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15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9)
오상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 올려 뒀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지끈거리는 머리 탓에 휴식을 방해받은 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발신자가 한소희임을 확인한 오상진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나오는 목소리는 많이 잠겨 있었다.
“소희 씨!”
-상진 씨 뭐 해요? 바빠요?
“아뇨.”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부대에서 슬슬 조사가 시작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좀 무겁네요.”
-우웅, 우리 상진 씨 고생이네요.
“아니에요. 그보다 소희 씨는 무슨 일이에요? 원래 이 시간에 전화하지 않잖아요.”
오상진이 얘기를 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요. 어머니 프랜차이즈 말이에요.
“아, 네!”
어머니 신순애 여사라는 말에 오상진이 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가게 한 곳이 완성되었어요. 그래서 다음 주에 시범 오픈하기로 했어요.
“그래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어머니 레시피는 이미 다 넘어갔고요. 양념장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나온 것 같아서 일단 시작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선진마트에서는 신순애 국밥과 계약을 체결한 이후로 레시피를 받아갔다. 하지만 모든 레시피를 공개한 것은 아니고 기본적인 조리방법, 육수 끓이는 법, 그 외 고기 삶는 법 등 기본적인 것만 넘어갔다.
그것을 바탕으로 전형화된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사실 신순애도 그동안 정확하게 몇 분까지 끓이고, 농도는 어느 정도이고, 이런 수치를 재며 만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신순애의 감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나름의 수치 및 틀을 만든 것이었다.
이때 더욱 신경을 쓴 것은 신순애 국밥집의 핵심인 양념장인데 그것을 만드는 것은 철저히 불문에 부쳤다.
그리고 별도의 보안이 철저한 공장을 짓고 신순애 국밥집에서 나오는 양념장과 최대한 비슷하게 배합을 통해 만들어냈다.
그렇게 몇 번의 시제품을 개발한 끝에 신순애로부터 합격점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장사를 오픈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어디가 오픈하는 거예요?”
-강남점이요.
“허헉······. 강남점이요?”
오상진이 바로 놀랐다.
“어후, 거기 괜찮······으려나?”
오상진은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한소희의 목소리는 걱정이 없어 보였다.
-저도 좀 걱정을 했는데 최강희 대표님께서는 자신 있어 하니까요.
“그래요?”
-네, 상진 씨.
“그럼 선진마트 강남점에서 먼저 오픈한다는 거죠?”
-선진 백화점에서도 같이 한대요.
“오오, 백화점에서도요?”
-네. 그렇다네요. 대표님 말로는 어르신들 중에서 입맛이 올드하신 분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백화점 이용하시더라도 평소 드시는 것만 드시는 분이 있다고 해요. 그런 분들에게 어필을 할 모양인가 봐요.
“아, 그러면 다행이고요. 아무튼 우리 소희 씨가 고생이네요. 엔터테인먼트 일하랴, 우리 엄마 일까지 챙기고······.”
-고생은요. 다 상진 씨 집안일인데요. 더불어 내 일이기도 하고요.
수화기 너머 약간 수줍게 얘기를 하는 한소희가 귀여웠다.
“맞아요. 내가 소희 씨 덕분에 편안하게 군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니에요. 상진 씨가 더 고생이죠.
“아니에요. 내 옆에서 소희 씨가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아마 머릿속이 더 복잡했을 겁니다. 소희 씨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참 좋네요.”
-상진 씨가 그렇게 얘기를 해주니 참 기분이 좋네요. 그냥 피로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에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으음,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려갈까요?
“어? 내려올 수 있어요?”
-네! 저에게는 아주 튼튼하고 비싼 차가 있잖아요. 안전하게 내려갈게요.
한소희의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사실 그동안 한소희가 차가 없어서 평택까지 내려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운전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비싸고 안정성 역시 우수한 외제차를 타니 오히려 운전이 재미가 있어졌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래도 소희 씨 조심해서 운전해요.”
-걱정 말아요. 가끔 보면 상진 씨는 날 애 취급하는 것 같아요.
“애 취급이 아니라. 엄청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죠. 저에게 소희 씨는 그런 존재니까요.”
-히힛! 그 소리 들으니까, 또 기분 좋네. 그래도 회사에서는 비서가 운전을 해줘요. 그래서 별로 스트레스가 없어요.
평소에는 한소희가 직접 운전을 하지만 업무적인 이동에서는 비서가 운전대를 잡는다. 주말에 평택에 내려올 땐 평일 업무에 지쳐서 버스를 타고 내려왔던 것이다.
일상에서 비서가 운전대를 잡으니 한소희는 오롯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가끔씩 일과 후의 운전은 종종 하는 편이었다.
“알았어요. 운전 조심해서 내려와요.”
-네!
통화를 마친 오상진의 얼굴에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한편 한호푸드는 갑자기 들이닥친 세무조사를 받았다. 몇 대의 봉고차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들의 손에는 파랑색 박스가 들려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경비가 그들을 막았다. 그러자 선두에 있던 사람이 명찰을 내밀었다.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현 시간부로 한호푸드에 세무조사에 들어갑니다.”
“네? 아, 아니 무슨······.”
“비켜 주십시오.”
