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11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5)
“충성.”
황명수 대위가 바로 경례를 했다.
“어. 그래. 인사장교. 좋은 아침이야.”
“네?”
황명수 대위가 갑자기 놀란 눈빛이 되었다.
“뭘 그리 놀라. 대대장이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이 놀랄 일인가?”
“아, 아닙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대장님.”
“그래. 그래. 다른 별일은 없지?”
“네. 없습니다.”
“없어야지. 암! 그래,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께서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냐.”
송일중 중령이 손을 흔들고는 대대장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황명수 대위였다.
“와, 시발. 오늘 대대장 왜 저래? 로또라도 맞았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홍민우 소령이 나타났다.
“인사장교. 여기서 뭐해?”
“어? 충성.”
“충성.”
“왜 여기서 멍하니 있는 거야?”
홍민우 소령의 물음에 황명수 대위가 바로 물었다.
“과장님.”
“왜?”
“제가 방금 말입니다. 아주 이상한 일을 겪었습니다.”
“이상한 일?”
“네! 방금 대대장님께서 말입니다. 저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했습니다.”
“응?”
홍민우 소령도 깜짝 놀랐다. 솔직히 송일중 중령이 이곳에 부임한 지 2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만날 표정이 굳어 있거나 권위의식에 쩔어 근엄하게 있을 뿐이었다.
“설마 자네가 잘못 본 것은 아니야?”
“네에? 제가 말입니까? 아닙니다. 절 한번 꼬집어 보십시오.”
황명수 대위가 자신의 팔뚝을 내밀었다. 홍민우 소령이 바로 꼬집었다.
“아악! 꾸, 꿈이 아닙니다. 아파라.”
황명수 대위가 자신의 팔뚝 문지르며 말했다. 정말 아침의 송일중 중령의 모습은 진짜라는 소리였다.
“정말 대대장님이 그랬단 말이지.”
“네. 그것도 매우 환한 얼굴로 말입니다.”
“그래?”
홍민우 소령의 시선이 대대장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이내 황명수 대위를 바라봤다.
“자네 인사과에 안 가?”
“네? 아, 가야죠. 지금 갑니다.”
황명수 대위가 황급히 인사과로 들어갔다. 그러곤 홍민우 소령이 대대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송일중 중령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전투모를 벗고 지휘봉을 한쪽에 둔 후 황급히 거울을 찾았다.
“어디 보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오늘 내 표정이 좋아 보이나?”
송일중 중령이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평소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평소와 같은데······. 인사장교가 왜 저러지.”
그럼에도 송일중 중령은 기분이 좋았다. 어제 김명주 대위와 오랜만에 뜨거운 사랑을 나눠서 일까? 3년 전 한창 불타올랐던 그때를 기억나게 했다.
“후후후, 고것 참······. 3년이 지났음에도 아주 좋았단 말이야.”
송일중 중령이 씨익 웃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황급히 거울을 한쪽으로 치웠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홍민우 소령이 들어왔다. 그를 본 순간 송일중 중령의 표정이 무심하게 바뀌었다.
“충성.”
“그래.”
홍민우 소령이 송일중 중령 옆으로 갔다. 그러곤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뭐,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대대장님. 어제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뭐?”
“어제 관사에 찾아갔습니다. 두드려도 안 계시더란 말입니다.”
“어제? 왜 찾아와.”
“혼자 계시면 점심이나 함께하자고 찾아갔습니다.”
“그, 그래?”
송일중 중령이 시선을 피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이. 쯧쯧쯧. 어제 내 관사에는 왜 찾아와. 평소에는 찾아오지도 않더니······.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거야. 뭐야. 뭘 꼬치꼬치 캐묻고 그래.’
송일중 중령은 바로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곤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서울에 좀 다녀왔어.”
“아. 그러십니까.”
홍민우 소령이 거기서 딱 말을 끊어버렸다. 송일중 중령의 눈이 커지며 고개를 돌려 홍민우 소령을 봤다.
‘어? 더 안 물어봐? 왜 그래? 전에는 잘만 물어보더니. 사람 찝찝하게 말이야.’
하지만 홍민우 소령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송일중 중령이 바로 시선을 내리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온 거야?”
“아. 다른 것이 아니라 사단 헌병대에서 조사를 시작할 모양입니다.”
“사단 헌병대? 그래? 내가 듣기론 이제 성폭력 특별조사대가 설치된다고 하던데 벌써 조사에 들어갔어?”
송일중 중령의 물음에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닙니다. 일단 사단 헌병대대장님께서 이번 전수조사에 특별 위원장으로 합류를 한다고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겠지. 보통은 조사를 한다고 하면 사단 헌병대대장을 위원장으로 뽑잖아.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송일중 중령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홍민우 소령도 맞다는 듯 다음 얘기를 했다.
“그건 맞는데 말입니다. 특별히 사단헌병대대장이라고 뽑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각 부대에서 중립적인 인사 위주로 뽑는다고 했습니다.”
홍민우 소령의 얘기를 들은 송일중 중령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래? 사단 헌병대대장이 아마 임규태 중령이라고 했지?”
