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10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4)
두 사람은 그 이후로 밤늦게까지 술을 먹었다. 전수조사에 관한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자신의 육군사관학교 시절 얘기나 다른 얘기들을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홍민우 소령과 최영도 소령이 술잔을 기울고 있던 그 시각 송일중 중령은 모처럼 개인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대략 1시간 반을 달려 서울 외곽으로 갔다. 거의 파주 쪽으로 이동한 그는 어느 호텔 앞에 도착을 했다.
“여긴가?”
차를 주차한 후 호텔 로비로 향했다. 그는 카운터로 바로 가지 않고 승강기로 발을 옮겼다. 그 누구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잠시 후 승강기 문이 열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14층을 눌렀다.
‘1407호라고 했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는 14층에서 내렸다. 잠깐 복도를 보던 그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호텔 호실을 확인하며 걷던 그가 1407호 앞에 멈췄다.
“후우······.”
송일중 중령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벨을 눌렀다.
띵동!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가만히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곳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송일중 중령을 보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들어오세요.”
“어, 그래.”
송일중 중령이 대답을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1407호의 문이 닫혔다. 송일중 중령은 뭔가 많이 어색한지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오시는 데 힘들지 않았어요?”
그녀는 송일중 중령을 잘 아는 듯 익숙하게 물었다.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괜찮았어요. 그보다 오래 기다렸어?”
“아뇨. 저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송일중 중령이 겉옷을 벗고 창가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후우······.”
뭐가 그리 초초한지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가 씨익 웃었다.
“긴장했어요?”
“긴장은 무슨······.”
그러곤 여자는 작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마실 거라도 드려요?”
“뭐 있어?”
“으음, 음료수랑 물이요. 아니면 제가 믹스 커피라도 타 드려요?”
“됐어. 그냥 물 한 잔 줘.”
“네.”
생수병을 꺼내 물을 따라줬다. 송일중 중령이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힐끔 여자를 바라봤다.
‘후후후, 오랜만에 봤지만 김영주 대위는 여전히 늘씬하군. 누가 유부녀라고 생각하겠어.’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송일중 중령의 눈빛이 음흉하게 바뀌었다.
“김 대위가 갑작스럽게 연락할 줄은 몰랐어.”
김명주 대위가 슬쩍 침대로 가서 앉았다. 그녀는 다리를 꼬이며 입을 열었다.
“저 안 보고 싶으셨어요?”
“아후, 무슨 그런 말을 하나. 당연히 보고 싶었지. 그런데 내가 미안해서 김 대위를 계속 만나나.”
김명수 대위가 씨익 웃었다.
“뭐예요? 언제는 사모님도 다 버리고 나랑 단둘이 떠나고 싶다고 하더니.”
“그건 진심이었어. 솔직히 이렇게 다시 보니 또 그때 감정이 살아나는 것 같아 힘들다.”
김명주 대위가 미소를 보였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송일중 중령에게 다가갔다. 그의 무릎에 앉으며 손으로 송일중 중령의 뺨을 쓰다듬었다.
“저도 중령님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러자 송일중 중령 역시 입가를 쓰윽 올리더니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후후후, 자네도 그런 맘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니 좀 놀랍군.”
“놀랄 것이 뭐가 있어요.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것인데요.”
“그래도 그렇지······.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자네가 내 무릎에 앉으니 좀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군.”
“어멋! 그럼 제가 살이 쪘다는 소리인가요?”
김명주 대위가 바로 몸을 떼며 말했다.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 대위. 우리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안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럽군. 우리 이러지 말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김명주 대위의 얼굴에 바로 섭섭함이 묻어났다.
“그럼 뭐 하러 왔어요?”
“명주야.”
송일중 중령이 김명주 대위를 지그시 바라봤다.
“네. 오빠.”
“우리 서로 잘살기로 했잖아. 이러면 너만 힘들어져.”
송일중 중령이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자 김명주 대위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연락 못 드려서 미안해요. 정말 연락하고 싶었고 보고 싶었는데······. 나 때문에 오빠도 고생 많이 했으니까. 그래도 꾹 참고 있었어요.”
김명주 대위가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자 송일중 중령도 그녀를 밀어 낼 수가 없었다. 그런 김명주 대위를 다시 꼭 끌어안았다.
“하아, 오랜만에 오빠가 안아주니 정말 좋다.”
“왜? 남편하고 요새 좀 안 좋아?”
“사이가 좋겠어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응? 남편이 참고 살기로 한 것이 아니야?”
“말 그래도 참고 살기만 하는 거죠. 한 이불만 덮고 살지······. 거의 대화도 하지 않아요.”
“그놈 그럴 거면 이혼을 해주든가. 왜 그러고 있는 거야?”
“몰라요. 나도. 제 딴에는 나랑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사는 것이 벌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라죠. 그러면 그럴수록 나중에 이혼할 때 분할할 재산만 많아지는데요.”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재산이 얼마나 한다고 버티고 있어. 못 버티겠으면 먼저 이혼을 해.”
“나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애가 아직 어려요. 저도 당분간은 좀 더 일을 해야 하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소령 진급을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만 더 해보려고요.”
