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09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3)
최영도 소령이 사케집 구석에 자리했다.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보다 10여 분 일찍 도착해 자리했다. 종업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것을 드릴까요?”
“아, 사케 하나랑 안주 될 만한 거 2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손님 한 분 더 올 겁니다. 잔도 미리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가고 그가 두고 간 물을 잔에 따랐다. 잠깐 생각에 잠기며 물 한 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때 딸랑 소리가 들리며 입구 문이 열렸다. 홍민우 소령을 발견한 최영도 소령이 바로 손을 들었다.
“홍 소령. 여기!”
“아, 그래.”
홍민우 소령이 그곳으로 가서 맞은 편에 앉았다.
“언제 왔나?”
“나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네. 술은 내가 주문했어. 괜찮지?”
“괜찮아. 잘 지냈나?”
“그래, 뭐······.”
일단 두 사람은 그 사건 이후로 처음 보는 자리였다. 그날 이후로 좀 서먹서먹해진 관계였는데, 다시 얼굴을 보니 잔잔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술이 나왔고, 최영도 소령이 먼저 술을 들었다.
“일단 내 술 한 잔 받게.”
“어, 그래.”
홍민우 소령이 술잔을 들었고, 술을 다 받은 후 술병을 건네받아 최영도 소령의 술잔에 따랐다.
“일단 한 잔부터 하자고.”
“그러지.”
두 사람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최영도 소령이 다시 각자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곤 홍민우 소령을 보며 말했다.
“홍 소령. 지난번 일은 미안하게 됐어.”
“지난번 일? 무슨 일?”
홍민우 소령이 애써 모르는 척했다. 최영도 소령의 얼굴로 잠시 씁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때······. 내 코가 석 자라서 홍 소령 자네에게 제대로 말도 못 했네.”
그제야 기억이 난다는 홍민우 소령.
“아, 그 일? 됐어! 내가 지난번 말했잖아. 그런 것 가지고 부담 갖지 말라고.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네. 자네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말이야.”
그 말에 최영도 소령이 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홍 소령이 그렇게 말하니 내 진짜······. 자네 얼굴을 볼 낯이 없네. 자자, 내 술 한 잔 더 받아.”
“어, 그래.”
그렇게 홍민우 소령이 술을 받았다. 두 사람은 또 서로의 잔에 술을 채웠다.
“잊어버리자고. 우리가 어디 한두 해 보던 사이인가?”
“그건 그렇지.”
“그러니 잊자고.”
홍민우 소령의 말에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 된 최영도 소령이었다. 그리고 홍민우 소령이 먼저 묻는다.
“요새 헌병대 생활은 어때?”
“헌병대 생활?”
또 한 번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안주를 입에 가져갔다.
“말도 마. 이번에 이 일 맡기 전까지는 보직해임 상태나 마찬가지였어. 그냥 뭐······.”
더 자세하게 얘기는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왠지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홍민우 소령은 좀 놀란 표정이었다.
“보직해임?”
“거의 직전까지 같지.”
“그래? 이거 내가 더 미안해지는데.”
최영도 소령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꼭 홍 소령 자네 때문만은 아니고······. 그동안 좀 내 고집대로 처리한 일들이 많았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한꺼번에 그리 된 거지. 그리고 사실 나도 그렇게 갑자기 증거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어.”
그러니 홍민우 소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 최영도 소령이 손바닥 뒤집듯 자신에게 선을 그었을 때는 솔직히 많이 서운했다.
그래도 최영도 소령을 자신과 가장 친한 동기라 여기고 있었다. 또한 그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만약에 자신이 먼저 진급해서 올라가면 최영도 소령을 끌어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최영도 소령과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고,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윤태민 소위의 모든 정황이 드러나서 헌병대로 끌려가고 그 결과 전수조사까지 이루어지니 솔직히 서운했다.
그냥 전화로 미안하다, 내가 노력은 했는지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식의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영도 소령은 자신만 살겠다며 발을 완전 빼버렸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최영도 소령이 이미 보고를 한 상태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인해 최영도 소령이 곤란해졌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자 홍민우 소령이 엄청 미안해졌다. 최영도 소령은 자신의 말만 믿고 자신을 위해 판을 짜놓았을 텐데 그 일이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마치 증거 조작을 한 것 같은 결과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영도 소령이 자신에게 한 행동과 그런 식으로 피한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최영도 소령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네는 어떻게 지내?”
이번에는 최영도 소령이 물었다. 홍민우 소령이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자네를 곤란하게 만든 일로 벌을 받고 있는 모양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나 군 생활이 완전 꼬여 버렸네. 소령 달고 이게 무슨 일인지······.”
“왜 그래? 어쩌다가?”
“우리 대대장님 말이야.”
“송일중 중령님?”
“그래.”
“그분이 왜?”
“하아, 내가 사실 그 양반을 크게 믿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옆에서 잘 보좌하면 괜찮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니더라.”
“왜? 송 중령님이 뭐래?”
“송 중령님이 뭐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뜸을 들이던 홍민우 소령이 결심한 듯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자네만 알고 있어.”
“뭔데?”
최영도 소령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몸이 바짝 앞으로 다가갔다.
“윗선에서 송 중령은 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
“뭐? 진짜로? 소문에는 육본 올라간다고 그러더니······.”
