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6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34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68)
김태호 상사의 제안에 김진수 1소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술 말입니까?”
“네네. 1소대장님. 지난번······ 건도 있고 해서 말입니다. 부소대장들도 마음이 찔리고 그러지 않습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우리 다 같이 술 한잔하시죠. 그런데 이 일이 알려지면 좀 상황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건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4소대 부소대장인 하진규 하사가 이번에 이사를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원래 관사 생활 하셨습니까?”
“그렇죠. 관사 생활을 했죠. 그러다가 이번에 외부로 나갔죠. 원래는 주말부부였는데 애기가 태어나니 합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가 도움 조금 받아서 근처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와, 그렇구나. 몰랐습니다.”
“그래서 집들이도 할 겸해서 시간을 내면 안 되겠습니까?”
“아후, 당연히 시간 내야죠. 4중대 식구인데······. 제가 소대장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네. 그럼 저도 하 하사에게 얘기를 미리 해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입니까?”
“내일모레입니다.”
“네. 행보관님.”
그렇게 두 사람이 웃으며 헤어졌다.
한편 4중대에서 장교와 부사관들이 화합을 다지려고 하는 그 시각 홍민우 소령과 송일중 중령은 박지영 중사를 몰래 불러들였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대대장님.”
“어, 어서 와 박 중사. 오랜만이야.”
“네. 대대장님.”
박지영 중사와 송일중 중령은 잘 만나는 일이 없었다. 박지영 중사는 대부분 바로 위의 상급자가 대위였기 때문이다. 따로 보고할 일은 크게 없기에 잘 만나지 못했다. 하물며 송일중 중령이 육본에 올라간다고 해서 잘 신경도 못 쓴 것도 한몫했다.
“요즘 어때?”
“네?”
“아니, 군 생활 말이야. 별일은 없는 거지?”
“아, 네에. 없습니다.”
박지영 중사는 약간 당황한 듯 말했다. 그녀도 그럴 것이 갑자기 불러서는 친근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송일중 중령이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보다 자네 남편도 부사관인가?”
“네, 그렇습니다.”
“어디 있지?”
“서울 수방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호, 수방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군. 좋은 곳에 있네.”
“네. 그렇습니다.”
박지영 중사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잔뜩 긴장을 하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왜 저런 것을 물어보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대대장실에 불려온 이유조차 모르고 있었다.
“박 중사.”
“네?”
“뭘 그리 긴장해.”
“아, 아닙니다.”
“그보다 요즘 군 생활은 할 만해?”
“네? 하, 할 만합니다.”
박지영 중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송일중 중령이 조용히 말했다.
“정말인가?”
“······무, 무슨 말씀이신지······.”
박지영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송일중 중령은 바로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사실은 말이야. 자네 주임원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서.”
“네? 그, 그걸 어떻게······.”
박지영 중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그 누구도 몰랐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아니, 몇몇은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몰랐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대장이 직접적으로 말을 하니 마치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심정을 알고 그러는 것일까? 이번에는 홍민우 소령이 슬쩍 나섰다.
“박 중사. 자네를 탓하려고 부른 것도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야. 대대장님께서 그 보고를 듣고서 노발대발했어. 당장에라도 주임원사에게 달려가 크게 화를 내려고 했어. 하지만 그랬다간 자네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참으신 거야.”
“······.”
박지영 중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송일중 중령이 입을 열었다.
“대대장은 말이야. 내가 관리하는 부대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강력하게 경고를 하든지 아니면 다른 조치를 취할 생각이야.”
송일중 중령의 단호한 말에 박지영 중사는 조금 마음이 풀어졌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송일중 중령을 바라봤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자 홍민우 소령이 나서서 말했다.
“사실은 함 중위를 통해서 얘기를 들었네. 아까도 말했지만 대대장님도 보고를 받았어. 그러니 편안하게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홍민우 소령이 부드러운 말투로 박지영 중사를 안심시켰다.
“하아······.”
박지영 중사는 얘기를 하기 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하네, 박 중사.”
송일중 중령이 갑자기 사과를 했다. 그러자 박지영 중사가 눈을 크게 했다.
“네?”
“대대장으로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너무 신경을 못 써줬어. 내가 진짜 박 중사를 볼 면목이 없어. 정말 미안해.”
“아닙니다. 대대장님.”
“아니야. 나도 진짜 군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잖아. 이 부대, 저 부대에서 생활도 했고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주임원사가 이런 식으로 부사관을 괴롭히는 경우는 정말 처음이고, 정말 드물었어. 항상 주임원사는 내 앞에서는 별일 없다. 부사관들은 나를 보며 아버지처럼, 엄마처럼 잘 보살피고 있다. 이런 식으로밖에 말을 해주지 않았어. 그래서 난 주임원사를 정말 믿었어. 그랬는데 뒤에서는 이렇게 몰상식한 짓을 할 줄은 몰랐네. 대대장이 진짜 주임원사의 말을 함부로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내 잘못이다.”