경비를 무시하고 양복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그들은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현 시간부로 컴퓨터 및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시기 바랍니다. 직원분들을 한쪽으로 물러나시고 그 어떤 것도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아,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어? 거기 손 때세요. 키보드에서 당장! 그리고 빨리 한쪽으로 물러나세요.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모든 것에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국세청 직원이 말을 한 후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수거해.”
“네.”
이렇듯 사무실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파란 박스에 컴퓨터며 각종 서류들이 차곡차곡 들어갔다. 직원들은 한쪽에 모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한호푸드 최윤태 대표도 이 같은 소식을 접했다.
“뭐? 진짜야?”
“네. 대표님. 현재 사무실에 있는 모든 컴퓨터 및 서류를 다 수거해 가고 있습니다.”
“제, 제기랄······.”
한호푸드 최윤태 대표는 갑자기 왜 세무조사를 받는 것에 인상을 썼다. 그 역시도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대표실 문이 열리며 아내인 조애령이 뛰어 들어왔다.
“여보! 여보! 국세청에서······.”
그녀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최윤태 대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기에 세무조사가 오냐 말이야.”
“뭐라고? 나 때문이라고?”
“그래!”
“아니, 왜? 내가 뭘 어쨌는데? 왜 나한테 성질이야.”
“그걸 몰라서 물어? 정말 몰라?”
최윤태 대표가 눈을 부라리며 노려봤다. 조애령이 움찔하다가 이내 말했다.
“······아니면 당신이 좀 하든지. 왜 나보고 하라고 그래.”
“내가 안했어? 내가 다 밥상 차려났는데 당신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되었잖아.”
“뭐라고? 그럼 이 일이 다 나 때문이라고?”
“그래!”
“당신 말 다 했어?”
“아아, 됐고. 당신이랑 말싸움하기 싫으니까. 지금 당장 김 의원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좀 막아보라고 해봐.”
조애령이 눈을 흘기며 휴대폰을 꺼냈다.
“당신, 나중에 얘기 해.”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았다.
“또 안 받네.”
“뭐? 안 받아?”
“아까부터 전화를 했는데 받질 않아.”
“와, 그동안 돈을 처바른 것이 얼마인데······. 그런데 전화를 안 받아? 협박을 해서라도 이번 일 막아!”
“김 의원은 고작 시 의원인데 무슨 수로 막아.”
“아, 시발! 그냥 뭐라도 해보라고 해. 뭐라도!”
최윤태 대표가 눈을 치켜뜨며 강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조애령이 움찔하고는 대답했다.
“알았어. 다시 전화해 볼게.”
그러면서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녀는 잔뜩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아무튼 저 양반은 뭐만 하면 내 탓이라지. 어후, 내 팔자야.”
물론 조애령도 일이 꼬인 것도 자신의 탓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신순애 국밥집을 최윤태가 노렸을 때 이 일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었다. 최지애는 물론이고 민국당 시 의원 김연자까지 데리고 가서 신순애를 압박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계약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호푸드 스타일이 원래 그랬다. 가격도 후려치고 안한다고 하면 겁박하고 그러고······. 이 모든 방식이 한호푸드가 해왔던 것이었다. 이런 방식을 아내이자 한호푸드 이사인 조애령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남편인 최윤태가 하는 방식으로 했는데 이번 단 한 번 일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한호푸드가 망하면 자신 역시 망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친정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다 한호푸드에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최윤태를 대표소리 듣게 해주려고 말이다.
그런데 한호푸드가 이렇듯 세무조사를 받고 휘청거리면 자신에게도 손해였다.
조애령은 휴대폰을 들고 계속해서 김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도 김연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아, 이년이 진짜······.”
조애령은 결국 전화하는 것을 멈추고 문자를 보냈다.
-너 진짜······. 계속 전화 피하지. 후회하지 마.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김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애령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김 연자!”
조애령의 호통에 수화기 너머 김연자 의원의 짜증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바빠 죽겠는데 왜 자꾸 전화하고 그래.
“야! 네가 바빠? 바쁘면 얼마나 바쁜데? 너 지난번에 최익현 의원 만난 이후부터 꼬리 내린 거 아니야.”
-그래 언니. 솔직하게 말할게. 나 지금 제대로 운신도 못하고 있어. 조심해야 할 때란 말이야. 그걸 알면 언니가 알아서 전화 좀 안 하면 안 돼?
“뭐?”
-내가 지금 입장이 얼마나 곤란한 줄 알아? 최익현 의원님이 누구야? 우리 당 대선후보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게다가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 불리고 있어. 그런데 내가 그분의 눈에 찍혔으니 무슨 꼴을 당할지 어떻게 알아. 그런 내 심정을 언니가 알아?
“그러게 내가 그렇게 오버하래? 아니면 내가 그렇게까지 하라고 했어?”
-와, 언니 웃겨. 언니가 말했잖아. 가서 성격대로 뒤집어 놓으라고.
“내가 언제 그런 식으로 말을 했어. 너 나를 참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아, 됐고. 아무튼 나 언니 때문에 지금 가시방석이고,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다음번 시 의원에 나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 그러니 제발 전화 좀 그만해.
“야. 김연자 내가 널······.”
뚜뚜뚜뚜뚜.
김연자 의원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조애령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