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07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41)
오상진이 자신의 차량을 타고 이동을 했다. 지난 임태규 중령과 식사를 하기로 한 약속을 했는데 바로 그날이 오늘이었다.
“이쪽이 맞나?”
오상진은 차량을 몰고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좀 외곽으로 이동했다.
“으음.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다고?”
완전 시골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 입구에 정말 간판이 있었다.
“어라? 진짜 음식점이 있네.”
오상진의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곳으로 차량을 몰았다. 입구에서 좀 더 들어가자 넓은 주차장이 나왔고, 한옥 집으로 된 가게가 턱 하니 있었다.
“이런 곳에 가게가 있다니······.”
일단 주차를 한 후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는 배우 고풍스러웠으며 왔다 갔다 하는 종업원들 대부분이 정갈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오상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한 종업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예약은 하셨습니까?”
“네. 아마 임규태 씨로 예약이 되어 있을 겁니다.”
“임규태 씨요. 잠시만요.”
카운터에서 뭔가를 확인하던 종업원이 바로 환한 얼굴이 되었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절 따라오세요.”
“네.”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이동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방으로 된 집이었다. 밖에는 테이블이 없었다. 중간쯤 이동했을까? 종업원이 한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방 안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임규태 중령이 이미 와 있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니야. 제시간에 왔는데 뭘.”
오상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먼 곳으로 잡으셨습니까? 저는 이곳에 음식점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가?”
임규태 중령이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물을 마셨다.
“사실 이곳으로 잡은 것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네.”
“네? 설마 누가 또 오는 겁니까?”
눈치 하면 또 오상진이었다. 임규태 중령이 껄껄 웃었다.
“아무튼······. 오 대위는 눈치가 빨라.”
“그래서 누가 오시는 겁니까?”
“신범규 준장님께서 오시기로 했네. 왜? 불편한가?”
임규태 중령의 눈빛이 오상진을 살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사실 이곳도 신범규 준장님 단골이야.”
“아. 그러셨구나.”
오상진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임규태 중령은 계속해서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자네 너무 불편할 생각은 하지 말게. 신 준장님께서 윤 소위 건 말고도 자네와 밥 한 끼 먹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야.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은 미안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신 준장님 만나는 거 괜찮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면 되네. 그냥 선배 만난다고 생각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얻어먹어도 되는 겁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임규태 중령이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하하하! 당연하지. 선배님께서 후배님 밥 사주는데 뭔 상관이야.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대부분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담을 가져야 하던데 말입니다.”
“어허. 날 못 믿나.”
“당연히 믿죠.”
“그럼 부담 갖지 말고 식사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던 중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고, 천천히 문이 열리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나타났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임규태 중령이 환한 얼굴로 신범규 예비역 준장에게 인사했다.
“어. 그래. 내가 좀 늦었네.”
“아닙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오상진을 바라봤다.
“자네 오랜만일세.”
“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덕분에······. 일단 앉지.”
“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상석에 있고 그 양옆으로 임규태 중령과 오상진이 나란히 앉았다. 그러곤 일상적인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잘 지냈나?”
“그렇죠. 항상 똑같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 오 대위는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자신이 얼굴을 손을 만졌다. 그러자 임규태 중령이 살짝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부대에 신경 쓸 일이 줄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바로 말했다.
“이 친구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앞에서 그 소리를 하고 싶나?”
“아후. 선배님. 농담입니다. 농담.”
“자네 그러다가 날 가지고 놀겠어.”
“에이. 아닙니다. 선배님.”
두 사람의 대화에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신범규 예비역 준장과 눈이 마주쳤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 소위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잘 있네. 지난번에 면회를 갔는데 잘 지내더군. 뭐 그 안에서 잘 반성하고 있겠지.”
대답은 하지만 뭔지 모르게 씁쓸한 얼굴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임태규 중령이 물었다.
“이번에 2년에 집행유예 1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 정도면 낮게 나왔지.”
슬쩍 오상진을 의식해서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윤 소위는 나오면 이제 뭐 한다고 합니까?”
임규태 중령이 물었다.
“자기 엄마. 장사나 돕게 다고 하더라고.”
“그렇습니까.”
“그놈. 애당초 군인 될 팔자는 아니었어. 집안이 어려워지니 나에게 거래를 한 것뿐이지. 자네도 알지 않는가. 내 소원이 내 뒤를 이을 군인 자식을 보는 거 말이야.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손자 중에서도 그놈이 그래도 내 길을 가겠다고 했지. 그때는 참 좋았는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그때를 기억하는 듯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임태규 중령이 말했다.
“자식 농사든 외손자 농사든 어떻게 선배님 뜻대로 되겠습니까. 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거죠.”
