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12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6)
따르릉. 따르릉.
방대철 주임원사가 자세를 바로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통신보안 3대대 주임원사 방대철 원사입니다.”
-나야. 방 원사. 사단주임이야.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자 바로 방대철 주임원사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이고 형님.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연락도 다 주시고 말입니다.
-하하하. 내가 어디 못할 곳에 전화를 했나?
“그건 아니죠. 아닙니다.”
-그래. 요즘 뭐 하고 지내고 있어?
“뭐하고 지내고 있겠습니까. 그냥 부대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거죠. 형님께서는 잘 지내고 계시죠?”
-나야 뭐. 곧 옷 벗을 사람인데······. 그냥 은퇴할 날만 기다리는 뒷방 늙은이 아닌가.
“에이. 형님도······. 그건 그렇고 정말입니까? 내년에 은퇴할 생각입니까?”
-그래야지. 이렇듯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도 못 할 짓이야. 자꾸 꼰대 소리만 들어. 이제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줘야지.
“그래도 조금만 더 계셔도 되지 않습니까. 정년퇴임도 아직 더 남았지 않습니까. 뭐 한다고 바로 은퇴를 생각하십니까?”
방대철 주임원사가 안타까운 마음에 얘기를 꺼냈다.
-알고 있어. 그냥 힘에 부쳐서 말이야. 내년이면 딱 연금이 끝나는 날이거든. 그럼 전역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잖아. 그럼 된 거지. 더 이상 욕심도 없다.
“그래도 형님······.”
-이 사람아. 군 생활 40년 했으면 됐지. 뭣 한다고 더 오래 하려고 그래. 그냥 너나 벽에 똥칠 할 때까지 해.
“아이고 형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딱 군대 체질입니다.”
-군대 체질은······. 만날 헛짓거리나 하지 말고······.
“형님은······. 제가 또 언제 헛짓거리를 했다고 그러십니까.”
-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전수조사 얘기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뭐, 어차피 형식적으로 하는 시늉만 하고 넘어가지 않습니까? 언제나 그랬듯 말입니다.”
-야!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사단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네?”
-아니. 우리 연대장님이 일심회 쪽 라인이 아니야.
“그렇죠.”
-그럼 일심회 쪽에서 우리 사단을 맡아서 조사를 해야 하잖아. 그런데 아니야.
“네에? 일심회에서 안 해요?”
-어. 일심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육참라인에서 하더라.
“네에? 아니 왜······. 왜 육참라인에서 한답니까?”
-그게. 대충 듣기로는 일심회 쪽이 육참라인보다 좀 더 크잖아.
“그렇죠.”
-그런데 전수조사는 아무래도 육참 쪽에서 주도를 해야 하잖아.
“그렇겠죠.”
-그래서 반반씩 끼고 들어가는 거야. 반반씩이면 사람들이 파견되고, 서로 절반씩만 챙긴다고 하면. 결국 일심회 쪽에서는 그 반을 벌어야 하는 거잖아.
“와. 그럼 일심회에서 우리 쪽을 버린 거네요.”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야. 사실 이번 일이 벌어진 것이 너희 대대 때문이잖아.
“에이. 우리 대대 때문이라고 그럽니까. 사람 기분 나쁘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게다가 막말로 사실이잖아. 안 그래? 윤 소위 사건만 없었어 봐. 그냥 조용히 넘어갈 일이었어.
“······.”
방대철 주임원사는 딱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저렇게 말을 하니 솔직히 기분은 나빴다.
-방 원사.
“네.”
-자네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야. 사실을 말하는 거지.
“······그렇죠. 아무튼 그 윤 소위 그 자식 때문에 이게 뭡니까. 처음 볼 때부터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더라니······.”
방대철 주임원사가 구시렁거렸다.
-아무튼 그렇게 됐어. 그래서 우리 사단은 특별히 저쪽에서 조사를 하는 것 같다.
“와. 이러면 골치 아픈데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다. 너 나 몰래 사고 친 거 없지?
“에이. 무슨 사고를 칩니까.”
-3년 전 사건 말이야. 그때 크게 한 번 사고를 쳤잖아.
“형님. 언제 적 얘기를 하십니까. 이미 그 사건은 다 끝났지 않습니까.”
-다 끝나? 확실해?
“그 일은 오해입니다.”
-진짜 오해야?
“······네.”
-후우, 그래 오해라고 쳐. 그래도 그 일을 들춰봤자 좋은 일은 있니? 안 좋잖아.
“그렇죠.”
-그러니 자네가 찾아가서 입단속 좀 시키고.
“거긴 입단속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다 끝났다니까요.”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혹시라도 주변에 알게 모르게 사고를 친 애들이 있으면 입단속 확실하게 시켜. 가뜩이나 너희 대대 찍고 가는 것 같은데. 탈탈 털리면 골치아프다.
“네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술 한잔해요.”
-이 사람아. 내 말 명심해.
“알겠습니다. 형님.”
전화를 끊은 방대철 주임원사는 바로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아니, 시발. 뭐야. 왜 또 우리에게 지랄이야.”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가, 가만 박 중사?”
방대철 주임원사는 얼마 전까지 자신이 탐을 냈던 박지영 중사를 떠올렸다.
“하아, 제기랄······. 박 중사를 따로 불러서 입단속을 시켜야 하나?”
솔직히 한동안은 박지영 중사를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마음속으로 황하나 하사를 염두에 뒀다.
