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305화
05. 바로잡아야 합니다(39)
한 시간 정도 녹음된 파일의 내용은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추행당하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한 시간 가까이 듣다 보니 오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아, 주임원사 이 인간은 도대체 군대를 왜 들어온 거야. 주임원사씩이나 되어서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오상진은 화풀이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래서 오상진은 애써 화를 누그러뜨리고 난 후 임규태 중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 대위 무슨 일이야?
“충성. 혹시 말입니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습니까?”
-시간? 시간이라······. 무슨 일이야?
“전에 제가 드렸던 자료 있지 않습니까.”
-그 자료? 왜? 그거 하지 마?
“그것이 아니라 추가 증거가 나왔습니다.”
-추가 증거? 오호, 그럼 받아야지.
“그런데 제가 직접 갈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사단 올라간 것을 주임원사가 알았습니다. 상자가 있는 것도 알고 말이죠.”
-그랬어?
“네. 일단은 돌려보냈는데······. 시간을 좀 번 것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주임원사가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자네가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해도 의심하고 알아보려고 할 거야.
“으음······.”
-그럼 이렇게 하자. 내일쯤 나랑 점심이나 하자. 시내에서 말이야. 어때? 괜찮지.
“내일 말입니까?”
-어.
“알겠습니다. 그럼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십시오.”
-알았네. 아, 그리고 적당히 눈가림이 필요하니까. 일행이 있을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시각 방대철 주임원사는 이정명 중사와 함께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정명 중사를 통해 방대철 주임원사는 함승희 중위가 오상진을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쾅!
“뭐? 어딜 갔다고?”
“4중대에 갔다고 합니다.”
“아니, 4중대는 왜?”
“듣기로는 4중대장을 만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와······. 미쳤네. 미쳤어. 제정신이야?”
“그러게 적당히 하셔야지 말입니다.”
“뭐? 내가 뭘 했는데 인마.”
“어제 작전과까지 쳐들어가서 깽판을 치지 않았습니까. 이미 부대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그러면 내 전화를 일부러 피하고 씹고 그러는데 그걸 그냥 놔둬?”
“그럼 나중에 작전과장님을 따로 만나서 사정 얘기하고 만나면 될 것 아닙니까. 막말로 주임원사님도 작전과장님께서 찾아와 지랄을 하면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야! 그거나 이거나 같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임관한 지 고작 2년 좀 넘은 함 중위랑 너희들이랑 같아?”
“그래도 주임원사님이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아, 그래서? 오상진은 왜 만났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죠. 그냥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작전과도 주임원사님 부담스러워서 선 그은 것 아닙니까.”
“하아, 젠장! 작전과장 그 양반이야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방대철 주임원사는 홍민우 소령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도 능구렁이지만 훨씬 더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해온 자신보다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홍민우 소령이 당연히 함승희 중위와 엮여서 자신을 적으로 두느니 선을 그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이 홍민우 소령 짓인가? 이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하물며 대대장의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닌가? 그 생각도 했다. 그래서 대대장의 뒷조사를 해보라고 이정명 중사에게 지시를 내렸고 말이다.
하지만 대충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 홍민우 소령은 딱히 자신과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오상진 대위인데······.’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정명 중사가 툭 던졌다.
“지금이라도 4중대에 가서 한바탕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한바탕하기는 뭘 해! 지난번에도 그 일을 가지고 얼마나 지랄을 하는데.”
“4중대장이 말입니까? 4중대장 짬에 그러면 안 될 텐데 말입니다.”
이정명 중사는 말도 안 되는 짬 얘기를 꺼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그런 이정명 중사를 한심스럽게 바라봤다.
“야. 이 중사. 4중대장이 계급으로 날 누르더라. 와, 다른 사람도 아니고 4중대장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버리니 할 말이 없더라.”
“와, 그렇게 안 봤는데······. 군 생활을 그딴 식으로 합니까?”
“말도 마라. 주인 없는 방 한 번 들어갔다고 어찌나 지랄을 하는지. 나보고 사과를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사과를 했습니까?”
“몰라 인마.”
“에이, 사과를 했네. 했어.”
“시끄러워! 아무튼 오상진은 별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어라? 왜 그렇게 천하태평이십니까?”
“내가 말했잖아. 지난번에 가서 확인해 보니까. 오 대위는 딱히 이 일에 끼고 싶지 않았다니까.”
“지난번에는 오상진이 의심스럽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때는 그랬는데······. 돌아가는 정황을 봤을 때는······. 아니, 홍민우 소령도 손을 뗐는데 이제 와 최윤희까지 건드려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답이 나왔겠지.”
“하긴 그런 그렇지 말입니다. 몇 년 전일이고 그 당사자들도 거의 전출 가거나 군을 떠났지 말입니다.”
“그렇지. 신경 쓰지 말고······. 에효, 요즘 들어서 사는 낙이 없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의자에 몸을 깊게 눕히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정명 중사가 말했다.
“그러면서 만날 박 중사 부르시지 않습니까.”
“이 새끼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네. 나는 인마 박 중사가 여자다 보니 이곳에 와서 좀 쉬게 만들려는 의도지. 다른 의도가 있나?”
“에이. 저도 다 압니다.”
“알긴 뭘 알아.”