김명주 대위가 자신이 대한 얘기를 했다. 송일중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명주가 하려고 한다면 해야지. 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잠시 재회의 감정을 나눈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뭔가 불꽃이 튀며 김명주 대위의 눈빛이 애틋하게 바뀔 때쯤 송일중 중령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응? 뭐예요?”
“으응······. 이놈이 눈치 없이 신호를 보내네.”
김명주 대위가 씨익 웃으며 송일중 중령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그가 바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급하게 올라오느라 식사 안 하고 왔나봐요.”
“그렇지.”
“우리 오랜만에 룸서비스 주문할까요?”
“좋지.”
“알았어요.”
김명주 대위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룸서비스를 주문했다. 식사가 올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의 자리에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식사가 왔고 서로 스테이크를 썰며 다시 얘기를 했다.
“음, 여기 호텔 스테이크 여전히 맛나네.”
“그렇죠. 전 가끔 여기 스테이크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김명주 대위가 와인잔을 들었다.
“자,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한잔해요.”
“좋지.”
송일중 중령 역시 와인잔을 들었다. 두 사람의 와인잔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챙!
한 모금을 마신 후 두 사람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렇게 모든 식사를 마무리하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다.
“자, 이제 날 왜 불렀는지 얘기를 해 봐.”
“왜요? 얘기 끝나면 할 일 있어요?”
“할 일은 무슨······. 알잖아. 나 지금 관사 생활 하는거.”
“그보다 사모님은 잘 계시죠?”
김명주 대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물었다. 송일중 중령 역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집사람이야 잘 지내고 있지. 애들도 잘 있는 것 같고. 나도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어.”
“에효, 오빠도 고생이 많네요.”
“고생은 무슨······. 명주만 할까.”
송일중 중령은 김명주 대위와 연애 사실이 들어나면서 아내와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이쪽도 아내가 원치를 않아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3대대로 넘어온 날부터 송일중 중령은 계속 부대 내 관사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애는 잘 크고 있어?”
송일중 중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명주 대위가 미소를 보였다.
“그럼요. 잘 크고 있죠. 사진 보여줄까요?”
김명주 대위가 휴대폰을 꺼내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자그마한 여자애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송일중 중령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어이구 많이 컸네.”
“애가 아빠를 닮아서 영특해요.”
송일중 중령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친자 확인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사진을 본 그 아이는 송일중 중령의 어릴 적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었다. 송일중 중령이 휴대폰을 덮고 건네며 말했다.
“언제 한번 같이 보자.”
“그럴까요?”
김명주 대위는 그런 그의 말에 좋은지 연신 미소를 보였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물었다.
“참! 이번에 전수조사가 실시된다면서요. 그 얘기 들었죠?”
“어. 들었지. 그렇지 않아도 우리 대대에서 꼴통 녀석 한 명 때문에 이 일이 벌어져서 나도 짜증 나 죽겠다.”
전 부대에서 송일중 중령도 똑같은 사고를 쳤으면서도 자신은 떳떳하고 윤태민 소위만 문제라고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김명주 대위도 맛다는 듯 맞장구를 쳐주며 떠들었다.
“나도 윤 소위 얘기는 얼핏 들었어요. 장난 아니던데요.”
“얘기 들었어?”
“네. 헌병대에 저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슬쩍 물어봤죠. 뭐, 그냥 사고 친 것이 한두 개 아니던데요. 어떻게 그런 애를 데리고 있었어요.”
“말도 마. 그 녀석 외할아버지가 신범규 준장이었잖아.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어.”
“와. 신범규 준장이었어요?”
“그래. 내가 그 양반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거든. 이렇게 사고를 칠 줄 알았으면 진즉에 다른 부대로 보내버리는 건데. 내가 등신이지, 등신이야.”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 마요. 이미 지난 일이에요. 아무튼 전수조사가 이루어지면 아마 우리 그 일도 조사를 하지 않겠어요?”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난 상관없어. 나는 우리 일 떳떳해. 그냥 미안한 것은 명주 너 하나뿐이야.”
김명주 대위가 미소를 보였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좀 더 조심을 해야 했는데······.”
“무슨 소리야. 다 내 잘못이야.”
두 사람은 서로 따듯한 눈빛을 보며 얘기를 나눴다. 그냥 두 사람은 따지고 보면 불륜이지만 어쨌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무튼 조사를 하면 나는 최대한 아무 일 없었던 것이라 말을 할 거예요. 오빠도 그렇게 말을 하세요.”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명주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나도 위로 올라가야 하잖아. 큰물에서 놀아야지.”
“그럼요. 그래야죠. 전 오빠가 날 아직도 생각해 주고 있어서 고마워요.”
“당연하지. 내가 널 어떻게 잊어.”
그 말에 김명주 대위는 감동 받은 듯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오빠······.”
“명주야.”
그리고 두 사람은 모처럼 만에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3년 만에 만났지만 한창 만났을 때 불같은 사랑을 나눴던 때처럼 밤새도록 꼭 끌어안은 채 밤을 보냈다.
그다음 날 송일중 중령이 1호차를 타고 부대로 출근을 했다.
“대대장님 도착했습니다.”
“어. 그래.”
1호차에서 내린 그가 지휘봉을 휘두르며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던 중 복도에서 인사장교인 황명수 대위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