인입니까?”
“죄송합니다.”
“이러면 홍 중사는 군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지금 이렇듯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계속 군인으로서 지낼 수 있다고 봅니까?”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 주십시오. 나이 지긋한 어머니가 계시고. 저 아니면 생계가 힘듭니다.”
“허! 이런 식으로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 지금 홍 중사의 처지만 이해해 달라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홍성율 중사는 계속해서 잘못했다고 말을 했다. 그를 본 조인석 소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참······. 홍 중사가 이러고 있는 동안 주임원사는 뭐 했습니까?”
“네?”
홍성율 중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홍 중사가 이러는 것을 주임원사가 몰랐을 리 없고······. 알았다면 말렸어야죠. 안 그래요? 도대체 주임원사가 되어서 뭘 했는지 모르겠네요.”
조인석 소령은 말을 하며 슬쩍 방대철 주임원사를 걸고넘어졌다. 그러자 홍성율 중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조인석 소령이 뭘 원하는지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