그런데 황하나 하사를 작업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헌병대조사가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데 박지영 중사를 불러서 재미를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꾹 참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형님이 하는 말이 걸리네.”
방대철 주임원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지영 중사를 불러서 입단속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준비는 해야겠지.”
방대철 주임원사는 생각을 정리한 후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박지영 중사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대답을 하는 박지영 중사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환하게 웃었다.
“앉아. 뭐 하고 있어. 내가 자넬 잡아먹니. 어서 앉아.”
방대철 주임원사가 자신의 무릎이 아닌 의자로 자리를 권했다. 그 모습에 박지영 중사는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박 중사. 요새 잘 지내?”
“네? 아, 그렇습니다.”
“뭐야. 내가 안 불러서 살판 난 거야? 그래?”
“아, 아닙니다.”
“아니면 나 좀 보고 싶었나?”
방대철 주임원사가 다시 음흉한 얼굴이 되었다. 그 모습에 박지영 중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그런 박지영 중사를 무시하고 자기 할 말을 했다.
“참. 이번에 말이야. 헌병대에서 사전 조사를 하는 것 같아.”
“전수조사말입니까?”
박지영 중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쩌면 자신이 제보를 한 것 때문에 전수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능구렁이 같은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들켜버렸다.
“뭐야. 왜 좋아해?”
“네?”
“자네 표정이 왜 그래? 엄청 좋아하는 눈치인데.”
“네? 아닙니다. 놀라서 그렇습니다.”
“놀라서 그래? 내가 박 중사 표정을 몰라서 그래? 내가 박 중사 놀란 표정과 기분 좋은 표정을 구분할 줄 모르는 줄 알아?”
“그런 것이 아니라······.”
박지영 중사는 당황하며 시선을 돌렸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살짝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어허. 이거 안 되겠네. 박지영이.”
“네?”
“넌 내가 우습니?”
“아닙니다.”
“내가 오냐오냐 예뻐해 줬더니 정신 못 차리지. 너 혹시라도 말이야. 네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
“······.”
“단순히 군 생활만 꼬이고 끝날 것 같지? 야, 나 주임원사야. 내 짬이 얼마인데.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아. 그리고 내가 널 예뻐한 걸 가지고 걸고넘어 질 것 같아? 나 주임원사야! 고작 그런 일로 문제가 되었으면 나 진즉에 잘렸지. 지금까지 나에게 예쁨받겠다고 찾아온 부사관이 어디 한두 명이겠어? 어떤 애들은 나 모함하고 그랬어. 성추행 어쩌고 그러면서 말이야.”
“······.”
박지영 중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럴수록 방대철 주임원사는 더욱 당당하게 말했다.
“봐봐. 그런데도 난 멀쩡하잖아. 주임원사 자리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잖아. 그게 무슨 소리일까? 넌 죽었다 깨어나도 나 못 건드려. 나 주임원사야! 너 말이야. 주임원사를 너무 우습게 아네. 막말로 이 대대에서 나보다 짬 높은 사람이 누가 있어. 대대장도 날 못 건드려! 그런데 네가?”
방대철 주임원사가 눈을 부릅뜨며 박지영 중사를 노려봤다. 박지영 중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저는 안 그랬습니다.”
“정말 아니지?”
“네.”
“혹시라도 쓸데없는 생각하면 안 된다.”
“네.”
“잘 생각해. 군 생활 오래하고 싶으면 말이야. 그리고 말이야. 여차하면 옷 벗는다? 너 어디 사는 줄도 다 알아.”
박지영 중사의 두 손이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방대철 주임원사가 말했다.
“너 얼마 전에 이사했더라.”
“네? 그걸 어떻게······.”
“설마,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에게 말하지 않으면 모를 줄 알았냐고. 난 너희 남편 회사도 알고 있어. 아니면 내가 남편 회사로 전화할까?”
박지영 중사가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알았어?”
“네에, 알겠습니다.”
박지영 중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풀이 죽은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방대철 주임원사는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솔직히 헌병대 조사를 통해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사람 좋은 얼굴로 있던 사람이 이렇듯 악독하게 변하니 무서워졌다. 그 순간 박지영 중사는 알게 되었다.
다른 여자 부사관들이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들. 솔직히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까?
하지만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찍혔을 때 다른 여자 부사관이 부러워하면서 안쓰러워하는 그 눈빛을 말이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눈빛이 다시 온화하게 바뀌었다.
“박 중사야.”
“네.”
“전수조사 금방 끝나. 전국적으로 조사를 한다고 하지만 이 일을 1년을 하겠니. 2년을 하겠니. 대충 대충하다가 끝날 거야. 조사하는 놈들도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하는 시늉만 할 거라고. 내가 이런 일을 어디 한두 번 겪었겠어? 다 내 손바닥이라니까. 그런데 네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봐. 서로 불편해지기만 하겠지?”
“네.”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군 생활이나 열심히 하자.”
“······.”
방대철 주임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지영 중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평소였다면 진즉에 무릎에 앉히거나 엉덩이를 더듬는 그런 추행을 했을 테지만 지금은 마치 선을 긋는 듯 딱 거리를 지켰다.
그런 방대철 주임원사의 모습에 박지영 중사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국방부에서는 때아닌 출입 기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는 최익현 의원의 발언으로 인해 군 내부를 조사한다는 내용이 번지고 오늘 군 성폭력 특별위원회 발족식 때문에 모인 것이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저마다 목에는 명찰을 걸고서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녹음마이크를 들었다. 그렇게 대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각 소속 기자들이 한 곳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