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6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29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63)
“여기 커피 가져다줘.”
그 말을 하고는 다시 배운혁 중령이 걸어와 곽종윤 준장 바로 옆 소파에 앉았다. 그때를 같이 해 곽종윤 준장이 물었다.
“그래, 임 중령. 자네가 85사단 헌병대대장으로 있다고?”
“네.”
“이야. 이거 참 무서운 사람이야. 내가 조심을 해야겠어.”
“하하하.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니면 연대장님께서······.”
“나? 아니야. 아니야. 농담일세. 농담!”
곽종윤 준장이 크게 웃었다. 임규태 중령 역시 미소를 보였다.
사실 임규태 중령의 계급이 중령이다. 곽종윤 준장은 별 하나고 말이다. 무궁화 두 개와 별 하나의 계급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그럼에도 이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임규태 중령이 헌병대대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곽종윤 준장이 계급이 높다고 해도 헌병대대장은 그를 수사할 권한이 주어진다. 그래서 저런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똑똑똑!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를 가지고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각자 앞에 커피가 놓이고 곽종윤 준장이 먼저 들었다.
“일단 한 잔씩들 하자고.”
“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곽종윤 준장도 찻잔을 내려놓고는 물었다.
“그래. 조사는 언제부터 시작이야?”
“오늘부터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렇군. 85사단 전체 다 하나?”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우리 연대에 먼저 온 건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연대장님.”
“그렇게 되었다라······.”
곽종윤 준장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단에 17보병연대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대도 많았다. 그런데 그 첫 번째로 꼭 찍어서 왔다는 것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뭐······. 표적 수사도 아니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표적 수사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만약 다른 데 같았으면 불쾌한 기분을 바로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결정이 내려왔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두고두고 곪을 수가 있으니 곽종윤 준장을 통해서 해결해라. 곽종윤 준장은 원스타이고 조만간 투스타 진급이 확실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진급에는 별문제 없이 처리하겠다.
오히려 진급한 이후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그런 것으로 인해 추가 징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털 것 턴다는 생각으로 생각해라. 이런 식의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그래서 곽종윤 준장은 여전히 불만스럽지만 알겠다는 듯 얘기를 했다.
“그래. 철저히 조사하도록 해.”
“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를 하고.”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그래. 그만 나가서 일 봐.”
“네.”
임규태 중령이 일어나 경례를 하고는 두 사람을 데리고 연대장실을 나갔다. 연대장실에는 곽종윤 준장과 배운혁 중령만 남았다.
“임규태 중령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깐깐하게 생겨 보이는데······. 좀 어때?”
“연대장님께서 보신 대로입니다. 성격은 좀 완벽주의자이고, 육사 시절에도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그래? 저 친구가 우리 사단 헌병대대장 아니야?”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단을 조사를 하는 것인데······.”
임규태 중령은 85사단 헌병 대대장이다. 17보병연대는 85사단 예하 부대이고 말이다. 곽종윤 준장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으음, 무슨 의미일까?”
“아무래도 적당히 조사를 덮으라고 보낸 것은 아닐 겁니다. 적당히 쳐 낼 것은 쳐내고 그럴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단 시끄럽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네. 그 정도로 생각 없는 친구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네가 가서 잘 얘기를 좀 해.”
“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송일중 중령은 뭐 하고 있어?”
“송 중령은 제가 단속을 해놨습니다.”
“단속해 놨어?”
“그렇습니다.”
“알았어. 자네만 믿고 있지. 괜히 일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잘 처리하도록 해.”
“네. 연대장님.”
“그리고 송 중령 후임은······. 그 밑에 있는 홍민우 소령을 올려야 하나?”
곽종윤 준장의 물음에 배운혁 중령이 씨익 웃었다.
“꼭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왜? 홍민우 소령도 제법 일 잘하잖아.”
“토끼 사냥이 끝났는데······. 사냥개를 굳이 놔둘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심지어 말을 잘 듣는다는 보장도 없고 말입니다.”
“으음······. 토사구팽을 시키자는 말이군.”
곽종윤 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뜻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 유례를 따져보면 이랬다.
범려는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멸하고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보좌한 명신(名臣)이다. 월나라가 패권을 차지한 뒤 구천은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文種)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범려는 구천에 대하여 고난을 함께할 수는 있지만 영화를 함께 누릴 수는 없는 인물이라 판단하여 월나라를 탈출하였다.
하나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은 끝에 자결하고 말았다. 토사구팽은 이로부터 유래되었다.
곽종윤 준장은 충분히 이해를 하였고, 배운혁 중령을 보며 나직이 지시를 내렸다.
“자네가 알아서 조용히 마무리 지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배운혁 중령이 곽종윤 준장에게 경례를 하고 연대장실을 나갔다.
