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984화 (984/1,018)

<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14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8)

“임 중령 오랜만이야.”

임규태 중령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바로 다가온 이에게 인사했다.

“충성.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임규태 중령 곁으로 다가온 사람은 광주향토사단에 있는 박 중령이었다.

“자네도 이곳에 왔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아까는 보이지 않았어? 보였다면 바로 인사를 했을 텐데······.”

“맨 뒤 구석에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여기 올 짬이 아닌데······.”

임규태 중령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박 중령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허허. 무슨 소리야. 솔직히 말해서 임 중령이 여기 와야지. 나와 최 중령은 빠져야지. 우리가 지금 현역 뛸 때야?”

“그건 그렇습니다.”

임규태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중령이 미소를 보이다가 슬쩍 다른 곳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임 중령.”

“네.”

“일심회 쪽 말이야. 해도 너무하네.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 무슨 대대장이라고 그랬더라? 맞다, 통신대대장? 아니, 여기에 통신대대장이 왜 와? 무슨 감청이라도 하려고?”

“모르죠. 진짜 감청해서 뭐 하나라도 얻어 걸리면 좋지 않습니까.”

“진짜? 감청하면 어떻게 합니까?”

“에이. 설마 그럴까.”

“그렇겠죠.”

“그럼.”

그들은 얘기를 하며 피식피식 웃었다. 임규태 중령도 그들이 웃자 따라 웃었다.

“그보다 다들 정신 차리고 철저하게 하자고. 어느 부대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조사를 설렁설렁하지 말잔 말이야. 참모총장님께서 특별히 지시한 내용이니까.”

박 중령이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겁니다. 이번에 아주······.”

“그렇다고 너무 들쑤시지는 말고. 적당히······. 뭔 말인지 알겠지?”

“네네.”

“그리고 말입니다. 일심회 쪽에서 파견 보낸 장교들 있지 않습니까. 다들 육사출신들이 아니었습니다. 삼사나 아니면 ROTC 쪽에서 나온 모양입니다.”

“그렇지? 어쩐지······. 저러니 저렇듯 대충대충 하려고만 하지. 하아,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저런 장교들이 있으니 군대를 좀먹는 거야.”

“맞습니다. 저희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올라온 사람들은 저렇듯 쉽게 안 그러죠.”

“네 맞습니다.”

그 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였다. 임규태 중령은 그저 미소만 보이고 있었다. 그때 한대인 교육장교가 소리쳤다.

“쉬는 시간 1분 전입니다. 다들 입장하시지 말입니다.”

“자자, 쉬는 시간도 끝났고. 다들 들어가자고.”

“네.”

임규태 중령은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넣고 다시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2차 교육이 시작되었다.

오후 퇴근 전까지 이어진 교육이 끝이 났다. 그리고 내일 한 번 더 교육이 잡혀 있지만 오전에 하나만 들으면 되었다. 그사이 각 책임 조사관들이 따로 어딘가로 불려갔다.

“임규태 중령님.”

“네.”

임규태 중령 역시 기다리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금 가는 곳은 아마도 전수조사를 실시할 부대를 배정받기 위함일 것이다. 이렇듯 따로 알려주는 이유는 서로 친한 장교들끼리 연락해서 자기 부대를 잘 봐달라는 청탁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암행어사처럼 각 장교들이 어느 곳을 맡을지 모르게 하는 작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밀이 끝까지 유지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임규태 중령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을 똑똑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는 장기준 작전부장과 최우일 감찰부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임규태 중령이 바로 두 장군을 향해 경례를 했다.

“충성.”

“어. 그래. 어서 오게.”

“긴장 풀어.”

장기준 작전부장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바로 조사할 곳을 임명했다.

“임 중령.”

“네.”

“임 중령은 85사단을 맡아줬으면 하는데.”

그 말에 옆에 있던 최우일 감찰부장이 눈을 치켜떴다. 85사단은 17보병 연대가 있는 문제의 그 사단이었다. 게다가 바로 자기 밑에 있는 곽종윤 준장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원래 곽종윤 준장은 여단장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장군을 달았음에도 연대장으로 있는 이유는 최우일 감찰부장의 명령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곳을 임규태 중령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가 히든카드라는 말이었다.

‘으음······. 역시 이곳을 맡기는군.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듣고 보니 기분은 그다지 좋지가 않아.’

최우일 감찰부장은 임규태 중령의 자료를 확인했다. 그의 눈에 띈 것은 임규태 중령은 깐깐하고 중립적인 사람이긴 한데 육군참모총장 쪽 라인과 연이 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장기준 작전부장과 친분이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육군참모총장 쪽 라인인가? 하지만 여길 봤을 때는 딱히 이쪽 라인이라고 볼 수도 없고······. 거의 중립이라고 봐야 하는데······.’

최우일 감찰부장이 본 임규태 중령은 그랬다.

‘이 일을 그냥 덮게 하려면 무조건 말려야 했겠지만······.’