“아닙니다, 대대장님. 괜찮습니다.”
박지영 중사가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홍민우 소령은 어이없이 송일중 중령을 바라봤다.
그가 한 말은 잘 들으면 박지영 중사를 위로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 전부 주임원사 혼자 한 일이며 뒤에서 자신 모르게 했다고 선을 긋는 내용이었다.
‘와, 진짜······. 아무튼 능구렁이가 따로 없네.’
홍민우 소령이 속으로 혀를 찼다. 게다가 송일중 중령은 이곳 부대로 내려온 것도 김명주 대위와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온 것이다.
앞서 부대에서 그러했는데 이곳에서는 몸을 사려야 했다. 그래서 방대철 주임원사를 믿고 맡겼던 것이다. 방대철 주임원사도 송일중 중령의 그런 성격을 파악하고 계속해서 저런 식으로 왕처럼 군림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방대철 주임원사가 박지영 중사를 괴롭혔던 이유는 송일중 중령이 대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것이 크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송일중 중령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육본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 부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적으로 세우려고 4중대와 같은 꼴통 중대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저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 참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송일중 중령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또 한 번 느끼는 홍민우 소령이었다.
송일중 중령은 그런 홍민우 소령의 시선을 느끼며 물었다.
“왜? 나에게 할 말 있어?”
“아닙니다. 대대장님 말씀하십시오.”
홍민우 소령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송일중 중령은 살짝 눈빛이 날카로워졌지만 이내 시선이 박지영 중사에게 향했다.
“어쨌든 아까 했던 말을 이어서 하면 함 중위 통해서 중요한 정보를 줘서 고마웠네. 사실 이 정보를 듣고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일단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어. 그런데 이번에 조사 위원회가 내려왔잖아. 그들에게 사건을 접수시켜서 조사를 시키는 것이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자 박지영 중위가 당황했다.
“네? 저, 정식적으로 말입니까?”
“왜?”
솔직히 말해서 부사관으로서 부사관을 찌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송일중 중령이 입을 열었다.
“박 중사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 진상조사위원회가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생각을 해야 해. 사실은 면피용으로 진행을 하는 거야. 그러니 국민들의 반감이라든지 분노, 그런 것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야. 대충 떠도는 소문이라든지 그런 식으로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럼 제가 지난번에 드렸던 것은······.”
그러자 홍민우 소령이 바로 끼어들었다.
“아, 물론 그건 알지. 그 증거는 효력이 있을 거야. 그런데 그 증거를 가지고 주임원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대면을 하게 될 거야. 그렇게 해서 사실관계를 따져야 하는데, 그때 가서 불려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박지영 중사가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
홍민우 소령의 말을 들은 박지영 중사가 오히려 당황했다.
“아······. 그건 저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송일중 중령이 바로 말했다.
“박 중사.”
“네.”
“자네가 이번에 부대를 위해서 나서주면 내가 책임지고 박 중사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주지. 아니, 남편이 있는 수방사로 갈 수 있도록 해주겠네.”
“수, 수방사로 말입니까?”
“그래!”
송일중 중령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영 중사는 사실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 일은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저렇듯 제안을 해주니 충분히 마음의 동요가 일어났다.
홍민우 소령이 거들었다.
“만약에 대대장님께서 신경 못 써준다면 나도 잊지 않고 박 중사 챙기겠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사실 홍민우 소령 입장에서도 송일중 중령하고 방대철 주임원사랑 싸움을 붙여야 했다. 서로 공멸하게 만들어야 자신에게 유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지영 중사가 방대철 주임원사를 세게 물어 주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방대철 주임원사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송일중 중령을 향해 더욱 세게 박을 것 같았다.
그래서 홍민우 소령이 입장에서도 꿩 먹고 알 먹고의 일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박지영 중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송일중 중령의 말처럼 조사가 형식적으로 끝나버리고 자신이 만들었던 자료라든지 그것이 제대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자신이 녹취를 했다는 것을 방대철 주임원사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정말로 군 생활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돼! 내가 어떻게 군 생활을 해 왔고, 견뎌 왔는데······. 여기 무너질 수 없어.’
생각을 마친 박지영 중사가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그녀는 송일중 중령을 보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 말에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고 슬쩍 홍민우 소령을 봤다. 그러자 홍민우 소령이 박지영 중사에게 말했다.
“박 중사 이제부터 나랑 얘기를 나눌까?”
홍민우 소령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홍민우 소령하고 박지영 중사는 자리를 옮겼다.
“커피 한잔할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으음······. 아까 대대장님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아마도 자네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야. 대대장님께서는 대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많이 애석해하셔. 그러니 박 중사도 대대장님 믿고 부대를 위해서 좀 나서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