“그건 진즉에 틀어진 것 같고. 이번에 전수조사로 일이 커졌잖아. 그 시작이 우리 3대대이고, 또 우리 대대장님이 관리를 소홀히 한 점이 없지 않아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위로 올라가려면 있는 소문도 없애고 그래야 하는데······. 그것을 잘하지 못한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이 일 저 일도 생기고······. 이번 전수조사도 그래. 우리 연대는 일심회에서 파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 인원이 나와서 조사를 한다고 해.”
“아, 그래? 어쩌다가?”
“그건 나도 모르지.”
“아무튼 위에서 그렇게 얘기를 들었는데 뭘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말이야. 어쨌든 전수조사는 한다고 하지. 분명 이것저것 걸고넘어질 텐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지. 그렇다고 저쪽에서 전수조사를 했는데 다 덮고 넘어가지는 않을 것 아니야.”
“그렇지.”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두 사람 꼭 찍어서 조사를 하는 것이 저쪽 입장에서도 생색내기 좋고 그러지 않겠어?”
얘기를 듣는 최영도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타깃이 송일중 중령으로 정해진 거야?”
“아직 모르겠어. 확정적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그럼 자네도 위험할 수 있잖아.”
“왜? 걱정돼?”
“당연히 걱정이 되지. 동기들 중에서도 자네가 제일 잘나갔잖아.”
“나야 뭐 타격을 좀 입더라도 느긋하게 간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아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 자네가 빨리빨리 올라가야지. 동기들 전부 다 널 지켜보고 있는데.”
홍민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 동기 중에서 홍민우 소령이 먼저 진급을 해 길을 열어놔야 다른 동기들도 차례차례 진급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홍민우 소령이 못 올라가면 동기들 역시 순번이 뒤로 밀려나는 것도 당연했다. 한마디로 너희 동기들 중에 홍민우 소령이 최고인데 그 녀석도 못 올라가는 판에 무슨 진급 욕심을 부리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이 또한 인식의 차이였다. 사실 검찰에서는 아랫기수가 윗기수보다 먼저 올라가면 그 윗기수는 다 옷을 벗는다. 아무래도 윗기수가 아랫기수에게 명령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건 관례였다.
군부대 역시 이 같은 일이 존재했다.
“아무튼 난 이번 조사에 내 미래가 걸려 있는 것도 과언이 아니야. 그러니 최 소령이 좀 잘 봐줬으면 좋겠어.”
“하아, 내 어깨가 또 무거워지겠네.”
“그러지 말고······. 난 최 소령을 믿으니까. 최 소령 실력 발휘 좀 해봐.”
그렇게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최영도 소령이 입을 열었다.
“홍 소령.”
“응?”
“그러지 말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오랜만에 술이 먹고 싶어서 그런 거라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지금 정신 말짱할 때 할 수 있는 소리를 해. 과한 것은 내가 못들은 셈 칠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줄게. 우리 동기 아니야.”
잠시 망설이던 홍민우 소령이 술잔을 단번에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우리 주임원사하고 대대장님도 같이 조사를 해줬으면 하는데.”
“뭐? 너희 대대장님까지? 아니, 왜?”
“어쩌다 보니 주임원사하고 대대장님이 대립하는 경우가 되어버렸어.”
“좀 자세히 말해줄래?”
“사실 주임원사 비리 상황은 많이 알려진 내용이야. 그래서 우리 자체적으로 전수조사하기 전에 소문을 듣고 나서 자체적으로 작전과에서 조사를 해왔어. 주임원사가 이런저런 건에 많이 연루가 되어 있어서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주임원사가 난리도 아니야.”
“그렇겠지. 주임원사 입장에서는······ 뒤통수가 따끔할 테니까.”
“맞아. 그런데 그 배후를 대대장 쪽으로 잡고 있는 것 갔더라고.”
“주임원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 아니야? 홍 소령이 지금까지 척을 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 아니야.”
“나야 뭐, 그냥저냥 지내고 있었지.”
“좋아. 주임원사는 대대장을 의심을 한다. 여기까지는 이해를 했어. 대대장은?”
“대대장은 왜?”
“이 일이 있으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야?”
“그런 것도 있는데······. 만에 하나 저쪽에서 대대장님과 거래를 할 수 있는 거잖아.”
“저쪽에서? 그럴 필요가 있고? 그렇게까지 할까?”
“솔직히 말해서 대대장님 자리가 비면 내가 한번 노려보려고 했어.”
“오오, 홍 소령이?”
“응.”
“그럼 진즉에 말했어야지. 그런 일이라면 내가 도와줄게.”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사할 수 있는 것만 조사해. 아니라면 하지 않아도 돼.”
“걱정하지 마. 그리고 어차피 주임원사를 노리고 있다면 우리가 조사를 했을 때 주임원사 쪽에서 우리 쪽으로 소스를 던져주겠지.”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래. 조사를 해서 양쪽을 다 조사하면 되는 거지. 그러니 홍 소령은 나만 믿고 있어.”
“그래. 고맙다.”
“그런데 홍 소령.”
“응?”
“홍 소령은 뭐 없지?”
“알잖아. 내가 주변 관리 철저히 하는 거.”
“알지, 알아. 그러니 내가 홍 소령은 존경하잖아.”
“존경은 무슨······. 동기끼리 무슨 존경이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한 잔 받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