“그렇지······.”
잠시 후 식사가 나오고 맛있게 먹고.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묻는다.
“어떻게 4중대는 많이 안정되었는가? 대대는 별일 없고?”
물론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말이었다. 오상진도 그냥 별 뜻 없이 대답했다.
“요즘 전수조사를 실시해서 조금 시끄럽습니다.”
“전수조사? 아. 그 일······.”
신범규 예비역 준장 역시 신문과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것 역시 자신의 외손자 때문에 터진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어?”
임태규 중령이 말했다.
“아닙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대로 조사를 하더란 말입니다.”
“그런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임태규 중령과 오상진은 왜 그러는지 다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윤태민 소위가 도화선이 되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최익현 의원에게 얘기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바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신범규 예비역 준장도 눈치가 있는 노인이고, 오랜 군 생활로 다져진 짬밥이 있었다.
“혹시 우리 태민이 때문인가?”
“······.”
“······.”
임태규 중령과 오상진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 준장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말했다.
“이 사람들아. 아무리 내가 뒷방 늙은이로 물러났다고 해도 알 건 다 아네.”
“꼭 윤 소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언젠가 한 번 터져야 할 것이 이번에 터진 것뿐입니다.”
“그런가?”
“네. 뭐, 조금, 아주 조금 윤 소위 사건의 영향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네. 잘되었네. 잘되었어. 뭐든 고여 있으면 썩게 마련이야. 솔직히 현 군대는 너무 고여 있어. 사실 내가 밖에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민망하지만 내가 나와서 정화를 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고인물을 뚫어보려고 많이 고생을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어. 내가 후배들에게 미안하네.”
“네. 그럼요. 미안하셔야죠.”
“뭐라고?”
임규태 중령의 말에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눈을 부릅떴다.
“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허허 이 사람이······.”
“이런 내가 속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입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이 친구가 요즘 왜 이래.”
“하하하······.”
임규태 중령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던 중 신범규 예비역 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따르릉, 따르릉.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바로 전화를 확인했다.
“아, 잠깐 전화 좀 받고 오겠네.”
“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나가고 임규태 중령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네.”
“그런 것치고는 정말 잘 드시는 것 같습니다.”
“나야. 뭐 면역이 되어서 그렇지. 자네는 어때? 많이 불편한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그리고 저 양반이라고 편할 것 같나. 게다가 전역은 했지만 나이도 있고 아직까지 군대에서 힘이 커. 무엇보다 저 양반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던데······. 자네도 나쁘게 지낼 필요는 없잖아.”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자리를 마련하셨습니까? 혹시 정치로 바로 넘어가시는 것입니까?”
임태규 중령이 씨익 웃었다.
“어이쿠야. 아무튼 자네는 진짜 눈치가 빨라.”
“마음을 정했습니까?”
“마음이야 진즉에 정했지. 정했는데······. 나도 나름 군인으로서 욕심이 있잖아. 그래서 준장까지는 달아보고 진출을 할까? 생각을 했어. 그런데 지난번에 신 준장님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어. 얘기를 듣고 보니 대령으로 진급하는 것도 쉽지 않고, 게다가 별은 윗선에 줄을 대고 있지 않으면 거의 가망이 없다고 봐야 해. 문제는 하나씩 진급을 할 때마다 서서히 초심을 잃어간다는 거지. 초심도 잃고 싶지 않고 그래서 정치를 할 거면 군대 물들이지 않고 빨리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 생각을 한 것뿐이네.”
오상진은 임규태 중령의 말이 나쁘지도 않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상진도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임규태 중령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물었다.
“참. 아까 전화로 나에게 뭐 줄 것 있다고 그러지 않았나?”
“네.”
오상진이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녹음파일입니다.”
“녹음파일?”
“네. 아마 들어보시면 좀 놀라실 겁니다.”
“그래? 도대체 뭔 얘기가 들어 있기에 자네가 그래?”
“가서 직접 들어보십시오.”
“오케이 알았어.”
다시 문이 열리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들어왔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통화 잘하셨습니까?”
“어어. 잘했네. 나 때문에 식사가 끊어졌군.”
“아닙니다. 저희는 뭐 다 먹었습니다.”
“그래?”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반쯤 남긴 밥을 보다가 수저를 도로 내려놓았다.
“뭐, 나도 다 먹었네.”
“더 드시지 않고······.”
“아니야. 그냥 후식으로 차나 마시면서 얘기를 좀 더 나누도록 하지.”
“네.”
그리고 후식으로 잣을 동동 띄운 수정과가 들어왔다. 그것을 한 모금 마시자 입안이 한결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별다른 것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한 후 점심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