“그보다 주임원사님 박 중사 적당히 부르십시오.”
“왜, 인마. 왜? 예전부터 박 중사 좋다고 난리더니 아직도 못 잊었냐?”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아니긴. 박 중사 좋아했던 놈들이 어디 한둘이야?”
“저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 말고도 소문이 좀 들립니다.”
“소문? 어떤 소문?”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튼 자꾸 주임원사님이 틈만 나면 박 중사를 불러대니. 박 중사가 제대로 일을 못 하지 않습니까. 그럼 그 일은 누가 다 합니까. 주변 부사관들이 나눠서 해야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가뜩이나 여자 부사관인데······.”
“아무튼 그 새끼들은 인정이 없어. 여자 부사관이면 적당히 눈감아주고 서로서로 도와주고 그래야지. 어떻게 남자 부사관들은 매너가 없어. 부대 여자 부사관이 들어오면 아껴주고 예뻐해 주고 그래야지. 꽃이 들어왔는데 다 같이 아주 그냥 흙만 묻히려고 들어.”
그 얘기에 이정명 중사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고. 그 꽃 예쁘다고 가장 먼저 때 타게 만든 사람이 주임원사입니다. 어떻게 자기가 한 짓은 생각도 않고······.’
그렇지만 그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무튼 당분간은 그러지 마십시오. 가뜩이나 여자 부사관들 사이에도 소문이 안 좋은데 혹시라도 이번에 전수조사라도 나와서 쓸데없는 소리를 해보십시오.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진짜······.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적당히 부르십시오.”
“야. 이 중사! 너 많이 컸다. 이 새끼가 주임원사에게 따박따박 말대꾸도 하고 말이야.”
“와, 그렇게 말씀하시면 억울합니다. 저는 주임원사님을 진정으로 생각해서 드리는 충언인데······. 게다가 대대장님 뒷조사를 목숨 걸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러시기입니까?”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안 부른다, 안 불러. 아주 그냥 주임원사 노릇 하기 힘드네. 힘들어!”
“저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분간만 적당히 몸 좀 사리시라는 말입니다.”
“알았다니까. 너 일 안 해? 그만 나가봐.”
“나갑니다.”
이정명 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중사 저 새끼, 괜히 찾아와서는 사람 기분을 더럽게 만들고 말이야. 그보다 우리 박 중사 엉덩이가 참 토실토실하고 그랬는데······. 또 누구랑 노나?”
방대철 주임원사가 잠시 뜸을 들이고 있는데 때마침 홍성율 중사가 지나갔다.
“어? 홍 중사!”
“······.”
홍성율 중사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지나치려 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홍성율이!”
방대철 주임원사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제야 마지못해 홍성율 중사가 고개를 돌렸다.
“충성······. 네, 주임원사님.”
“이리 와.”
홍성율 중사가 다가갔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인상을 썼다.
“너 인마. 내가 불렀는데도 못 들은 척했지?”
“아닙니다.”
“아니야? 확실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상하네. 다른 사람들은 다 쳐다봤는데 너만 안 쳐다봤는데.”
“······제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못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십니까?”
“시끄럽고 이리 와봐.”
“네?”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리 오라고!”
“네.”
홍성율 중사는 고개를 돌려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방대철 주임원사가 있는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휴게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를 보며 방대철 주임원사가 인상을 썼다.
“야! 홍 중사.”
“네.”
“넌 이 자식아. 많이 컸다. 내가 부르는데 모른 체하고 말이야. 즉각, 즉각 달려와야 할 것 아니야. 왜 못 들은 척을 해?”
“네에? 제가 말입니까? 저 진짜 주임원사님께서 부르시는 줄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어?”
“네. 정말 못 들었습니다.”
“까고 있네!”
“······.”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코웃음을 날렸다. 홍성율 중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말 못 들었다고?”
방대철 주임원사가 다시 한번 물었다. 홍성율 중사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못 들었습니다.”
“못 듣기는 지랄······. 너 청력에 문제 있어?”
“청력 말입니까? 그런가? 안 그래도 요즘 잘 안 들리는 것 같습니다.”
홍성율 중사는 능청스럽게 말을 하며 괜히 자신의 귀를 후벼 팠다. 당대철 주임원사가 그 모습을 보며 툭 내뱉는다.
“그럼 인마 옷을 벗어.”
“네?”
“군인이라는 놈이 귀도 먹고, 사람도 못 알아보고 그러면 뭐 하러 군인을 해. 옷 벗어야지.”
“주임원사님······.”
“내가 이 바닥에 있는 것도 한두 해가 아닌데. 일부러 못 알아보고 못 듣는 것도 못 알아볼 줄 알아?”
방대철 주임원사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대철 주임원사는 이미 홍성율 중사가 자신을 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홍성율 중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못 들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발뺌을 했다. 그렇다고 뒤끝이 심한 주임원사에게 죄송합니다, 인정하는 순간 완전 끝이었다. 어쨌든 재빨리 화제를 돌려야 했다.
“그것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새끼가 너! 요즘 사고 치고 다니냐? 아니면 얌전히 있어? 하긴 네가 얌전히 있을 놈은 아니지.”
“무슨 말씀입니까. 저 요즘 얼마나 얌전히 있는데 말입니다.”