“네.”
“그 사람 성향은 어때?”
“제가 알기론 아주 중립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립적이라고? 정확하게 말해봐. 능력이 없어서 라인에 못 들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라인은 안 탔다는 소리야?”
송일중 중령이 한 말은 엄연히 달랐다. 라인이 없이 헌병대대장까지 올라갔고 버티는 것이라면 능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라인을 못 탔다는 소리는 능력이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 그것을 홍민우 소령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라인을 못 타서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라인을 타지 않아서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그 중립적인 인사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었다. 그 말고도 중립적인 인물이 없지는 않다. 일심회가 대두된 이후로 그와 반대의 성향인 반 일심회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일심회 반대 세력인 대표가 진국진 육군참모이기 때문에 흔히들 육참라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임규태 중령은 표면적으로 육참라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중립적인 평가를 받는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육참라인을 돕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돕는 이유도 연결고리가 존재했다. 임규태 중령의 연결고리가 바로 오상진이었다. 오상진을 통해서 진국진 육군참모총장과 연결이 된 것이고, 또한 최익현 의원하고 연결이 된 것이다.
어쨌든 임규태 중령이 자신의 노력으로 헌병대대장에 올라선 것을 보면 딱히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서 우리 3대대를 먼저 사전조사한다 이말이지?”
“예. 아무래도 그냥 헌병대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특별조사위원회에 참석을 했는데 사단 내에서 기본적인 조사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희 쪽으로 사람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래? 조사하는 헌병대 간부들. 혹시 아는 사람이야?”
송일중의 물음에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난번 그 친구 헌병과장이 맡았습니다.”
“헌병과장이라면······. 최영도 소령?”
“네.”
최영도 소령이라는 말에 송일중 중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를 믿고 저번에 일을 맡겼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것과 달리 일 처리를 대충 하는 바람에 그 일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결국 그 사건을 전면 재조사에 들어갔다.
재조사 결과 윤태민 소위가 작살이 났고, 이렇듯 전국적으로 전수조사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송일중 중령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원흉이 최영도 소령인 것만 같았다.
“하아, 그 모자란 친구가 맡는단 말이지.”
송일중 중령은 아예 대놓고 불쾌한 얼굴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홍민우 소령이 슬쩍 얘기했다.
“대대장님. 그 당시 최영도 소령이 좀 실수를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오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당연히 각오가 남달라야지. 헌병대과장이라는 사람이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일처리를 그 따위로 하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야. 도대체 일처리를 얼마나 개판으로 했기에 여태까지 조사한 보고서를 엎고 다시 재조사를 하게 만들어.”
송일중 중령이 괜히 닦달했다. 홍민우 소령이 바로 변명을 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일일이 말을 해봤자 송일중 중령이 제대로 이해하지 않을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그저 사과를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 홍민우 소령의 불편한 모습을 봤을까? 송일중 중령이 차분한 어투로 충고를 했다.
“자네도 말이야. 동기라고 너무 감싸지 말고. 필요한 동기들만 끌고 가. 자네에게 정말 필요한 동기 말이야. 나도 여기까지 오는데 동기들이 없었는 줄 알아? 그런데 봐봐. 필요할 때 내 동기들? 현재 몇 이나 남아 있어? 원래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좁고, 갈 사람들은 많아져. 능력 없는 놈은 떨구고 가. 일일이 다 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송일중 중령의 장황한 일장연설이 펼쳐졌다. 홍민우 소령은 무심한 듯한 얼굴로 얘기를 들었다.
“어쨌든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으란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고 있지?”
홍민우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알았어. 그만 나가봐.”
“네. 충성.”
홍민우 소령이 대대장실을 나왔다. 대대장실 문을 확 닫자마자 얼굴을 구기며 짜증을 냈다.
“내 참. 어이가 없네. 아무리 최 소령이 실수를 했어도 자리에 앉아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그 말과 함께 혀를 쯧쯧 찼다.
“마음에 안 들어.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이미 홍민우 소령의 마음에는 송일중 중령과 확실하게 척을 지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있었다. 그래서 일까? 작전과로 향하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리던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전조사를 한단 말이지.”
출근하는 길에 방대철 주임원사는 사단 후배로부터 조만간 헌병대에서 사전조사를 위해 파견 나갈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 정말이야?”
“네. 확실한 정보입니다. 이미 사단장님께 보고도 올라갔습니다. 전수조사 하기 전 헌병대가 한번 쑥 훑겠다는 거죠.”
“에이씨. 뭘 그렇게까지 하고 그래.”
“제가 압니까. 아무튼 조심하십시오.”
“조심? 내가 뭘?”
“아, 아닙니다.”
사단 후배도 지나가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슬쩍 경고 차원으로 얘기를 꺼냈던 것이다. 그런데 방대철 주임원사가 역정을 내니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냥 하는 말입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네 일이나 잘해.”
“네.”
사단 후배는 괜히 얘기를 해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길로 대대로 돌아온 방대철 주임원사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자리에 앉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으음······.”
낮은 신음을 흘리고 있던 그때 그의 책상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