한편 임규태 중령과 함께 나온 조인석 소령과 황영호 대위. 조인석 소령이 슬쩍 입을 열었다.
“연대장님 말입니다. 제가 들은 것보다는 좀 많이 다릅니다.”
그러자 임규태 중령이 물었다.
“왜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연대장님 대령 시절에는 아주 그냥 어마어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훈련에서도 1등 하려고 하시고, 경계심도 크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막 그러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황영호 대위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저도,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사실 조인석 소령과 황영호 대위 둘 다 일심회 쪽 라인을 타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아예 대놓고 타고 있지는 않는다. 그걸 알고 있기에 저렇게 말을 하는 두 사람이 좀 어이가 없었다.
육군참모총장 라인이 자신을 조사위원회 단장으로 앉혀 놓고 그 밑에 부단장과 참모로 조인석 소령과 황영호 대위를 넣은 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견제나 다름이 없었다. 막말로 이들을 데리고 일을 한다는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만약에 대놓고 85사단 비리에 대한 것을 덮으려고 작정을 했다면 제아무리 임규태 중령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서 기존 헌병대 인력들을 통해 별도의 조사를 시켜놓고 있지만.
이들이 자신의 눈을 가리려고 하고 조사를 방해하려고 하면 제시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조인석 소령과 황영호 대위는 나름의 미션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인석 소령이 입을 열었다.
“굳이 먼 곳부터 할 필요 있습니까. 근처에 있는 3대대부터 시작하시죠.”
“3대대?”
“네. 원래 그곳부터 일이 터지지 않았습니까.”
황영호 대위가 바로 거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명히 저희가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을 덮으려고 막 준비 중일 겁니다. 그전에 덮쳐서 증거를 확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의 말을 듣고는 임규태 중령인 쓴웃음을 지었다.
‘딱 보니 3대대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일을 정리하려고 하는군.’
하지만 임규태 중령은 한편으로는 이해를 했다. 이미 3대대에서 벌어진 윤태민 소위 건 때문에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이고, 언제 어떻게든 기사화되어서 공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85사단을 조사하는 자신들이 3대대에서 아무런 혐의점, 혹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추후에 진상조사가 끝난 다음에 언론을 통해서 봐주기식 수사. 군대가 군대했다. 이런 식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만약 그리된다면 임규태 중령에게는 나름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임규태 중령은 조만간 군복을 벗고 정치 쪽으로 나갈 생각은 하고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군 시절을 잘 마무리해야 나중에도 별문제가 없다. 이런 것으로 발목이 잡힌다면 나중에 선거를 할 때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인석 소령이 슬쩍 말했다.
“단장님.”
“응?”
“그럼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식사부터 하시죠.”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점심 먹고 힘내서 해보도록 하시죠.”
황영호 대위까지 거들자 임규태 중령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허허허, 이 친구들······. 알았네. 가자고. 이 근처 맛있는 비빔밥집을 알고 있네. 비빔밥 어때?”
“좋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이동하지.”
임규태 중령이 조인석 소령과 황영호 대위를 데리고 괜찮은 비빔밥집으로 데리고 갔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내려왔다는 소식이 3대대 전체 퍼졌다. 그 소식을 접한 홍민우 소령이 재빨리 3대대장인 송일중 중령에게 보고를 올렸다.
“대대장님. 조사단이 내려온 것 같습니다.”
“그래? 조사단장이 누구라고 했지?”
“임규태 중령입니다. 현 85사단 헌병대대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임 중령, 임 중령······. 내 육사 후배이긴 한데······. 으음, 나하고는 별로 접점이 없는데. 작전과장.”
“네.”
“자네가 혹시 임 중령하고 접점이 좀 있나?”
“네.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작전과장이 알아서 별일 없도록 잘 조사를 해. 나중에 내려오면 잘 상대하란 말이야.”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래. 난 작전과장만 믿어.”
송일중 중령은 대답을 마치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의 손에 들린 헝겊으로 난의 잎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홍민우 소령이 인사를 하고는 대대장실을 나섰다. 그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이 나갔군. 정신이 나갔어. 지금 이럴 때 난 잎이나 닦고 있으니······.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것인지.”
홍민우 소령은 솔직히 저렇게 행동하는 송일중 중령이 어이가 없었다.
막말로 홍민우 소령은 송일중 중령을 몇 년 동안 모셔왔다.
또 송일중 중령을 따라서 위로 올라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송일중 중령은 뭔가 나서서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학연, 지연을 통한 인맥으로 여기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떠넘긴 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홍민우 소령이 충성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답답하긴 해도 자기가 나서서 뭔가 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은 송일중 중령과 갈라서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