이미 그쪽에서 사건이 터졌고, 일파만파 전국적으로 전수조사가 퍼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희생은 필요했다. 그 사실을 이미 곽종윤 준장에게 말한 상태였다.

‘중립이라······.’

그렇게 놓고 보면 현재로서는 임규태 중령만 한 적임자도 없었다. 최우일 감찰부장이 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중립적인 라인은 없으니까.’

중립적인 라인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조사가 나왔을 때 일심회에 대한 것을 뺄 수도 있고, 나름 이만큼 했다고 생색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85사단은 일심회가 잡고 있다. 그곳을 맡긴다는 것은 자기의 살점을 떼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지역은 다 덮으면서 이 지역을 터뜨려서 썩은 고름을 짜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생색을 내기로 했으니까. 줄 때는 확실하게 줘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나름 임규태 중령이 적격이었다. 또 장기준 작전부장 입장에서도 임규태 중령이 뭔가를 해줘야 했다.

솔직히 그 부대에 가면 일심회 쪽에서 85사단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이 일이 심각해지거나 문제가 많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짧은 대화가 오고갔고, 임규태 중령이 대답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그래주게. 난 임 중령을 믿고 있으니.”

“네!”

임규태 중령이 대답을 한 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흘렸다.

“후우······.”

물론 임규태 중령은 성폭력 특별 위원회에 합류한다는 것을 미리 언질을 받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에게 까다로운 지역이 맡겨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마디로 85사단을 스스로 조사할 수 있는 명령을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리 작전부장님은 날 믿고 맡기신 것 같고······. 감찰부장님은 왜 가만히 계셨지?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같은 사단에 헌병대대장이 조사를 한 것이라고 그걸 걸고넘어지려고 그러나? 아니면 내가 내 사단의 치부를 적당히 들출 것이라 생각하나? 뭐 어쨌거나 나쁘지는 않아. 이미 기본적인 조사는 지시를 내려놨으니. 다른 부대보다는 편안하게 조사할 수 있겠어.’

임규태 중령이 속으로 생각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국방부를 나와 근처 부대에 마련된 숙소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하루 숙박을 한 후 내일 오전교육까지 마무리하면 끝이었다.

그곳으로 이동하던 중 임규태 중령의 휴대폰이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오상진이었다. 임규태 중령이 피식 웃었다.

“어, 오 대위. 무슨 일이야?”

-충성.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모임 말입니다. 언제인지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 최 의원님. 안 그래도 최 의원님께 연락이 왔었어. 그런데 내가 교육 중이었잖아.”

-교육? 무슨 교육 말씀입니까?

“성폭력 특별조사위원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됐어. 다 끝났어. 지금 부대로 복귀하는 중이야.”

-아, 네에······.

“그런데 말이야. 자네만 알고 있어야해.”

-말씀하십시오.

“나보고 우리 사단을 조사하라고 하네.”

-그게 가능합니까? 보통은 다른 사단을 맡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85사단은 태풍의 눈이잖아.”

-네네.

“그러니 육참 라인 쪽에서는 내가 가장 잘하니 나한테 맡긴 것 같고. 또 일심회 쪽에서는 내가 내 부대 치부를 다 들춰내지 않을 것이라 믿고 맡긴 것 같고 말이지. 양쪽 다 동상이몽이야.”

오상진이 통화를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임규태 중령은 현재 심적으로나 표면적으로 육참 라인을 따르고 있지만 원래는 중립이다. 게다가 임규태 중령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많았다.

헌병대에 있다가 기무사로 갔다가 다시 헌병대대장으로 돌아왔다. 임규태 중령만큼 우수한 조사인력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임규태 중령에게 맡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오상진은 생각했다.

“아무튼 오 대위 덕분에 사전조사를 해놔서 수월할 것 같아. 17보병 연대 쪽은 쉬울 것 같고, 다른 부대 조사만 하면 될 것 같아.”

-그러십니까? 언제 내려오십니까?

“내일까지 교육은 좀 더 받아야 할 것 같고. 그다음에 조사 인력을 붙여줄 것 같아. 그게 문제야. 내 말 잘 듣는 사람들로 붙여줘야 하는데.”

임규태 중령이 쓴웃음을 짓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래. 내려가면 보자고.”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오상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드디어 시작인가?”

잠깐 생각을 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최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통화음이 가고 최대성이 받았다.

-네. 중대장님.

“네, 아버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죠?

“다름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네네. 아마 그렇게 되면 최윤희 씨도 조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최윤희씨 마음 다시 한번 다잡게 얘기를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수화기 너머 힘겹게 대답을 하는 최대성이었다.

“그리고 희소식을 전해드리면 저희 부대 조사하시는 분이 제가 잘 아는 분입니다.”

-그 말씀은······.

“그분께는 제가 제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분께서 아마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믿고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저에게 감사할 것이 있나요. 군인으로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 일을 왜 중대장님께서 사과를 하십니까. 그렇게 벌인 놈들이 사과를 해야지. 저는 꼭 사과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딸 윤희에게도 말입니다.

“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아닙니다. 조만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네. 중대장님.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오상진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